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 그라츠(BiBi Graetz)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독보적인 와인 생산자다. 그는 이탈리아 토착 품종으로만 와인을 만들지만, 전통적인 키안티 클라시코와도 슈퍼 투스칸과도 다른 특별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지난 7월 26일, 아시아 여러 나라 와인 전문인과 함께 줌을 통해 비비 그라츠가 걸어온 지난 20년 역사와 테스타마타 및 콜로레 2019년 산 와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비 그라츠 포도밭 전경]
비비 그라츠 와인 역사
비비 그라츠 와인은 2000년 피렌체 지방 피에졸레(Fiesole) 언덕 뒷편 아주 작고 오래된 마을인 빈칠리아타(Vincigliata)에 설립됐다. 이곳은 인근 도시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지닌다. 빈실리아타 성은 1031년부터 수 세기 동안 이곳 역사적인 사건을 모두 겪으며 건재하고 있는데, 비비 그라츠 사유지가 바로 이 성 근처에 있다.
비비 그라츠는 유명한 조각가인 기든 그라츠(Gidon Graetz)의 아들로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델아르테(Academia Dell’Arte)를 졸업하고 화가로 활동했다. 1990년대 초, 부모님의 와이너리를 물려 받은 그는 1995년부터 포도 재배와 자신만의 와인을 양조하겠다는 열정을 갖고 와인 세계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포도와 와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그는 와인에 대한 애정이 점점 더 강해지는 걸 느꼈다. 결국 그가 와인 양조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때,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이탈리아 유명 양조가인 알베르토 안토니니(Alberto Antonini)를 만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오랜 수령의 비비 그라츠 포도나무]
2000년 초, 그는 보르도 앙프리뫼(Bordeaux En Primeur)에 참가해 와인 거래상, 방대한 와인 컬렉션을 지닌 와인 투자자, 발랑드로(Valandraud)와 같은 생산자를 만나고 교류하며,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와인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됐다. 이탈리아인으로서 그가 염두에 두었던 와인은 슈퍼 투스칸(Super Tuscan)의 시초인 사시까이아(Sassicaia)였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 테스타마타(Testamatta)와 콜로레(Colore)를 출시했다. 첫해엔 포도밭도 4헥타르뿐이라 생산량도 적었고, 어떻게 와인 값을 매기는지 몰라서 그는 담배 10개비보다는 더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며 사시까이아보다 2유로 높은 가격을 책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의 극찬과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가 첫 빈티지 콜로레를 사시까이아 다음인 2위로 꼽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며 테스타마타와 콜로레는 와인 시장의 떠오르는 별이 됐다.
비비 그라츠의 와인 신념
비비 그라츠는 와인의 정체성를 정의하는 테루아와 이에 연결된 미세한 요소를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20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그리 비중 있게 다루지 않던 8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 집중했고, 이 나무들을 세심하게 유기농법으로 재배해왔다.
초기 10년은 진하고 강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그린 하베스트도 50% 정도 시행해서 농축된 포도를 얻고, 30분~1시간 정도 진행하는 사혈법(Bleeding)을 10~15%정도 적용해 추출을 많이 하며, 새 오크 통도 많이 사용했다. 이로 인해 초창기 비비 그라츠 와인은 마치 로켓을 쏘아 올리듯 강하고 단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변화가 시작됐다.
[펀칭 다운 중인 비비 그라츠]
비비 그라츠에 따르면, 2009년은 춥고 비가 많이 내린 해로 포도알이 컸고, 그만큼 물을 많이 머금어 풍미가 다소 희석됐다. 사람들은 이 빈티지 와인을 두고 심지어 테스타마타 같지 않다고 비평했고, 당연히 와인 평가 점수도 낮았다. 이와 달리 2010년은 빈티지도 좋고, 와인 양조 기술을 총동원해 진하고 강한 와인을 빚었는데, 예상대로 점수도 높게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2010년 와인은 장기 숙성 잠재력이 좋겠다고 평가하면서도 와인은 사지 않았고, 실제로는 2009년 산 와인을 한 상자씩 사는데 지갑을 열었다. 이를 본 비비 그라츠는 사람들이 실제로 우아한 와인을 좋아한다고 깨닫고 ‘슈퍼 엘레건트(Super Elegant)’한 와인으로 양조 스타일을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그는 2011년부터 그린 하베스트조차 하지 않고 자연이 허락한 만큼의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 미리 솎아내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도를 수확하면서 열심히 잘 판단해 알이 더 크고 산미와 피네스가 더 좋은 송이를 얻는다. 이제는 사혈법을 쓰지 않는다. 새 오크 통 사용 비율를 상당히 많이 줄였고, 중고 보티(Botti) 사용을 늘렸다. 이렇게 변화를 준지 11년차가 되면서 비비 그라츠 와인들은 예전과 상당히 달라졌고, 20주년을 기념하는 2019년에 비비 그라츠는 그가 목표한 완벽하게 슈퍼 엘레건트한 와인을 만들 수 있었다.
