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럭셔리 상징인 샴페인 세계엔 최고 중의 최고 샴페인이 따로 있다. 바로 프레스티지 퀴베(Prestige Cuvée)다. 이는 전체 샴페인 생산량의 5% 정도에 불과해 와인 수집가와 샴페인 애호가를 애타게 하는 열망의 대상이다. 이번 연말,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있는 자신에게 샴페인 신화와 숭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을 연말 선물하면 어떨까?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 탄생
처음 프레스티지 퀴베가 시작된 건 로드레(Roederer) 가문이 샴페인 크리스탈(Cristal)을 만들면서다. 이후 가장 큰 샴페인 하우스인 모엣 샹동(Moët & Chandon)이 1921년 프레티지 퀴베인 돔 페리뇽(Dom Pérignon)을 생산해 1936년 출시했다. 프레스티지 퀴베는 샴페인 생산자가 왕, 황제, 산업 수장을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포도로 어떤 점도 타협하지 않고 최고로 빚은 샴페인이다. 따라서, 프레스티지는 다른 말로 ‘학급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떼뜨 드 퀴베(Tête de Cuvée)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프레스티지 퀴베는 웬만해선 뛰어넘을 수 없는 품질을 지니며, 풍부한 아로마와 풍미로 와인 애호가를 지극히 행복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 샴페인 하우스가 프레스티지 퀴베를 내놓자 그 종류가 다양해짐과 동시에 진화하고 있어 와인 애호가를 더욱 강하게 유혹하고 있다. 와인 만큼 멋진 프레스티지 퀴베 이야기를 만나보자.
황제를 위하여! 크리스탈 (Cristal)
크리스탈(Cristal)은 1876년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를 위해 처음 만든 샴페인이다. 그래서 ‘황제의 샴페인’이라고도 불린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황제의 통치가 끝난 후에도 루이 로드레는 지속해서 샴페인 크리스탈을 만들었고, 1945년 상업 시장에 이를 출시했다. 2002년 크리스탈은 와인 앤 스피릿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현재 크리스탈은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관리하는 최고 등급 포도밭 포도(포도나무 최소 25년 이상)를 살짝 한 번(82리터)만 즙을 내 와인을 만든다. 이후 지하 셀러에서 6년 동안 숙성한 뒤 데고주망 후 8개월 동안 더 보관했다가 출시한다. 독살 및 암살 위협을 방지하고자 투명하고, 두껍고 평평한 바닥을 지닌 와인병을 쓴다. 병이 투명해서 자외선에 쉽게 손상되는 샴페인을 보호하려고 반짝이는 노란색 셀로판종이로 포장한다.
크리스탈 2013년. 루이 로드레 셰프 드 카브인 장-밥티스트 레까이용(Jean-Baptiste Lécaillon)은 2013년이 2012년에 이어 100%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재배된 포도만 사용한 두 번째 빈티지라 말한다. 2013년은 복잡한 기후 양상으로 수확량이 적고, 특히, 피노 누아에 엄격한 선별 작업이 필요해 2008년에 비교할 때 약 20~30% 정도 생산량이 적다. 또한, 백악질 테루아를 극대화하기 위해 젖산 발효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크리스탈 2013년 빈티지는 백악질 테루아, 조리한 배, 노란색 과일, 약간의 꿀과 헤이즐넛, 구운 바게트, 크림 같은 질감에 미세하고 지속적인 기포가 청사과와 톡 쏘는 레몬 풍미와 어우러지며, 짠맛이 남는 여운이 매력적이다. 2021년 4월 출시 후 5년~10년 후부터 서서히 더 많은 것을 드러낼 와인이며, 2028년~2033년에 즐기면, 완전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도자주 8g/L.
퀀텀 점프를 선사하는 돔 페리뇽 P2 (Dom Pérignon P2)
돔 페리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샴페인이자 럭셔리 그룹 LVMH의 플래그쉽 샴페인이다. 먼저 돔 페리뇽이란 이름은 17세기 오빌리에 수도원에 살았던 피에르 페리뇽에서 따왔다. 그는 적포도에서 색이 묻어나지 않게 즙을 내는 법, 우수한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포도를 블렌딩하는 방법, 숙성 단계의 샴페인에 밀폐력이 좋은 코르크 마개를 도입하는 등 몇 가지 중요한 혁신을 일으켜 샴페인 생산 기술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모엣 샹동은 1921년 프레티지 퀴베인 돔 페리뇽(Dom Pérignon)을 생산해 1936년 출시했다. 원래는 ‘숙성한(Aged)' 모엣 샹동 샴페인으로 만든 건데, 이를 1940년대에 이르러 돔 페리뇽이라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돔 페리뇽은 빈티지 샴페인으로 10년에 6번 정도만 생산된다. 돔 페리뇽은 그랑 크뤼 등급 포도밭과 일부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 포도를 블렌딩하며,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쓰인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돔 페리뇽은 각 빈티지 와인을 3번에 나눠서 출시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돔 페리뇽 셰프 드 카브인 리차드 제오프리(Richard Geoffrey)와 그의 전임자와 동료들은 지하 셀러에서 숙성 중인 오래된 샴페인을 맛보며 놀라운 발견을 했다. 바로 효모 자가분해가 주는 풍미의 도약이 첫 번째는 약 9년 숙성 후, 다음은 다시 10년 뒤에, 세 번째도 거의 10년 뒤에 찾아온다는 점이다. 또한, 세 번째 도약 후엔 더이상 도약은 없이 와인이 느리고 꾸준히 개선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돔 페리뇽은 첫 번째 출시 후 두 번째 도약(Plentitude)의 줄임말인 P2와 세 번째 도약을 의미하는 P3를 차례로 내놓고 있다.
올해 9월 돔 페리뇽 2003 P2가 출시됐다. 2003년은 매우 무더웠던 해로 샤르도네가 서늘한 샹파뉴가 아닌 더운 남프랑스 스타일로 매우 익어 버렸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돔 페리뇽 2003년에는 샤르도네 대신 피노 누아 비율을 많이 높였다. 대부분의 돔 페리뇽 2003년은 이미 지난 2011년에 팔렸고, 일부는 지하 셀러에서 효모 찌꺼기와 숙성됐다. 그 결과, 돔 페리뇽 2003 P2는 17년 동안 숙성해 풍부한 브리오슈와 페이스트리, 라임, 살구, 꽃, 설탕에 절인 라즈베리와 무화과 향과 풍미를 지닌다. 끝에서 살짝 느껴지는 쌉쌀함, 미네랄 풍미가 탁월한 와인을 경험할 수 있다.
