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고렐로 버티칼 시음회를 위해 방한한 프란체스코 바로니 수출 담당자]
산 펠리체(San Felice) 비고렐로(Vigorello)는 1968년 산지오베제 100%로 만든 최초의 슈퍼투스칸 와인이다. 비고렐로 2018년 산은 슈퍼투스칸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와인이다. 본격적인 출시를 앞두고 비고렐로 버티칼 시음회가 와인 전문인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단한 숙성 잠재력을 보여준 비고렐로 이야기를 들어보자.
비고렐로 간략한 역사
산 펠리체(San Felice)는 지난 50년 동안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지역 핵심 발전을 이끈 뛰어난 토스카나 와이너리다. 산 펠리체는 그 역사가 7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지역 초기에 활동했던 기독교 성인의 이름을 따른 교회와 같은 이름으로 와이너리 이름을 명명했다. 그리살디 델 타하(Grisaldi Del Taja)가문은 수 세기 동안 피렌체에서 남동쪽으로 약 45km 떨어진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 남쪽 끝 카스텔누오보 베라덴가(Castelnuovo Berardenga)에 위치한 땅의 소유자였으며, 그동안 이곳에서 와인을 생산했다. 그들의 후손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 창립 멤버 중 하나다.

[산 펠리체 포도밭과 영지 항공 사진, 사진 제공: 산 펠리체]
1967년 이 영지는 엔조 모르간티(Enzo Morganti)에게 양도됐다. 당시 키안티 클라시코는 수 세기 동안 변함없는 토지 관리와 소작농 체계에 기반을 두었기에 와인 품질보다는 생산량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엔조 모르간티는 산지오베제 순수 주의자로 포도 품종 잠재력에 대단한 믿음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산 펠리체 영지를 사들이기 전 20년 동안 테누타 디 릴리아노(Tenuta di Lilliano)에서 산지오베제 클론을 실험하며 얻은 결론을 산 펠리체 포도밭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적용했다. 그는 키안티 클라시코에서 평판이 좋은 카스텔누오보 베라덴가 안에 650헥타르 땅을 확보하고, 이 중 140헥타르 포도밭으로 조성했다. 그는 포도밭에 우수한 산지오베제 클론을 심고 정성껏 가꾸어 지금 우리가 인정하고 사랑하는 고품질 산지오베제 와인 시대를 열었다. 포도밭은 평균 해발고도 400m에 있으며, 5개 세부 지역으로 나누어 관리된다.

[산 펠리체 와이너리 전경, 사진 제공: 산 펠리체]
엔조 모르간티의 업적을 바탕으로 산 펠리체는 지속해서 와인 시장 유행을 예측하고 많은 연구를 수행하며 지금까지 개척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런 활동의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산지오베제 100% 슈퍼투스칸의 시초인 비고렐로다. 산지오베제 순수 주의자인 엔조 모르간티는 1968년 100%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만든 비고렐로를 출시했다. 당시 키안티 클라시코는 쉽게 마실 수 있도록 청포도를 블렌딩하는 와인이어서 이 순수한 산지오베제 와인인 비고렐로는 이탈리아 와인 등급상 가장 낮은 테이블 와인(Vino da Tavola)를 받았다. 라벨은 기본급 와인이었지만, 비고렐로는 와이너리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랑스러운 슈퍼투스칸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30년 넘게 비고렐로를 생산하고 있는 와인 메이커 레오나르도 벨라치니(Leonardo Bellaccini)는 토스카나에서 만들어지는 시대별 수많은 슈퍼투스칸보다 늘 한걸음 앞서 나갔다. 비고렐로는 한 번 정해져 성공한 특정 스타일에 고집하지 않고 슈퍼투스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스스로 만든 틀을 깨고 거듭 진화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성공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건 와인 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앞을 내다보는 노력, 무엇보다 또 한 번 품질 기준을 높이겠다는 의지 없인 불가능하다. 비고렐로는 활력의 와인(Wine of Vigor)를 뜻하는데 이름처럼 끊임없이 솟구치는 열정의 와인인 셈이다.

비고렐로 연대기
1968년 산지오베제 100% 와인으로 시작한 비고렐로는 몇 번의 변화를 겪었다. 1979년 전체 블렌딩의 15%까지 카베르네 소비뇽이 쓰이기 시작했고, 이후 카베르네 소비뇽 비율은 최대 40%까지 늘렸다. 2001년 비고렐로는 메를로를 블렌딩에 넣기 시작했고, 최대 20%까지 메를로를 넣었다. 2006년은 산지오베제를 전혀 쓰지 않은 비고렐로가 처음으로 출시됐다. 2011년엔 멸종 위기에 몰렸던 푸니텔로(Pugnitello)를 블렌딩에 쓰기 시작했고, 푸니텔로는 비고렐로의 가장 중요한 품종이 됐다.
'작은 주먹'이라는 의미의 푸니텔로는 1981년 포지오 디 사시(Poggio di Sassi)에서 재발견됐다. 1984년 산 펠리체는 피사 대학교와 협업해 토착 품종 연구를 진행하면서 푸니텔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산지오베제가 다면적이면서 굉장히 직선적이고 깊으며 강건하다면, 푸니텔로는 부드럽고 둥글고 향과 풍미 스펙트럼이 넓다. 푸니텔로는 후추 같은 스파이스 풍미를 지녀 시라와 종종 비교되곤 한다. 산지오베제에 푸니텔로를 블렌딩하면 이른 시기에도 산지오베제를 마시기 편안하게 해준다. 푸니텔로는 점토와 알베제레(석회가 풍부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약간의 수분을 머금은 모래와 실트가 주를 이루는 토양에서 잘 자라며, 메를로는 점토로 이뤄진 해발고도가 낮은 포도밭을 선호한다. 쁘띠 베르도는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모래와 양토에서 잘 자란다.

