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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설의 바람둥이 포도, 구애 블랑(Gouais Blanc)

간단한 문제 하나. 다음 포도 품종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샤르도네(Chardonnay), 알리고테(Aligoté), 가메이(Gamay), 뮈스카델(Muscadelle), 리슬링(Riesling), 블라우프랜키쉬(Blaufränkisch), 푸르민트(Furmint), 시노마브로(Xinomavro), …


부르고뉴 품종들인가? 프랑스 품종인가? 아니 독일품종도 있네? 헝가리, 그리스 품종도 있는걸?


사실 어려운 문제다. 이 문제의 답은 “이들의 아버지는 모두 같다” 이다. 즉 모두 (배다른) 형제사이다. 아니 샤르도네와 리슬링이 형제였다고?


1990년대 말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UC Davis)에서는 DNA 핑거프린팅 기술을 이용하여 포도들의 유전자 검사(?)를 시도했다. 이로 인해 포도세계에서는 많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은근히 닮아서 의심을 받던 관계가 유전자 일치 99%로 ‘빼박’ 친자확인이 되기도 하고, 혹은 오랫동안 사람들 입소문을 타던 오해가 풀려 완전한 남남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 중에 아마도 가장 많이 사람들 입 밖에 오른 내용 중에 하나는, 그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구애블랑(Gouais Blanc)이라는 이름을 가진 포도의 존재와 그 포도의 놀랄만한 행태였다.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 출신이다 혹은 오스트리아 어느 지역 출신이다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와인을 좋아했던 로마 황제 프로부스(Probus)가 이 포도를 프랑스 북동쪽으로 가져와서 심었다는 설은 제법 유력하다. 그리고 원래부터 이 지역에 많이 자라고 있었던 피노(Pinot)종 포도와 구애블랑은 어느새인가 눈이 맞게 된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는 많은 자손이 탄생하게 된다.


아마도 둘 사이 사랑의 결실이 맺은 가장 유명한 자손은 샤르도네(Chardonnay)를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부르고뉴의 또다른 중요한 화이트 품종인 알리고테(Aligoté)도 있다. 보졸레 지역을 대표하는 품종인 가메이(Gamay noir)도 유명하다. 원래 부르고뉴 출신이었지만 프랑스 서부 루아르(Loire)로 이사가서 뮈스카데(Muscadet)를 만드는 멜롱 드 부르고뉴(Melon de Bourgogne) 품종도 있다. 알자스지역과 룩셈부르크에서 중요한 품종인 오쎄후와(Auxerrois)도 알고보니 둘 사이에서 태어난 품종이었다.

위에 언급한 포도 외에도 Aubin vert, Bachet noir, Beaunoir, Franc Noir de la-Haute-Saône, Gamay Blanc Gloriod, Knipperlé, Peurion, Sacy 등, 약 30종의 포도품종이 피노와 구애블랑, 둘 사이의 사랑의 결실로 밝혀졌다.


사실상 부르고뉴에서 재배되고 있는 대부분의 포도 품종은 모두 형제 및 일가 친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을 섞어서 만드는 빠스-뚜-그랭(Passe-tout-grains)이나 꼬또 부르기뇽(Coteaux Bourguignon) 와인들이 만들어진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또한 오쎄후와는 형제인 샤르도네와 블랜딩되어 놀랄만한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스토리가 여기까지였다면 구애블랑과 피노의 사랑 이야기는 자식복이 많은 부부의 이야기로 아름답게 마무리될 뻔 했다. 하지만 본격적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구애블랑은 이웃 마을 알자스에서 사는 사바냥(Savagnin)과도 눈이 맞게 된다. 그리고는 또 다시 여러 자식을 낳게 되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소생으로는 리슬링(Riesling)이 있다. 그 외에도 엘블링(Elbling), 라우실링(Räuschling), 쁘띠 메슬리에(Petit Meslier), 오방 블랑(Aubin Blanc)등 와인계에서 이름 좀 알려진 여러 자식들을 낳게 된다. 리슬링과 샤르도네는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주로 접하는 모젤지역의 리슬링이 워낙 개성적이어서 그렇지, 실제로 다른 국가 및 지역의 리슬링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면 샤르도네와 유사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 후 구애블랑은 이제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닌다. 루아르 밸리에 가서는 그 곳의 본토박이인 슈냉 블랑(Chenin Blanc)을 꼬셔서 콜롱바르(Colombard), 발작 블랑(Balzac blanc), 메슬리에 쌩 프랑소와(Meslier Saint François)등을 낳는다. 또한 보르도에도 진출하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 사이에서 뮈스카델(Muscadelle)을 낳는다. 뮈스카델은 소테른이나 몽바지악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품종이다.