귀하디 귀한 크룩 클로 뒤 메닐 (Krug Clos du Mesnil)
크룩은 독일 태생으로 샴페인 쟈끄송(Champagne Jacquesson)의 회계사였던 조세프 크룩(Joseph Krug)이 1843년 랭스(Reims)에 설립한 샴페인 하우스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조세프 크룩 2세가 포로로 잡혀있을 때도 아내가 그를 대신해 가업을 유지했다. 크룩은 1999년 LVMH에 소속이 되었지만, 여전히 6대손인 올리비에 크룩이 대표로 일하고 있다.
크룩은 포도밭 구획에 따라 기본 와인을 모두 따로 양조한 뒤 맛을 보고 나중에 블렌딩한다. 모든 와인은 오크 통에서 발효하고 젖산 발효를 거치기에 풍부하고 복합성이 뛰어난 크룩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 1978년 와인의 병 모양을 조정해 일반 샴페인 병에 비해 좁은 목을 지닌 병으로 바꿨다.
일반적으로 샴페인 하우스는 프레스티지 퀴베 생산 비율이 매우 적지만, 크룩은 생산량의 대부분이 프레스티지 퀴베다. 또한 일반 샴페인 하우스의 프레스티지 퀴베가 빈티지 샴페인인 반면 크룩은 최소 10가지에서 120가지의 서로 다른 와인이 섞인 멀티 빈티지 샴페인이다. 크룩의 프레스티지 샴페인은 크룩 그랑 퀴베(Grande Cuvée)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크룩이 단일 포도밭 샴페인 2종을 만드는데, 그중 하나가 크룩 클로 뒤 메닐(Krug Clos du Mesnil)이라는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샴페인이다. 샹파뉴에는 총 31개 클로(Clos)가 있는데 다 합쳐봐야 전체 면적이 35헥타르에 불과해 클로당 면적은 매우 적다. 크룩 가문은 1971년 그랑 크뤼 포도밭인 르 메닐-쉬르-오제에 1.87헥타르 포도밭을 사서 부활시켰다. 처음 만든 8개 빈티지는 크룩 그랑 퀴베에 넣었지만, 1979년부터 이곳에서 자란 샤르도네의 순수성을 그대로 병에 담아 팔기 시작하면서 전설이 시작됐다. 크룩 클로 뒤 메닐은 1만 5천 병(매그넘 800병)정도 생산되어 매우 희귀하다.
크룩 클로 뒤 메닐 2006년. 2006년은 30도를 넘은 날이 23일이나 지속하였고, 8월엔 단 2주 동안 2개월 치 비가 내린 해라 2002년과 매우 비슷한 관대함을 지닌 와인이 완성됐다. 와인은 진한 금색, 감귤, 갈색 설탕, 말린 과일 향이 균형 잡혀있으며 신선하고, 마들렌, 브리오슈 같은 페이스트리, 타르트, 레몬 머랭, 쌉쌀한 오렌지, 살짝 향신료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아모르 드 도츠 (Amour de Deutz)
도츠(Deutz)는 1838년 와인 상인이었던 윌리엄 도츠(William Deutz)와 피에르-위베르 겔더만(Pierre-Hubert Geldermann)이 아이(Aÿ)에 설립했다. 제 2제정 당시 이미 최고의 샴페인 생산자였으며, 1882년 샹파뉴 생산자 협회 창립 구성원이기도 하다. 로버트 파커는 어느 해인가 '올해 도츠 샴페인을 시음하며 와인에 넋을 잃었다'는 호평을 남기기도 했다. 대대로 가족 경영을 이어온 도츠는 1983년 루이 로드레를 갖고 있는 루조 가문(Rouzaud Family)이 대부분의 주식을 인수한 상태다. 도츠는 프리미에 크뤼 등급 이상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첫 번째 압착한 포도즙만 사용해 와인을 만든다. 2021년 드링크 인터내셔널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샴페인 브랜드 25위>에 이름을 올렸다.
파브리스 로제(Fabrice Rosset)는 루조 가문의 오른팔로 랭스의 플라 데를롱(Place d'Erlon)에서 볼 수 있는 큐피트 동상(Angelot de Bronza)에서 영감을 받아 1993년 사랑의 샴페인 아모르 드 도츠(Amour de Deutz)를 처음 출시했다. 아모르 드 도츠는 아비제(Aviza), 메닐 쉬르 오제, 빌레르-마르메리(Villers-Marmery)에서 자란 샤르도네 100%로 만든 블랑 드 블랑 샴페인이다. 아모르 드 도츠는 투명하고 유난히 목이 긴 병, 큐피트가 그려진 단정하고 깔끔한 라벨에 그 맛이 세련되고 우아해서 등장하는 즉시 미식가와 와인 애호가를 매료시켰다. 아모르 드 도츠 샴페인 캡슐은 작은 큐빅이 박혀 있고 목걸이로 활용할 수 있게 디자인됐다. 이 황금색 캡슐은 사랑하는 연인들 혹은 발렌타인 데이에도 참 좋다.
효모 찌꺼기와 8년 동안 숙성한 아모르 드 도츠는 금색을 띤다. 즙이 많고 잘 익은 흰색 과일, 체리, 미라벨 자두, 금귤 향이 섬세하고 신선하게 전해진다. 밝고 균형 잡힌 과실 향을 내며, 미네랄 풍미가 좋으며, 긴 여운이 기분을 들뜨게 한다. 훌륭한 식전주이자 가벼운 샐러드, 핑거푸드, 디저트 및 과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올빈 샴페인의 정수 드 브노쥬 루이 15세 (de Venoge Louis XV)
1837년 마크 드 브노쥬(Marc de Venoge)는 샹파뉴로 이주해 그의 아들 조세프(Joseph)와 함께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했다. 드 브노쥬는 설립 이후 줄곧 샴페인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고급 샴페인으로서 명성을 얻었고 고급 샴페인 홍보 대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드 브노쥬는 1872년 설립된 최고 샴페인 하우스 연합인 그랑 드 마르크의 설립 구성원이기도 하다. 1993년 샹파뉴 지역에서 최초로 품질 관리 차트를 도입한 혁신적이고 철저한 생산자다.
