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뉴욕에서 자주 방문하는 타코 가게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멕시코의 어느 골목 어귀에 있을 법한 바쁜 타코 가게를 연상케 한다. 길게 늘어선 계산 줄, 흥겨운 라틴음악 소리, “올라, 비엔베니도(Hola, Bienvenido!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라며 스페인어로 반갑게 인사하며 주문을 받는 직원들, 한구석에 가득 담겨있는 라임 슬라이스, 고기를 굽는 맛있는 냄새, 밀려드는 주문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오픈 키친의 직원들. 뉴욕의 파크애비뉴 한복판에서 멕시코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랄까.
[밀려드는 주문에도 주문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 타코가 나오면 손짓으로 불러준다]
[타코 위에 뿌리는 라임]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수많은 구글 리뷰가 증명하듯, 이곳의 메뉴들은 모두 특색 있고 맛있다. 타코와 퀘사디야가 메인 메뉴이며 멕시코 로컬 음료와 나초, 과카몰레 등을 사이드로 판매한다. 타코 메뉴는 타코 까르네 아사다(Taco Carne Asada, 구운 소고기 타코), 타코 뽀죠 아사도(Taco Pollo Asado, 구운 치킨 타코), 타코 아도바다(Taco Adobada, 양념 돼지고기 타코) 등이 있다. 퀘사디야 역시 돼지고기, 소고기, 치킨 중 메인 재료를 고를 수 있으며 타코와 달리 또르띠야 안에 녹인 치즈가 들어간다.
[양념돼지고기 퀘사디야 (좌), 치킨 퀘사디야 (우)]
타코는 어떤 와인과 잘 어울릴까?
타코는 다양한 재료에 강한 맛과 신맛, 양념의 매운맛 등이 있어 언뜻 보면 와인과 페어링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기본적인 타코의 특성을 떠올려 보면 함께 마실 와인을 쉽게 고를 수 있다. 모든 타코는 살사와 고기를 양념하는 스파이스 때문에 매콤한 맛이 있고, 살사에 들어가는 토마토와 위에 뿌리는 라임으로 인해 산미가 있으며, 메인 재료를 보통 그릴에 굽는 경우가 많아 불 맛이 난다. 따라서 와인의 산도가 높은 것이 좋고, 매운 맛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높은 알코올 도수를 가진 와인이나 타닌이 과도한 와인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기본 법칙을 기억하고 타코의 메인 재료에 따라 와인을 선택하면 된다.
소고기 타코 & 말벡, 템프라니요
그릴에 구운 소고기 타코는 불 맛이 나고 기름기가 있다. 따라서 과실향이 많은 아르헨티나 말벡(Malbec)이나 스페인의 템프라니요(Tempranillo)와 함께 즐기면 잘 어울린다. 적당한 타닌은 소고기 타코의 불 맛과도 잘 어울리고 기름기를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양념 돼지고기 타코 & 피노 누아, 가메이
양념 돼지고기라면 한국인에게는 제육불고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멕시코의 양념 돼지고기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칠리소스와 식초, 오레가노 같은 허브를 넣고 양념해서 굽기 때문에 고기에 매콤한 맛과 새콤한 맛이 있다. 이런 특징으로 산미가 있고 깔끔한 레드 와인이 잘 어울리는데, 피노 누아(Pinot Noir)나 보졸레 지역의 가메이(Gamay) 와인을 추천한다.
치킨 타코 & 피노 그리지오, 리슬링
치킨이 들어간 타코는 산뜻하고 가벼운 화이트 와인과 함께 즐기기 좋다.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또는 독일의 드라이한 리슬링(Riesling)을 추천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필자가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메뉴가 하나 더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음식인 타코 노팔(Taco Nopal), 즉 선인장 타코다. 혹시 선인장 타코를 맛본 경험이 있는가?