구애블랑의 사랑은 국경선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독일어권에서 구애블랑은 주로 바이서 호이니쉬(Weisser Heunisch)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지역에서 만든 자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으로는 블라우프랜키쉬(Blaufränkisch)가 있다. 또한 헝가리로 가서는 푸르민트(Furmint)를 낳게 되는데, 이 품종은 달콤한 토카이 및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양조하는데 사용되는 명실공히 헝가리를 대표하는 품종이다. 그리고 그리스까지 진출한다. 그리스의 네비올로로 불리는 멋진 레드 품종 시노마브로(Xinomavro)의 아버지 역시 구애블랑인 것으로 밝혀졌다.


호주에서는 얼마전까지도 토카이(Tokay)라고 불리던 120년 전통의 주정강화 와인이 있었다(지금은 이름이 Topaque로 변경되었다). 토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유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호주인들이 자신이 기르는 포도 품종이 헝가리 토카이를 만드는 품종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몇몇은 자신들의 포도를 피노 그리라고 믿었는데, 프랑스 알자스 지역에서는 피노 그리를 토카이(Tokay d’Alsace)라고 불렀기 때문에 ‘토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과학적 분석 결과 이들이 와인 양조에 사용한 포도 품종은 예상과는 달리 뮈스카델(Muscadelle)로 밝혀졌다. 그런데 사실 뮈스카델, 푸르민트, 피노 그리 모두 배다른 형제 혹은 친척 품종들이다. 호주인들이 백 년 넘게 헷갈려 했을만한 이유는 분명 있었을 듯 싶다.


지금까지 확인된 구애블랑의 자손만 100종 이상이다. 그 중 약 80종이 프랑스 품종이긴 하지만, 나머지 20종 이상은 독일, 불가리아, 조지아, 그리스, 몰도바, 오스트리아, 스위스,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체코, 헝가리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도대체 구애블랑은 어떠한 삶을 살았던 것인가?!?


[포도계의 카사노바로 불리는 구애블랑. 출처: 위키피디아]


얼마나 매력적인 포도이길래 이러한 국제적인 바람둥이가 된 것일까? 그런데 포도들 사이에서는 매력이 있었는지 몰라도, 안타깝게도 사람에게는 그리 좋은 품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껍질은 얇아 향도 적고 당도도 적어서 알콜도 충분히 뽑아지지 않는다. 거기에 산도는 높아서, 그냥 단순하고 시큼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품종이다. 그래서 부르고뉴에서는 포도가 자라기에 좋은 비탈진 곳에는 피노누아를 심고 그 외 포도가 잘 자라지 못하는 남는 자리에 구애블랑을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데 구애블랑의 ‘gou’는 프랑스 고어에서 ‘소작민’을 놀리는 말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귀족이 아닌 일반 소작민들이나 키우는 포도라는 뜻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독일어권에서의 이름 바이서 호이니쉬(Weisser Heunisch)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오래전 중세시대부터 독일어권의 나라들에서는 모든 포도 품종을 품질에 따라 두 종류로 구분했다. 즉 맛있는 와인이 만들어지는 포도 품종은 고귀한 품종, 프랜키쉬(fränkisch)라고 불렀는데, 이는 자신들의 기원 프랑크(Franks)에서 온다. 그리고 낮은 품질의 포도 품종은 후니쉬(hunnisch 혹은 heunisch)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이들이 무시했던 이민족 훈족(헝가리 민족)의 이름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애블랑의 독일어 이름(Weisser Heunisch)은 이름 그대로 ‘하얀색의 훈족같은 포도’ 라는 의미이다. 즉 독일어권에도 멸시당하는 이름으로 불렸던 포도품종이다.


