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안티 클라시코가 곧 UGA를 공식화한다. UGA는 '우니타 지오그라피케 아준티베(Unità Geografiche Aggiuntive)', 우리 말로 풀이하자면 '추가적인 지리적 단위'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는 지난 2021년부터 생산자들과 협의를 거쳐 UGA 안을 확정했고 이를 정부에 제출해 현재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껏 키안티 클라시코를 마시면서 와인마다 맛과 향이 다른 것을 느껴본 적 있는가? 만약 그랬다면 단순히 와이너리별 양조 방식의 차이 정도로만 여겼을 수도 있다. 사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산지는 자연 환경이 매우 복잡다단하다. 이는 곧 다양한 테루아를 의미하고 금번 UGA의 발표는 이를 명쾌하게 정리함으로써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키안티 클라시코를 테루아별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키안티 클라시코에 UGA가 필요한 이유
[키안티 클라시코의 지형 – 동쪽으로 몬티 델 키안티 산맥이 흐르고 서쪽에 산 미켈레 산이 자리잡고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위치한 키안티 클라시코는 생산지 면적이 무려 7만 헥타르(700㎢)나 된다. 밭별로 각기 다른 AOC를 가지고 있는 부르고뉴가 1만 3천 헥타르인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다. 북단에서 남단까지의 거리가 47km, 동서로 가장 떨어진 거리가 27km다. 길고 좁으며 드넓은 이 지역에는 평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낮은 산들이 가득하다. 가장 낮은 포도밭이 해발 150미터에 위치하고 가장 높은 밭이 해발 650미터 이상에 위치할 정도로 고도도 다양하다(참고로 키안티 클라시코는 해발 700미터 이상에서 포도 재배를 금하고 있다). 100미터마다 평균 기온이 0.7도가 떨어지니 높은 밭의 평균 기온이 낮은 밭에 비해 3.5도나 낮다는 말이 된다.
산이 많으니 숲도 울창하다. 7만 헥타르 중 포도밭은 9천 8백 헥타르(전체 면적의 1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올리브 나무와 숲(전체 면적의 62%)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지형이 울퉁불퉁하다 보니 평지에 위치한 포도밭은 찾아 보기가 어렵다. 밭은 주로 경사지에 위치하며, 방향도 동향, 남향, 서향으로 제각각일 뿐 아니라 경사도 가파른 곳부터 완만한 곳까지 다양하다. 아래쪽 밭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온이 더 높은 것도 아니다. 숲 바로 옆에 위치한 포도밭은 숲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의 영향으로 더 서늘한 기온을 유지한다. 결국 키안티 클라시코의 와인 맛은 밭의 위도, 고도, 경사각, 경사 방향, 주위 자연 요소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에 토질도 한몫 한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주된 토양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알베레제와 마치뇨 암석 (사진: 김상미)]
- 알베레제(Alberese): 이탈리아어로 석회암이라는 뜻. 키안티 클라시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토질이다. 산지의 중앙부터 남쪽까지, 해발 고도 300~500미터 사이에서 드넓게 발견되며 과거 바다의 퇴적물이 쌓여 생성된 토양이다. 같은 알베레제 토양이어도 산지 중앙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스타일이 경쾌하고 산뜻한데 반해 남쪽의 더운 곳에서는 검은 과일향이 더 진한 와인이 생산된다.
- 마치뇨(Macigno): 이탈리아어로 암석이라는 뜻. 주로 몬티 델 키안티(Monti del Chianti) 산맥을 따라 발견된다. 알베레제와 달리 돌에 석회질 성분이 없고 모래가 주를 이룬 사암이다. 마치뇨 토양에서 생산된 와인은 우아하고 색이 연하며 꽃향이 느껴지고 섬세한 스타일이 많다.
- 피에트라포르테(Pietraforte): 마치뇨처럼 사암이지만 석회질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산지의 북부 중앙에서 주로 발견된다. 피에트라포르테 토양에서 생산된 와인은 정교함과 우아함을 자랑한다.
- 갈레스트로(Galestro): 점토와 모래가 굳어진 돌 또는 암석이다. 알베레제와 섞여 중간 고도에 주로 분포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구조감이 느껴지고 숙성잠재력이 좋다.
- 실라노(Sillano): 석회질과 점토가 섞인 토양으로 알베레제가 있는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 토양에서 생산된 와인은 바디감이 풍부하며 검은 과일향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일부 서늘한 경사면에서 생산된 와인은 스타일이 경쾌한 경우도 있다.
- 충적토: 강이 실어 나른 퇴적물로 형성된 토양으로 돌이 많다. 이런 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질감이 부드럽고 과일향도 풍부하며 숙성잠재력도 뛰어나다. 호수에 의한 충적토는 아로마가 풍부하고 타닌이 강한 와인을 생산하기도 한다. 점토의 비율이 높은 고운 충적토에서는 구조감이 강건한 와인이 주로 생산된다.