루이 15세 샴페인. 1700년대 초, 와인은 주세 관리가 편하도록 ‘배럴’ 단위로 유통했다. 하지만, 루이 15세는 ‘샴페인 만큼은 유리병에 유통해야 한다’는 법을 정해 1728년 5월 25일 발표한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풍부한 기포를 지닌 샴페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루이 15세 샴페인은 이 역사적인 업적을 기리기 위해 탄생했다.
루이 15세 1995년. 1995년은 포도 농사가 굉장히 잘 된 해였다. 그랑 크뤼 등급 포도밭 샤르도네 50%, 피노 누아 50%가 블렌딩 됐다. 와인은 2차 발효 후 효모 찌꺼기와 10년 숙성하고 다시 병에서 14년 시간을 보내 숙성된 샴페인의 훌륭한 예가 되어준다. 와인은 아름다운 진한 호박색이 감도는 금색을 띤다. 무화과, 토피, 비스킷, 셰리나 뱅존을 연상시키는 복합적인 향을 즐길 수 있다. 맛을 보면, 여전히 신선하고 매끄러우며 농축된 모습을 보인다. 순수한 백악질 미네랄, 살구, 복숭아 풍미에 긴 여운이 인상적인 샴페인이다. 와인 자체로 완성도가 높아 와인만으로 즐기거나 오래 숙성한 치즈에 곁들이면 좋다. 제임스 서클링 98점, 로버트 파커 97점을 받았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 즐기는 조셉 페리에 퀴베 조세핀 (Joseph Perrier Cuvée Joséphine)
1825년 샹파뉴 출신 기업가인 프랑수아-알렉상드르(François-Alexandre)와 조셉 페리에(Joseph Perrier)가 설립한 샴페인 하우스다. 1862년 이미 샹파뉴 지역 가장 흥미로운 샴페인 하우스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1878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해외 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889년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 왕실에 샴페인을 공급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1982년, 조셉 페리에 1975년 산 빈티지 샴페인은 찰스 왕자와 다이애나 비 결혼식에 쓰였고, 다른 빈티지 샴페인은 훗날 에드워드 왕자 결혼식에 쓰였다. 조셉 페리에는 샴페인 명문가인 피토이스(Pithois)가문을 거쳐 현재 장-끌로드 포몽(Jean-Claude-Fourmon)의 아들이자 6대손인 벤자민이 이끌고 있다. 조셉 페리에는 자가 소유 포도밭 포도 사용 비율이 30% 정도에 이르며, 로마 시대에 만든 지하 셀러에 와인을 숙성한다. 조셉 페리에 샴페인 스타일은 리저브 와인에 600리터 오크 통을 쓰고 있어 보통 잘 익고 관대하며 사과 풍미가 농밀하다.
퀴베 조세핀은 조셉 페리에가 가장 사랑한 딸 이름을 딴 빈티지 샴페인이자 플래그십 샴페인이다. 조셉 페리에는 흑갈색 머리에 아주 아름다운 미모와 고혹적인 미소를 지닌 딸 조세핀의 이름을 딴 최고의 샴페인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는 샴페인 병 모양과 라벨에 금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구상했는데 안타깝게도 완성하기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샴페인 하우스는 다행히 그의 친구인 폴 피토이스가 인수했지만, 퀴베 조세핀에 대한 계획은 잊히게 됐다. 그런데 1980년 폴 피토이스의 후손인 장 끌로드 포몽이 대표가 된 이후 잊힌 조셉 페리에의 구상을 현실화하기로 했다. 그는 처음 제작되었던 퀴베 조세핀 매그넘 병을 찾아 3년 동안 실험과 연구를 거쳐 퀴베 조세핀을 세상에 내놨다.
퀴베 조세핀 2012년. 샤르도네 55%, 피노 누아 45%가 블렌딩 됐다. 영롱한 금빛을 띠는 와인은 섬세하고 지속적인 기포를 지니고 있다. 호두, 헤이즐넛, 아몬드 향이 지극히 섬세하며, 붖꽃과 아카시아 향이 스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닐라와 스파이스 향이 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맛을 보면,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특징이 기막히게 녹아 있음을 늘낄 수 있으며 자두, 포도, 꽃 풍미가 두드러진다. 차게 즐기는 해산물 요리에 놀라운 페어링을 보이니 관자 카르파치오와의 페어링이 강력히 추천되며 농어나 살짝 구운 닭고기 요리도 좋다.
묵직한 한 방 폴 로저 윈스턴 처칠 (Pol Roger Cuvée Winston Churchill)
1831년 태어난 폴 로저는 18살 때, 편찮으신 아버지를 대신해 샴페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1849년 아이에서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하고 이를 크게 키워 1851년 에페르네로 옮겼다. 그는 드라이한 브뤼(Brut) 스타일 샴페인으로 영국 시장을 공략해 큰 성공을 거뒀고, 급기야 1877년 영국 왕실에 와인을 공급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후 폴 로저는 영국과의 관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20세기 초, 2번의 세계 대전, 러시아 대혁명, 미국 금주령, 경제 대공황 등 어려움 속에서도 폴 로저는 해외시장을 지속해서 확장했다. 유럽 상류층과 귀족들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폴 로저는 ‘신사의 샴페인’으로 불리게 된다. 특히,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이 생전 폴 로저 샴페인을 즐겨 마셔 더욱더 유명해졌다. 폴 로저는 설립이래 지금까지 가문이 직접 소유 및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후손 중 한 명인 위베르 드 빌리(Hubert de Billy)가 책임지고 있다.
