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인생 최고의 와인을 꿈꾸기 마련이다.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그랑 크뤼인 로마네 꽁티(Romanee Conti), 천국의 열쇠보다 더 매혹적일 보르도의 샤또 페트뤼스(Chateau Petrus), 섬세한 기포와 기품있는 풍미로 유혹하는 샹파뉴의 살롱 퀴베 S(Salon Cuvee S) 등…
그러나 이런 최고급 와인만큼이나 애호가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와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제껏 접해 본 적이 없는, 이른바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와인’이다. 생소한 지역, 희소한 품종, 독특한 생산자 등 처음 만나는 와인이 주는 기쁨은 각별하다. 항상 마시던 칠레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이태리 토스카나 와인에서 벗어나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와인 라이프에 신선한 자극을 주며, 새로운 스타일과 낯선 풍미에 대한 호기심이 와인에 대한 새로운 애정을 샘솟게 한다. 그래서 애호가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와인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와인의 신세계를 개척해 간다.
이런 애호가들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흔히 보기 어려웠던 생-시니앙(Saint-Chinian) 와인이 국내에 소개된 것이다. 생-시니앙은 프랑스 남쪽의 랑그독-루씨옹(Languedoc-Roussillon)의 중앙에 위치한 AC(Appellation Controlèe, 원산지 통제명칭)로, 일반적으로 널리 수입되고 있는 뱅드뻬이(Vin de Pays d’Oc)나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미네르부아(Minervois), 꼬르비에르(Corbieres)와 같은 AC와는 달리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사실 생-시니앙은 오랜 와인 산지로 9세기에 처음 포도나무가 식재되어 14세기에 이미 와인 산지로서 그 이름을 알렸다. 전통적으로 남쪽의 석회와 점토질 토양의 얕은 언덕에서 포도를 재배해 왔으나 비교적 근래에 형성된 북쪽 편암 토양 산지의 고도는 종종 600미터를 훌쩍 넘기도 한다.
주요 품종은 까리냥(Carignan), 시라(Syrah), 그르나슈(Grenache), 무르베드르(Mourvèdre), 생소(Cinsault)이며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레드 와인이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높은데 포제르(Faugères) AC의 와인과 함께 랑그독에서 가장 색다르며 강건한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농축도와 살집이 느껴지는 높은 품질의 와인들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점차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예전에도 몇 가지 생-시니앙 와인들이 국내에 들어온 적은 있었지만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는 어려웠다. [과거에 로랑 미켈(Laurent Miquel)의 ‘바르두(Bardou)’와 ‘라름므 데 피(Larmes des Fées)’라는 와인이 들어온 적이 있으나 현재는 수입되고 있지 않다.] 이제 생-시니앙 와인의 진수를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클로 바가텔(Clos Bagatelle)이다. 17세기 초 생-시니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한 직물공예가가 포도밭을 매입한 뒤 클로 바가텔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 뜻은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름에서부터 떼루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클로 바가텔은 쭉 그 후손들에게 이어져 현재 오누이인 크리스틴(Christine Delouze, 수출&판매 담당)과 뤽(Luc, 와인메이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현재 문도비노를 통해 총 다섯 종의 와인이 수입되고 있으며, 다섯 종 모두 남불 와인의 특징이 잘 살아 있으면서도 개별 와인의 개성이 뛰어나다. 특히 떼루아에서 유래된 미네랄 느낌이 풍부하며 전반적으로 친밀감이 느껴지는 와인으로, 한 번 마셔 보면 생-시니앙 와인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Clos Bagatelle, Cuvee Tradition 2009
석고 같은 미네랄 풍미가 좋은 첫인상을 남긴다. 스월링 후 붉은 꽃과 허브, 블루베리, 아몬드와 후추, 토스티한 풍미 등이 뒤섞여 올라온다. 붉은 과실 중심에 검은 과일 풍미도 약간 드러나는데 많지 않은 타닌이 아직 꼿꼿하게 느껴지는 게 몇 년 지나면 더 맛있어 질 듯 하다. 미디엄 바디에 산미가 좋아 어떤 식탁에서도 부담 없이 열 수 있겠다.

Clos Bagatelle, Donnadieu Cuvee Camille & Juliette 2008
와인 이름인 까미으와 줄리에뜨는 와인메이커인 뤽의 두 딸 이름. 새콤한 딸기향과 허브향이 예쁘게 어우러진다.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달콤한 베리 풍미가 주를 이루며 허브, 향신료, 가벼운 초컬릿 피니시도 매력적. 살짝 단순하다는 인상도 들지만 봄날의 순수한 과실과 허브 풍미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할 만 하다.

Clos Bagatelle, Donnadieu Cuvee Mathieu & Marie 2008
마띠유와 마리는 오너인 크리스틴의 아들과 딸 이름. 앞의 까미으 & 줄리에뜨가 방순한 과일향을 풍겼다면 마띠으 & 마리는 동물성과 미네랄리티를 강하게 어필한다. 꼬릿한 동물성 향기에 허브와 스파이스가 복합적으로 섞여 들어가 멋진 부케를 연출하는데 커런트와 검은 과일, 감초, 아몬드와 초컬릿, 그리고 바닐라 풍미에 나중엔 군고구마 풍미까지 드러낸다. 부드러운 질감에 산, 알콜, 타닌의 밸런스도 좋은 와인이다. 꼬릿한 와인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 하다.
※ 두 와인의 이름으로 쓰인 도나디외(Donnadieu)는 생-시니앙 북쪽의 비교적 고도가 높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편암과 이암 중심의 비교적 차가운 성질의 토양이 주를 이루며 최근에 개발된 지역으로 오랜 옛날부터 재배가 이루어지던 남쪽의 따뜻한 석회, 점토질 토양과는 다른 성격의 와인이 생산된다고 한다.

Clos Bagatelle, Veillee d''Automne 2006
이 와인부터는 숙성에 알리에(Allier) 산 고급 바리끄가 쓰였다. 코를 대는 순간 특징적인 삼나무향이 와인의 인상을 결정하고, 검은 베리류와 달콤한 바닐라 등 깔끔하고 시원한 향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 느낌. 비교적 가벼운 바디임에도 밀도 높은 풍미에 긴 피니시가 일품. 맑고 방순한 성격으로 어느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만한 모던한 스타일의 와인입니다. 이름인 ‘베이에 도톤느’는 ''이브의 가을'' 이라는 뜻으로 와이너리 사람들은 이 와인을 가을의 멧돼지 구이와 함께 즐긴다고 한다.

Clos Bagatelle, La Terre de Mon Pere 2004
클로 바가텔의 플래그십으로 ‘떼레 드 몽 뻬레’는 ''아버지의 땅'' 이라는 의미. 알리에산 고급바리끄에서 18개월 숙성을 거쳤다. 가벼운 유산향과 토스티, 검붉은 과일과 나무, 향신료, 약재, 허브 등의 풍미가 융합되어 드러난다. 진하면서도 깔끔하고, 복합적이면서도 순수한 느낌이며 비교적 높은 알코올과 부드럽게 수렴되는 타닌, 그리고 은근한 산도가 적절한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 처음엔 무난한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수준급 와인의 저력을 보여주는 멋진 와인. 몇 년 더 숙성 후 마신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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