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제도권에 진입한 악동의 와인, 샤토 발랑드로

 “완벽에 대한 집착, 그리고 행운.” 프랑스 보르도의 대표적인 가라지스트(garagist, 창고 같이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도전정신과 혁신적인 방법으로 고품질 와인을 소량 생산하는 양조자)이자 생테밀리옹 최고의 컬트 와인(cult wine) 중 하나로 칭송 받는 샤토 발랑드로(Chateau Valandraud)의 양조자 장 뤽 뛰느뱅(Jean Luc Thunevin) 씨가 자신의 성공에 대한 키워드로 제시한 단어다. 5월 28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스카이라운지 파로그랜드에서 진행된 샤토 발랑드로 버티컬 테이스팅 행사에서 한국을 방문한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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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발랑드로의 소유주이자 와인메이커인 장 뤽 뛰느뱅 씨.

 

 뛰느뱅 씨는 자신이 포도밭의 상태와 포도의 품질에 병적으로 집착한다고 말했다. 자기 포도밭에 해충이나 곰팡이가 발생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레드는 물론 화이트 품종들도 그린 하비스트(green harvest)를 진행하며, 흠집이 있는 포도알은 한 알 한 알 손으로 골라 내어 완벽한 상태의 포도만을 남긴다. 그래서 그의 와인이 그렇게 농축적이면서도 투명하고 순수한 풍미를 겸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그린 하비스트를 진행하는 생산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가 처음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반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랑 크뤼 정도를 제외하면 20년 전의 보르도는 깨어있지 않았고, (모두 잠들어 있을 때) 내가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담담한 설명이다. 그 한발 빠른 타이밍이 곧 운이라며 자신의 성공을 행운 덕분으로 돌렸지만, 결국 그것은 양질의 와인을 만들려는 그의 선구적인 인식과 실행, 그리고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IMG_9088_.jpg 1991년 샤토 발랑드로의 첫 빈티지가 생산된 이래, 1994년 빈티지가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로부터 보르도 최고의 와인인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를 능가하는 평가를 받아 일약 세계적인 프리미엄 와인으로 떠올랐다. 로버트 파커가 샤토 발랑드로를 시음하면서 그를 ‘악동(bad boy)’이라고 지칭한 적이 있는데, 본인도 싫지 않았던지 자신의 또 다른 와인에 ‘배드 보이(Bad Boy)’라는 이름을 붙였다. 배드 보이 레이블에 그려져 있는 ‘가라지’라고 쓰인 표지판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 있는 검은 양의 모습은 전통보다는 기술과 혁신을 중시하는 뛰느뱅 씨의 화신처럼 보인다.

 

 배드 보이라는 이름과 레이블 디자인은 상당히 캐주얼하지만, 결코 쉬운 와인은 아니라고 뛰느뱅 씨는 단언했다.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그 품질만은 여느 그랑 크뤼 못지 않은 와인’이 바로 배드 보이의 콘셉트이다. 배드 보이는 배후자 격인 ‘배드 걸(Bad Girl)’과 아들 격인 ‘베이비 배드 보이(Baby Bad Boy)’와 함께 가족(?)을 형성하고 있는데 배드 걸은 세미용(Semillon)과 뮈스카델(Muscadelle)에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이 20% 블렌딩된 크레망(Cremant of Bordeaux)이며 베이비 배드 보이는 보르도의 메를로(Merlot)와 프랑스 남부 루시용(Roussillon)의 그르나슈(Grenache)를 블렌딩한, 만만찮게 독특한 와인들이다.

