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나파 밸리 와인의 날카로운 키스, 하이츠 셀라

왜 와인이 날카롭지? 어쩌면 독자들은 제목을 보고 의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답은 간단하다.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의 본질을 어떤 와인보다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고 있는 와인이 바로 하이츠 셀라(Heitz Cellar)이기 때문이다. 하이츠 셀라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그 순수함이 너무나 인상적인 나머지 마치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처럼 한 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깊은 자취를 기억에 남긴다.


그런 순수한 맛을 하이츠 셀라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일까? 첫번째 비결은 젖산 발효(알코올 발효 후 바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신맛이 강한 말산을 부드러운 젖산으로 바꿈)를 하지 않는 데에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타닌도 많고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젖산 발효를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하이츠 셀라는 카베르네 소비뇽의 특징을 오롯이 보여주기 위해 젖산 발효를 하지 않는다. 덕분에 하이츠 셀라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에는 신선함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숙성잠재력 또한 50년 이상을 바라볼만큼 길다.


두번째 비결은 하이츠 셀라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든다는 점이다. 레이블에 카베르네 소비뇽이라고 써있어도 카베르네 소비뇽에 메를로, 프티 베르도, 시라 등 다른 품종을 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나라나 지역마다 다르지만 한 품종이 와인의 75~85%를 차지하면 그 품종만 레이블에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품종이 섞이면 카베르네 소비뇽의 신맛이 완화되고 보디감이 더 묵직해지며 과일향이 다채로워지는 면은 있다. 하지만 카베르네 소비뇽만의 특징이 흐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하이츠 셀라는 카베르네 소비뇽의 순수함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품종을 전혀 넣지 않고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하이츠 셀라의 창립자 조 하이츠]


이쯤 되면 하이츠 셀라가 외골수 장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도대체 누가 이 와인을 맨처음 만든 걸까. 하이츠 셀라는 1961년 조 하이츠(Joe Heitz)가 설립했다.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인 조는 원래 수의사가 되는 것을 꿈꾸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잠시 공군에서 복무했을 때였다. 아르바이트로 근처 와이너리에서 일하게 됐는데 이때 그만 와인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수의사에서 와인메이커로 방향을 바꾼 조는 UC Davis로 진학했고, 포도재배와 와인양조로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졸업한 뒤에는 1951년부터 10년간 볼리우 빈야드(Beaulieu Vineyard)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안드레 첼리체프(Andre Tchelistcheff)의 어시스턴트 와인메이커로 일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마침내 1961년 나파 밸리에 자신의 패밀리 네임을 딴 하이츠 셀라를 세웠다. 당시 8에이커에 불과했던 포도밭 면적은 현재 1100에이커로 늘었고 그중 500에이커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1961년에 나파 밸리에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하이츠 셀라는 나파 밸리 와인의 고급화를 이끈 선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츠 셀라는 여러 면에서 앞서가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유기농의 도입이다. 어느 누구도 유기농에 관심이 없었던 1960년대에 하이츠 셀라는 이미 유기농으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미국에 유기농 와인협회가 설립된 뒤 하이츠 셀라는 유기농 인증을 쉽고 빠르게 취득할 수 있었다. 하이츠 셀라가 지금까지 이어온 농법은 유기농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과 바이오다이나믹까지 결합한 형태여서 조만간 바이오다이나믹 와이너리 인증도 취득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하이츠 셀라는 나파 밸리 최대의 바이오다이나믹 와이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인트 헬레나에 위치한 하이츠 셀라의 포도밭]


이렇게 건강한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로 만드니 와인이 밭의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는 곧 나파 밸리 최초의 싱글 빈야드 와인의 탄생으로 이어지는데, 하이츠 셀라의 마르타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이 바로 그것이다. 이 외에도 린다 폴스, 트레일사이드 등 하이츠 셀라의 싱글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은 각기 다른 개성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싱글 빈야드급 와인에 대해서는 기사 후반부에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하이츠 셀라는 와인을 오래 숙성시켜 출시하기로도 유명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하이츠 셀라는 젖산 발효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와인 맛이 순수하고 날카롭지만 대신 오랜 숙성을 요한다. 하이츠 셀라 카베르네 소비뇽의 숙성기간은 약  4~5년인데, 평균 2년 숙성한 뒤 출시하는 다른 와이너리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기간이다. 이는 소비자가 와인을 사서 바로 마시기에 불편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지만 그만큼 오래 와인을 보관했다 출시하니 와이너리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감수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이츠 셀라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13년산과 1997년산]


