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토커(Stoker)


내가 와인을 지독하게 스토킹 할 정도로 해체적으로 본다면, 그 만큼 좋아하는 부문이 음악, 만화, 영화다. 만화는 대학 시절 동아리 회장을 할 정도였고, 영화는 지금까지 어지간한 영화들은 다 보고 있으며, 음악은 CD를 매달 일정 예산을 정해서 사고 있으니 내 성정도 어지간히 지독하다 할 수 있다. 영화에 있어서는 최근 들어서 감명 깊게 보았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이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Stoker)”였다. 이전부터 이 영화는 혼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우 드물게 혼자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스토리는 영화를 직접 보면 될 것이고 이 글의 내용과는 관련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그러나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영화는 지독스럽게 담백하고 아름다우며 자기 암시적이다. 눈을 뜨고 한 번 보고 나니, 눈을 감고 한 번 보고 싶으며, 와인을 마시며 홀로 보고 싶어진다. 이유는 와인 애호가의 관점에서 영화에서 나오는 와인의 의미가 매우 각별하기 때문이다. 와인은 눈으로 보이지만, 귀로 들리고, 영화 곳곳에 코드를 심어주고 있다.


이블린(니콜 키드먼)은 남편의 장례식 이후 화이트 와인을 손에 들고 있다. 그리고 찰리(매튜 구드)가 나타난 이후 저녁 식사에서는 레드 와인을 마신다. 처음에는 고기 요리지만, 그 다음에 치킨 요리 자리가 있어도 레드 와인을 마신다. 영화의 주인공,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가 처음으로 와인을 입에 대는 순간은 그 소리, 향을 음미하는 소리까지 극단적으로 크게 울러 펴지게 한다. 코로 소리를 깊게 흘려 퍼지는 소리가 주변의 적막한 소리와 대비되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순간순간 눈을 감고 나를 느끼듯 이 영화는 등 뒤에 전율이 서늘히 올라오게 만드는 영화다.


이블린이나 인디아의 방 벽이 붉게 차려진 모습, 자기 전이라며 찰리를 기다리지만, 실크 속옷을 입고 자신의 방으로 온 딸을 볼 때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잔은 와인이 이 영화에서 욕망과, 나를 인식하는 하나의 코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처음에 찰리의 대사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린 와인, 너무 어려서 지금은 마실 수도 없는”하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영화의 전체를 감싸고 있는 스토커(stalker)의 개념을 충분히 설명한다.


영화는 절정의 환희, 여자의 감정도 섬세하게 표현한다. 숨 막힘에서 살아있음, 나를 인식함을 알아차리는 역설의 선물은 오로지 신이 여자에게만 준 것 같다. 여자라는 존재가 부럽다는 생각과 그 것이 와인이라는 코드에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감독의 재능이라고 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호흡, 숨 쉼, 그 것이 절정의 감성과 연결되는 코드로 나타내는 것은 오로지 소리로만 들을 수 있다. 불만족과 만족의 그 묘한 코드 역시 기묘한 소리의 호흡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와인 애호가의 관점에서는 이 영화에서 색과 캐릭터의 눈빛, 흔들리지 않고 시니컬한 대사,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코드에 매몰되어야 하면 영화의 본질을 다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생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와인 한 병을 들이키며 보아야 한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 영화가 소리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와인에 있어서 유일하게 결여된 요소인 소리, 그 진동과 소리를 명백하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영화 “스토커(Stoker)”라는 것이 내가 받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어떤 와인을 연결해야 할까? 스토커에 어울리는 와인은, 변화무쌍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냉소적이면서도 차갑지만, 본심을 피할 수는 없어야 한다. 본심은 결국 드러나겠지만, 그 것이 말이 아닌 보이지 않는 자극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직설적이지 않는 품종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고, 그 본색에 빠져들어 자신을 오히려 즐기는 품종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가장 적합한 품종은 네비올로(Nebbiolo)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이 와인을 좀 더 잘 알았다면 1994년산 와인을 올릴 때 잘 익은 바롤로 한 병 올렸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본질을 이해하고 숙성시키기에 피노 누아르 만큼이나 어려운 품종이지만 네비올로 만큼 이 영화를 잘 설명하는 품종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혹은 랑게 네비올로(Langhe Nebbiolo)는 아닌 듯 싶고, 바롤로(Barolo)로 가야 한다. 명확하게 마을을 이야기 하자면 세랄룽가 달바(Serralunga d’Alba) 영역의, 뭔가 거친 듯 하고 남성적이며 건조하지만 여성적인 특성도 함께 가지고 있는, 이중적이고 설명되지 않으며 거친 파도 같은 본성이 있는 테루아가 제격이다. 그러나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라모라(La Morra) 혹은 바롤로(Barolo) 마을의 좀 더 섬세하고 여성적인 캐릭터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느낌으로 명백한 것은 바롤로의 영화라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시간이 된다면 꼭 다시 이 영화를, 홀로, 바롤로의 세랄룽가 달바 지역 한 병 열어두고 한 시간 반 동안 천천히 변하는 느낌을 함께 느끼며 그 소리를 느껴보고 싶다.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시간이 해결 해 주리라. 그 것이 와인이 가진 힘이고 에너지니.

프로필이미지정휘웅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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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3.03.09 21:49수정 2013.03.1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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