비고렐로 버티컬 시음기

비고렐로 1989년
1969년 심은 산지오베제 80%, 1974년 심은 카베르네 소비뇽 20% 블렌딩했고, 알코올 발효 후 젖산 발효를 진행하고 프랑스산 225ℓ 오크 통에서 18~20개월 숙성했다. 1989년은 농사가 매우 힘들었던 해로 이른 봄엔 냉해, 여름엔 폭염을 겪었다. 당시 보관 가능 기간은 수확 연도에서 15년으로 적혀있다.
15년까지 숙성 가능하다고 했던 와인을 33년이 지난 2022년에 열어 맛을 봤다. 과연 어땠을까? 와인은 가장자리가 가넷 색으로 변한 중간 루비색을 띠며, 적당한 눈물이 흐른다. 잔에 와인을 따를 때부터 느껴지는 향이 대단하다. 집중된 감초, 말린지 얼마 안 되는 햇대추, 말린 체리, 미네랄 향이 정말 좋고 시원한 느낌이 훌륭하다. 중상 정도 농축된 풍미, 바디, 산도, 타닌을 지녔으며, 균형이 훌륭하다. 와인은 잘 익은 검붉은 과실, 블랙 티, 아직 힘이 느껴지는 타닌이 있으며, 벨벳 같은 질감을 지녔다. 감칠맛이 있으며 기막힌 짠맛이 훌륭하다. 버티컬 시음회에서 1996년 산과 더불어 막상막하의 인기를 얻었다. 올드 빈티지 와인을 선호하는 와인 애호가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상태다.

비고렐로 1996년
1969년 심은 산지오베제 60%, 1974년 심은 카베르네 소비뇽 40% 블렌딩했고, 알코올 발효 후 젖산 발효를 진행하고 프랑스산 225ℓ 오크 통에서 18~20개월 숙성했다. 1996년은 화창하고 따뜻한 봄을 보내 다소 일찍 꽃을 피웠다. 그러나 여름 내내 평균보다 기온이 낮았고,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비가 내려 수확은 10월 중순까지 간헐적으로 진행됐다. 곰팡이를 비롯하여 특별한 질병 문제는 없었지만, 숙성이 고르지 않고 풍미 강도가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숙성이 진행되면서 기대 이상이 모습을 보여줘 1996년은 신데렐라 빈티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고렐로 1996년 산은 가장자리가 가넷으로 변한 진한 자주색에 눈물이 상당히 흐른다. 중상 정도 농축된 삼나무, 흑연, 블랙커런트, 말린 자두, 호두, 말린 버섯, 여전히 신선한 담배에 말린 꽃잎 향도 살짝 느껴지고 조리용 스파이스 향이 매력적으로 풍긴다. 맛을 보면, 드라이하며 풀 바디, 중간 산미, 높은 타닌을 지니는데 잘 익은 타닌이라 아주 훌륭하다. 가죽, 동물, 말린 고기, 삼나무, 카시스, 말린 버섯, 담배, 흙내음이 있고, 여운이 길고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와인이다.

비고렐로 2001년
1969년과 1992년에 심은 산지오베제 45%, 1974년 심은 카베르네 소비뇽 40%, 1995년 심은 메를로 15%가 블렌딩 됐다. 메를로가 최초로 쓰였고, 산지오베제 비율이 처음으로 50% 미만이 된 해다. 가장자리가 이제야 살짝 가넷으로 변하기 시작한 진한 자주색을 띤다. 눈물이 진하게 흐른다. 2001년은 2015년과 더불어 굉장히 좋은 빈티지다. 2001년은 더웠지만, 여름철 비가 내려 아주 긴 수확 기간을 보냈다. 이 두 빈티지는 장기 숙성력이 뛰어난 와인이 생산됐다.
비고렐로 2001년 산은 중간 루비색을 띤다. 좀 절제된 느낌으로 중간 강도 농축된 향이 나오는데, 말린 자두, 블랙체리, 담배 냄새가 강하고 진한 감초, 말린 허브, 삼나무 향을 느낄 수 있다. 드라이하며, 풀 바디, 중상 타닌이 아직도 상당히 조이는 편이라서 아직 어리다는 느낌을 준다. 말린 검붉은 과실과 흙내음이 강렬하다. 스파이시함이 느껴지는 긴 여운이 매력적이다.