[타코에 사용되는 납작한 모양의 선인장, 노팔(Nopal)]
선인장 타코는 타코에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고기 대신 그릴에 구운 '노팔(Nopal)'을 넣는다. 노팔은 둥글고 납작한 팔을 가진 선인장이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아즈텍인들은 노팔을 음식과 약용으로, 또는 제의에 사용하는 옷을 염색하는 원료로 다양하게 사용했다.
먹는 선인장이라니 한국인들에게는 친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멕시코에서는 샐러드, 스튜, 스프부터 타코까지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는 대중적인 식재료다. 선인장은 보통 어릴 때 수확해서 가시와 두꺼운 껍질 부분만 제거한 뒤 썰어서 사용하거나 통째로 사용한다. 노팔의 맛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산미가 있고 알로에처럼 약간의 끈적한 느낌이 있으며 수분이 많은 편이다. 구운 노팔의 식감은 물컹할 것 같지만 의외로 아삭하게 구운 피망과 비슷하다. 그릴에 통째로 구운 노팔은 소금과 라임만 뿌려서 칼로 잘라먹기도 하는데, 그린 스테이크라 불리며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인기있는 메뉴다.
[노팔 스프 (좌), 노팔 샐러드 (우)]
선인장 타코는 아삭아삭 씹히는 노팔에 부드러운 과카몰레와 한국인의 입맛에도 다소 매콤하게 느껴지는 살사로 마무리해 매력을 더한다. 와인이나 맥주가 생각나는 맛인데, 이 타코 가게에서는 주류를 판매하지 않아 가끔 포장해서 집에 가져와 와인과 마시곤 한다.
[타코 노팔]
선인장 타코와 잘어울리는 와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포르투갈 화이트 비뉴 베르데(Vinho Verde)
비뉴 베르데는 포르투갈 북쪽 미뉴(Minho)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그린 와인'이라는 뜻이다. 레드, 로즈, 화이트 와인으로 생산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비뉴 베르데는 화이트 와인이다. 대체로 바로 마시기 좋은 와인이 많고, 일부 생산자는 소량의 탄산을 첨가해 청량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화이트 비뉴 베르데는 꽃 향과 레몬, 라임 등의 시트러스 향이 지배적이며 가볍고 산도가 좋아 쉽게 마실 수 있다. 비뉴 베르데의 산도는 타코의 새콤한 맛에 잘 어우러지고 기포는 매콤한 맛과 잘 어울려 타코 노팔과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오프드라이 독일 리슬링(Riesling)
타코의 매콤한 맛은 약간의 잔당감이 있는 와인과 잘 어울린다. 이런 원리로 오프드라이 리슬링 와인의 잔당감이 살사의 매콤한 맛을 감싸주며 노팔의 풍미를 끌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오스트리아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
필자가 타코 노팔과 가장 즐겨 마시는 조합이다. 그뤼너 벨트리너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품종이며 이 품종만의 특징인 화이트 페퍼향과 미네랄 캐릭터, 기분 좋은 산도는 노팔 자체의 산미와 잘 어우러져 완벽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바깥까지 길게 늘어서 있는 줄, 회전율이 빠르기 때문에 오래 걸리지 않는다]
타코 체인점인 이곳의 이름은 'Los Tacos No.1'이며 맨해튼에 총 다섯 군데 지점이 있다. 또르띠야는 옥수수 가루와 밀가루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옥수수로 선택해 타코 또는 퀘사디야를 주문하고, 사이드로 나초와 과카몰레를 주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레몬 맛이 나는 멕시코 로컬소다 스쿼트(Squirt)와 함께해도 좋지만, 와인애호가라면 포장해서 집이나 숙소로 가져와 와인과 페어링 해 보길 바란다. 한국에도 맛있는 타코와 퀘사디야를 파는 멕시칸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기고 있으니, 한국에서도 이런 조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타코와 와인의 맛있는 만남으로 멕시코에 가지 않고도 멕시코를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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