폴 로저는 92헥타르 포도밭과 에페르네의 지하 셀러를 소유하고 있다. 1999년 셰프 드 카브로 도미니크 프띠(Dominique Petit)를 고용하며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24년간 크룩에서 일한 그는 막대한 자본을 들여 와인 양조 시설을 최첨단으로 바꾸었다. 한 샴페인 평론가에 따르면, 현재 폴 로저 양조장은 흰 색으로 완벽하게 마감된 공간에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조가 깨끗하게 들어서 있어 마치 우주 정거장이나 정밀 기계 생산 시설을 보는 거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투자와 혁신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멈출 기세는 없다고 한다.
폴 로저는 전체의 51% 정도를 자가 소유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로 샴페인을 만든다. 이는 그만큼 일관적이며 고품질 와인이 생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포도밭도 예전보다 더욱더 철저하게 관리하며, 나머지 매입하는 포도도 더 건강하고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포도재배자를 찾아 계약하고 있다. 이 새로운 계약을 통해 윈스턴 처칠에 들어가는 그랑 크뤼급 포도 비율이 증가했다. 폴 로저는 가능한 신선할 때 포도즙을 얻기 위해 수확하는 포도밭 가까운 곳에 압착 시설을 두고 있어 그 압착기 수만 70개가 넘는다. 수확한 포도는 압착 후 저온에서 안정화를 거친 뒤 양조되며, 2차 발효 후 숙성은 폴 로저가 소유한 7.5km에 이르는 연중 섭씨 9도인 지하 셀러에서 진행된다. 폴 로저는 리들링을 포함한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진행하는 몇 안 되는 샴페인 하우스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폴 로저 와인은 인기가 많아져서 모든 시장에 와인을 할당하고 있는데, 심지어 블랑 드 블랑과 윈스턴 처칠 퀴베는 영업 담당자에게 그만 팔라고 부탁할 정도다. 폴 로저는 생산량을 늘리기보다 품질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폴 로저 샴페인을 무척 사랑했다. 그는 1908년 12병와 반 병짜리 폴 로저 샴페인을 랜돌프 페인 앤 선즈(Randolph Payne & Sons)에서 주문하며 폴 로저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처칠은 줄곧 폴 로저는 즐겨 마셨는데, 1945년 오데뜨 폴 로저(Odette Pol Roger)가 처칠을 만나 점심을 함께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처칠의 아내 클레멘틴과 오데트의 우정이 1965년 처칠이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매년 오데뜨는 처칠의 생일에 빈티지 샴페인 한 상자를 보냈다. 가족과의 관계가 너무 가까웠기에 처칠이 사망했을 때, 오데뜨는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병에 검은 테두리 라벨을 붙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75년 그의 이름을 딴 프레스티지 퀴베 이름을 지었고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견고하고 숙성된 스타일 와인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프레스티지 퀴베가 퀴베 윈스턴 처칠이다.
윈스턴 처칠 2012년. 2012년은 많은 와인 생산자에게 어려운 해였지만 대신 훌륭한 샴페인이 생산됐다. 100% 그랑 크뤼 포도밭 피노 누아 70~80%, 샤르도네 20~30%가 사용되었는데, 정확한 비율은 폴 로저의 비밀이다. 효모 찌꺼기와 7.5년 숙성해 2020년 7월 데고주망했다. 도자주는 7g/L. 열대과실, 특히 파인애플, 버터가 듬뿍 들어간 페이스트리, 시트러스 껍질, 레몬 셔벗 향을 느낄 수 있다. 맛을 보면, 자몽, 레몬, 페이스트리, 다양한 과실, 크림 같은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싱그러운 레몬, 자몽, 라즈베리 풍미가 함께하는 여운이 일품이다.
이전엔 없었던 놀라운 로제 샴페인 플뢰르 드 미라발 (Fleur de Miraval)
플뢰르 드 미라발은 프로방스에서 로제 와인 미라발(Miraval)을 만들어 성공한 브래드 피트가 론 지역 페랑 가문, 샹파뉴 지역 페테르 가문과 함께 지난 5년간 비밀리에 진행해 2020년 처음 세상에 내놓은 로제 샴페인이다. 프로방스 태생으로 평생 로제 와인만 마셨다는 플뢰르 드 미라발 백작 부인의 이름을 따랐다고 한다.
마크 페랑(Marc Perrin)과 로돌프 페테르(Rodolphe Péters)는 아주 오래 친구 사이로 어느 날 로제 샴페인만 생산하는 샴페인 하우스를 만들자는 브래드 피트 아이디어에 동참하게 됐다. 마크와 로돌프는 평소 빈티지 샴페인을 마시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해 새로운 로제 샴페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플뢰르 드 미라발은 75% 샤르도네에 세니예(Saignée) 방식으로 만든 피노 누아를 블렌딩 했다. 블랑드 블랑 샴페인과 블렌딩 천재로 알려진 로돌프는 샹파뉴 베르튀(Vertus)에서 자란 피노 누아, 크라망(Cramant)과 메닐(Mesnil) 포도밭에서 자란 샤르도네를 선택했다. 사용된 샤르도네의 3분의 1은 쉬르 라떼(Sur Lattes)에서 사들인 블랑 드 블랑으로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리저브 와인을 많이 써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지만, 숙성된 샤르도네가 주는 흰 꽃, 아몬드, 신선한 헤이즐넛 풍미를 골고루 갖춘 와인을 만들 수 있었다. 25% 섞인 피노 누아는 붉은 열매 풍미와 색 그리고 생기를 준다. 블렌딩 후 와인은 효모 찌꺼기와 3년 숙성했고, 도자주는 4.5g/L이며, 데고주망은 2020년 6월에 했다. 보통 로제 샴페인은 투명한 병에 담지만, 플뢰르 드 미라발은 자외선 피해를 막기 위해 검은색 병을 쓴다. 피트, 페랑, 페테르 가문의 머리글자를 딴 3개의 P가 새겨진 로고를 볼 수 있다. 로버트 파커 93점, 제임스 서클링 92점, 디캔터 94점, 비너스 93점을 받았다.
