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0일 서울 양재동 소재 SPC 컬리너리 아카데미에서 랑송(Lanson) 샴페인 시음회가 열렸다. 아시아 수출 담당 매니저 마리앙 조프루아(Marian Geoffroy)가 방한해 직접 진행한 행사였다. 1760년에 설립된 랑송은 가장 오래된 샴페인 하우스 중 하나이자 샴페인을 대표하는 14개 대형 브랜드 중 하나다. 랑송은 어떤 샴페인이며 한국 시장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을까? 행사 시작 한 시간 전 마리앙을 미리 만나 보았다.
[한국을 방문한 랑송의 마리앙 조프루아 아시아 수출 담당 매니저]
Q. 안녕하세요,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와인21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랑송의 아시아 수출 담당 매니저 마리앙 조프루아입니다. 한국에는 오랜만에 왔어요. 2013년 랑송에 입사하기 전 일렉트로룩스에서 10년간 와인 셀러를 담당할 때 한국에 몇 차례 온 적이 있습니다. 불고기랑 김치가 맛있었어요 (웃음). 저는 샴페인의 중심 도시인 랭스(Reims)에서 태어났습니다. 샴페인 출신이 샴페인 회사에 입사했으니 제 자리를 찾은 거죠. 입사 이후에는 계속 유럽 시장을 관리했고 아시아를 담당한 건 2020년부터였습니다. 제가 아시아를 무척 좋아하고 아시아 시장에도 관심이 많아 회사에서 이 중책을 제안했을 때 바로 받았지요.
Q. 많은 분들이 랑송이 어떤 샴페인인지 궁금하실 것 같아요.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A. 샴페인을 대표하는 대형 브랜드 중 하나고요. 공항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샴페인이기도 합니다. 80개국 이상에 수출되고 있고 유럽 시장에서 특히 강하죠. 샴페인 소비가 많은 영국 시장에서 판매 2위에 랭크되어 있어요. 병을 자세히 보시면 레이블 위에 영국 왕실 문장이 있습니다. 랑송은 1900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왕실 인증(Royal Warrant)를 받은 첫번째 샴페인입니다. 왕실 인증은 5년마다 재심사를 거쳐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데, 랑송은 처음 인증을 받은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122년간 인증을 유지할 정도로 품질을 입증 받은 거죠. 1977년부터 지금까지 윔블던 테니스 선수권 대회의 공식 샴페인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랑송 레이블의 붉은 십자가와 영국 왕실 인증]
Q. 랑송 레이블에 보이는 붉은 십자가도 인상적입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A. 그건 몰타 기사단(Hospitaller's Order of Malta)의 십자가입니다. 몰타 기사단은 1048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선 단체입니다. 랑송 창립자의 아들이 이 단체에서 활동했는데, 그걸 인연으로 1798년 랑송의 엠블럼으로 결정됐습니다. 몰타 기사단의 철학인 'Openness, Kindness, Hospitality'가 곧 랑송이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니까요. 랭스에서는 매년 10km 마라톤이 열리는데 랑송의 직원들도 이 행사에 참석합니다. 뛰는 거리에 따라 1유로씩 계산해서 4,000유로를 기부한 적도 있습니다.
