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주요 미디어는 그리스 산토리니(Santorini)와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를 방문하고, 그 외 산지의 와인을 시음하며, 그리스 와인의 실체를 만났다. 그 동안 만났던 와인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지닌 그리스 와인! 우리가 그 동안 몰랐을 뿐 반드시 알아야 할 그리스 와인의 포인트를 짚어본다.
그리스 와인 산업 현황
그리스는 와인의 발상지로 5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세계 17위 와인생산국이다. 2015년 기준, 와인 생산량은 270만 헥토리터 규모다. 300종의 그리스 토착 품종이 존재하며, 이 중 50개 토착품종이 전체 와인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총생산 와인의 3%를 해외로 수출하는데, 2014년 기준 총 와인 수출액은 6270만 유로(원화로 약 87억 원)에 이른다. 최대 수출국은 독일, 미국, 프랑스, 캐나다 순이다. 프랑스 아펠라시옹(Appellation)급인 원산지 명칭 통제 피디오(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이하 PDO)는 33개, 뱅드페이(Vin de Pay)급인 피지아이(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 이하 PGI)는 120개이다. 포도원은 바다와 같은 높이부터 해발고도 1000m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그리스에는 18만 명의 포도 재배자, 718개 와이너리가 존재하며, 이는 경제 위기 이후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생산량의 3분의 2는 화이트 와인, 3분의 1은 레드 와인으로 나뉜다. 2012년 기준, 화이트 품종인 사바티아노(Savatiano) 17%, 로디티스(Roditis) 13.73%, 레드 품종인 아기오르기티코(Agiorgitiko) 5.45%, 시노마브로(Xinomavro) 3.37% 순으로 재배된다. 최상위 등급 피디오(PDO)의 포도들은 1kg당 0.43유로 선이다.
[그리스 와인 연합 대표이자 펠로폰네소스 와인 협회 부회장인 조지 스쿠라스George Skouras]
2000년 설립된 그리스 포도 및 와인 협회(National Interprofessional Organization of Greece, 에두아오 EDOAO)는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연구 및 전략과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는 최상위 기관이다. 그 하위 단체인 그리스 와인 연합(Greek Wine Federation)에는 800개 와이너리가 등록되어 있고, 전체 수출 물량의 90%가 이 연합 소속 고품질 소량 생산되는 프리미엄 와인들이다. 협동 조합이 생산한 와인은 그리스 포도 및 와인 협동 조합 중앙회인 케오소에(KEOSOE, Central Union of Vine and Wine Producing Cooperative Organization of Greece)가 관리한다. 이 중앙회에는 20개 협동 조합이 가입된 상태다. 그리스 와인 연합은 2008년부터 5년 단위 해외 홍보 및 마케팅 전략을 생산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그리스의 와인들(The Wines of Greece)’라는 이름의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교육, 홍보, 시음, 와인투어 활동을 진행 하고 있다.
대체불가 유일무이의 경험, 그리스 와인
그리스 와인의 97%는 자국 내에서 소비 되기에 그리스인들의 입맛에 맞춰 생산된다. 이점은 20년 전까지 그리스 와인 산업 발달에 단점으로 작용했으나, 국제 품종에 싫증난 많은 애호가들에게 다른 맛을 준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로 뻗어나갔다. 여기엔 그리스의 다양한 토착 품종과 이를 가지고 만든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들이 큰 기여를 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리스 토착 품종은 300종이지만, 잠재적으로는 400종에 이르며, 일부 품종은 그리스에서도 특정 지역에서만 자랄 정도로 희귀하다. 이미 유전자 풀이 확보된 품종은 150종이며, 지금도 매일 고대 품종의 재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아직 안 알려졌지만 15~20년 뒤 자리잡게 될 품종이 많은 ‘포도 품종의 종자 은행’같은 곳이 바로 그리스다.
