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 바롤로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1961년 비에티(Vietti)의 바롤로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Barolo Rocche di Castiglione)가 바로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지난 5월 14일 비에티(Vietti)의 커머셜 디렉터 우르스 페터(Urs Vetter)를 만나 비에티의 역사와 와인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비에티의 커머셜 디렉터 우르스 페타]
비에티 가문이 피에몬테에 정착한 것은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포도를 비롯 여러 작물을 재배하며 삶을 이어갔다. 변화의 계기는1870년대에 찾아왔다. 비에티 집안의 두 형제 조반니와 마리오는 두 사람 모두 농사를 지으며 살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 동생인 마리오가 미국으로 이주하고 형은 고향에 남아 농사를 계속 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마리오는 엔지니어로 성공했고,조반니는 다른 농사를 접고 와인 생산에 매진했다.
1918년 조반니가 사망하자 마리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필록세라 때문에 포도밭은 황폐화됐고 이탈리아 경제도 엉망인데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던 사람이 왜 귀향을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마리오를 ‘Crazy American’이라 불렀다고. 하지만 미대륙을 경험한 마리오는 뭔가 달랐다.다들 집근처 밭에서 포도를 경작하고 와인을 만들 때 그는 이웃 마을의 좋은 밭을 사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하던 때 다른 마을의 밭을 돌보려면 몇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하지만 마리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현재 비에티가 피에몬테 11개 마을 대부분에 포도밭을 보유하게 된 것이 바로 마리오의 이런 거시적인 안목 덕분이니 말이다.

[비에티 와이너리가 있는 바롤로의 카스틸리오네 팔레토 마을]
비에티의 와인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1950년 마리오의 딸 루치아나가 알프레도 큐라도(Alfredo Currado)와 결혼하면서부터였다.알프레도는 피에몬테 알바(Alba)에서 양조학을 공부한 와인메이커였다. 그는 본격적으로 비에티 와인의 고급화를 이끌었다. 1961년 바롤로 최초의 싱글 빈야드 와인 바롤로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를 출시했고, 옆 마을 바르바레스코(Barbaresco)에서도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7년에는 피에몬테 최초로 아르네이스(Arneis)와인을 생산했다. 당시 아르네이스는 거의 잊혀진 품종이었다. 밭에서 네비올로(Nebbiolo)와 몇 그루 섞여 자란 것을 네비올로 맛을 순화시키기 위해 필드 블렌드로 조금 넣어 양조에 활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알프레도는 아르네이스의 가치를 알아봤고 이 품종을 부활시킬 계획을 세웠다. 어느날 그는 이웃 마을 카날레(Canale)까지 가서 일요일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농부들 중에 아르네이스를 기르는 사람들을 모아 포도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그리고 아르네이스 단일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생산했다. 이제 아르네이스는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이 됐고 다양한 와이너리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비에티가 사라져가는 아르네이스를 살린 것이다.
비에티 가문이 살린 것은 아르네이스 뿐만이 아니었다. 1970년 알프레도와 루치아노는 피에몬테의 예술가들을 지원할 방안을 찾았다. 바로 그들의 작품으로 레이블을 장식하는 것이었다. 비에티의 레이블을 보면 뭔가 색다르다. 정원, 포도밭, 가축, 애완동물, 곤충 등 피에몬테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와인을 감싸고 있다. 이미50년 전 작품이지만 지금도 그 예술성이 빛난다. 작황이 좋은 해에만 생산하는 바롤로 빌레로(Barolo Villero)에는 매번 다른 작품이 레이블을 장식하고 있다. 무통 로쉴드처럼 유명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어서 생생함이 더 느껴진다.

[우르스 페터와 함께 시음한 비에티 와인 5종]
현재 비에티는4대손인 루카 큐라도(Luca Currado)가 운영하고 있다. 1990년부터 비에티에서 일한 루카는 알바와 미국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무통에서도 경력을 쌓은 실력파다. 그는 아스티에서 가장 좋은 땅이라고 인정받는 니짜(Nizza)의 밭을 매입하며 밭의 특성을 살린 개성 넘치는 와인을 만드는데 매진하고 있다. 현재 비에티가 보유한 밭은 총 47헥타르에 이르며, 모두 유기농으로 경작되고 있다. 이 땅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모두 피에몬테 토착 품종이다. 이들의 대표 와인 5종을 우르스 페터와 함께 시음해 보았다.

