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한 가재발과 로빈슨 크루소 섬 킹크랩>
세계 유수 와인 생산국인 칠레와 아르헨티나로 떠난 2주간의 여행은 와인만이 아니라 무지에 가까웠던 칠레와 아르헨티나 식문화에 눈과 입을 연 놀라운 시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탄생하며, 원주민에 의한 전통 음식, 그리고 오뜨 퀴진이 발달한 맛있는 칠레가 선사하는 포치토(Pochito)에 빠져보자.
포치토(Pochito)는 칠레 은어로 '만족스러운 식사 뒤 몸와 마음이 행복하고 노곤한 상태'를 뜻한다.

<작은 굴과 문어전채>
16세기 스페인의 침략 전까지 칠레 북부는 잉카(Inca), 칠레 중부와 남부는 아라우카니안 인디언(Araucanian Indian)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라우카니안 인디언의 영향은 1880년대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810년 독립을 선언한 칠레지만 1879~1880년까지 태평양 전쟁을 치렀고 칠레는 페루와 볼리비아로부터 북부지역을 얻는다. 따라서 칠레는 스페인,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 문명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이들 문명은 칠레 음식 문화에 풍부한 요소를 제공했다. 주로 스페인 식문화를 받아들여 초콜렛, 땅콩, 바닐라, 콩, 호박 아보카도, 코코넛, 옥수수 그리고 토마토가, 다른 한편으로는 돼지고기, 소고기, 양, 시트러스, 마늘, 치즈, 우유, 밀가루, 식초 그리고 와인이 유입되었다. 여기에 원주민 식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일부분으로 녹아 있다.

<필라르 로드리게스 쉐프와 칠레 최고 쉐프이자 소믈리에인 프란시스코 클림샤>
전반적으로 칠레 음식은 상당히 단순하며, 너무 많은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식문화 조각들이 조금씩 들어 있어 칠레를 방문한 각국 사람들의 입 맛을 단숨에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보통 식사는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그리고 디저트로 구성되며, 디저트는 우유가 든 차(Te con Leche) 혹은 우유가 든 커피(Café con Leche)와 함께 즐긴다. 1인분 양이 상당히 푸짐해서 배고픈 여행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레스토랑에서 물은 별도로 주문하는데, 스파클링 워터(Agua con Gas) 혹은 미네랄 워터(Agua sin Gas)가 있다. 2주간의 짧은 경험이지만 칠레 음식 문화는 산티아고 도심에서 즐기는 국제화된 음식, 산티아고 외곽에서 즐길 수 있는 전통적인 칠레 음식 그리고 최고의 셰프들이 선사하는 오뜨 퀴진으로 나뉘었다. 칠레의 셰프들은 와이너리와 협업으로 와인에 어울리는 메뉴를 개발하고, 와이너리를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과 와인 마리아주 클래스를 진행하는 데 그 프로그램의 인기가 상당했다.
[칠레 메뉴판 들여다보기]
피스코 사워(Pisco Sour)-칠레에서 꼭 맛봐야 하는 식전주
피스코는 무스카델 알렉산드리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증류하여 만든 알코올도수 40~42%의 향이 좋은 리큐르이다. 원산지 통제를 받는 피스코는 칠레 북부 엘키(Elqui)지역에서 생산된다. 피스코 사워는 피스코 3분의 2에 유난히 향이 좋고 단맛이 도는 피카 레몬즙(Pika Lemon) 그리고 기호에 맞춰 시럽 혹은 슈가 파우더를 섞어 만든 칠레 대표 식전주이다. 상큼한 맛이 입맛을 돋우지만 점심에 즐기기엔 살짝 알코올이 센 느낌이다. 페루와 칠레는 피스코의 원조 자리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칠레 피스코의 품질이 높았다.

<미구엘 토레스의 피스코와 피스코 사워>
샌드위치- 칠레인의 점심 메뉴
칠레는 영양 강화 밀가루를 사용하며, 약간 누런 빛을 띄고, 질감은 우리의 빵에 비해 거칠지만 소화가 잘 되었다. 칠레인들의 자랑인 소고기와 치즈를 넣은 바로스 루코(Barros Luco)는 칠레 대통령의 이름을 따왔다. 차카레로(Chacarero)는 고기, 토마토, 노란 고추 그리고 그린빈스를 넣어 만든다. 바로스 야라(Barros Yarra)는 햄과 치즈로 만든 간단한 샌드위치 메뉴. 샌드위치는 강렬한 향신료를 넣은 치미추리 소스 혹은 칠레 전통의 토마토와 양파를 넣은 간단 샐러드인 엔살라다 칠레나(Ensalada Chilena)와 함께 제공된다.

<샌드위치와 곁들임 소스들-씨겨자, 치미추리, 토마토 소스 등>
정말 맛있고 든든한 식사의 시작- 애피타이저
엠빠나다(Empanadas)는 두꺼운 빵 반죽 안에 고기, 초리조, 치즈, 혹은 계란 등으로 속을 채운 뒤 굽거나 튀겨낸 칠레 전통 음식. 한식의 만두와 비슷해서 입 맛에 맞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 내용물이 달라져 매끼니 만나지만 절대 질리지 않는 메뉴이기도 하다.

