와인을 만드는 방법 중 아파시멘토(appassimento)라는 것이 있다. 포도를 양조하기 전 대나무 선반에 장기간 자연 건조하여 와인의 풍미와 아로마를 응축시키는 것으로 로마 시대부터 이태리 베네토 주(州)에서 활용된 전통적인 방식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30~40% 수분이 감소하여 당분과 타닌, 각종 풍미 요소 등이 농축되어 복합적인 맛과 향을 지닌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일부 귀부균(botrytis)의 영향을 받은 포도는 글리세린(Glycerin)이 생겨 특유의 부드러운 풍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파시멘토 방식을 사용해 만들어지는 베네토의 명주(名酒)가 바로 높은 도수와 강한 타닌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농밀한 과실 풍미와 숙성 뉘앙스가 매력적인 아마로네(Amarone)이다.

포도를 건조하는 대나무 선반 (출처: 마시 홈페이지, www.masi.it)
이런 아파시멘토 방식을 대표하는 생산자 마시(Masi Agricola)의 와인을 소개하는 디너가 11월 19일 서울 신사동 레스토랑 ‘그라노(Grano)’에서 열렸다. 마시는 1772년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지역 마시 계곡(Vaio dei Masi) 인근에 설립된 유서 깊은 가족 경영 와이너리. 베네토의 토착 품종을 중심으로 품질과 대중성을 겸비한 와인을 생산한다. 마시의 와인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전통과 혁신. 마시는 전문 연구팀을 통해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아파시멘토 방식을 현대화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 데 활용하고 있다.
마시에서 아파시멘토를 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첫 번째는 아마로네를 만드는 방식으로 건조한 포도 100%로 양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건조 포도로 양조한 와인과 일반 포도로 양조한 와인을 혼합하는 블렌딩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건조한 포도에 일반 포도로 발효한 와인을 넣어 추가 발효시키는 이중발효(double fermentation)가 있다. 특히 이중발효는 마시의 전통에 대한 존중과 혁신의 열정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하겠다. 1964년 아마로네를 양조하고 남은 포도 찌꺼기에 와인을 섞어 발효하는 ‘리파쏘(Ripasso) 방식의 와인 양조에 최초로 성공한 마시는 이중발효를 통해 아파시멘토 활용법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아마로네에 이미 많은 풍미를 빼앗긴 찌꺼기에서 재발효하는 리파소 방식에 비해, 건조시킨 새 포도를 첨가하여 두 번째 발효를 하는 이중발효는 과실 풍미와 알코올을 더욱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결국 더욱 복합적인 풍미와 탄탄한 구조를 가진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 디너에서는 위 세 가지 아파시멘토 방식을 활용한 와인과 신선한 포도로만 양조한 와인까지 총 네 가지 스타일의 와인이 소개되었다. ‘레바리에(Levarie)’와 ‘보나코스타(Bonacosta)’는 말리지 않은 포도로 만든 클래식한 소아베(Soave)와 발폴리첼라(Valpolicella)이며, ‘마시안코(Masianco)’는 블렌딩 방식, 마시의 대표적 와인인 ‘깜뽀피오린(Campofiorin)’은 이중발효, 마시의 시그니처 와인 ‘코스타세라(Costasera)’와 싱글 빈야드 와인 ‘깜뽀롱고 디 또르베(Campolongo di Torbe)’는 100% 아파시멘토 포도를 사용한 아마로네이다. 와인과의 마리아주(mariage)를 고려해 준비된 그라노의 특별한 요리들은 마시 와인의 가치와 품격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다.

