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빛 언덕에 뿌리내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고결하며 껍질이 얇아 재배하기 쉽지 않은 품종, 바로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Pinot Noir)에 대한 이야기다.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레드 와인은 피노 누아,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 품종만을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90%는 맞는 이야기다. 오늘 이야기할 내용은 예외적인 품종이다. 부르고뉴에서도 가메 품종을 재배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뱅 드 프랑스(Vin de France)나 IGP 등급이 아닌, 엄연한 AOC로 등록되어 있는 이름 아래 생산되고 있다. 그동안 헷갈렸던 부르고뉴 빠스-뚜-그랭(Bourgogne Passe-tout-grains), 꼬또 부르기뇽(Coteaux Bourguignon)에 대한 이야기를 INAO에서 발간한 AOC 자료를 바탕으로 아래에 풀어본다.

[출처: BIVB 부르고뉴 와인 협회(www.bourgogne-wines.com)]
[부르고뉴 빠스-뚜-그랭]
부르고뉴 빠스-뚜-그랭 AOC는 1937년 7월 31일 관계 법령에 의해 제정된 부르고뉴 레지오날 등급으로 여러 지역에 걸쳐있는 아펠라씨옹이다. 레드와 로제 와인만 생산 가능하며 욘(Yonne) 데파르트망의 54개 마을, 꼬뜨-도르(Côte-d’Or)의 91개 마을, 사온-에-루아르(Sâone-et-Loire)의 154개 마을에서 생산 가능하다.
규정
기포가 없는 레드와 로제 스틸 와인만이 당 아펠라씨옹 이름 아래 생산될 수 있다. 포도밭에 재식 할 수 있는 품종은 주 품종, 가메(Gamay N), 피노 누아와 보조 품종, 샤르도네, 피노 블랑(Pinot Blanc B), 피노 그리(Pinot Gris G)가 있다. 해당 품종을 심을 때 피노 누아는 30% 이상, 가메는 15% 이상을 차지해야 하며 보조 품종은 포도밭에 반드시 섞여 있어야 하며 각 구획(Parcel; 파셀)별로 총 15%를 넘으면 안 된다. 재식 밀도는 헥타르당 최소 5,000그루를 심어야 하며 포도밭 내 열(Range) 간 간격은 2.2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또한 헥타르당 포도 생산량은 최대 10,000kg 이하로 제한하며 와인은 64hl(hl : 헥토리터 = 100리터)를 초과할 수 없다. 최종 와인을 양조하는 과정에서 피노 누아는 반드시 30% 이상, 가메는 반드시 15%를 블렌딩해야 한다.
와인 특징
워낙 넓은 지역에 걸쳐있다보니 생산된 지역에 따라 스타일이 다르고 또한 피노 누아와 가메 품종의 블렌딩 비율에 따라 스타일이 다르다. 색에서는 반짝이는 연보랏빛과 후크시아 꽃 색상을 띤다. 가볍고 신선하며 과실이 주가 되는 풍미를 나타내는 와인이 일반적이다. 가메 품종이 생동감을 가져온다면 피노 누아 품종은 부드럽게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첫 입맛에서는 역시 신선한 과실이 주를 이룬다. 입에서의 질감이 좋은 와인으로 숙성하면 덤불, 사냥 고기, 체리 향을 가미한 브랜디와 같은 풍미로 발전한다.
서빙 팁
부르고뉴 빠스-뚜-그랭 와인은 확실히 신선한 과실 풍미가 매력적인 와인으로 풍미가 너무 강하지 않은 음식들과 페어링 하기 좋다. 과실 위주의 특징 덕분에 샤퀴트리(Charcuterie), 파이와 차갑게 먹는 햄 종류와 최고의 궁합을 보인다. 촉촉한 타닌은 으깬 야채, 채식 타르트, 심지어는 토마토 샐러드와도 잘 어울리게 만든다. 피크닉과 바베큐에서 제공되는 모든 종류의 핑거 푸드와도 잘 어울린다. 치즈 중에서는 까망베르와 같이 연성 치즈와 잘 맞는다. 서빙 온도는 11-12도가 적당하다.
현황
피노 누아와 가메 누아 아 쥐 블랑(Gamay noir à jus blanc; 하얀 즙의 검은색 껍질 가메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 와인이다. 부르고뉴 와인 아펠라씨옹 중에서 2개의 품종을 블렌딩하는, 스파클링을 제외하고는 예외적인 경우로 스틸 와인으로서 매우 독특한 성질을 갖게 한다. 블렌딩은 서로 다른 와인을 양조한 뒤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포도 수확 후 양조장으로 가져왔을 때 이뤄진다. AOC는 1937년에 지정되었다. 대부분 레드만이 생산되며 아주 예외적으로 로제 와인이 생산된다.