Q. 랑송은 다른 샴페인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랑송은 와인을 만들 때 젖산 전환(와인의 날카로운 말산을 부드러운 젖산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와인의 자연스러운 산미가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랑송의 맛을 “순수하고(purity), 깔끔하며(clean), 신선하다(fresh)”고 평가하는 분이 많습니다. 산미는 와인의 숙성에 도움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죠. 그래서 랑송에는 올드 빈티지 샴페인이 많습니다. 세계 최고의 빈티지 컬렉션이라 감히 자부합니다. 셀러에 1904년 빈티지까지 있으니까요. 현재1976년 빈티지 매그넘이 판매 중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2019년 새로 CEO가 부임하면서 랑송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생산하던 샴페인의 종류를 줄이면서 더 우수한 샴페인 위주로 상품을 재편했고요. 백 레이블에도 블렌드 된 포도 품종, 숙성 기간, 잔당,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빈티지, 리저브 와인의 비율 등 상세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는 랑송의 백 레이블]
Q. 2022년 샴페인의 빈티지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A. 2022년은 랑송 뿐만 아니라 모든 샴페인 하우스들에게 환상적인 한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와인 소비가 늘었고 샴페인의 판매도 급증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빈티지까지 좋아서 주문 받은 물량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샴페인이 기록적인 판매를 달성한 해가 몇 번 있었습니다. 1999년에 밀레니엄을 앞두고 3억3500만 병이 판매됐고요, 2007년에 3억 5천만 병이 팔렸습니다. 올해도 아마 약 3억 5천만 병 정도 판매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Q. 랑송이 한국 시장에 거는 기대와 목표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A. 한국 시장은 랑송에게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큰 시장입니다. 2021년 샴페인 전체 판매 통계를 봐도 일본을 제외하면 중국과 홍콩에 각 2백만 병, 한국에 170만 병이 수출됐습니다. 랑송은 2017년 이전 수입사와 계약을 종료한 이후 2~3년 동안 파트너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타이거 인터내셔널과 새롭계 파트너쉽을 체결했죠. 지금까지 랑송의 주고객층은 40~70대의 와인애호가였고 파인 다이닝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어린 고객층에게 맞는 마케팅과 홍보에도 힘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목표입니다만, 한국 시장에 랑송의 로제 샴페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국 시장은 유독 로제 샴페인의 판매가 저조합니다. 대부분 시장에서는 브뤼 논빈티지(엔트리급)가 판매의 70%를 차지하고 로제가 그 다음으로 2위인데, 한국은 퀴베 에스페셜(고품질)이 14%로 2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매우 특이하죠. 로제의 장점이 많이 홍보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은데요. 한 번 노력해볼 참입니다.
마리앙과의 유익한 인터뷰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마리앙은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답게 샴페인 시장 전체를 보면서 한국에서의 랑송의 위치와 전략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어진 시음회에서는랑송의 엔트리급인 르 블랙 라벨 브뤼를 시작으로 총 5종의 랑송 샴페인이 서빙됐다.
[시음한 랑송의 샴페인 5종]
르 블랙 라벨 브뤼 NV (Le Black label Brut NV)
랑송을 대표하는 샴페인으로(총 생산량의 70%) 신선하고 풍부하며 경쾌한 랑송의 스타일을 가장 잘 표현하는 와인이다. 총 100개의 밭에서 수확한 포도가 사용됐으며, 밭의 50%가 그랑 크뤼거나 프르미에 크뤼다. 최소 4년간 숙성을 거쳤고, 잔당은 8g/L다. 엔트리급임에도 색깔에서 금빛이 많이 돌았다. 이는 블렌드의 50%를 피노 누아가 차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는 샤르도네가 35%, 피노 뫼니에가 15%를 채우고 있다. 흰 꽃과 싱그러운 사과,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들, 거기에 약간의 꿀과 견과향이 달콤하고 묵직하게 올라오는 아로마를 구성하고 있었다. 리저브 와인이 약 35% 블렌드 되어 있어 엔트리급임에도 상당한 복합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운에서 경쾌하게 이어지는 산미가 매력적이며 부싯돌 같은 미네랄도 살짝 느껴졌다. 애피타이저와 즐겨도 좋지만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르 블랙 리저브 NV (Le Black Reserve NV)
엔트리급인 르 블랙 레이블보다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 밭의 포도 비율이 70%로 높고, 리저브 와인의 비율도 45%다. 숙성기간도 1년 더 길어 최소 5년의 숙성을 거친 뒤 출시되는 샴페인이다. 색상에서는 금빛이 더 진했고 잔당이 7g/L로 르 블랙 라벨 브뤼에 비해 1g 더 적었지만 더 진한 꿀향이 느껴졌다. 보디감은 묵직해도 랑송 특유의 경쾌함과 깔끔함은 여전했다. 여운에서 길게 이어지는 잔잔한 꿀맛도 매혹적이었다. 이 정도의 무게감과 풍미라면 애피타이저보다는 본 요리와 즐겨도 음식과 균형이 맞을 정도였다. 구운 고기나 육회와 즐겨도 좋고, 풍미가 진하므로 숙성된 치즈와도 잘 어울릴 듯했다. 한식 중에는 비빔밥처럼 양념이 진한 음식에 곁들여 보면 어떨까 싶다.
