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아에선 와인 셀러를 마라니(Marani)라 부른다. 마라니에 서 있는 2명의 조지아 인]
와인이 시작된 곳은 어디일까? 요즘 인기 있는 와인 산지는 어디일까? 이 2개의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조지아 와인이다. 가장 오래되고 새로운 와인인 조지아 와인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와인의 본고장- 조지아

[조지아 위치]
조지아(구 그루지야)는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경계에 위치한 나라다. 그 크기는 아일랜드나 오스트리아와 비슷하며, 미국 오리건과 캘리포니아주의 경계와 같은 위도에 자리한다. 조지아는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서쪽으로 터키와 아르메니아, 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과 아시아를 접하고 있다. 먼 옛날 조지아는 실크로드가 흑해를 지나 이스탄불에 닿는 관문이었다. 이로 인해 조지아는 페르시아, 몽고, 터키, 러시아 등 이웃 국가의 침략이 잦았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도 조지아 인은 마치 한국처럼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잘 보존했다.
조지아는 8천 년에 이르는 와인 생산 역사 기록을 지닌 와인의 본고장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와인이라는 말의 기원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조지아어로 와인은 그비노(Ghvino)인데, 이것이 이탈리아로 가서 비노(Vino), 프랑스에서 뱅(Vin), 독일어 바인(Wein), 영어 와인(Wine)으로 변화했다.
조지아 인에게 와인은 그들의 피이자 삶, 그 자체다. 조지아는 예로부터 집집마다 땅에 묻은 토기(크베브리 Qvevri)에 일용할 와인을 만들어 즐겼다. 조지아 곳곳에 세워진 동상, 가문의 문장, 건축물 등을 보면, 포도나무나 와인 잔이 꼭 들어가 있을 정도다. 조지아 국민 대부분은 카톨릭 신자이며 매우 진지하고 신실하다. 조지아에서 어머니란 곧 좋은 요리사를 의미할 정도로 조지아 인은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과 와인을 나누길 좋아하는 환대 문화가 있다. 여기에 조지아의 전통 문화인 타마다(Tamada)가 있다. 타마다는 건배제의자라는 의미로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의 인사말과 건배자의 순서를 정한다. 사람들은 타마다에 따라 소뿔 모양 잔에 와인을 따라 가오말조스(Gaumarjos, 조지아어로 건배)를 외친다. 분위기가 더욱더 흥겹다면, 가오말조스! 가오말조스! 조스! 조스! 조스! 를 외치기도 한다.
조지아 와인 산지와 기후

조지아 포도원은 어떤 곳에 있을까?
조지아는 국토 면적의 3분의 1이 산악지대다. 코카서스 산맥은 조지아 북쪽 러시아와의 경계에 있다. 이 산맥은 해발고도 4~5000m에 이르는데, 러시아에서 불어오는 시린 북풍을 막아준다. 조지아 서쪽에 자리한 흑해는 포도가 자라는데 필수적인 온기와 수분을 머금은 공기를 포도원에 공급해준다.
코카서스 산맥에서 남서쪽 흑해로 이어지는 평원에는 14개 주요 강을 포함해 크고 작은 2만 5천 개에 달하는 강줄기가 있다. 이 강들이 미네랄이 풍부한 충적토양의 포도원을 만든다. 조지아는 진흙의 땅이라 불릴 만큼 진흙이 많으며, 일부 지역엔 고운 석회암질 토양이 분포한다.
조지아 기후는 평균적으로 보면, 포도 재배에 매우 이상적이다. 여름은 너무 덥지 않고, 겨울도 온화하다. 산들이 냉해를 막아줘서 포도원은 냉해 걱정 없는 봄을 보내며, 산에서 흘러온 미네랄이 풍부한 강물은 배수가 잘된다. 이 덕분에 조지아 와인은 순수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지아는 작은 나라지만 기후는 아열대부터, 알프스 산악 기후대 그리고 반사막 기후까지 매우 다양하다. 서쪽으로 갈수록 연중 비가 내려 습기가 많으며 아열대성 해양성 기후를 지닌다. 콜헤티(Kolkheti)평원은 아열대, 온대, 추운 대륙성 기후까지 다양한 만큼 와인 스타일도 많다.
조지아 포도원 규모는 45,000헥타르이며, 연간 1500억 리터의 와인을 생산한다. 조지아에서는 원산지 지정 보호를 받는 20개 와인 산지가 원산지 지정 보호를 받는다. 가장 중요한 와인 산지는 카헤티(Kakheti)로 조지아 와인의 70%를 생산한다.
냉전 시대 조지아 와인은 러시아로 거의 수출되었다. 10년 전부터 조지아 와인은 아시아 시장로 눈을 돌렸고, 특히, 중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 결과, 중국에 수입되는 와인 중 조지아 와인은 758만 병으로 9위에 올랐다. 여기에 2016년 10월 5일 조지아-중국 자유 무역 협정이 체결되면서 중국에서 조지아 와인 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살아있는 포도나무 종자은행 조지아

