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카다브라! 마법사, 마르셀로 파파!
-콘차 이 토로 수석와인메이커 마르셀로 파파 내한 인터뷰
“그는,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거인 같은 교향곡에 자신의 교향곡이 가려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람스(Johannes Brahms)의 「교향곡 제 1번 c단조 Op.68번 (Symphony No.1 c minor, Op.68」은 1855년 22살의 브람스가 친구인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을 듣고 감격한 후, 교향곡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그 작업은 1876년 여름, 독일 바덴바덴 부근의 리히텐타르 저택에서 완성하기에 이른다. 장장 22년이 걸린 지난한 작업이요, 그의 나이 43세 때였다.
얼마나 그는 이 곡을 다듬고 또 다듬었을까?
그리하여 브람스 교향곡 제 1번은 세기에 걸쳐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교향곡 중에 하나요, 발매음반 종류로 보나 교향곡 중의 교향곡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의 22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이리라. 그 후 브람스가 교향곡 제 2번, 제 3번을 단 몇 개월 만에 써내려간 것을 보면, 얼마나 그가 교향곡 제 1번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때때로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해 내고, 결론 내 버리려는 나 자신을 되돌아 볼 때, 나는 어김없이 브람스의 제 1번 교향곡을 틀어놓고 침잠한다. 그 속에는 그 어떤 음악가도 아닌 ‘브람스’가 있다. 브람스는 무엇보다 교향곡의 색채적인 효과에 주목했다. 곡이 완성되기까지 몇 번이나 악기를 바꾸고, 더하건 빼보면서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고심한 것이다.
그도 그랬을까? 남아메리카 서부해안, 3,000킬로미터의 길쭉한 땅, 칠레에 운명처럼 태어난 와인메이커, 마르셀로 파파(Marcelo Papa)! 그의 포도밭은 그에게 어떤 교향곡을 떠올리게 했을까? 그가 만들어내는 교향곡은 어떤 스타일일까?
‘파파’(Papa), 부르는 것만으로도 푸근한 이름. 그는 칠레의 손꼽히는 와인명가, 콘차 이 토로의 수석와인메이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와인업계로서는 모르긴 몰라도 핫이슈가 아닐까?
마케팅이슈를 위한 슬로건으로 치부해버리기엔 그 결과가 너무도 놀라운, ‘1초에 한 병씩 팔리는’ 와인,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 그 명성을 만들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 바로 마르셀로 파파란다. 그가 바로 3시간 전 한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이가 필자라니, 왠지 어깨 으쓱해지는 기분이다. 말쑥하면서도 수수한 옷차림으로 인터뷰 장에 들어선 마르셀로 파파.
늘, 와인을 만드는 농부와의 대화는 신이 난다.
백년쯤 넘고 보면, ‘~카더라’는 전설이 된다.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 1883년에 설립된 칠레 최고의 와이너리요, ‘돈 멜초’, ‘알마비바’ 등 누구나 꿈처럼 그려보는 유수한 와인들이 생산되는 와이너리의 수석 와인메이커라니 어찌 가슴 두근거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와 마주한 와인은 콘차 이 토로의 가장 범용와인,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다. 그런데 이 사람, 꿀림이 없다. 자신만만하다. 가장 범용와인이자 글로벌 브랜드를 앞에 놓고서, 나와 와인의 철학을 논한다고 했을 때는 뭔가 싶었다.
그래서 짓궂은 질문부터 던졌다. “사실 저는 유럽 구세계 와인이 역사적으로나 품질 면에서 신세계 라틴와인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상대로, 그는 인상부터 찡그렸다. “No!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확신하건데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다르기(different) 때문이에요.” 슬슬, 이야기가 재미있어 진다. “우리는 보르도와 비슷한 와인을 만들 수 없어요. 조건이 다르니까요. 토양도 다르고, 날씨도 다르죠. 그러나 우리만의 ‘다른’ 와인을 만들 수 있어요. 와인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Reflect the origin! 그것이 나고자라는 산지를 반영하는가에 있죠!” 한 마디로 말해서 ‘신토불이’를 외치는 마르셀로 파파. 땅의 울림에 화답하는 반향(反響), 반영(反映).... 수많은 땅의 농부들이 외쳐오는 이야기를 마르셀로 파파, 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게 됐을 때,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게 바로 제가 당신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어요!”
1998년,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와 마르셀로 파파(Marcelo Papa)의 운명같은 만남
누구나 칠레와인을 저가의 대량생산의 와인으로 취급해 버릴 때, 개발할 가능성이야말로 기회였던 사람. 1993년부터 와인양조자로서 시작해, 미국의 캔달 잭슨에서 4년을 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콘차 이 토로에 정착한 마르셀로 파파. 마침 칠레는 포도주 생산에 일대 변혁이 일던 시대. 황금을 찾는 개척자의 마음처럼, 고향에서의 작업은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의 밭이었다. 마르셀로 파파와 콘차 이 토로의 운명같은 만남의 시작이었다.
