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국경이 맞닿은 바인피어텔(Weinviertel)! 눈길 닿는 모든 곳엔 그림 같은 구릉이 펼쳐져 있고, 선술집이 늘어선 낭만적인 골목길은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의 귀갓길을 반긴다. 테이블 위 놓은 와인잔, 그 사이로 비친 석양의 마지막 빛까지 위로가 되는 이곳! 바로 와인이 삶의 중심이 되는 바인피어텔(Weinviertel)이다.

▲ 바인피어펠 모습
바인피어텔은 빈(Wien) 북서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남쪽으로는 다뉴브강, 북쪽은 체코 국경, 서쪽으로는 만하르츠베르크(Manhartsberg), 동쪽으로 슬로바키아 국경까지 크게 뻗어 있다. 포도원 규모는 13,858헥타르에 약 7,000명 포도 재배자가 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 최대 와인 생산지이자 2003년 오스트리아 최초로 오스트리아 원산지 명칭 통제 등급인 DAC(Districtus Austriae Controllatus)를 받은 곳이다. 그뤼너 벨트리너 품종으로 오크 숙성 없이 만든 와인에 바인피어텔(Weinviertel DAC, 최소 알코올 도수 12%), 좀 더 강렬하고 진한 풍미를 지니는 와인에는 바인피어텔 리저브(Weinviertel Reserve DAC, 최소 알코올 도수 13%)를 준다.

▲ 바인피어텔 지도, 자료 제공 AWMB
바인피어텔은 과거 리히텐슈타인 최대 와인 생산자이자 와인 산업의 중심으로 품질에 따른 체계적인 와인 분류가 이뤄졌던 곳이다. 하지만, 1919년 제1차 대전, 이후 2차 세계 대전으로 바인피어텔 기반 시설 71%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체코 및 슬로바키아와 맞닿은 국경 사이에 철의 장막이 드리워지며, 이 지역은 철저하게 고립됐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사람들은 이 지역을 떠났고, 그나마 남은 대부분 와인 생산자는 포도를 키워 협동조합에 납품했기에 바인피어텔은 벌크 와인(Bulk wine)산지로 추락하고 말았다. 1950~60년대까지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주민들은 낙농, 곡물 농업, 와인 산업 등에 종사하다가 1980년대 이후 과거와 같은 고품질 포도 재배 및 와인 생산의 성공 가능성을 믿고 완전히 와인 산업으로 전환했다. 1989년 철의 장막이 걷힌 뒤 인접국과의 교류가 되살아나면서 최근 바인피어텔 와인은 국제 인지도도 상승하고 있다.
바인피어텔은 광대한 면적만큼 기후와 토양이 다양하다. 주요 토양은 풍적황토인 뢰스(Loess), 이외 점토, 석회암, 자갈, 화강암 등이 섞여 있다. 북쪽 포도원은 건조하고 온화한 낮과 보헤미아 암괴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의 영향으로 추운 밤을 보낸다. 동쪽은 북쪽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강수량은 전반적으로 400-600mm 정도다.
바인피어텔 주요 품종은 백포도인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로 6,700헥타르 포도원에 재배되는데, 이는 오스트리아 그뤼너 벨트리너의 절반에 해당하는 많은 양이다. 이외 일부 지역은 적포도 재배가 가능해 츠바이겔트(Zweigelt), 블라우어 포츄기져(Blauer Portugieser), 또는 피노 누아가 재배된다.
화강암 토양에서 피네스가 좋은 리슬링과 그뤼너 벨트리너가 생산되는 뢰시츠(Röschitz), 오랜 역사를 지닌 미로 같은 지하 와인 셀러로 유명한 레츠(Retz), 풍미 좋은 레드 와인이 생산되는 하우그스도르프(Haugsdorf), 팔켄슈타인(Falkenstein), 바람이 많이 불고 젝트 와인으로 유명한 포이즈도르프(Poysdorf) 마을이 잘 알려져 있다.
바인피어텔 대표 생산자의 와인을 만나보자.

에브너-에베나우어(Ebner-Ebenauer)는 세련미와 우아함이 돋보이는 와인 생산자로 평가받는다. 그뤼너 벨트리너는 품종 고유의 후추 향이 가득하고 미네랄과 아주 맛깔스러운 산미를 지녔다.
세쳐(Setzer)는 오스트리아 내외 최고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와이너리다. 단일 포도원인 키르흔가르텐(Kirchengarten)에서 자란 그뤼너 벨트리너 리저브(Grüner Veltliner Reserve) 와인은 잘 익은 그리고 말린 망고를 중심으로 한 열대과실 풍미가 풍부한 와인이다.
출(Zull)은 미로 같은 지하 셀러가 있는 레츠(Retz)마을 남쪽에 자리한다. 2003년 주인장 아들이 물려받았는데, 그는 프랑스 부르고뉴 루미에(Roumier)와 뉴질랜드 페가수스 베이(Pegasus Bay) 와이너리에서 경험을 쌓았다. 단일 포도원 아우세레 베르겐(Äussere Bergen) 리저브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 Reserve)는 후추와 와인 저변에 은은하게 깔린 허브, 크림 같은 질감과 좋은 구조를 보여주는 진지한 와인이다.