르 로제 (Le Rose NV)
랑송의 르 로제는2차 발효 직전에 피노 누아 레드 와인을7% 블렌드해 만든다. 숙성 기간은 르 블랙 라벨과 똑같이 4년이며 잔당도 8g/L로 동일하다. 색상은 진한 연어 빛깔이고 달콤한 붉은 베리류의 풍미와 함께 블러드 오렌지, 석류, 자몽 등 싱그러운 향이 가득했다. 약간의 장미향이 와인의 고급스러움을 더했고 매콤한 향신료 향은 음식과의 어울림을 도울 듯했다. 해산물 중에는 연어 스테이크나 참치 타다키와 잘 맞고, 두툼한 등심구이와 함께 마시면 산뜻한 신맛이 육즙의 느끼함을 개운하게 씻어줄 듯하다. 레드 베리 풍미가 진하므로 딸기 아이스크림과 페어링하면 의외의 별미를 맛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르 블랑 드 블랑 NV (Le Blanc de Blancs NV)
샤르도네 100%로 만들었고 포도의 70%가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 밭에서 재배됐다. 총 15개의 밭이 코트 드 블랑(Cotes de Blancs)과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 두 군데에 분포되어 있는데, 코트 드 블랑의 포도는 섬세하고 우아한 반면, 몽타뉴 드 랭스의 포도는 리치하고 무게감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르 블랑 드 블랑은 경쾌함과 섬세함의 완벽하게 보여줬다. 녹색이 살짝 도는 레몬 빛깔이 영롱하고, 풍미에서는 신선하고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향이 가득했다. 여기에 흰 꽃과 바닐라, 수밀도의 달콤함, 약간의 부싯돌 풍미가 복합미를 더했다. 마치 잘 익은 복숭아에 상큼한 자몽 즙을 뿌린 듯한 느낌이었다. 매끈한 질감 속의 농익은 과일향은 부담스럽지 않은 감미로움을 선사했다. 마리앙은 이 와인에 훈제 연어를 곁들여 볼 것을 추천했다. 기자의 생각에도 각종 해산물 요리와 두루 잘 어울릴 스타일이라 여겨졌다. 선명하면서도 밸런스와 하모니가 뛰어난 명품이다.
르 빈티지 2009 (Le Vintage 2009)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만든 빈티지 샴페인이다. 피노 누아 52%와 샤르도네 48%가 섞였으며 피노 뫼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 밭에는 피노 뫼니에를 재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앙의 설명에 따르면 2009년은 따뜻하고 일조량이 풍부한 해였다고 한다. 빈티지 샴페인의 경우 최소 5년을 숙성시키는데 백 레이블에 적힌 데고르주망 날짜를 보니 2018년 2월이었다. 밝은 레몬 빛이 화사하고, 겹겹이 층을 이룬 아로마가 한 데 모여 둥글게 올라오는 듯 풍미가 은은하고 고급스러웠다. 기포가 무척 섬세하고, 배, 살구, 모과 등 감미로운 과일향과 함께 아카시아, 브리오슈, 버터 등의 풍미가 복합미를 이루고 있었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질감 속에 아로마가 잔잔하게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자의 생각에는 이 명품 샴페인을 최대한 즐기려면 풍미가 진하지 않은 음식을 곁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초밥도 좋은 선택이고, 육류라면 양념 없이 구운 것이 더 잘 맞을 듯 싶다. 담백한 가금류나 버섯 요리와도 잘 어울리고, 콩테처럼 숙성된 치즈와 즐겨도 별미일 것 같다. 2012년 빈티지도 곧 출시된다고 하니 벌써 기대가 앞선다.
다섯 가지 모두를 시음해 본 결과 랑송의 스타일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단단한 구조감 속에서 느껴지는 신선함과 우아함이라 아닐까 싶다. 깔끔하고 섬세한 여운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참고로 현재 국내에는 르 블랙 라벨과 로제는 수입되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다. 랑송은 파인 다이닝에서 특히 각광받는 샴페인이다. 하지만 집에서 즐길 때도 랑송을 선택한다면 내가 마련한 음식도 파인 다이닝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릴 듯하다. 아직 랑송을 마셔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마셔보길 추천한다. 아마도 베스트 샴페인 리스트에 랑송을 추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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