아직 멀었다 싶을 때, 그것이 가능성의 기회다.
누구나 칠레와인에 대해 값싼 와인, 대량생산의 공산품같은 와인으로 여길 때, 이 포도밭의 마술사는 절치부심하며 포도밭을 골라내고 그 땅에 맞는 포도품종을 심어, 최상의 상태에 수확하고 세심한 양조를 거쳐 와인을 만들어 냈다.
특히 칠레의 여느 와이너리들이 소비자들의 맛을 따라 유럽스타일의 국제품종을 심고 변화를 꾀하지 않을 때, 외곽지역에 눈을 돌리고 그 땅에서 자라날 포도품종을 심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흔히 칠레에서 전통적인 와인산지라면 아콩카구아(Aconcagua)나, 바로 밑의 카사블랑카(Casablanca), 더 남쪽으로 가장 오래 된 마이포(Maipo) 밸리를 꼽는다. 그러나 이미 많은 포도생산자들, 와이너리들이 경쟁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곳은 도전정신에 불타는 젊은 와인메이커를 사로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주목한 땅이 칠레 와인산지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리마리 밸리(Limari Valley). 그곳에 심겨진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제대로 땅을 반영하지 못했지만, 샤르도네(Chardonnay)는 달랐다. 마치 마법처럼, 카시예로 델 디아블로의 샤르도네는 힘있고, 상큼하며, 부드럽고, 향긋했다. 와인메이킹이란, 그야말로 매직(Magic), 마법같다.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400km, 해안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곳.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포도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아타카마 사막, 안데스 산맥과 가까운 리마리 밸리는 매우 건조해서 관개용 저수지가 필수적이다. 유럽의 전통 와인산지에서는 관개(irrigation)가 법적으로 제한돼 있다. 그래서 신대륙에서 포도주에 물을 대는 것을 인위적이고 소위 ‘코카콜라’를 만드는 행위라며 공격의 일침으로 삼기도 한다. 그들에게 마르셀로 파파는 한방 먹이듯,
“어느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급 포도밭은 홍수가 나서 펌프질로 물을 빼냅니다. 우리가 물이 없어서 파이프를 대고 물을 주는 것과, 물이 많아서 물을 빼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디아블로(Diablo), 괴물같은 와인
까시예로 델 디아블로. “엘(L)이 두 개가 붙어있으면 ‘까실레로’가 아니라 ‘예’로 발음해요.”
한 때 외부강의를 나가면, 필자는 이 와인을 소개할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와인은 스토리텔링 아닌가? 남녀가 처음 데이트를 즐길 때도 어느 와인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까시예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blo), 해석하면 악마의 와인창고 쯤이다. 한때 두 개의 심장, 박지성이 몸담았던 맨유(Manchester United)의 12번째 선수라는 타이틀을 받았던 와인. 어김없이 와인에는 그를 상징하는 디아블로의 심볼이 인장처럼 박혀있다. 워낙 유명한 일화이니, 한번쯤 찾아서 왜 이 와인이 악마의 와인창고라고 붙여졌는지는 꼭 참고하시길. 작업에도 쓸모가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결국 내게는 품질보다는 마케팅에서 성공했다 싶기도 한 와인이었다.
그러나 마르셀로 파파, 그가 15년 동안 콘차 이 토로의 포도밭에서 펼쳐년 와인메이킹의 마법은 카시예로 델 디아블로, 이 와인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품질에 가격도 착한 와인. 한 병의 와인 속에 자신의 정체성(Identity)를 그대로 담아낸다는 것은, 그것도 제법 잘 빚어낸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노력이 따른다.
마르셀로 파파, 그가 외친 주문에 태어난 10개의 카시예로 델 디아블로는 각각의 품종과 품종에 적합한 땅을 골라 제대로 심고 가꾸며, 거둬들여 빚어낸 ‘와인’, 다름 아니다. 누구에게나 편하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빨주노초파남보처럼 8개의 포도품종과, 2개의 스파클링은 제각각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와인 메이커가 말하는 ‘포도밭의 반영’을 제대로 품은 가장 글로벌한 와인이자, 콘차 이 토로의 스탠다드한 와인이,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
문득, 이 와인 열병을 꽂아서 벗들과 함께 피크닉을 떠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눈을 가리고 포도품종맞추기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 와인의 전설을 떠올릴 것이다. 마르셀로 파파, 그가 이루어갈 앞으로의 전설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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