고귀한 프랜키쉬를 대표하는 품종에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블라우프랜키쉬(blaufränkisch)가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역사적으로도 매우 매력적인 포도 품종으로 평가받았던 포도이다. 그런데 1990년대 말 DNA 유전자 검사로 이 포도 품종의 아버지가 ‘하얀색의 훈족같은 포도’로 밝혀진 것이다. 오랫동안 우러러보던 고귀한 왕자님의 아버지가 알고보니 천민출신이었다니… 중세시대부터 이어오던 오랜 믿음이 무너져버리는 듯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품종적으로 별볼일 없는 이 포도에서 어떻게 수많은 고급 품종이 태어나게 된 것일까? 이는 잡종강세(heterosis, hybrid vigor)의 예로 보인다. 서로 유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두 품종이 만들어낸 자손이 유전적으로 부모보다 더 뛰어난 경우를 뜻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외의 케미 혹은 시너지랄까? 아니면 서로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커플이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경우라고 보면 될까? 하지만 사람의 결혼생활은 다르다. 서로 공통점이 있어야 살기 편하다… 


어쨌든, 구애블랑의 운명은 그 이후에 더 기구한데, 프랑스에서는 아예 이 포도를 심는 것을 금지하고 더 좋은 다른 품종들로 대체해버렸다. 쥐라(Jura)에서는 그래도 몰래 조금씩은 살고 있었는데, 19세기 중반 필록세라가 결국 이 품종을 프랑스에서 전멸시켜버렸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몽펠리에(Montpellier)에 있는 프랑스농업연구소(INRA)가 소장하고 있는 DNA 컬렉션에만 존재하고 있다. 한때 프랑스 전역을 내 집처럼 삼고 살았던 이 카사노바 품종의 마지막은 제법 초라하게 마무리된 듯 싶다.


그래도 국제적인(?) 품종이어서 그런지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는 작게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와 인접한 스위스 발레(Valais) 지역에서는 그배스(Gwäss)라고 불리며, 적은 양이지만 이 품종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참고로 지역마다 나라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 바람둥이의 특징인지라 공식적으로 확인된 다른 이름만 약 180개가 있다.


독일과 슬로베니아에서도 소규모 재배가 확인되고 있고 역사에 관심있는 생산자들이 일부러 구애블랑을 심고 와인을 생산하기도 한다. 호주 빅토리아주 루더글렌(Rutherglen)에 있는 챔버스 로즈우드 와이너리(Chambers Rosewood Winery)에는 100년이 넘는 구애블랑이 심겨져 있기도 하다.


[그배스(Gwäss)는 구애블랑의 180개 이름 중 하나다]


한 평생을 화려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거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인생. 뛰어난 아들 딸 들을 낳았으니 그래도 좋은 삶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을까? 답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와인에 관심있는 애호가들에게는 한평생을 구애만 하다가 사라진 구애블랑이라는 포도의 이름을 한번쯤은 기억해볼만 하겠다.


프로필이미지유민준 객원기자

작성 2020.04.14 10:43수정 2020.04.14 10:47

와인클럽 '와인과 사람' 운영진 출신으로 와인 블로그 및 잡지 기고 등으로 꾸준히 와인 관련 글을 써왔다. 2013년 객원기자로 와인21에 합류했으며, 그 후 뉴욕으로 자리를 옮긴 후 해외 와인 시장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각 와인 지역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하여 포도 재배 및 양조 방식을 비교 탐구하는 것과, 원래 전공을 이용하여 IT 기술을 포도 농업에 적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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