[우표에 그려진 캇시텔리와 사페라비 포도]
조지아는 전 세계 포도 품종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많은 토착 포도 품종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조지아는 살아있는 포도나무 종자은행이라 불릴 정도다. 현재 조지아에서 확인된 포도나무 품종은 총 526종이며, 이 중 40종이 상업적으로 활발하게 재배되고 있다.
우선, 조지아 와인을 대표하는 백포도 품종인 므츠바네(Mtsvane), 캇시텔리(Rkatsiteli), 키시(Kisi)와 적포도 품종인 사페라비(Saperavi) 4가지 품종부터 알아보자.
캇시텔리(Rkatsiteli)는 1세기부터 재배된 고대 백포도 품종이다. 캇시텔리는 줄기가 붉은색을 띠며, 산미가 매우 높으면서도 균형 잡힌 와인이 된다. 케브리(Qvevri) 방식으로 양조된 캇시텔리는 청사과와 모과, 배 등의 풍미를 지니며, 복합성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므츠바네(Mtsvane)도 조지아 고대 백포도 품종이다. 와인은 복숭아와 미네랄 풍미가 진하다.
키시(Kisi)는 일부 과학자에 의해 캇시텔리와 므츠바네 교잡종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구가 진행 중이다. 키시는 냄새를 한번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향과 풍미를 지니는데, 크베브리에서 양조된 경우, 잘 익은 배, 금잔화, 담배와 호두 향과 풍미가 있다.
사페라비(Saperavi)는 조지아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적포도 품종이다. 사페라비는 색이 진한 두꺼운 껍질에 과육도 붉은색을 지닌다. 따라서, 사페라비 와인은 조금만 잔에 따라도 바닥이 비치지 않을 정도로 진한 색을 낸다. 사페라비라는 이름이 ‘색의 장소(place of color)’를 를 의미한다. 사페라비 와인은 검은 열매, 감초, 구운 고기, 담배, 초콜릿, 각종 스파이스 풍미를 지닌다. 산미가 매우 명쾌하고 타닌은 잘 익어 부드러운 편이다. 일상의 와인으로 즐기기에 좋은 독특한 와인이다.
조지아의 와인 양조
조지아 와인 생산자는 크게 2가지 방법으로 와인을 양조한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식 양조법이고, 다른 하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받은 전통 크베브리 양조법(Qvevri)이다. 크베브리에서 만든 와인을 오렌지 와인(Orange wine) 혹은 앰버 와인(Amber wine)이라 부른다. 이 와인이 바로 와인의 원형이자 내추럴 와인 운동을 촉발한 시작점이다. 오렌지 와인이라는 말은 2004년 영국 와인 수입업자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껍질과 접촉해 만든 화이트 와인을 부르고자 쓰기 시작한 표현으로 조지아에서는 앰버 와인으로 부른다.