떼루아
부르고뉴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피노 누아에 비해 가메 품종은 주로 사온-에-루아르 데파르트멍, 그중에서도 마꼬네(Mâconnais) 지역이 부싯돌, 모레와 점토질 토양이 자갈과 함께 있어 가메 품종이 자라는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많이 심겨져있다.
스토리
중세부터 존재해오던 부르고뉴 빠스-뚜-그랭 와인은 19세기에 지역 경제에 중요한 위치에 올랐다. 특히 ‘섬세한 품종’인 피노 누아를 사용해 품질로 유명한 와인이었다. 20세기 들어 ‘오디네르’라는 와인이 등장했지만 빠스-뚜-그랭에 비해 떨어지는 품종 사용과 높은 수확량으로 여전히 빠스-뚜-그랭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919년에서 1930년 아펠라씨옹 평가 기간 동안 빠스뚜그랭은 또한 ‘그랑 오디네르’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레드와 로제 와인들이 이 이름 아래 생산되어왔다. 특히 피노 가문의 피노 누아와 가메 품종을 반드시 블렌딩해야 됐는데 이는 중세부터 이어져내려오던 전통이었다.
부르고뉴의 생산자 프레데릭 라파르주(Frédéric Lafarge)는 빠스뚜그랭의 이름이 포도밭에서 2개의 품종이 섞여 자라는 데서 기인했다고 설명한다. 2개 이상의 품종이 한 개 구획에서 자라는 것을 프랑스어로 ‘꽁쁠랑따씨옹(Complantation)’이라고 한다. 이름을 보다 정확하게 풀어보자면 ‘Passe’는 ‘사용되다’라는 동사 ‘Passer’의 변형이며 ‘tout’는 ‘모든’이라는 뜻이고 ‘grains’은 ‘열매, 과실’이라는 뜻이다. 직역하자면 ‘모든 과실이 사용된’이라는 뜻으로 가메와 피노 누아가 함께 재식되어있던 포도밭에서 모든 수확된 포도를 한꺼번에 발효통에 넣어 와인을 만들던 전통에서 기인한 이름이다.

[출처: BIVB 부르고뉴 와인 협회(www.bourgogne-wines.com)]
[꼬또 부르기뇽]
꼬또 부르기뇽은 AOC는 1937년 7월 31일 관계 법령에 의해 제정된 부르고뉴 레지오날 등급, ‘부르고뉴 오디네르(Bourgogne Ordinaire)’와 ‘부르고뉴 그랑 오디네르(Bourgogne Grand Ordinaire)’ AOC가 2011년에 통합된 아펠라씨옹이다. 화이트, 로제, 레드 와인을 생산할 수 있고 욘 지방 54개 마을, 꼬뜨 도르 지방 91개 마을, 사온-에-루아르 지방 154개 마을, 론(Rhône) 지방 85개 마을에서 생산할 수 있다.
규정
꼬또 부르기뇽은 일정 생산 규정을 만족할 경우 끌레헤(Clairet), 프리뫼르(Primeur), 누보(Nouveau) 이름을 붙여 출시할 수 있다. 끌레헤 이름은 로제 와인에만 기재할 수 있다. 프리뫼르와 누보 이름은 화이트 와인에만 기재할 수 있다. 즉, 꼬또 부르기뇽 끌레헤는 로제, 꼬또 부르기뇽 프리뫼르 혹은 꼬또 부르기뇽 누보는 화이트 와인을 의미한다.
품종은 다음의 품종들이 허용된다. 화이트 와인은 알리고떼(Aligoté B), 샤르도네, 믈롱(Melon B), 피노 블랑, 피노 그리로 양조할 수 있다. 레드 와인 양조 시 주 품종은 가메, 피노 누아, 세자르(César N; 욘 지방에서만 자라남)가 있고 보조 품종은 알리고떼, 샤르도네, 가메 드 부즈(Gamay de Bouze N), 가메 드 쇼드네(Gamay de Chaudenay N), 믈롱, 피노 블랑, 피노 그리로 양조가 가능하다. 로제 와인 중 주 품종은 가메, 피노 누아, 피노 그리, 세자르가 있고 보조 품종은 알리고떼, 샤르도네, 믈롱, 피노 블랑이 있다. 레드 와인 품종 중 보조 품종의 재식 비율은 10%를 넘지 못한다. 보조 품종 중 샤르도네와 피노 블랑은 포도밭 구획 내에 섞여 있어야 하며 구획 당 재식 비중이 15%를 넘으면 안 된다.