플뢰르 드 미라발은 정말 미세하게 작은 기포가 힘차고 지속해서 솟아오르며 동그란 무늬를 그린다. 영롱한 양파 껍질 색을 띠며 흰 꽃, 터키쉬 딜라이트, 히비스커스, 말린 크랜베리 향이 섬세하게 퍼진다. 잘 익은 복숭아, 레드 커런트, 크랜베리, 오렌지, 레몬, 아몬드 파이의 고소함이 스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몬드와 소금 향이 두드러진다. 입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작은 기포가 부드럽게 느껴지며, 미묘한 짠맛과 절묘한 산미와 바디를 지니고 있다. 고소함과 붉은 과실 풍미가 여운까지 길게 이어진다.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로제 샴페인이다.
미식가를 위한 보아랑-쥐멜 퀴베 555 브뤼 (Voirin-Jumel Cuvée 555 Brut)
크라망(Cramant)에서 대대로 포도를 재배하던 보아랑 가문 4대손인 쟝 보아랑(Jean Voirin)은 1945년부터 직접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슈이(Chouilly)에서 운송 사업을 하던 르네 쥐멜(René Jumel)은 샴페인 시장이 성장 가능성을 보고 갖고 있던 트럭 몇 대를 팔아 꼬뜨 데 블랑 포도밭을 사들였다. 1968년 쟝 보아랑의 아들과 르네 쥐멜의 딸이 결혼하면서 보아랑-쥐멜이 탄생했다. 이들 포도밭 대부분은 샤르도네 중심지인 꼬뜨 데 블랑에 있다.
퀴베 555는 ‘와이너리 주소인 크라망 리베라시옹 555번가‘와 ’그랑 크뤼 포도밭에서 생산된 5가지 빈티지 블렌드‘를 의미한다. 꼬뜨 데 블랑에서도 크라망은 전설적인 그랑 크뤼 포도밭이다. 보아랑-쥐멜은 테루아 명성에 걸맞은 포도밭 관리 및 와인 양조를 통해 이를 최대한 표현하는 샴페인을 만든다.
샤르도네 100%로 만든 와인은 진주색이 감도는 옅은 금색을 띤다. 살짝 오크 풍미, 스파이스, 설탕에 절인 과실 향을 지닌다. 맛을 보면, 사과와 진저브레드 풍미가 좋으며, 백악질에서 자란 샤르도네가 주는 상쾌함, 우아함, 균형이 탁월하다. 지금 마셔도 좋지만 신선함을 잃지 않고 매년 우아함을 더할 훌륭한 샴페인이다. 푸아그라, 양파 콩피, 트러플 리소토 등에 훌륭한 페어링을 이룬다.
가장 성공적인 시그니처 와인 베세라 드 벨퐁 퀴베 BB 1843 (Besserat de Bellefon Cuvée BB 1843)
베세라 드 벨퐁은 1843년 에드몽 베세라(Edmond Besserat)가 아이(Äy)에 설립한 샴페인 하우스다. 베세라 드 벨퐁은 일반 샴페인에 비해 낮은 4.5 기압과 더욱 섬세한 기포로 크림 같은 질감과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베세라 드 벨퐁의 기포는 랭스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제라르 리제-벨에르(Gerard Liger-Belair)가 기포 관련 공식과 특수 촬영으로 이를 확인하는 작업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베세라 드 벨퐁은 프랑스 170곳 및 해외 미슐랭 레스토랑, 파리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 엘리제궁 공식 샴페인으로 쓰이고 있다.
베세라 드 벨퐁은 2018년부터 2년에 걸쳐 모든 샴페인 라벨과 포장을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설립 연도가 표시된 베세라 드 벨퐁 퀴베 BB 1843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베세라 드 벨퐁 퀴베 BB 1843은 ‘자정(밤 12시)’을 뜻하는 미드나잇(midnight) 퀴베로도 불린다. 샴페인 하우스 소유주에 따르면, 자정, 즉 미드나잇은 하루에서 다음 하루로 넘어가는 특별한 순간으로 예전 베세라 드 벨퐁 샴페인에서 새로운 라벨로 넘어오는 그 찰나를 연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와인은 까만 밤을 상징하듯 불투명한 다크 블루로 감싸있다.
베세라 드 벨퐁 퀴베 BB 1843은 그랑 크뤼 포도원에서 자란 피노 누아 45%, 샤르도네 45%, 피노 뮈니에 10%가 블렌딩 됐다. 주로 사용된 빈티지는 2008년과 2009년 산이다. 2008년은 2009년보다 더 좋은 빈티지로 생동감과 구조가 좋아 장기 숙성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간 효모와 숙성하고, 도자주는 6g/L이며, 데고르주망 후 다시 6개월 숙성 후 출시된다.
베세라 드 벨퐁 퀴베 BB 1843은 중간 정도 볏짚 금색을 띤다. 기포가 정말 아름다운 꽃잎 모양을 그리며 올라와서 흩어진다. 상당히 농축된 밀랍, 조청, 건포도가 든 페이스트리, 설탕에 절인 감귤, 파네토네, 모과 젤리, 말린 버섯, 사과, 바닷냄새, 미네랄을 느낄 수 있다. 맛을 보면, 꿀이 든 부사, 잘 익은 레몬이나 자몽이 주는 상큼한 맛이 풍부하다. 기포는 완전히 녹아서 눈으로 볼 때와 달리 입에서 더 잘 느낄 수 있으며 참 부드럽다. 레몬 풍미가 함께하는 지속적인 여운이 그저 놀라운 샴페인이다. 버터 소스를 곁들인 구운 가리비, 사과나 라즈베리 등을 곁들인 과일 디저트에도 잘 어울릴 와인이다.
모두에게 영원히 각인된 볼랭저 R.D (Bollinger R.D)
볼랭저는 1829년 폴 르노댕(Paul Renaudin), 조셉 볼랭저(Joseph Bollinger), 그리고 엔느켄 드 빌레르몽(Hennequin de Villermont)이 아이(Aÿ) 지역에 설립한 샴페인 하우스다. 볼랭저는 1884년에 이미 영국 왕실에 공식적으로 샴페인을 공급할 수 있는 영국 왕실 인증을 받으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폴은 후손이 없이 임종했고, 조셉 볼랭저의 증손자인 자크 볼렝저(Jacques Bollinger)가 오롯이 샴페인 하우스를 이끌게 됐다. 자크가 41세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미망인이 된 릴리 볼랭저(Lily Bollinger)가 가업을 운영하게 된다. 그녀는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 속에서도 열정을 다해 포도원을 돌보았으며, 병입까지 모든 단계를 이전에 없던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1971년까지 볼랭저 와인을 알리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기도 했다. 볼랭저 샴페인은 찰스 왕세자와 다이에나 비 결혼식 연회에 쓰였으며, 영화 <007 제임스 본드>의 샴페인으로도 유명하다.