비에티 로에로 아르네이스(Vietti Roero Arneis) 2017
신맛이 튀지 않고 향이 부드러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스타일이다. 잘 익은 레몬, 복숭아, 멜론 향과 함께 향긋한 꽃향도 느껴진다. 보디감은 중간 정도. 여운에서는 짭짤한 아몬드향도 느껴진다.모래와 석회암이 많은 밭에서 생산된 아르네이스로 만든 와인으로 발효 전에 24~36시간 동안 침용을 거치는데, 이때 약간 추출된 타닌이 짭짤한 견과향을 낸다고 한다. 덕분에 음식과 즐기면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 양조시 오크는 사용하지 않았고,부드러운 질감을 위해 앙금과 함께 숙성을 거쳤다. 모든 요소가 조화롭고 밸런스가 뛰어난 와인이다. 사시사철 즐기기 좋지만 여름에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다.

비에티 바르베라 다스티 트레 비그네(Vietti Barbera d’Asti Tre Vigne) 2016
바르베라는 네비올로가 숙성되는 동안 즐기는 와인이다. 피에몬테에서는 거의 매일 식탁에서 음식과 함께 즐기는 와인이기도 하다. 향, 보디감, 타닌 무엇하나 과한 것이 없는 와인이 바로 바르베라가 아닐까. 맛을 보면 잘 익은 체리향과 함께 계피 같은 향신료 향이 부드럽게 피어오른다. 살짝 느껴지는 바이올렛과 짭짤한 여운은 와인을 더 다채롭게 만든다. 타닌이 많지 않아 매콤한 맛이 많은 우리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가격 대비 품질 또한 매우 훌륭하다.

비에티 바롤로 카스틸리오네(Vietti Barolo Castiglione) 2015
비에티 가문은 바롤로 안의 11개 마을 중 10개 마을에 밭 25개를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재배한 포도를 모두 따로 발효하고 숙성시킨 뒤 조화롭게 블렌딩한 와인이 바로 바롤로 카스틸리오네다. 맛을 보면 달콤하게 익은 베리류의 향미가 풍부하고 호추, 계피 등 향신료향과 은은한 장미향이 아름답다. 부드러운 질감 속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타닌 또한 매력적이다. 지나친 오크향이 피하고자 큰 오크통(Slovenian)만 이용해서 만드는데도 영 빈티지 바롤로에서 어떻게 이런 부드러운 맛이 나오는지 놀랍다. 비에티의 양조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와인이다.
비에티 바롤로 크뤼 라베라(Vietti Barolo Cru Ravera) 2015
비에티의 싱글 빈야드 바롤로 가운데 하나다. 와인을 코에 대면 농밀하게 피어오르는 향에 눈이 저절로 감긴다. 갖가지 베리들,향신료, 꽃 등 복합미도 탁월하지만 묵직한 보디감에서 느껴지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다. 바롤로 카스틸리오네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이라면, 카롤로 크뤼 라베라는 중후한 첼로 독주를 듣는 느낌이다. 2014년과 2015년 빈티지는 비교적 빨리 음용이 가능하지만 브리딩을 충분히 시킨 뒤 마시는 것이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2013년은 과실이 워낙 탄탄해 병숙성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비에티 모스카토 다스티 카스시네타 (Vietti Moscato d’Asti) 2018
아스티 마을에서도 가장 좋은 밭은 해발고도가 높은 세 개 마을에 위치한다. 바로 그곳에서 생산된 모스카토로 만든 와인이다. 달콤한 모스카토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포도를 과숙하지 않고 일찍 수확해 만들었기 때문에 과일의 달콤함보다 신선함이 더 돋보이기 때문이다. 레몬, 복숭아, 멜론과 함께 꿀, 사향 등이 느껴지고 산미의 적절한 조화가 와인을 경쾌하게 만들고 있다. 우아하고 정교한 모스카토 다스티의 전형이다. 디저트 와인으로도 좋지만 에피타이저로 즐겨도 좋고 주말 브런치에 곁들이기에도 좋은 와인이다.
비에티는 피에몬테의 어느 와이너리보다 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와이너리로 인정받고 있다. 와인을 시음해 보니 그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가장 피에몬테다운 와인을 생산하는 비에티. 힘과 우아함을 모두 갖춘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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