재식밀도는 헥타르당 최소 5,000그루를 심어야 하며 포도밭 열 간 간격은 2.5미터 이하여야 한다. 최대 포도 수확량은 화이트 와인은 헥타르당 12,000kg, 레드와 로제 와인은 헥타르당 10,000kg를 넘을 수 없다. 또한 와인은 헥타르당 최대 화이트 72, 레드와 로제 64 헥토리터를 초과할 수 없다. 품종 블렌딩에 관해서는 보조 품종은 그 총합이 10% 이하로 제한되어야 하는 규정만이 존재한다.
와인 특징
표토와 심토가 다양한 곳에서 생산하다 보니 과실 풍미 위주의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이 해당 아펠라씨옹 이름 아래 생산되고 있다. 또한 부르고뉴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품종들로 양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와인 서빙 팁
- 레드 : 이 부드럽고 프루티 한 와인은 중성적인 아로마를 가진 음식이나 섬세한 흰 살 육류 요리와 잘 어울린다. 가금류와 토끼 요리와 잘 어울리고 토마토소스로 조리한 파스타나 리조또와 잘 어울린다. 섬세한 타닌은 심지어 해산물 요리와도 크게 부딪히지 않는다. 12-14도 사이로 서빙 권장.
- 로제 : 야채 찜 요리나 야채로 속을 채운 요리와 완벽하게 잘 어울린다.
- 화이트 : 튀기거나 데친 생선 요리와 완벽하게 맞는 가성비 좋은 화이트 와인이다. 서빙 온도는 11-13도 사이를 권장한다.
현황
꼬또 부르기뇽 아펠라씨옹에서는 2011년부터 4개 데파르트멍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로제, 레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당 아펠라씨옹에서는 블렌딩하거나 단일 품종으로 와인이 만들어지며 다소 구식 품종이 사용되기도 한다.
떼루아
무한한 종류의 토양에서 자라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된다. 북쪽의 백악질 토양에서부터 남쪽의 화강암질 토양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석회암질과 이회암질 토양에서 생산된다.
스토리
그랑 오디네르와 오디네르 와인이 경제적으로 부각된 시기는 19세기였다. 지역 내에 활발히 공급됐을 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인 크루소(Creusot)나 오떵(Autun), 에피냑(Epinac), 몽쏘(Montceau)의 광산 지역에서도 활발히 소비되었다. 19세기에서부터 20세기 초까지 ‘오디네르’ 와인은 가메와 믈롱 품종 등을 사용하며 피노 누아나 샤르도네와 같이 “섬세한 품종”을 사용하는 ‘그랑 오디네르’나 ‘빠스뚜그랭’ 아펠라씨옹과는 다른 성격을 보였다. 1919년에서부터 1930년에는 오디네르와 그랑 오디네르가 비슷하게 사용되며 결국 1937년 아펠라씨옹 명칭을 획득하였고 오늘날에는 꼬또 부르기뇽이라고 통합되었다.

[빠스-뚜-그랭과 꼬또 부르기뇽이 생산되는 지역(출처: BIVB 부르고뉴 와인 협회(www.bourgogne-wines.com))]
[결론]
개인적으로 이번 기사를 준비하게 된 이유는 세부 규정에 대해서 불확실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스-뚜-그랭은 피노 누아 30 : 가메 70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꼬또 부르기뇽은 50:50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빠스-뚜-그랭은 피노 누아를 30~85%까지, 가메는 15~70%까지 블렌딩할 수 있다. 꼬또 부르기뇽은 주 품종에 대한 블렌딩 규정이 없기에 블렌딩, 혹은 단일 품종으로 생산할 수 있다. 또한 빠스-뚜-그랭이 품종과 재식 밀도 등, 더 엄격한 규정을 지니고 있는 등급이다. 또한 그랑 오디네르와 오디네르라는 용어는 2012년 이후로 꼬또 부르기뇽 이라는 아펠라씨옹 명칭으로 통합되었다.
부르고뉴 와인들의 가격이 해가 지날수록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상승 곡선을 그리기 때문에 그랑 크뤼는 커녕 프리미에 크뤼나 빌라주 등급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레지오날 등급에서도 신선한 과실 풍미가 짙고 가성비가 좋은 빠스-뚜-그랭과 꼬또 부르기뇽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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