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에르미타주의 거인, 엠 샤푸티에(M. Chapoutier)

 

 작년 3월, 북부 론(Northern Rhone)의 남단 땡-에르미타쥬(Tain-Hermitage) 마을의 기차역 뒤로 솟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론 밸리의 풍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굽이쳐 흐르는 강 줄기 사이로 깎아지른 경사지에는 포도나무들이 위태롭게 심어져 있고, 그 아래 형성된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지만 그 강렬했던 풍광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다.

 

 기차역 정면으로 나 있는 거리를 따라 100m 정도 내려가면 왼편으로 커다란 와인 샵을 볼 수 있는데 그곳은 바로 론 와인의 대표적 생산자 중 하나인 엠 샤푸티에(M. Chapoutier)의 직영 매장이다. 같은 거리에 본사 또한 자리하고 있는데 에르미타주(Hermitage) 포도밭과의 거리가 1~2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엠 샤푸티에의 수출 담당 임원 스테판 발러랭(Stephane Barlerin) 씨를 만나 에르미타주 포도밭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에르미타주(Hermitage) 언덕을 역사에서 올려다보면 생산자들의 간판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데, 정 중앙 하단부를 비롯 엠 샤푸티에의 간판이 가장 많이 보인다. 실제로 총 140ha에 이르는 에르미타주 아펠라시옹(Appellation) 중 엠 샤푸티에가 소유한 면적은 34ha로 에르미타주 생산자 중 가장 넓다. 그래서인지 차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도 엠 샤푸티에의 조그만 입간판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발러랭 씨는 에르미타주의 떼루아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했다. 척박한 화강암 중심 토양, 화강암을 기반으로 오랜 기간 쌓인 퇴적물로 형성된 토양, 알프스 산맥으로부터 빙하를 타고 건너온(fluvioglacial) 충적토, 점토질 토양에 자갈이 섞인 비교적 젊은 토양 등. 이렇든 각각 다른 특징의 떼루아를 존중하여 개입을 최소화하고 떼루아의 개성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이 엠 샤푸티에의 양조철학이다. 하우스 스타일(house style)을 만들기 보다는 토양과 빈티지가 그대로 표현되도록 정성과 애정을 쏟는 것이다. 엠 샤푸티에 와인의 개성은 AOC 의 정신(규정이 아닌!) 안에서 구현된다는 것이 발러랭 씨의 설명이었다.

 

 이런 철학은 에르미타주 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엠 샤푸티에 와인에도 적용된다. 이미 론 밸리(Vallee du Rhone)는 물론 알사스(Alsace)와 랑그독-루시옹(Languedoc-Roussillon), 그리고 호주와 포르투갈의 유명 산지에도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는 엠 샤푸티에는 비오디나미(Biodynamie) 농법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이는 포도밭을 살리고 땅의 기운을 포도와 와인에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며, 엠 샤푸티에의 개성을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엠 샤푸티에의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은 애호가뿐만 아니라 와인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비교적 저렴한 지역 단위 와인(regional wines)들도 누구나 즐겁게 마실 수 있는 품질을 갖추도록 정성껏 양조한다. 싱글 빈야드 라인업(Fac&Spera)부터 일반 지역단위 레이블까지 다양한 수준의 와인들이 모두 지역적 개성과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엠 샤푸티에의 미덕이며 그것이 엠 샤푸티에를 거인으로 성장시킨 중요한 원동력일 것이다. 시음한 에르미타주 와인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M. Chapoutier, DE L’OREE Ermitage (Blanc) 2008 은은하지만 밀도 높은 골드 컬러. 화이트에서는 생소한 개성적인 첫 향에 이어 침엽수와 짭짤한 미네랄 느낌이 아로마에서부터 전해져 온다. 꽃다발을 품에 안은 듯, 막 자른 파인애플을 먹는 듯한 향긋하고 섬세한 풍미가 입과 코를 사로잡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잘 익은 자두 맛이 짭쪼롬하고 구수한 풍미와 어우러져 중후한 인상을 준다. 풀바디에 탄탄한 구조감, 길게 이어지는 여운. 풍미의 모든 요소들을 꽉 채워 넣은 듯한 느낌.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 거대한 화이트로 각 숙성 단계마다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와인이다. 엠 샤푸티에는 싱글 빈야드에서 생산한 에르미타주를 ‘H’를 생략한 ‘Ermitage’로 표기한다.

 

M. Chapoutier, LE PAVILLON Ermitage (Rouge) 2009 시원한 남불 허브와 민트, 향긋한 오크 바닐라, 진한 생 포도 본연의 향기로 구성된 첫 향. 밀도 높은 블루베리, 블랙베리 풍미에 커런트 힌트, 그리고 초콜릿 피니시. 풀바디에 우람하지만 둥근 골격, 농축적이면서도 섬세한 산미로 개운하며, 우아한 밸런스를 지닌 와인. 이 역시 블록버스터 급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는데,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는 이 와인에 100점 만점을 주었다.

 

M. Chapoutier, Sizeranne Hermitage (Rouge) 2009 영롱한 루비 레드 컬러. 향긋한 붉은 꽃, 체리와 붉은 베리, 감초, 초콜릿 아로마. 은근하지만 다양한 풍미 요소가 조화롭게 발현되며 스월링을 할수록 붉고 검은 과실들이 화려하게 피어난다. 강건하고 단단하다기보다는 날렵하고 매끈한 느낌의 에르미따쥬. 아직은 조금 어리지만 10년 정도 숙성하면 절정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듯.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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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3.06.21 08:39수정 2014.03.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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