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보영의 와인 기행 4] 윈스턴 처칠이 사랑한 샴페인, 폴 로저

[폴 로저 샴페인 하우스]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우리는 바로 다음날 샹파뉴로 출발했다. 세계적인 샴페인 하우스 ‘볼랭저(Bollinger)’와 ‘폴 로저(Pol Roger)’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샹파뉴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엣 & 샹동(Moet & Chandon)’을 방문한다. 가장 유명한 샴페인이고, 대중에게 늘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적인 곳들이 궁금했으므로, 대형 샴페인 하우스 중 가족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단 세 곳, 볼랭저(Bollinger),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 폴 로저(Pol Roger) 중 두 곳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파리에서 한 시간여 기차를 달려 샹파뉴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인 에페르네(Épernay)에 도착했다. 중심부인 애비뉴 드 샹파뉴(Avenue de champagne) 거리에 이르자, 양옆으로 유수의 샴페인 하우스들이 서 있다. 대문마다 걸린 화려한 문패와 깃발에 여행의 기대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윈스턴 처칠이 사랑한 샴페인
 
[폴 로저의 까브]
 
처음 방문한 곳은 영국의 전 총리 윈스턴 처칠이 사랑했던 샴페인으로 유명한 폴 로저(Pol Roger)였다. 1849년 설립된 곳으로, 처칠이 매일 두 병씩 폴 로저의 샴페인을 즐겨 마시면서 크게 유명해졌고, 1965년 처칠이 91세로 세상을 떠나자 폴 로저는 검은색 띠를 두른 레이블을 부착해 조의를 표했다. 현재 폴 로저 건물이 자리한 거리 이름이 공식적으로 ‘윈스턴 처칠 거리(Rue Winston Churchill)’로 지정됐을 정도로 그 명성이 높다. 
 
우리를 안내할 홍보 담당자 매튜 블랑(Matthieu Blanc)은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였다. 사회생활을 샴페인과 함께 시작하다니,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성도 화이트 와인을 뜻하는 ‘블랑’이라니, 우연치곤 꽤나 운명 같았다. 
 
그는 능숙하게 폴 로저의 역사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폴 로저는 어머니의 가문이 소유하던 이곳을 물려받았고, 법률 관련 일을 하던 그의 아버지의 지지를 얻어 사업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1899년 폴 로저 사후에 그의 가족들은 명성이 높아진 그의 이름 ‘폴’과 성 ‘로저’를 붙여 ‘폴 로저’를 성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폴로저 5대손인 현(現) 오너 위베르 드 빌리(Hubert de Billy)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유네스코 등재를 기다리는 지하 30m 동굴
 
[‘병 돌리기(remuage, 흐미아쥬)’ 작업 중인 모습] 
 
양조시설로 이동해 발효 탱크와 블렌딩 과정을 둘러본 후, 샴페인들이 숙성되고 있는 대규모 까브(cave, 지하 저장고)로 향했다. 거의 동굴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크기에 새로운 지하 세계가 펼쳐지는 듯하다. 33m 깊이로 까마득한 계단을 내려가려니 긴장감이 감돈다. 평균 기온 9~11도의 지하에 도달하자 으슬으슬 한기도 느껴진다. 
 
샴페인이 마지막 발효를 마치면, 침전물이 병 입구로 모이도록 경사진 나무판에 거꾸로 끼워 경사도를 점점 높이는 ‘병 돌리기(remuage, 흐미아쥬)’ 과정에 들어가는데, 폴 로저에서는 이 작업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전부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이렇게 침전물이 병목으로 모이면, 영하 20도 이하의 액화 질소로 급속 냉각한 뒤, 병을 세우고 뚜껑을 제거하여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하는 ‘침전물 제거(degorgement, 데고르주멍)’를 한다. 폴 로저에서는 이 과정도 손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능숙한 전문가들의 손놀림을 카메라에 담느라 걸음을 지체하자, 매튜가 길을 잃으면 큰일이라고 당부한다. 내부가 워낙 넓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가끔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까브의 내부 길이는 총 7.5㎞에 이른다. 현재는 연결 통로가 막혀 있지만, 과거에는 이 동굴을 통해 이웃의 다른 샴페인 하우스들과 연결됐다고 한다. 현재 샹파뉴 생산자들은 이 까브를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금세기 최고의 빈티지, ‘뀌베 써 윈스턴 처칠 2002’
 
[최고의 빈티지, 뀌베 써 윈스턴 처칠 2002]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수출 담당자 위고 로마난(Hugues Romagnan)이 동석하여 샴페인을 시음했다.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한 잔, 올해의 포도 수확을 축하하며 또 한 잔, 그리고 처칠을 기억하며 세 번째 잔을 마셨다. 마지막 샴페인 ‘뀌베 써 윈스턴 처칠(Cuvee SWC)’은 윈스턴 처칠 서거 10주년을 기념하여 1975년 탄생한 폴 로저 샴페인 하우스의 아이콘이자, 폴 로저 샴페인 중 최고 등급인 샴페인이다. 역시, 전체적으로 힘 있게 입 안을 채우면서도, 기포 하나하나가 더없이 섬세하게 번졌다. 
 
“지금 여러분이 마시고 있는 2002년 빈티지(vintage, 포도를 수확한 연도)는 1975, 1988, 1996 빈티지를 뛰어넘는 최고의 빈티지입니다. 우리는 지난달에 이 샴페인을 출시했고, 여러분은 이 금세기 최고의 윈스턴 처칠을 마시는 최초의 한국인입니다.” 
 
위고의 이 한 마디에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뀌베 써 윈스턴 처칠 2002(Cuvee SWC 2002)’가 한국에 들어오면, 이 샴페인이 탄생한 고향에서 처음 마셨었노라고 말하리라. 그날이 무척 기다려진다.
 
자료제공: 사진_나보영 칼럼니스트, 폴 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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