타우벤슈스(Taubenschuss)는 바인피어텔 북동쪽에 자리한 와이너리로 삼부자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와인이 직접 판매되며, 인기가 좋아 할당받을 수 있는 물량이 적다. 이 와이너리 바이스부르군더(Weissburgunder, 피노 블랑)은 은은하지만 정말 복합적인 열대과실 풍미를 지녀 정말 훌륭하다.
미하엘 긴들(Michael Gindl)은 1807년부터 대대로 물려온 농장을 물려받은 1983년생 젊은 와인 생산자가 이끄는 와이너리다. 2010년부터 일부 포도원을 임대하여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포도를 키워 내추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급기야 이 젊은 와인 생산자는 2010년부터는 소와 말을 사용해 농사를 짓고 있다. 14세기부터 포도를 키운 포도원 이름, 태양, 영혼(Soul)이라는 의미를 합한 솔(Sol) 시리즈 와인은 내추럴 와인이다. 소다리스 리슬링(Sodalis Riesling)은 2일 동안 껍질과 접촉해 자연 효모로 발효하고, 12개월간 중성적인 아카시아 오크 통에 숙성했다. 정제, 여과 없고 이산화황도 첨가하지 않았다. 두드러지는 미네랄, 좋은 구조와 골격을 지닌 훌륭한 와인이다.
요하네스 칠링어(Johannes Zillinger)는 오렌지 와인 강자다. 포도원은 슬로바키아 국경에 가까우며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관리된다. 뉴멘(Numen)시리즈는 암포라에서 자연 효모로 발효한 뒤 숙성된다. 와인은 스윗 스파이스, 생강 편, 향기로운 허브들, 시트러스, 오렌지, 짭짤한 미네랄 풍미를 지니며 여운이 몹시 길다.

노이스티프터(Neustifter)는 포이즈도르프 마을에 자리한 와이너리로 여러 종류 와인을 만든다. 테루아 시리즈는 이름처럼 특성을 잘 드러내는 와인을 의미한다. 헤르만쉐체른 그뤼너 벨트리너 리저브(Hermannschachern Grüner Veltliner Reserve)는 바닐라, 그뤼너 벨트리너 고유의 후추와 스파이스 풍미에, 풀 보디, 우아한 산미, 크림 같은 질감을 보여주는 와인이다.
하근(Hagn)은 마일베르크(Mailberg)마을에서 300년 이상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가문이 운영하는 와이너리다. 그린 헌터(Green Hunter Grüner Veltliner Reserve) 그뤼너 벨트리너 리저브는 사과, 모과, 시트러스, 다양한 노란 과실 향에 스파이시한 풍미와 크림 같은 질감, 탁월한 균형을 보여준다.
헤벤스트라이트(Hebestreit)는 레츠 마을 인근에 있으며, 미네랄 풍미가 두드러지는 와인을 생산한다. 그뤼너 벨트리너 리드 샤츠베르크 리저브(Grüner Veltliner Ried Schatzberg Reserve)는 부싯돌, 말린 노란 과실, 흰색 과실, 후추 향이 가득하다. 매우 섬세하고 과실 풍미가 농축된 와인으로 표현력과 스파이시한 여운이 참 좋다.

▲ 바인피어텔 와인을 시음 중인 와인 전문인들, 사진 제공: AWMB
오스트리아 와인 서밋에 참여해 체코 모라비아와 가까운 헤른바움가르텐(Herrnbaumgarten)마을에서 다양한 바인피어텔 와인을 만났다. 바인피어텔은 벌크 와인 이미지가 워낙 강해 몇 개만 찍어 시음하면 대충 파악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시음을 시작하자 기대를 뛰어넘는 와인에 좀처럼 시음 부스를 떠날 수 없었다. 그동안 다른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와 달리 고립된 탓인지 와인 생산자들은 수줍은 듯 자신의 와인을 소개했지만, 와인 잔에 든 와인은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 지역 뒤른베르크(Dürnberg)가 수입되었었고, 미하엘 긴들(Michael Gindl)와인도 만날 수 있다. 바인피어텔에서 생산된 훌륭한 단일 포도원 와인이나 내추럴 및 오렌지 와인이 한국에 더 다양하게 소개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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