한국을 처음 방문한 세일즈 매니저 대니얼 뷰(Daniel Vu)와 함께 하이츠 셀라의 와인을 시음해 보았다. 하이츠 셀라의 대표적인 와인인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은 1997년산과 2014년산 두 가지를 비교할 수 있었다. 두 와인 모두 9개월간 커다란 오크통에서 먼저 숙성된 뒤 이후 2년간 100%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되고 마지막 1년은 병숙성을 거쳐 출시됐다. 큰 오크통에서 먼저 숙성을 거치는 것은 배럴 숙성을 먼저 시행하는 다른 와이너리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대니얼 뷰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함으로써 와인이 더 활발하게 산소와 만나면서 젖산 발효 없이도 신선함을 살리며 부드럽게 숙성될 수 있다고 한다.


1997년산은 마른 과일의 우아한 향미와 함께 담배, 코코아, 가죽, 버섯, 향신료(정향, 후추) 등 다채로운 향이 섬세한 복합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22년이 지난 빈티지임에도 불구하고 향미의 신선함이 살아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2014년산에서는 자두, 체리, 블랙베리 등 베리향이 산뜻했고 장미와 제비꽃 등 꽃향도 우아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약간의 흙과 먼지, 향신료, 패트롤 향도 느껴졌으며 이 모든 향미를 파우더처럼 곱고 탄탄한 타닌이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이제 막 출시된 와인임에도 복합미가 뛰어났다.


두 와인 모두 일반적인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과는 스타일이 너무나 달랐다. 과일향이 깔끔했으며 보디감은 중간 정도이고 무엇보다 산미가 살아 있어 와인이 경쾌했다. 젖산 발효만 하지 않는 것으로 과연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대니얼 뷰는 포도의 지나친 과숙으로 알코올이 높아지는 것을 막고 신맛을 살리기 위해 포도를 약간 일찍 수확한다고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선지 하이츠 셀라의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은 나파 밸리보다는 프랑스 메독에 더 가까운 스타일로 느껴졌다.


[하이츠 셀라 싱글 빈야드 와인 3종]


이어서 하이츠 셀라의 싱글 빈야드 와인 3종을 테이스팅 했다. 먼저 시음한 와인은 1989년에 첫 출시한 트레일사이드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2013 년산이었다. 트레일사이드는 나파 밸리 안에서도 러더포드(Rutherford)에 위치한 밭이다. 이 와인은 1년간 커다란 미국산 오크통에서 숙성된 뒤 3년간 프렌치 오크 배럴(Limousin)에서 숙성되고 이후 1년간 병숙성을 거친 뒤 출시된다. 자갈이 많은 땅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이 와인은 검은 베리류의 과일향이 농밀했고 러더포드 특유의 먼지 냄새가 느껴졌다. 빡빡하게 입안을 가득 채우면서도 매끄러운 타닌이 매력적이었다. 강건함 속에서 우아함이 느껴지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이어 시음한 와인은 2018년에 첫 출시된 린다 폴스(Linda Falls)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2014년 산이었다. 린다 폴스는 나파 밸리에서도 고도가 가장 높은 하웰 마운틴(Howell Mountain)에 위치한 밭으로 근처에 있는 작은 폭포의 이름이 곧 포도밭 이름이 됐다고 한다. 이 와인은 1년간 커다란 오크통에서 먼저 숙성된 뒤 2년간 새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되고 다시 1년간 병숙성을 거친 뒤 출시된다. 붉은 베리와 검은 베리가 섞인 듯 과일향이 다채로웠고 상큼한 허브향이 살짝 섞여 와인에 신선함이 가득했다. 질감이 매끄럽고 보디감은 중간 정도였지만 구조감은 탄탄했다. 정교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하이츠 셀라의 싱글 빈야드급 와인에는 병입연월과 총 생산량 중 몇번째 병인지가 표기되어 있다]