볼랭저 R.D는 1963년 릴리 볼랭저가 최초로 출시한 샴페인이다. 당시 릴리는 뉴욕 시장에서 다른 샴페인 하우스들이 시장에 내놓은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샴페인으로 ‘리저브 1947(Réserve 1947)’을 준비했다. 이 샴페인은 엑스트라 브뤼(Extra Brut) 당도에 오래 숙성된 빈티지 와인이었다. 당시엔 오래 숙성한 샴페인이 유행하지 않았던 시기라 숙성된 샴페인을 내놓는다는 건 다소 과감한 시도였다. 하지만, 릴리 볼랭저는 오랜 시간 숙성되며 와인이 겪은 산화적 숙성이 샴페인 시장에 큰 영향을 줄거라는 강한 직관적 믿음이 있었다. 1967년 최종 명칭을 정하는 과정에서 ‘최근 데고주망한(Recently Disgorged)’이라는 의미의 R.D가 선택됐다. 영국에서는 1952년 빈티지,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는 1953년 빈티지, 미국과 이탈리아 시장에서는 1955년 빈티지로 출시했는데, 1959년 빈티지 이후 볼랭저 R.D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지속해서 사랑받고 있다.
볼랭저 R.D는 1979년부터 영화 <제임스 본드>에 소개되고 있다. <문레이커 Moonraker>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침실에서 볼랭저 R.D를 발견하고 ‘볼랭저, 69년 산이면 날 기다리고 있었겠지 Bollinger? If it’s ‘69, you were expecting me’라는 말을 남기는 명장면이 탄생했다. 1989년엔 <살인 면허 License to Kill>에도 등장했다.
볼랭저 R.D 2007년. 피노 누아 70%, 샤르도네 30%가 블렌딩 됐다. 데고르주망은 2020년 9월. 도자주는 3g/L정도다. 진한 황금색을 띤다. 잘 익은 과일, 꿀, 갓 구운 빵, 신선한 헤이즐넛 향이 농밀하다. 맛을 보면 신선한 미네랄과 함께 풍성한 과실 풍미가 이어지며 여운에서도 미네랄이 두드러진다. 힘차면서 균형이 탁월한 풀 바디 샴페인이다. 버섯 리소토, 가벼운 카나페, 콩테 치즈와 잘 어울린다. 와인 스펙테이터 96점, 로버트 파커 97점, 제임스 서클링 97점을 받았다.
찬란한 나날을 되살리는 로랑 페리에 그랑 시에클 (Laurent-Perrier Grand Siècle)
로랑 페리에는 전직 오크 통 제작자인 앙드레 미셸 피에를로(André Michel Pierlot)가 설립한 샴페인 하우스다. 전 세계 12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는 로랑-페리에는 샴페인을 대표하는 하우스 중 하나다. 오늘날 성공은 대부분 1945년 로랑-페리에에 합류한 베르나르 드 노낭쿠르(Bernard de Nonancourt)의 헌신 덕분이다.
설립자인 피에를로가 사망하며 아들 앙드레(André)가 사업을 상속받았지만, 후사가 없어 셰프 드 카브인 외젠 로랑(Eugène Laurent)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로랑은 1887년 지하실 사고로 사망하고 그의 미망인인 마틸드 에밀 페리에(Mathilde Emilie Perrier)가 사업을 맡게 되면서 남편의 성과 자신의 성을 합쳐 로랑-페리에로 이름을 바꾸었다. 마틸드 에밀 페리에의 딸은 고군분투하다 1939년 로랑-페리에를 마리-루이즈 랑송 드 노낭쿠르(Marie-Louise Lanson de Nonancourt)에게 매각했다.
미망인이었던 그녀는 아주 유서 깊은 샴페인 가문 출신으로 아들 모리스와 베르나르를 위해서 로랑-페리에를 사들인 거였다. 이 두 아들이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맏이인 모리스가 독일군에게 잡혀 수용소에서 비극적으로 사망하면서 차남인 베르나르가 운영하게 됐다. 프랑스 전쟁 영웅인 베르나르 드 노낭쿠르는 전시 복무 중 세운 공로로 크루아 드 게레(Croix de Guerre)를 수상한 인물이다.
1945년 28세 나이로 샹파뉴에 돌아온 베르나르는 이후 60년 동안 로랑-페리에에 헌신해 회사를 100배 이상 성장시켰으며 동료들로부터 ‘르 그랑 베르나르(Le Grand Bernard)'라는 애정 어린 애칭으로 불렸다. 그는 2010년 작고했다. 로랑-페리에는 1950년대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를 도입한 최초의 하우스 중 하나로 신선함을 잘 살린 샴페인을 만들고 있다.
그랑 시에클(Grand Siècle)은 로랑-페리에의 프레스티지 퀴베다. 그랑 시에클 프로젝트는 1953년 베르나르가 ‘완벽한 빈티지 샴페인’을 생산하길 원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단 하나의 해도 그가 만족할 수 있는 완벽한 빈티지가 없자 3가지 위대한 빈티지 와인을 섞으며 자신만의 ‘완벽한 빈티지’와인을 만들었다. 그랑 시에클이라는 이름은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친분을 갖게 된 샤를 드 골 대통령이 직접 시음한 뒤 지어준 이름이다.
로랑-페리에 그랑 시에클 샴페인에는 17개 그랑 크뤼 마을 중 11개에서 생산된 포도가 블렌딩 됐다. 자세한 크뤼는 블렌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Aÿ), 부지(Bouzy), 르 메닐-쉬르-오제(Le Mesnil-sur-Oger)와 투르-쉬르-마른(Tours-sur-Marne)과 같은 일부 마을은 상당히 일관되게 쓰인다. 그랑 시에클은 1959년 최초로 출시되었는데 당시에는 1952년, 1953년, 1955년 빈티지가 블렌딩 됐다. 45개 빈티지가 선언된 65년 동안 단 24번만 그랑 시에클이 출시됐다. 최근 들어 그랑 시에클은 훨씬 더 긴 숙성을 통해 더욱더 미묘한 풍미와 질감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유난히 얇고 긴 목이 달린 병, 스테인리스 스틸 와인 양조법으로 놀랍도록 활기찬 샴페인으로 완성된다.