 

 2012년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 등급 조정에서 샤토 발랑드로는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 B(Premiers Grand Cru Classe B)로 승격되었다. 저잣거리의 악동에서 구중궁궐 안으로 입성한 셈이다. 꾸준히 유지해 온 품질과 평가, 시장 가격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신분상승이다. 와인의 명성을 대변하듯 이날 버티컬 테이스팅에는 수많은 소믈리에와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제공된 발랑드로의 화이트와 레드 와인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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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nie de Valandraud Blanc 2010 연두 빛 감도는 라임 옐로 컬러. 봄날의 잔디밭처럼 신선한 풀의 첫 향기. 가벼운 감미가 느껴지는 레몬 주스, 살구, 서양배 아로마에 미네랄 뉘앙스가 세련됨을 더한다. 드라이하지만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한 뉘앙스와 부담스럽지 않은 산미, 부드러운 질감으로 조화로운 미감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은은한 바닐라와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 향이 방순하게 드러나며 버터 스카치 풍미가 긴 여운을 남긴다. 우아하면서도 친근한 인상을 주는 세련된 와인.

 

Blanc de Valandraud No.2 2009 2010 빈티지보다 옐로 컬러가 조금 더 짙다. 진한 풀내음과 나무 향, 백도, 서양배 향기에 진저 스파이스와 카라멜 시럽 뉘앙스가 가볍게 어우러진다. 도드라지는 산미는 와인의 생기를 극대화시키며 밀도 높은 풍미, 알코올 등과 밸런스를 이루며 단단한 구조와 바디감을 형성한다. 조금은 날카롭게 느껴질 정도의 깔끔함과 섬세함을 지닌 와인으로 조금 더 숙성 후에 마셔도 즐거울 것 같다. 매끄러운 주질과 응집된 과실 맛, 기분 좋은 쌉쌀함을 지닌 매력적인 와인. 참고로 2010년 빈티지부터 ‘블랑 드 발랑드로 No.2’의 변경된 이름이 ‘버지니 드 발랑드로’이다.

 

Chateau Valandraud Saint-Emilion Grand Cru 2003 갈색 빛이 확연한 가넷 컬러에 오렌지 림이 제법 형성되어 있다. 처음부터 오크와 매콤한 스파이스, 부엽토, 감초, 담배, 정향, 감초 등 독특한 향들이 복합적으로 드러나며 스월링을 하자 커런트와 검은 베리, 삼나무 향 등이 추가된다. 커런트, 프룬, 블랙베리 등 진한 과실 풍미와 입안 전체를 코팅하는 드라이한 타닌이 약간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이나, 은은한 산미의 자두 피니시가 산뜻한 피니시를 만들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향과 담배, 동물성 향 등이 과하게 드러난다. 와일드하고 커다란 몸집을 지닌 와인.

 

Chateau Valandraud Saint-Emilion Grand Cru 2008 짙은 루비 컬러에 살짝 형성된 페일 림. 커피, 가죽, 레드 베리, 바닐라 힌트의 탑 노트. 은은한 토양 아로마가 곁들여진 블랙베리, 자두, 라스베리 등 검붉은 과실의 세컨드 아로마는 아직 어린 보르도 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 초콜릿, 블루베리, 커런트 풍미와 비교적 둥근 타닌은 벨베티(velvety)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미디엄풀 바디에 편안한 질감, 적절한 밸런스로 지금 마시기에도 무리는 없으며 10년 후의 변화된 모습도 기대할 만 하다.

 

Chateau Valandraud Saint-Emilion Grand Cru 1999 예쁘게 숙성된, 다홍 빛 감도는 가넷 컬러에 페일 림. 감초와 마른 목재, 스파이스의 첫 향에 이어지는 정향과 시나몬 아로마는 진정 매력적이다. 앵두, 딸기 등 붉은 과실의 생생한 풍미와 산미, 둥글지만 촘촘한 타닌. 풍미 요소 전체가 잘 녹아들어 잔잔하고 순한 느낌을 주면서도 와인 자체의 존재감은 명확히 어필한다는 점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어나는 표고버섯 향기 또한 일품. 숙성 여력은 충분하나 지금이 음용 적기.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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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3.05.30 01:19수정 2013.06.0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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