그리스는 수많은 섬과 산으로 이뤄진 만큼 다양한 토양을 지니고 있고, 더불어 그리스 토착 품종은 대부분 테루아를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대표 레드 품종인 아기오르기티코(Agiorgitiko)는 자란 토양에 따라 피노누아 같이 섬세한 와인, 보졸레누보처럼 가벼운 와인, 아주 강하고 힘찬 와인으로 각기 다른 스타일을 지니게 된다. 그리스 와인에 나쁜 이미지를 심어준 송진 와인인 렛치나(Retsina)도 근대적인 양조 방식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어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2009년 불어 닥친 경제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 와인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 그리스는 주세가 매우 높은 나라로 가격 기준 23%의 부가가치세와 2016년 새로이 리터당 20센트의 세금이 추가되었다. 8년 전 8%에 지나지 않던 부가가치세가 경제 위기로 23%로 치솟자 많이 묽고 시원하게 마시는 벌크 와인(500ml 당 평균 4유로 수준) 판매가 급증하고, 병입 되는 프리미엄 와인은 판매가 줄었다. 이 때문에 소규모 포도원에서 포도를 생산해 협동 조합이나 와이너리에 팔던 사람들은 보다 큰 이윤을 위해 직접 와인을 만들기 시작해 2008년 500개이던 와이너리 수는 2016년 상반기 기준 1000곳에 달한다. 보통 30~40대 젊은 세대가 시작한 소규모 신생 와이너리들은 개성 넘치는 고품질 와인, 바깥 세계 흐름에 맞춘 내츄럴 와인(Natural Wine)등으로 다양하며, 새로운 지평선을 열고 있다.
[그리스 최초의 마스터 오브 와인 콘스탄티노스 라자라키스 Konstantino Lazarakis MW]
오해를 이해로 풀어낸 그리스 와인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강렬한 태양은 지중해 국가 그리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의 와인 산지 또한 더운 지역이라 오해하기 쉽다. 간혹 일부 와인 세계에서는 서늘한 기후에서만 좋은 와인이 난다고 단언하며, 그 동안 그리스 와인을 그저 그런 와인으로 오해했다. 하지만, 실제로 와인 산지를 방문해보니 그곳이 그리스 남부라 해도 해발 고도가 높았고, 강한 해풍과 산의 영향으로 여름철 최고 기온이 27~28도를 넘는 곳이 드물었다. 낮 기온이 더운 지역이라 해도 일교차가 15도 이상으로 커서 양질의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더운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포도 재배에 최적인 장소를 찾아 포도원이 개발되어 그리스 와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역과 품종을 잘 연결하는 점이 중요했다.
와인 생산에 있어 그리스 와인이 안팎으로 비판 받은 부분은 지나친 포도 나무 관리, 과숙된 포도, 과도한 추출 및 오크 사용이었다. 이 문제점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뒤늦은 근대화를 급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와인 생산자의 문제이자, 그 당시 와인소비자의 문제로 확인되었다. 이미 축적된 전통과 노하우, 해외에서 공부하고 경험을 쌓은 젊은 세대의 노력으로 언급된 문제를 지닌 와인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진정한 가성비 와인인 그리스 와인
그리스의 포도원을 살펴보니 와인생산자의 입장에선 무척 힘든 환경이었다. 물량에 있어서 그리스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그리고 칠레 등 주류 국가를 절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험한 환경과 적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와인의 전반적인 가격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리스 벌크 와인(Bulk Wine)의 경우 리터당 8~10유로,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프리미엄 와인들은 10유로 중반 대, 세계적인 수준의 그리스 와인도 60유로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숙성된 그리스 북부 시노마브로 와인의 경우, 이탈리아 단일포도원 바롤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12유로 수준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가성비 와인이 아닐까! 예외적으로, 산토리니 와인은 시장 요구에 생산량이 따라 잡지 못해 가격이 오르는 중이지만 말이다.
그리스의 투자로 다녀온 여행이니 당연히 좋은 내용을 쓰겠지 생각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외부에서 이미 불기 시작한 그리스 와인 유행을 이제 알았을 뿐, 그리스 와인의 새로운 시대는 동이 튼 지 오래다. 16년 전 시작된 그리스 와인 홍보 활동은 알려지지 않고, 어려운 이름을 지닌 그리스 와인을 알리는 시음과 교육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수출국의 레스토랑에만 머물던 그리스 와인들은 이제 일반 소비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스 와인을 처음 접하면, 독특한 만큼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그 와인들은 생산한 사람들과 땅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의미 있는 제안이 될 것이다. 그 점이 우리가 그리스 와인에 주목하는 이유다.
자료출처: Enterprise Greece (Data source; ITC –International Trade Center, Trad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