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은 아마도 보르도(Bordeaux)일 것이다. 보르도의 포도 품종과 양조방법, 스타일 등은 전세계 와인 생산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며 유수의 그랑 크뤼(Grand Cru)와 개러지 와인(garage wine)들은 애호가는 물론 투자자들의 수집 대상 1순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보르도의 남쪽, 이른바 시드-웨스트(Sud-Ouest, 프랑스 남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비교적 드물다. 설사 관심이 있다 할 지라도 해당 지역에 관한 정보 습득이 쉽지 않은 데다 시중에서 남서부 와인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프랑스 남서부 와인은 우리에게 생소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와인 세계의 변방이었던 프랑스 남서부를 세계 와인 평론가와 애호가들의 관심 대상으로 단번에 편입시킨 와인이 바로 샤토 몽투스 퀴베 프레스티지(Chateau Montus Cuvee Prestige)이다.
나른한 6월의 토요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의 한적한 로비에서 샤토 몽투스(Chateau Montus)의 오너 알랭 브루몽(Alain Brumont) 씨를 만났다. 둥근 얼굴에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마치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인상과는 달리 강렬한 안광과 다부진 말투가 인상적인 브루몽 씨는 인터뷰 내내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모든 질문에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답해 주었다. 그의 힘있는 답변 만으로도 샤토 몽투스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샤토 몽투스는 남서부의 42개 AOC 중 하나인 마디랑(Madiran AC)에 위치하고 있다. 마디랑은남서부 AOC 중에는 까오르(Cahors)와 함께 비교적 알려진 아뻴라시옹(Appellation)으로 꼽히지만 브루몽 씨가 처음 와인업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던 시절만 해도 마디랑 와인은 인지도가 낮았고 품질 또한 높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아버지의 와인 양조를 돕기 시작했을 때는 그 또한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뿐, 최고의 와인 생산하겠다는 높은 이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소명(召命)이 아니라 생업(生業)으로 받아들였던 것인데 이런 그의 생각은 프랑스 최고의 와인들을 만나면서 바뀌게 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보르도와 교류하면서 명품 와인(fine wine)에 눈을 뜬 그는 부르고뉴(Bourgogne)의 로마네 꽁띠(Romanee Conti)와 론(Rhone)의 꼬뜨 로띠 라 물린느(E. Guigal, Cote-Rotie La Mouline)등을 맛보면서 큰 영감을 받았고 자신도 이런 수준 높은 와인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앞에 거론된 생산자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마디랑의 떼루아(Terroir)를 반영하고 토착 품종인 따나(Tannat)의 개성을 발현시키기 위해 그는 독학으로 깨우치고 스스로 터득하여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양조했다. 떼루아를 알기 위해 마디랑 전 지역을 돌며 땅을 파헤쳤고, 나무 한 그루에 단 세 송이의 포도만을 남겨 양조하는 등 그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방법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이같은 노력의 결실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1989년 스위스에서 진행된 테이스팅 이벤트에서 샤토 몽투스 뀌베 프레스티지 1985 빈티지가 보르도 최고의 와인인 페트뤼스(Petrus)를 누르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장에 있던 국제 언론과 와인 평론가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샤토 몽투스는 ‘남서부의 페트뤼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현재 샤토 몽투스는 스페인의 유명한 와이너리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나 핑구스(Domino de Pingus) 에 비견되며, 영국 와인 전문지 디캔터(Decanter)의 저명한 평론가 앤드류 제포드(Andrew Jefford) 로부터 오존(Chateau Ausone),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 등과 함께 프랑스의 아이콘 와이너리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브루몽 씨는 와인 전문가나 저널리스트, 심지어는 일반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남서부 와인 하면 브루몽이라는 단어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샤토 몽투스를 최고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브루몽 씨는 주저 없이 마디랑의 떼루아와 따나 품종의 궁합을 꼽았다. 마디랑의 떼루아는 점토질로 이루어진 토양의 내부에 자갈이 섞여 있는데, 특히 샤토 몽투스의 토양에는 2~3m 깊이까지 자갈 층이 발견된다. 이와 같은 떼루아와 산도와 당도가 높고 향미 성분이 풍부한 따나 품종이 만나 진한 풍미를 지닌 강건한 구조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또한 따나 품종의 단점인 쓴 맛과 수렴성(떫은 느낌)을 다스리기 위해 압착하지 않은 포도즙(Vin de Gutte)만을 사용해 양조하기 때문에 과거 마디랑 와인에 비해 둥글고 마시기 편한 와인들이 생산된다. 특히 샤토 몽투스의 주요 와인인 뀌베 프레스티지와 라 티르(La Tyre)는 40% 경사도의 남향 밭에서 생산된 포도를 사용하여 진하고 풍부한 스타일이며, XL(라틴어로 40이라는 뜻으로 40개월 동안 600L 오크통에서 숙성)은40% 경사의 서향 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양조하여 일조량과 시원한 바람의 영향으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와인이 된다.
브루몽 씨는 한국이 자신의 와인을 알아줄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 방문 전에는 한국 시장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나 한국에 와서 와인 관계자 및 소믈리에들을 만나며 한국 시장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가격과 명성에 좌우되는 중국 같은 시장보다 지적 호기심이 많은 한국 시장에서 더 큰 발전 가능성을 본다는 그는, 단순히 명성이나 가격이 높은 와인보다 가격과 품질이 합리적인 이른바 밸류 와인(value wine)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와인은 문화이며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독창적인 한국 문화와 자신의 개성적인 와인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말 또한 잊지 않았다.
샤또 몽투스와 같이 생소한 지역과 품종으로 만든 양질의 와인들이 한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한국 와인 시장의 확대와 질적 성장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브루몽 씨와 같은 열정적인 메이커가 만드는 와인이라면 한국인의 성향과도 잘 맞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올 하반기에는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뱅 드 뻬이(Vin de Pays)급 와인들도 수입된다니 조만간 대형 마트에서도 브루몽 씨의 와인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샤토 몽투스를, 브루몽씨의 와인을 마셔 보자. 마디랑 와인에 비친 한 줄기 밝은 빛을 느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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