<엠빠나다와 세비체>
세비체(Ceviche)는 페루의 영향으로 남미 전역에서 즐기고 있는 해산물 요리이다.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인 칠레는 정말 다양하고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다. 머리까지 맑아지게 신선했던 연어, 톡 터지며 간이 잘 맞는 새우, 짭짤하며 미네랄 풍미가 진한 작은 굴, 강물과 민물이 섞이는 곳에서 자라는 조개와 새우, 로빈슨 크루소 섬에서 잡아올린 킹 크랩인 켄톨라(Centolla), 칠레 연안에서 잡히는 가재의 앞발, 고수와 파슬리로 버무린 문어 요리, 핑크 빛에 부드러운 질감이 일품인 참치까지 칠레의 해산물 요리는 신선함과 풍부한 맛으로 여행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세비체는 아니지만 치즈를 넣어 만든 마차스 파르메사나(Machas Parmesanas)도 그리울 메뉴 중 하나이다.

<조개 치즈구이와 가재찜>
파스텔 데 초클로(Pastel de Choclo)는 칠레식 옥수수 파이로 진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만드는 과정이 다소 복잡하고 길어서 젊은 칠레 여성들은 자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해산물 혹은 고기 등을 다진 양파, 토마토의 야채와 함께 볶은 뒤 금방 갈은 옥수수로 덮어 오븐에 구워낸 요리이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전통 질그릇에 구워 나와 따뜻하게 마지막 한 숟갈까지 즐길 수 있다. 여행자들의 마음을 마치 집에 온 듯 만들어주는 마법의 요리.

<볶은 소고기, 닭고기, 혹은 해산물에 갈은 옥수수를 넣어 구운 파스텔 데 초클로>
칠레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메인 요리들
마푸체 혹은 메르켄은 한국의 고춧가루와 유사한 전통 향신료로 특히 소고기를 재울 때 많이 사용되었다. 많이 맵지 않지만 향이 풍부하고 입맛을 돋우는 특징이 있어 식탁 위의 후추처럼 파스타, 피자, 스프 등 다양항 요리에 뿌려서 즐길 수 있다.
장시간 조리한 와규 소고기에 칠레 전통 칠리인 마푸체 페브레(Mapuche Pebre)로 향을 낸 밀가루와 옥수수 스튜, 그리고 장시간 조리한 버섯 콩피.
훈연한 고추인 메르켄(Merquen)으로 향을 낸 태평양에서 잡은 붕장어구이.

<전통양념에 장시간 조리한 소고기와 붕장어 요리>
후안 페르난데스 섬에서 잡은 크랩으로 만든 바삭한 크랩케이크.
코스티야 데 세르도 아 라 칠레나(Costillar de Cerdo a la Chilena)는 육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 장시간 조리한 돼지 갈비의 바삭하고 짭조름한 껍질과 칼로 썰 필요없이 부드럽게 무너지는 돼지 갈비 맛이 일품인 칠레 전통 요리.

<크랩케이크와 전통 방식으로 조리한 돼지갈비>
코르비나 뭬니에르(Corvina Meuniere)는 케이퍼를 넣은 버터 소스를 곁들인 황새치 요리. 진하고 동시에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해산물 혹은 고기 플래터는 단순하지만 식재료의 맛을 고스란히 살린 최고의 메뉴이다. 약간의 사프론을 넣은 고기밥과 곁들인다.

<해산물 혹은 고기 플래터>
진하고 색다른 칠레 디저트의 세계
애피타이저, 메인으로 이어진 칠레에서의 식사는 늘 환상적인 디저트로 마무리된다. 보기에도 아름답고 홈메이드이며 이국적인 소재가 접목되어 새로운 맛의 세계를 제시해주고 있다.
포토스 데 루쿠마(Fotos de Lucuma)는 겉은 아보카도 속은 단호박처럼 생긴 열매로 밤과 맛이 비슷하다. 이를 초콜렛, 농축 우유와 카라멜과 섞어 만든 전통 디저트이다. 적당한 단맛과 긴 여운이 좋은 디저트.
홈메이드 레몬 소르베인 에랄도 아르테사날(Heraldo Artesanal)에 사용된 레몬은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좋아 정말 맛있다.
밀 오히르 데 만자나, 살사 나랑하 이 에랄도(Mill Hojas de Manzana, Salsa Naranja y Heraldo)는 사과 퍼프 패스트리에 삼바욘(Sambayon) 오렌지 소스와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디저트. 가장 새롭고 이색적인 맛을 내었던 메뉴.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서면 홈메이드 치즈 혹은 베이커리 제품을 파는 상인들이 차로 접근한다. 빵 한봉지를 구입하면 3~4종의 칠레 전통 빵들이 들어있는데 견과류와 캬라멜이 들어있어 고소하고 아주 맛있다. 칠레인의 디저트 사랑은 여행자들의 긴 여행길 큰 위로가 되었다.
칠레를 비롯 남미의 음식문화에 전혀 알지 못했기에 칠레의 음식들은 더 큰 즐거움을 주었다. 산소가 풍부한 바다에서 자란 다양한 해산물, 다양한 위도와 지형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농산물, 원주민과 스페인을 비롯 다양한 문화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형성된 칠레의 색다른 맛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매끼 시작을 알리던 엠파나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던 싱싱한 해산물 그리고 오후에 즐기던 달콤한 디저트가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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