이제 모든 자연 환경적 요인을 종합해 정리한 추가적인 지리적 단위인 UGA를 하나씩 알아보자. 본 기사에서는 북동쪽 끝에 위치한 그레베와 그 주변에 위치한 몬테피오랄레, 판자노, 라몰레를 정리해 보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모두 그레베에 속하지만 몬테피오랄레, 판자노, 라몰레가 테루아에 따라 개별 UGA로 분리됐다. 나머지 7개 UGA는 이어질 키안티 클라시코 UGA 기사 두 번째 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각 UGA 의 위치 (자료 출처: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협회)]
동쪽의 몬티 델 키안티 산맥과 서쪽의 그레베 강 사이에 위치한 와인 산지로 53개 와이너리를 포함한다. 포도밭은 주로 해발 150~375미터 사이에 위치하며 총 면적 11,570헥타르 중 910헥타르가 포도밭이다. 몬티 델 키안티 산맥에 인접해 고도가 높은 곳에는 마치뇨 토양이 분포하며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신선함이 특징이다. 반면 산지의 북서쪽과 정중앙을 흐르는 계곡에서는 편암과 실라노 토양이 주로 발견되는데 이곳의 와인은 검은 과일향이 많고 구조감이 강건하다. 그레베를 대표하는 와인으로는 두 가지를 추천할 만하다.
비냐마지오,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게라르디노 (Vigna Maggio, Chianti Classico Riserva Gherardino)
UGA의 동남쪽 끝 해발 300미터에 위치한 남서향~서향 밭에서 자란 산지오베제 85%에 메를로 15%를 블렌드한 와인이다. 발효한 뒤 18~20개월간 배럴과 마리크에 나누어 숙성시켰다. 체리와 블랙베리 등 잘 익은 과일향과 오크 숙성에서 발현된 2차향의 풍미 집중도가 매우 뛰어나다. 질감도 매끈하고 탄탄하며 여운 또한 길게 이어진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 라 코르테 (Castello di Querceto,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La Corte)
UGA의 서쪽 해발 440~470미터의 높은 곳에서 수확한 산지오베제 100%로 만든 와인이며 연간 생산량은 1만~1만 5천 병 정도다. 신선한 체리 향과 함께 정향과 회향 등 향신료 풍미가 우아하다. 매끈한 질감과 감미로운 과즙이 입맛을 돋우는 와인이다. 숙성잠재력이 좋아 오래 보관했다 마실수록 뛰어난 복합미를 선사한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에서 바라본 그레베 산지 풍경 (사진: 김상미)]
그레베 UGA의 서쪽, 그레베 강의 좌안에 위치한 작은 산지로 와이너리 수도 15개에 불과하다. 면적은 총 1544헥타르이며 이중 250헥타르가 포도밭이다. 포도밭은 해발 고도 250~450미터 사이에 위치하는데 지역의 남쪽과 정중앙의 일부 높은 고도에서는 피에트라포르테 토양이 발견되며 계단식 포도밭이 분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도밭은 지역의 2/3 정도를 차지하는 알베레제 토질의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따라서 비교적 균일한 토양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몬테피오랄레 와인은 스타일이 일관된 편이다. 과일향이 풍성하고 질감이 둥글며 구조감이 좋다. 몬테피오랄레에서 생산된 와인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와인으로는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를 들 수 있다.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키안티 클라시코 (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
산지오베제 95%와 기타 품종 5%가 블렌드된 와인이다. 체리와 블랙베리 등 잘 익은 베리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마시기 편한 스타일이다. 조화롭고 신선한 풍미가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매력적이다.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 사셀로 (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Sassello)
라즈베리, 체리, 블랙베리등 다양한 베리류의 달콤한 풍미가 바닐라, 오크 등의 복합미와 어울려 탁월한 아로마의 집중도를 보여준다. 바디감이 묵직하지만 매끄럽고 부드러운 질감과 경쾌한 산미가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 산지오베제 특유의 풍미와 보디감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명품이다.
그레베의 남서쪽에 위치한 판자노는 41개 와이너리가 위치하고 있다. 총 2,840헥타르 중 21%에 달하는 595헥타르가 포도밭이어서 UGA 중 면적 대비 포도밭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판자노는 크게 동부와 서부로 나뉘는데, 동부는 그레베강 유역에 위치하며 몬티 데 키안티 산맥의 영향을 받아 기후가 비교적 서늘하다. 반면 페사(Pesa) 강 유역에 자리한 서부에는 더 많은 포도밭이 자리하며 콩카도로(Conca d'Oro, 황금의 계곡이라는 뜻)라는 유명한 산지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토양에는 대체로 피에트라포르테, 실라노, 편암이 섞여 있다. 동쪽에서 생산된 와인은 바디감이 좋고 과일향이 풍부하며, 서부에서 생산된 와인은 활기차고 흙 풍미가 특징이다. 남부에서 생산된 와인은 신선하고 경쾌한 편이다.