로랑-페리에 그랑 시에클 24번째 에디션. 2007년 빈티지 60%, 2006년 산 20%, 2004년 빈티지
20%가 블렌딩 되었고, 포도는 샤르도네 55%, 피노 누아 45%다. 효모 찌꺼기와 10년 숙성했으며 데고주망은 2018년 10월이다. 와인은 꿀, 생강, 레몬, 백합, 머랭 향에 명확한 구움 향을 느낄 수 있다. 매우 신선하고 활기차며, 약간의 짠맛과 바닷냄새를 지닌 세련된 와인은 크림 같은 질감을 지녀 굉장히 매력적이다.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더욱 추천한다.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지는 페리에-주에 벨 에포크 로제 (Perrier-Jouët Belle Epoque Rosé)
페리에 주에는 1811년 소규모 코르크 공급업자였던 피에르 니콜라스 페리에(Pierre Nicolas Perrier)는 로즈 아델레이드 주에(Rose Adélaïde Jouët)를 만나 결혼하면서 설립한 샴페인 하우스다. 니콜라스 페리에는 포도밭을 돌보고 와인을 빚었으며, 아내는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했다. 니콜라스 페리에는 아비즈과 크라망 포도밭에서 자란 최상급 샤르도네가 완성된 와인에 끼치는 영향을 일찍이 판단하고 와인을 만들어 곧 수출을 시작했다. 1815년 처음으로 영국에 와인을 수출했고, 1837년 페리에-주에 2천 병을 실은 배가 뉴욕에 수출을 시작하며 성장했다.
특히, 페리에-주에는 1856년 드라이한 샴페인인 브뤼 스타일을 만들어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왕실에 샴페인을 납품할 수 있었다. 1854년 니콜라스 페리에가 사망하면서 아들 샤를 페리에(Charles Perrier)에게 물려주었다. 샤를은 자식이 없어 1874년 조카 앙리(Henri)와 옥타브 갈리스(Octave Gallice) 형제에게 회사를 넘겨줬다. 옥타브는 주로 파리에 머물며 화가, 조각가 등 창조적인 예술가들과 교류가 많았다. 그 인연으로 아르누보 운동 선구자 중 하나인 세계적인 유리공예가 에밀 갈레(Émile Gallé)가 1902년 페리에-주에 병 라벨을 디자인하게 됐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지닌 아네모네 꽃을 화려하게 그려 넣은 4종류의 표본병은 당시엔 과소 평가되어 지하 셀러에 방치되었다가 1964년에서야 발견됐다. 지금은 이 병들이 너무 아름답다고 여겨져 페리에-주에의 최고급 샴페인은 모두 이 병에 담고 있다.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으로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전까지 아름답고 우아한 시대를 의미한다. 이때 파리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여서 예술과 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다. 전쟁이 나자 피폐해진 사람들이 이전 시대를 그리워하며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 페리에 주에는 나폴레옹 3세, 레오폴드 1세,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등 유럽 왕족이 선호하는 샴페인이자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들이 즐기는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벨 에포크 로제는 1978년 처음으로 출시됐다. 벨 에포크 로제는 페리에 주에 와인 중 가장 화려한 빈티지 로제 샴페인이자 정말 놀라운 품질을 지닌 해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생산되는 희귀 와인이다. 벨 에포크 로제 2012년은 섬세하고 정교한 기포, 작약, 딸기, 금귤, 자몽, 레드베리, 비스킷, 토피, 브리오슈 향과 풍미가 어우러지며 우아하고 긴 여운이 좋은 와인이다. 살짝 겉면만 익힌 연어나 참치, 크랜베리 소스를 곁들인 연어, 비둘기나 얇게 썬 오리 가슴살과 잘 어울린다.
관대함이 놀라운 드라피에 그랑드 상드레 로제 (Champagne Drappier, Grande Sendrée Rosé)
드라피에는 1808년에 프랑수아 드라피에(François Drappier)가 샹파뉴 남쪽 위르빌(Urville)에 설립한 샴페인 하우스다. 지금은 7대손인 미셸 드라피에가 경영하고 있는데, 미셸의 자녀들이 와인 일을 돌보기 시작하여 앞으로 8대손으로 무난히 역사를 이어갈 거로 예상된다. 필록세라 대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1900년대 초 드라피에 가문은 오브(Aube)지역에 재식재를 하면서 피노 누아를 선택한다. 이 선택은 드라피에 샴페인 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 다른 샴페인 생산자들에게도 큰 기회를 안겨줬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드라피에 가문은 위르빌에 12세기에 세워진 지하 셀러를 사들여 그곳에서 와인을 숙성하기 시작했다. 1952년 드라피에는 카르트 도르(Carte d'Or)를 출시했는데, 모과 젤리를 연상시키며 실제로 모과 향이 좋았던 카르트 도르는 큰 성공을 거뒀고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드라피에는 키메리지안 토양과 온화한 기후에서 자란 피노 누아로 와인을 만들어 도자주를 거의 안 해도 맛이 좋고 복합적이며 깊은 맛을 내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드라피에 가문 사람들이 이산화황에 극도로 알레르기가 있어 이산화황을 넣지 않거나 매우 적은 양만 사용하는 거로 유명하다. 드라피에 샴페인은 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이 매우 사랑해서 그의 이름을 딴 샴페인을 헌정하기도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 이후 대통령 관저에 공식 납품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이 그의 결혼식에 드라피에 샴페인을 쓰기도 했다.