비고렐로 2010년
1974년 심은 카베르네 소비뇽 50%, 1995년 심은 메를로 45%, 쁘띠 베르도 5%가 블렌딩 됐고, 225ℓ 프랑스산 오크 통에서 24개월간 숙성했다. 2010년은 우박과 피해로 생산량이 적었지만, (2009년과 비교하면) 신선하고 집중도 높은 고품질 와인이 생산됐다.
비고렐로 2010년 산은 가장자리가 살짝 가넷으로 변하기 시작한 자주색에 눈물이 상당히 흐른다. 중상 정도 농축된 조리용 각종 허브, 카시스, 체리 향이 중심을 잘 잡고 있다. 시원함을 주는 민트 같은 향이 미묘하게 느껴져서 와인에 생동감을 더한다. 드라이하며 중간 바디에 질감과 우아함이 크게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중간 산미, 잘 익은 타닌이 중간 정도 느껴진다. 검붉은 과실 풍미가 아주 농축되었지만, 숙성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접근하기 좋다. 감초와 말린 과실 풍미가 함께하는 긴 여운이 정말 훌륭하다.

비고렐로 2015년
푸니텔로 35%, 1995년 심은 메를로 30%, 1974년 심은 카베르네 소비뇽 30%, 쁘띠 베르도 5%가 블렌딩 됐다. 225ℓ 프랑스산 오크 통에 24개월 숙성됐다. 2015년은 더운 해로 모래 토양에서 자라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아주 이상적으로 재배됐다. 좋은 겨울과 안정적인 날씨, 비가 거의 오지 않은 여름을 보낸 완벽한 해라 장기 숙성력이 뛰어난 와인이 됐다.
비고렐로 2015년 산은 진한 루비색에 눈물이 상당히 진하다. 아직 너무 어려서 향이 잘 나오진 않는다. 중상 정도 농축된 오디, 야생 검은 열매, 달콤한 감초 향이 훌륭하다. 약간 말린 꽃, 스파이스 풍미가 맛에서 느껴지며, 드라이하고, 중상 산미, 바디, 상당히 부드러운 타닌이 아직 많이 느껴진다. 금방 간 후추 풍미를 지닌 긴 여운이 좋다.

비고렐로 2018년
2015년과 블렌딩 및 양조 과정이 동일하다. 2018년은 매우 일관적인 성장기를 보냈고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없는 매우 훌륭한 빈티지다. 따라서, 대부분 와이너리는 평균적인 수확량과 고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비고렐로 상황은 조금 다르다. 보통 비고렐로는 연간 6만 병 와인을 생산한다. 하지만, 2018년엔 훨씬 까다로운 선별 작업을 통해 생산량을 4만 병 수준으로 30%를 줄이는 대신 훨씬 품질을 높였다. 그 이유는 50주년 기념 빈티지이기 때문에 더욱더 특별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다.
비고렐로 2018년 산은 진한 자주색을 띤다. 정지향에서는 달콤한 감초와 바닐라 향이 가득하고, 잔을 흔들면, 블랙커런트, 블랙체리, 라즈베리, 레드 커런트 등의 향을 낸다. 맛을 보면, 드라이하고, 감칠맛을 동반한 중간 산미, 부드러운 타닌을 느낄 수 있다. 아직 너무나 어린 단계라 표현력이 강하지 않아 충분히 자신을 드러낼 숙성 시간이 필요하다. 신선함을 주는 개운한 산미가 아주 훌륭하다. 이 와인은 곧 한국에 출시될 예정이며, 비너스 93점, 제임스 서클링 93점, 와인 스펙테이터 94점을 받았다.

비고렐로 와인의 전 세계 가장 큰 시장은 바로 한국이다. 오랜 시장 한국에서 사랑받은 만큼 자주 비고렐로를 경험했고 그만큼 비고렐로 와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비고렐로 버티칼 시음회는 이런 생각이 큰 착각이란 걸 깨닫게 했다. 15년 정도 숙성될 거라 예상됐던 1989년 산 와인은 아직도 힘이 있어 산지오베제의 위대함을 일깨워줬다. 오래된 와인 애호가라면, 1990년대에 만들어진 이탈리아 와인이 얼마나 훌륭한지 안다. 비고렐로 1996년 산은 균형 잡힌 와인이 숙성되어 내는 매력이 뭔지 다시금 와인으로 보여줬다. 국제 품종 중심으로 생산된 2001년과 2010년 산 와인은 이 시기에 생산된 비고렐로가 얼마나 긴 생명력을 지니는지 가늠하게 해줬다. 또한, 이 시대에 생산된 비고렐로를 너무 빨리 셀러에서 꺼내 마셨음을 후회하고 반성케 했다. 푸니텔로를 쓰기 시작한 최신 버전의 비고렐로는 이제 또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비고렐로라는 한 가지 와인이 보여주는 세상만으로도 벅찬 시간이었고 그만큼 감동도 컸다. 기회가 있고 여유가 된다면, 비교하지 말고 비고렐로를 하나씩 모아 버티칼로 접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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