제공된 와인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Masi, ‘Levarie’ Soave Classico DOC 2011 푸른 빛이 살짝 감도는 레몬 옐로우 컬러. 색과 대칭을 이루는 싱그러운 레몬 라임 향에 은은한 아몬드, 청포도 본연의 풍미가 상큼한 신맛을 타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심플하고 부담 없는 미디엄라이트 바디 소아베. 레몬 소스가 곁들여진 방어 요리와 향과 풍미 면에서 좋은 궁합을 보였다. 신선한 가르가네가(Garganega) 85%에 트레비아노(Trebbiano) 15%를 블렌딩.
Masi, ‘Masianco’ Pinot Grigio e Verduzzo delle Venezie 2011 매끈한 14K 골드 컬러. 달콤한 파인애플과 말린 망고, 방금 껍질을 벗긴 오렌지 향기. 약간의 토스티 힌트와 잘 익은 과일 맛이 어우러지며 풍부한 미감을 선사한다. 북동부 이태리의 토착 품종인 베르두쪼를 3주간 말린 후 양조하여 신선한 삐노 그리지오 75%에 블렌딩했다. 바디가 풍만하고 구조가 좋은 와인으로 방어 요리와는 바디 면에서 괜찮은 궁합을, 송이 버섯을 넣은 사슴 카르파초(Carpaccio)와는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Masi, ‘Bonacosta’ Valpolicella Classico DOC 2011 은은한 다홍빛 액체. 가벼운 후추가 뿌려진 달콤한 라즈베리와 체리향. 비교적 드라이한 미감에 적당한 산미, 붉은 과실 풍미가 싱그러운 생기 넘치는 미디엄 바디 와인. 코르비나(Corvina) 70%, 론디넬라(Rondinella) 25%, 몰리나라(Molinara) 5% 로 양조하며 오리고기 라구 소스 파스타와 대등하게 맞서는 풍부한 과일 맛을 보여주었다.
Masi, ‘Campofirorin’ Rosso del Veronese 2009 검보라 빛 감도는 루비 컬러. 매콤한 스파이스가 가볍게 느껴지는 첫 향에 이어 익은 자두, 말린 체리, 건포도 뉘앙스. 가벼운 잔당감이 둥근 질감과 어우러져 베리 사탕 같이 신선하고 어린 느낌을 주지만, 잘 익은 자두와 무화과 풍미에 더해지는 시나몬 힌트, 발사믹 뉘앙스는 숙성된 와인의 복합미를 엿보기에도 충분하다. 아마로네를 넣어 만든 베네토 스타일 리조또와는 피를 나눈 형제처럼 친밀한 느낌.
Masi, ‘Costasera’ Amarone della Valpolicella Classico 2008 톡 쏘는 후추와 매콤한 스파이스, 시원한 허브와 커런트, 자두, 붉은 베리 풍미의 조화. 붉은 과일 맛이 풍부하게 느껴지며 은근한 코코아 피니시로 마무리된다. 첫 향부터 임팩트 있고 첫 모금부터 밀도 높은 풍미. 개운한 산미 뒤로 느껴지는 촘촘하지만 부드러운 타닌은 매끄러운 질감을 형성한다. 지금 마시기에도 좋고, 숙성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것도 흥미롭겠다. 진한 드미글라스 소스가 곁들여진 최상급 한우의 육질과 맛이 코스타세라의 진한 풍미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욱 완벽하게 살아나는 듯 하다.
Masi, ‘Campolongo di Torbe’ Amarone della Valpolicella Classico 2006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정향과 달콤한 시나몬의 첫 향, 매콤한 스파이스, 커런트, 잘 익은 블랙 베리와 체리, 자두 아로마. 농밀한 과실과 구수한 아몬드 풍미가 풍만한 바디에 실려 우아하면서도 진하게 느껴진다. 타닌과 산미, 알코올의 밸런스가 훌륭해 높은 알코올 도수(16%)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다층적인 풍미와 규모 있는 골격을 지닌 와인으로 몇 십 년 이상의 장기 숙성이 가능할 듯. 와인과 같은 이름의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에서 생산한 포도로 작황이 좋은 해에만 한정 생산한다. 모듬 치즈와도, 메인 디시인 한우와도, 와인 자체만으로 더없이 훌륭한 와인이다.

레스토랑 그라노의 요리들
자료제공: 사진제공_까브드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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