일부 포도밭은 포도나무가 수명을 다해 새로 심어야 하는데, 비비 그라츠는 특정한 클론을 고르는 대신 다양한 클론을 심고 테루아가 얘기하도록 돌보고 있다고 한다. 비비 그라츠는 말 그대로 테루아리스트다.
20년을 기념하는 비비 그라츠의 든든한 와인들
비비 그라츠는 출시 20주년을 기념하는 테스타마타와 콜로레 2019년 산에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따라서, 와인 라벨도 다른 빈티지와는 다르다. 화가인 그는 1960~70년대 이탈리아에서 인기 있었던 얼터너티브-록밴드 마네스킨(Måneskin)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파티 드레스처럼 20주년 와인 라벨을 그렸다. 2019년은 매우 안정적인 해로 수확량이 적었던 2018년에 비교해 40% 정도 수확을 더 할 수 있었다. 그는 2019년을 시적이며, 투명하고, 우아한 빈티지라 평가한다. 그는 와인을 양조하는 3개월 동안 일주일에 3번씩, 하루 5~6시간 시음하며 블렌딩 작업을 해 와인을 완성했다.
향수 같은 테스타마타(Testamatta) 2019
테스타마타는 빈칠리아타(Vincigliata), 론다(Londa), 라몰레(Lamole), 몬테필리(Montefili), 시에나(Siena)라는 5개 포도밭 포도로 만든다. 포도나무 수령은 90년 정도다. 그는 수확 때가 되면 농사 짓기가 너무 힘든 나머지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이 와인 이름은 친구들과 2년 동안 고민하다 당시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와 피렌체 한 와인 바에서 이 정도로 와인 이름 짓기가 힘이 든다니 차라리 미친 머리(Testa Matta, 영어로 Crazy Head)라는 이탈리아어를 그대로 쓰자고 이야기기가 나오며 결정됐다. 그는 테스타마타라는 이름이 적어도 당시 그에겐 가장 완벽하게 느껴졌다는 추억을 공유해줬다.
100% 산지오베제. 포도원별 구획을 나누고 8번에 걸쳐 수확했다. 양조장에서 다시 포도를 선별해 줄기를 제거하고 부드럽게 압착한다. 225ℓ 작은 오크 바리크와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조에서 자연 효모로 발효한다. 매일 6번 손으로 펀칭 다운과 펌핑 오버를 한다. 이후 20개월간 중고 바리크와 배럴에서 구획 별 와인을 숙성한 뒤 블렌딩한다.
테스타마타 2019년 와인은 가장자리가 투명한 아직은 너무나 어린 중간 정도 진한 루비색을 띤다. 중상 정도 농축된 향에서는 잘 말린 크랜베리, 체리, 라즈베리, 군고구마, 고구마 말랭이, 체리쥬빌레, 말린 민트, 기분 좋은 먼지를 느낄 수 있다. 중상 정도 농축된 풍미, 산미, 잘 익은 타닌은 섬세하며 입자가 굉장히 곱다. 짠맛을 동반하며 아직 어린 와인이라서 산미가 상당히 예리하다. 잘 익은 붉은 체리, 루이보스 차에서 느껴지는 정도의 타닌과 찻잎 풍미를 지니고 있다. 골격이 과격하진 않지만, 강단이 느껴지고 구조가 훌륭하다.
비비 그라츠는 테스타마타를 ‘나의 작은 사시까이아’라 부르며 2019년 산이 향수처럼 내는 향을 높이 평가했다.
