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클라크(Chateau Clarke), 라피트(Lafite), 무통(Mouton). 쟁쟁한 와인을 만들어 온 로칠드(Rothschild) 가문. 로칠드가 만든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역사가 짧아서일까. 테이스팅을 앞두고도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한 모금 맛을 보자 눈이 번쩍 뜨였다. 맛이 너무나 훌륭해서다. 테이스팅에서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의 대표 프레데릭 매레스(Frederic Mairesse)를 만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로칠드 가문이 짧은 시간 안에 멋진 샴페인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들어 보았다.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의 대표 프레데릭 매레스]
로칠드 가문의 역사는 1744년으로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은행가로 성공한 마이어 암셸 로칠드(Mayer Amschel Rothschild)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었다 (로칠드 가문의 와인에서 보이는 다섯 개의 화살은 이 오형제를 의미한다). 그는 아들들을 유럽의 각국으로 보내 금융업을 확대했다. 그들 가운데 영국으로 간 아들의 후손이 무통을 매입했고, 프랑스로 간 아들의 후손들이 라피트와 클라크를 현재 소유하고 있다.
2003년 무통, 라피트, 클라크를 운영하는 후손들이 모여 함께 샴페인 사업을 하는 데 합의했다. 2005년 19세기부터 운영해오던 샴페인 하우스를 매입하고, 그해 수확한 포도로 첫번째 샴페인을 만들었다. 이 샴페인은 4년 뒤인 2009년 12월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최고의 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최고의 와인메이커를 고용해, 최고의 양조시설에서, 최고의 샴페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의 포도밭은 모두 코트 드 블랑(Cote de Blancs)과 몽타뉴 드 렝스(Montagne de Reims)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샹파뉴에서도 가장 뛰어난 곳으로 꼽는 지역들이다.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를 만드는 포도의 80%는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 밭에서 생산한다. 포도도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만 이용한다. 피노 뫼니에가 들어가면 샴페인이 긴 숙성을 견디지 못할 때가 많아서다. 한 마디로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는 최상의 지역에서 수확한 최상의 포도로만 샴페인을 만드는 것이다.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의 작은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들]
바론 드 로칠드의 양조장 또한 주목할만하다. 이 양조장의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는 사이즈가 모두 2500~6000리터다. 대부분의 샴페인 하우스들이 15,000~30,000리터 탱크를 쓰는 것에 비해 매우 작은 크기다. 로칠드가 이렇게 작은 탱크를 쓰는 이유는 포도밭 구획별로 따로 발효하고 숙성하기 위해서다. 작은 탱크를 많이 쓰면 양조장의 면적이나 탱크에 투자하는 비용 등에 큰 투자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로칠드에게 투자 금액은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최고의 샴페인을 만드는 것만이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론 드 로칠드의 샴페인 생산량은 현재 약 45만 병이다. 장차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지만 최대 50만 병이 목표일 뿐 그보다 더 많이 생산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좌로부터 샴페인 바로 드 로칠드의 로제, 브뤼, 블랑 드 블랑]
매레스 대표와 함께 맛본 바론 드 로칠드 샴페인은 네 가지였다. 그중 첫번째는 브뤼(Brut) NV였다. 샤르도네 60%와 피노 누아 40%로 만든 이 와인은 2010년에 생산된 와인 60%와 2008, 2009년에 생산된 와인 40%를 블렌드해 만들었다. 이스트 앙금과 함께 숙성되는 기간은 4~5년이며 잔당은 리터당 5g 정도다. 상큼한 사과와 배 향이 그윽하고 자스민과 흰 후추 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기포가 무척 섬세해 질감이 입안에서 크림처럼 느껴지며 긴 여운에서는 달콤한 과일향이 오래 지속된다.
두번째 샴페인은 로제 NV였다. 샤르도네 85%에 피노 누아 레드 와인 15%를 블렌드한 이 와인에서는 산딸기, 생크림, 미네랄, 장미 등 향의 조화가 아름답고 구조감도 탁월했다. 매레스 대표는 이렇게 훌륭한 맛이 바로 포도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 모두 그랑 크뤼 마을에서 생산한 것인데, 그중에서도 15%를 구성하는 피노 누아는 베르즈네(Verzenay)에서 수확한 것이라고 한다. 이 피노 누아를 바론 드 로칠드는 섭씨 12도의 차가운 상태에서 24~28시간 침용을 거친 뒤 5~6일간 20도의 온도에서 발효한다. 발효하는 동안 타닌이 과하게 추출되지 않도록 포도 껍질과 즙을 접촉시키는 펀칭 다운 작업 또한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행한다고 한다.