세번째 싱글빈야드 와인은 하이츠 셀라의 명품 마르타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2013년산이었다. 나파 밸리 최초의 싱글 빈야드급인 이 와인은 만들게 된 계기가 독특하다. 포도 농사를 짓고자 나파 밸리로 이주한 톰과 마르타 메이(Tom and Martha May) 부부에게 조 하이츠가 살던 집을 팔게 됐는데, 조는 환영인사로 자신이 만든 와인을 집에 몇 병 남겨두었다. 이 와인을 맛본 메이 부부는 그 맛에 반해 조 하이츠 부부와 친근하게 지냈고, 이들이 처음 수확한 포도를 맛본 조 역시 포도 품질에 반해 자신에게 포도를 팔 것을 제안했다. 메이 부부는 포도 판매 대가로 가족이 마실 와인 한 배럴만 달라고 요청했지만 조는 이들의 이름도 와인에 붙이겠다고 제안해 와인이름이 마르타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이 됐다고 한다. 마르타스 빈야드는 지금도 메이 부부의 소유로 그들의 후손이 포도를 재배하고, 하이츠 셀라는 이들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있으니 50년 넘게 두 가족이 협력해 와인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 와인이 처음 출시됐던 1966년만 해도 싱글 빈야드 와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밭 이름을 내세워 돈을 더 받으려는 장삿속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의 개성과 품질이 다르다는 점을 확신했던 조 하이츠는 끝까지 밀고 나갔고, 이후 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다른 와이너리들도 싱글 빈야드 와인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1974년산 마르타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은 와인 스펙테이터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와인 12선’에 뽑히기도 했다. 선정된 와인 12가지 중 미국 와인은 두 가지 뿐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된 것이다.


마르타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은 첫 1년간 큰 오트통에서 숙성되고 이후 프랜치 오크 배럴에서 3년간 숙성되며 마지막으로 1년간 병숙성을 더 거치고 출시된다. 이번에 맛본 2013년산은 그야말로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와인이었다. 과일향과 꽃향이 섞인 듯 와인의 향미가 향긋하고 우아했으며, 민트와 후추 같은 톡 쏘는 향신료향이 와인에 신선함을 더했다. 무엇보다 우아한 과일향, 적당한 보디감, 산뜻한 신맛, 탄탄한 타닌 등 모든 요소가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이 와인의 백미였다.


[하이츠 셀라의 샤르도네 와인]


하이츠 셀라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1998년부터 하이츠 셀라는 샤르도네 와인도 생산해왔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수입되지 않고 있지만 내년부터 판매될 예정이다. 하이츠 셀라는 샤르도네를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뒤 젖산 발효를 거치지 않고 와인의 75%는 큰 오크통에서 나머지 25%는 새 오크통과 사용했던 오크통에 나눠 담아 9개월간 이스트 앙금과 함께 숙성시킨다. 맛을 보니 잘 익은 시트러스 계열 과일향에 허브향이 살짝 맴도는 상큼한 스타일이었다. 역시나 신맛이 잘 살아 있고 질감이 매끈하면서도 정교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었다. 다양한 음식과도 두루 잘 어울리는 타입이어서 내년 국내 출시가 매우 기대된다.


1976년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명품 와인산지로 거듭난 나파 밸리. 이후 폭발적인 자국 수요와 미국인의 입맛에 맞추며 나파 밸리 와인은 대체로 진하고 부드러운 스타일로 변해왔다. 하지만 하이츠 셀라만은 꼬장꼬장한 장인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와인에 대한 깊은 철학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2018년 하이츠 셀라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미국의 유서 깊은 농업 기업 로렌스 패밀리(Lawrence Family)가 하이츠 셀라를 인수한 것이다. 이들은 하이츠 셀라의 장인정신과 철학을 이어가면서도 미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나파 밸리의 다른 와이너리들이 변신을 거듭할 때 조용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해온 하이츠 셀라. 이들의 새로운 약진에 관심과 기대가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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