드라피에 그랑드 상드레 로제 2010년. 상드레는 원래 불에 타고 남은 ‘재’라는 의미의 상드레(Cendrée)였는데, 등록하는 과정에서 행정적 착오로 C가 S로 바뀌어 상드레(Sendrée)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드라피에 그랑드 상드레 로제 2010은 피노 누아 92%, 샤르도네 8% 블렌딩이며, 2018년 4월 데고주망 한 와인이다. 라즈베리, 자두, 루바브, 스파이스, 감귤 껍질, 말린 타임, 비스킷 등의 향을 지닌다. 맛을 보면, 중상 정도 바디에, 꽉 찬 풍미, 레이스 같은 산미와 미네랄 풍미를 지니고 있다. 감초 풍미의 여운도 일품이다. 지금 마셔도 좋지만 최고 5~6년 정도 기다렸다가 마신다면 브리오슈 등의 복합적인 풍미가 추가되면서 더욱더 풍성함을 선사할 와인이다. 식전주로도 좋고, 덜 익은 레몬을 곁들인 어린 고등어 리예트, 샤프란 향을 입힌 어린 가재, 테트 드 무안이나 숙성된 파마산 치즈와 잘 어울린다.
떼땅져 본진에서 온 명품 샴페인 레 폴리 드 라 마케트리 (Taittinger Les Folies de la Marquetterie)
1734년 설립된 샴페인 하우스 포레스트 푸르노(Forest Fourneaux)는 1932년 떼땅져 가문이 포도밭을 구입하면서 떼땅져로 불리게 됐다. 떼땅져는 가문이 독립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자가 소유 포도밭 포도 사용 비율이 다른 집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거로 유명하다.
최근 출시된 레 폴리 드 라 마케트리는 긴 이름만큼 이야기도 많다. 먼저 레 폴리(Les Folie)는 '광기 어린'이란 의미로 포도밭이 매우 비탈져 포도를 기르기 어려움을 담고 있다. 마케트리(Marquetterie)는 서로 다른 색을 띠는 나무 조각을 이어 만드는 상감세공을 의미한다. 세련된 인테리어를 지닌 샤토 드 라 마케트리는 샹파뉴 에페르네 남쪽 가파른 경사 포도원 아래 지어진 저택이다. 이곳은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세워졌는데, 한때 <사랑에 빠진 악마>를 쓴 자크 카조트(Jacques Cazotte)가 살았고, 그가 단두대 이슬로 사라지기 전 철학자와 지성인이 모여 토론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했다. 1915년 샹파뉴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카스텔노 장군(General Castelnau)이 군사 작전 본부로 쓰기도 한 유서 깊은 건물이다.
바로 이 샤토 드 라 마케트리를 감싸며 굽어보는 형태로 있는 포도밭이 바로 레 폴리 드 라 마케트리다. 여름철 그린 하베스트를 극한으로 진행해 일반 샴페인의 절반 수준으로 생산량은 줄이고 품질을 높여 와인을 만든다. 포도원 구획별 건강하게 익은 포도에서 얻은 첫 즙인 퀴베만 쓴다. 레 폴리 드 라 마케트리는 샤르도네 45%, 피노 누아 55%를 블렌딩하며, 구획마다 오크 숙성을 달리하는데, 10년 이상 사용한 4천 리터 큰 오크 통을 사용해 오크 특성이 와인에 들어가지 않게 한다. 알코올 발효 후 효모 찌꺼기와 5년 숙성했고, 도자주 9g/L다.
와인은 상당히 진한 금색을 띤다. 기포는 많이 보이지 않지만, 맛을 보면 와인에 완전히 녹아든 미세한 기포를 즐길 수 있다. 복숭아, 살구, 브리오슈, 바닐라 향이 은은하다. 맛을 보면, 두드러지는 복숭아 풍미가 좋으며, 균형 잡힌 산미가 일품이다. 끝에서 느껴지는 나무 풍미가 매력적이다. 보통 한국 샴페인 애호가가 누룽지 사탕 풍미라고 부르는 특징이 분명해서 풍성하고 복합적이며 구수한 샴페인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소고기구이나 소스를 곁들인 생선구이에 페어링하면 좋다. 매년 12월 10일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 만찬에 2014년부터 지속해서 떼땅져 샴페인이 쓰이는데, 2019년에는 레 폴리 드 라 마케트리가 쓰였다. 와인 인수지애스트 94점, 로버트 파커 93점, 와인 스펙테이트 92점, 2021년 샴페인 및 스파클링 월드 챔피언쉽에서 금상을 받았다.
작성 2021.12.16 11:27수정 2021.12.16 16:39
정수지 기자는 2011년 와인21 미디어 와인 전문 기자로 합류. 와인21에서 국제 미디어 협력과 와인 상식 및 용어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2022년 10월 호주 와인 협회 한국 지사장에 임명되었다.
정수지 기자는 WSET Advanced와 A+ Australian Wine Expert Level 1 & 2 자격, 스페인 와인, 마데이라, 미국 퍼시픽 노스웨스트, 모젤 와인 교육가 자격, 그리스 와인 전문가와 스페인 와인 전문가 인증을 받았다. 그녀는 2009년 호주 와인과 브랜디 공사와 영국 WSET가 준비한 호주 와인 여행 장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17년 그녀는 샴페인 기사 작위를 받았다.
현재 정수지 기자는 WSA 와인 아카데미에 외부 강사로 활동 중이며, 그 외 관공서와 기업 강의를 하고 있다. 세계 각국 마스터 클래스가 열릴 경우, 그녀는 와인 전문인 또는 와인 소비자 이해를 돕는 시음 패널 또는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WSET 중급과 고급 교재 기술 감수를 하고 있으며, 아시아 와인 트로피, 베를린 와인 트로피, 조선 비즈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주류대상 등 다양한 와인 품평회에 심사 위원이다.
와인 저널리스트로서 그녀는 국내외 다양한 매체에 와인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세계 유수 와인 산지를 취재하며 테루아, 와인 법규, 와인 과학, 와인 트렌드, 와인 관광, 와인 페어링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녀는 화이트 와인, 샴페인 및 스파클링 와인, 내추럴과 오렌지 와인, 희귀하고 새로운 와인에 늘 관심이 많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그리스, 모젤, 뉴질랜드, 호주, 스페인 와인과 샴페인에 특화되어 있다.
정수지 기자는 개인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상당수 팔로워를 갖고 있으며, 네이버 와인 인플루언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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