[베르즈네의 바론 드 로칠드 포도밭]
세번째 샴페인은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NV였다. 매레스 대표는 블랑 드 블랑이야말로 바론 드 로칠드 샴페인의 대표주자라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샹파뉴 지역의 부드러운 석회질(chalk) 토양은 샤르도네가 가장 우아한 맛을 낼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한다. 그런 샹파뉴 지역에서도 그랑 크뤼 마을에서 수확한 샤르도네로만 만드니 로칠드의 블랑 드 블랑이 맛이 탁월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모금 맛을 보면 잘 익은 사과와 배 향이 달콤하고, 고소한 아몬드와 토스트 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브뤼가 상큼한 스타일이고, 로제가 풍부한 타입이라면, 블랑 드 블랑은 농익은 과일의 깊은 맛 그 자체였다.
마지막 샴페인은 블랑 드 블랑 2006 빈티지로, 샹파뉴의 하위지역인 코트 드 블랑의 그랑 크뤼 마을 르메닐(Le Mesnil), 오제르(Oger), 아비제(Avize), 크라망(Cramant)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만든 샴페인이다. 최고의 밭에서 수확하지만 로칠드는 이 포도 4톤에서 오직 1000리터만 착즙해서 샴페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같은 양의 포도에서 통상적으로 생산하는 포도즙이 2000리터인데 반해 절반 수준이다. 이는 최고급 포도에서 최고급 포도즙만을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로칠드는 이 즙의 발효가 끝난 뒤 바로 병입해 2차 발효를 진행하지 않고 9개월간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시켰다. 그중에서도 르메닐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3개월간 오크 숙성을 거쳤다. 이는 샴페인에 복합미를 더하기 위한 것이었고, 오크통은 부르고뉴 최고의 샤르도네 와인인 뫼르소와 라샤펠를 숙성시킨 것을 이용했다고 한다.
[바론 드 로칠드 블랑 드 블랑 2006 빈티지 샴페인]
이 샴페인을 맛보면 바론 드 로칠드가 만든 다른 모든 샴페인들이 한 데 모여 입안에서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브뤼의 상쾌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블랑 드 블랑의 진함도 느껴지고 로제의 탄탄함도 느껴진다. 풍부한 과일향과 함께 미네랄, 아카시아, 자스민, 흰 후추 등 다양한 향이 만들어내는 복합미가 훌륭하고, 깔끔한 피니쉬는 나도 모르게 이 샴페인에 다시 손이 가도록 만든다. 쉽게 맛보기 힘든 걸작이다.
매레스 대표로는 재미있는 일화를 한 가지 알려주었다. 로칠드 형제들이 모여 공동의 이름으로 샴페인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샤르도네로 샴페인을 잘 만드는 최고의 장인을 찾았다고 한다. 그들이 스카웃한 사람은 당시 뤼나르(Ruinart)에서 일하던 장 필립 물랭(Jean Philippe Moulin)이었다. 로칠드 형제들이 물랭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한 가지, “비용 고려하지 말고, 시간 고려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최고의 샴페인을 만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무통, 라피트, 클라크 외에도 여러 쟁쟁한 와이너리에서 충분히 돈을 버는 로칠드에게 샴페인에 들어가는 투자는 결코 부담이 되지 않았단 것이다. 물랭은 나이가 많아 현재 은퇴한 상태지만, 그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경력 마지막에 바론 드 로칠드 샴페인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최고의 샴페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부담은 있었다. 바로 ‘최고’를 만들라는 것이 유일한 부담이었다.”
12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샴페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결국 자본의 힘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돈과 명예를 쌓은 와이너리 중에도 사업 다각화를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시간, 비용, 인력 등 모든 면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오로지 훌륭한 샴페인을 만들겠다는 로칠드의 의지는 존중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들이 만든 아름다운 샴페인이 프랑스 샴페인의 품질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년 초에는 바론 드 로칠드의 2008 빈티지가 국내에서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샴페인은 또 어떤 맛과 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줄까. 마음이 기대와 조바심으로 벌써 설레고 있다.
자료제공: 사진. 나라셀라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