[땅에 묻힌 케브리 모습]
앰버 와인은 양조 과정에서 껍질과 짧게는 며칠에서 몇 달까지 접촉한 와인을 의미한다. 이 양조법은 백포도 및 적포도 모두에 적용된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일반적인 양조법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에 비해 어시(earthiness)하며, 껍질과 줄기 등에서 나온 타닌으로 상당히 조이는 맛을 지닌다. 눈을 감고 크베브리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맛본다면, 레드 와인으로 여겨질 수 있을 정도다. 조지아 와인 생산자는 앰버 와인 색은 크베브리를 밀봉하였기에 절대 산화에 의한 것이라 말할 수 없으며, 껍질이나 줄기 등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들은 와인색을 오렌지 보다는 호박빛, 즉 앰버 혹은 진한 금색으로 표현한다.
8천 년 전 시작된 크베브리(Qvevri, 발음은 케브리, 퀘리 등 다양하다.)방식을 알아보자. 크베브리는 바닥이 뾰족하게 생긴 큰 도자기 항아리다. 크베브리는 와인 양조부터 숙성까지 모든 양조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올-인-원(All-in-One) 도구다. 따라서, 와인 운송에만 쓰이는 암포라(Amphora)와는 다르다. 조지아에서는 3~4세기에 만들어진 크베브리도 자주 찾을 수 있는데, 그 형태가 요즘 만든 크베브리와 거의 같다. 그 정도로 크베브리는 조지아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전통 양조법이다.

[가마에 구워낸 케브리 모습]
크베브리 용량은 작게는 20ℓ에서 가장 크게는 5천ℓ까지 다양하다. 와이너리에서는 현재 2~3천ℓ를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크베브리는 진흙을 한 겹씩 덧붙여가며 만들기 때문에 1개 제작에 약 1달이 소요된다. 크베브리의 두께는 3~5cm이며, 말린 뒤 밀봉된 1천도 이상의 가마에서 넣어 구운 뒤 식혀 완성한다. 와인 생산자는 이렇게 완성된 크베브리를 목 부분까지 땅에 묻는다. 땅 속에 묻힌 크베브리는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한다.
와인 생산자는 수확한 포도를 껍질째 혹은 때때로 줄기째 으깨어 크베브리에 넣고 입구를 진흙으로 밀봉한다. 발효가 시작되면, 크베브리 안에서는 포도껍질과 과육 등 머스트가 윗부분에 떠오른다. 이후 이 머스트는 발효가 진행될수록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6개월 정도 접촉한 뒤 머스트에서 와인을 분리해 다른 크베브리로 옮겨 숙성한 뒤 와인을 병에 담아 완성한다.
사용한 크베브리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특수 제작된 솔과 물만으로 꼼꼼히 문질러가며 2달 동안 닦는다. 크베브리에 물을 넣어봐서 완전히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세척 과정을 반복하며, 이후 자연 건조해 크베브리를 재사용한다. 크베브리 방식은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한해 농사지은 포도를 전부 못쓰게 될 수 있어 와인 생산자는 특히 위생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크베브리로 만든 와인은 단일 품종 와인 혹은 블렌딩 와인이 될 수 있다. 앰버 와인은 보통 크베브리가 보관된 온도 그대로 마시며, 대부분 수확연도에서 1~3년 안에 마시는 것이 좋다. 극히 드물지만 일부 생산자의 앰버 와인은 5년 이상 숙성되는 경우도 있다. 앰버 와인은 대부분 와인 양조 과정 전반에 이산화황을 전혀 쓰지 않지만, 해외로 운송되는 경우엔 일부 생산자가 안정성 확보를 목적으로 극히 최소한의 이산화황을 첨가한다. 앰버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지만, 타닌과 상당한 바디를 지니기에 고기와도 잘 어울린다.

[조지아 와인들]
조지아 와인은 최근 몇 년 와인 전문인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특히, 크베브리 방식으로 만든 앰버 와인이 그렇다. 마스터 오브 와인 등 전 세계 와인 전문인은 이 앰버 와인이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지만, 몇 번 마셔보면 자연스레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앰버 와인의 음식 페어링 능력도 훌륭하여 미국, 런던, 워싱턴, 홍콩 등 미슐랭 별 3개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유럽 방식으로 만든 조지아 와인 품질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조지아 와인은 이렇듯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흥미롭고 최신의 와인으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조지아 와인도 있으니 꼭 한번 경험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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