발로네 디 체치오네, 키안티 클라시코 (Vallone di Cecione, Chianti Classico)
UGA의 북서부 석회질 점토 토양에서 자란 산지오베제 90%와 카나이올로 10%를 블렌드해 만든 와인이다. 야생 효모로 발효했고 8개월간은 큰 오크통에서 4개월간은 병입된 상태로 숙성된 뒤 출시됐다. 달콤한 과일향과 후추, 커피, 초콜릿 등 오크 숙성 풍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키안티 클라시코지만 리제르바 등급의 깊은 풍미가 느껴지며 타닌도 탄탄하다. 일찍 마셔도 좋지만 숙성잠재력도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폰토디,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 비냐 델 소르보 (Fontodi,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Vigna del Sorbo)
폰토디는 바이오다이내믹으로 포도를 경작하고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다. 비냐 델 소르보는 콩카도로에서 자란 평균 수령 40년 이상의 산지오베제에서 수확한 포도 100%로 만든 와인이다. 생산량도 연간 3만 병으로 많지 않다. 야생 효모로 발효했으며 배럴(50% 새 배럴)에서 24개월 숙성됐다. 베리 향의 집중도가 뛰어나고 오크 숙성에서 얻은 훈연 향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바디감이 적당하고 매끈한 질감에서는 탄력이 느껴진다. 모든 요소의 밸런스가 훌륭한 와인이다.
[콩카도로에 위치한 폰토디의 포도밭 (사진: 김상미)]
그레베 UGA 남쪽 끝에 위치한 라몰레는 전체 면적 985헥타르 중 95헥타르만이 포도밭으로, 키안티 클라시코 UGA 가운데 가장 작다. 대부분의 포도밭이 해발 고도 500~650미터 사이에 위치해 UGA 중에서도 포도 수확을 가장 늦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포도밭이 주로 서향을 향하고 토질도 대부분 마치뇨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고도가 높아 기후가 서늘하기 때문에 와인 색이 연하고 꽃향이 느껴지며 맛이 신선하고 우아해 마치 피노 누아를 마시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산지 전체에 와이너리의 개수가 9개에 불과해 아직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와인이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이 UGA의 대표적인 와이너리인 라몰레 디 라몰레의 와인 2종을 소개한다.
라몰레 디 라몰레, 두엘라메 키안티 클라시코 (Lamole di Lamole, Duelame Chianti Classico)
해발 고도 420~655미터 사이에 자리한 여러 밭의 포도를 블렌드해 만든 와인이다.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를 마친 뒤 포도 껍질과 함께 겨울까지 침용을 거쳐 색소와 타닌을 추가로 추출했다. 영롱한 루비빛이 매력적이고 아이리스와 바이올렛 향이 우아하다. 붉은 베리류와 함께 허브 향도 살짝 느껴진다. 라몰레의 특징인 신선함을 가득 담은 스타일이다.
라몰레 디 라몰레, 라레알레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리바 (Lamole di Lamole, Lareale Chianti Classico Riserva)
해발 고도 470~655미터 사이에 위치한 두 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다. 3,000~5,000리터의 큰 오크통에서 최소 2년간 숙성을 거쳤다. 루비빛이 진하고 야생 베리류의 풍미가 풍부하며 발사믹 식초, 바이올렛, 덤불 등의 아로마가 복합미를 더한다. 모든 요소의 조화가 탁월하고 경쾌한 스타일이다. 다양한 육류와 두루 잘 어울리며, 송로버섯이나 숙성된 치즈처럼 풍미가 강한 음식과 즐겨도 별미다.
* 키안티 클라시코 UGA 두 번째 기사에서 나머지 UGA 7곳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작성 2023.05.23 09:00수정 2023.05.19 11:06
2005년부터 유럽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와인과 사랑에 빠졌다. 2012년 회사를 그만두고 와인에 올인, 영국 Oxford Brookes University에서 Food, Wine & Culture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논문 'An Exploratory Study to Develop Korean Food and Wine Pairing Criteria (한국 음식과 와인의 조화)'는 2014 Global Alliance of Marketing & Management Associations(GAMMA) Conference에서 소개된 바 있으며, 학술지 'Beverages'에도 게재됐다. (http://www.mdpi.com/2306-5710/3/3/40). 2015년 영국 런던 Wine & Spirit Educational Trust(WSET)에서 Diploma를 취득했으며, 그리스, 마데이라, 스페인 등 국가별 와인 공인 강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2014년부터 5년간 주간동아에 와인칼럼을 연재했으며, 2019년부터는 이코노미 조선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한림대학교에 출강 중이며 WSA와인아카데미 대표강사로 WSET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와 신세계 백화점에서는 취미로 와인을 즐기는 분들께 쉽고 재미나게 와인을 강의하고 있고, 기업체, 공무원, 럭셔리 브랜드와 백화점 VIP 등을 위해서도 '인문학과 와인' 등 다양한 주제로 인기 있는 특강을 진행 중이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아시아 와인 트로피, 한국 주류대상 등의 심사위원 및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캘리포니아, 스페인, 그리스, 호주 등 와인 세미나의 페널과 통역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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