불꽃 놀이 같은 콜로레(Colore) 2019
더 완벽할 수 없는 빈티지로 비비 그라츠는 이 와인을 ‘꿈(Dream)’이라고 말한다. 라몰레, 빈칠리아타, 시에나에서 선별된 포도를 사용했다. 두 번 선별한 뒤 테스타마타와 비슷한 방식으로 양조하는데 다만 매일 펀칭다운 및 펌핑 오버하는 횟수는 6~8번으로 다르고, 콜로레는 사혈법을 쓰지 않는다.
와인은 가장자리가 투명한 루비색을 띤다. 진하게 농축된 향 속에는 진짜 잘 익은 체리, 말린 체리, 말린 라즈베리, 크랜베리, 바이올렛, 미네랄, 과일 파운드 케이크, 체리코크가 녹아 있다. 맛을 보면, 붉은 과실, 크랜베리와 라즈베리 풍미가 진하며, 짠맛을 동반한 감칠맛과 산미를 느낄 수 있다. 깊은 맛을 지니며, 다크 초콜릿, 살짝 토마토, 토마토 꼭지, 스파이스 풍미도 스친다. 미드팔레트가 비지 않고, 잘 익은 섬세한 타닌, 긴 여운을 지녔다. 비비 그라츠는 콜로레 2019년 산을 불꽃 놀이에 비유했는데, 우아하면서 강렬한 모습이라 저절로 공감이 됐다.
비비 그라츠의 미래
비비 그라츠는 빈칠리아타 4헥타르 포도밭을 5.5헥타르로 확장했고, 아우로라(Aurora)와이너리 근처 18헥타르를 포함, 총 80헥타르 포도밭을 관리하고 있다. 테스타마타는 10만 병, 콜로레는 1~1만 2천 병 정도 생산하는데, 21만 5천 병을 생산하는 사시까이아 만큼 테스타마타를 생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비비 그라츠는 피에졸레 해발고도 500m에 템플 오브 바인(Temple of Vine) 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토스카나의 완벽한 표현을 찾아 인생의 20년을 바친 비비 그라츠.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와인을 맛보니 어떤 라벨이 되었든 꼭 이 귀한 와인을 만나보길 추천하고 싶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훌륭한 산지오베제. 비비 그라츠는 그 자체다. 비비 그라츠 국내 공식 수입사는 와이넬이다.
작성 2021.08.03 11:05수정 2021.08.03 15:54
정수지 기자는 2011년 와인21 미디어 와인 전문 기자로 합류. 와인21에서 국제 미디어 협력과 와인 상식 및 용어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2022년 10월 호주 와인 협회 한국 지사장에 임명되었다.
정수지 기자는 WSET Advanced와 A+ Australian Wine Expert Level 1 & 2 자격, 스페인 와인, 마데이라, 미국 퍼시픽 노스웨스트, 모젤 와인 교육가 자격, 그리스 와인 전문가와 스페인 와인 전문가 인증을 받았다. 그녀는 2009년 호주 와인과 브랜디 공사와 영국 WSET가 준비한 호주 와인 여행 장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17년 그녀는 샴페인 기사 작위를 받았다.
현재 정수지 기자는 WSA 와인 아카데미에 외부 강사로 활동 중이며, 그 외 관공서와 기업 강의를 하고 있다. 세계 각국 마스터 클래스가 열릴 경우, 그녀는 와인 전문인 또는 와인 소비자 이해를 돕는 시음 패널 또는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WSET 중급과 고급 교재 기술 감수를 하고 있으며, 아시아 와인 트로피, 베를린 와인 트로피, 조선 비즈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주류대상 등 다양한 와인 품평회에 심사 위원이다.
와인 저널리스트로서 그녀는 국내외 다양한 매체에 와인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세계 유수 와인 산지를 취재하며 테루아, 와인 법규, 와인 과학, 와인 트렌드, 와인 관광, 와인 페어링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녀는 화이트 와인, 샴페인 및 스파클링 와인, 내추럴과 오렌지 와인, 희귀하고 새로운 와인에 늘 관심이 많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그리스, 모젤, 뉴질랜드, 호주, 스페인 와인과 샴페인에 특화되어 있다.
정수지 기자는 개인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상당수 팔로워를 갖고 있으며, 네이버 와인 인플루언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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