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한 태양, 파란 하늘, 이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 의자에 앉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이런 날씨에는 프로세코(Prosecco)나 까바(Cava), 샴페인(Champagne) 등 자연스럽게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연말이나 연초에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필자는 스파클링 와인이 주는 청량감 때문에 여름에 마시는 것을 더 즐기는 편이다.
스파클링 와인은 짭짤한 발효식품인 치즈와 함께 즐기기 좋은데, 모든 치즈와 다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샴페인과 페어링할 때는 샴페인의 섬세함을 가리지 않을 정도의 강도를 가진 치즈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다양한 치즈와 여러 번의 페어링을 시도한 끝에,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중적인 치즈 중에서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과 함께하기 좋은 치즈 몇 가지를 골라 보았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꽁떼, 브리, 블루, 에프와스, 견과류빵]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테트 드 무안(Tete de Moine), 에프와스, 블루, 미몰레트(Mimolette), 브리]
브리(Brie)
스파클링 와인은 발포성과 높은 산도 때문에, 대표적인 치즈 페어링으로 부드럽고 크리미한 브리 치즈를 꼽을 수 있다. 브리는 치즈에서 수분을 모두 제거했을 때 고형물에 남는 지방 함량이 60% 이상이어야 하며 모(Meaux), 믈룅(Melun) 등 프랑스의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 지방 함량이 높을수록 치즈의 풍미가 깊어지고 벨벳처럼 부드러워져 입에 넣는 즉시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입안에 코팅된 버터 맛은 스파클링 와인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한국 마트에서도 구하기 쉽고 대중적인 브리 치즈는 피자 조각 모양으로 잘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180-200도로 예열한 오븐에 15분 정도 굽고 윗껍질 부분을 제거하거나, 기름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약불로 말랑해질 때까지 앞뒤로 구운 뒤 견과류, 꿀과 함께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필자는 말랑해진 브리 치즈를 따뜻한 상태에서 크래커나 피타브레드(Pitta Bread), 바게트에 듬뿍 찍어 샴페인과 함께하는 것을 즐긴다.
꽁떼(Comté)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치즈 중 하나인 꽁떼는 스위스와 국경을 접한 프랑스 동부의 쥐라 산맥에서 저온 살균하지 않은 젖소의 우유로 만든 치즈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과 브라운버터, 헤이즐넛, 말린 과일 등의 풍부한 풍미가 특징이다. 어린 치즈일수록 과일 향이 강해서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요리용 치즈로 사용하기 좋으며, 오래 숙성된 꽁떼는 복합적인 풍미가 더해져 와인에 곁들이기 좋다. 하지만 너무 오래 숙성한 꽁떼는 샴페인의 섬세함을 가릴 수 있으므로 12-18개월 정도 숙성한 것을 추천한다.

에멘탈(Emmental)
에멘탈 치즈는 스위스 베른 주에 속한 중서부의 계곡에서 생산되며 우리가 잘 아는 퐁듀에도 많이 쓰이는 반경성(Semi-soft Cheese) 치즈다. 전통적으로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우유를 구리 주전자에 넣어 만들며 숙성기간 동안 치즈 내부에 공기 주머니를 형성하는 가스를 방출하기 때문에 구멍이 있는 게 특징이다. 에멘탈은 견과류와 약간의 버터 맛과 과일 맛, 그리고 달콤한 향이 난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reggiano)
이탈리아의 북부 지방인 파르마(Parma), 레지오 에밀리아(Reggio-Emilia), 모데나(Modena), 볼로냐(Bologna) 등에서 엄격한 규정에 따라 기른 소의 젖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경성치즈(Hard Cheese)다. 단맛과 고소한 맛이 풍부하며 감칠맛이 느껴진다. 오래 숙성할수록 짭짤해지는 경향이 있고 입에 넣고 씹으면 작은 조각으로 잘 부서진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얇게 썰지 않고 조각으로 잘라서 서빙하는데, 치즈칼을 구비하고 있다면 아몬드 모양의 칼로 자르면 된다. 스파클링 와인과 페어링하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너무 오래 숙성한 것이 아닌 12-18개월 정도 숙성한 어린 치즈를 추천한다.
그뤼에르(Gruyère)
스위스의 대표 치즈인 그뤼에르는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우유로 생산하는 치즈로, 달콤하고 고소한 풍미가 특징이다. 숙성 과정에서 껍질을 소금물로 씻기 때문에 붉은 박테리아가 생긴다. 이 껍질은 과일 풍미 발달에 크게 기여하지만 먹을 때는 제거하고 안쪽만 먹는다. 어린 그뤼에르 치즈는 크리미하고 견과류 맛이 나며, 숙성될수록 복합적인 맛이 난다. 독특한 풍미가 있지만 다른 재료의 맛을 압도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줘 퐁듀나 크로크무슈(Croque monsieur) 같은 샌드위치 요리에 많이 사용되고, 스파클링 와인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제 이 치즈들로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치즈보드를 만들어 스파클링 와인과 함께 즐길 차례다. 치즈보드를 만들 때 기억해두면 좋은 몇 가지 팁이 있다.
1. 보드에 올릴 치즈는 최소 1시간 전에 냉장고에서 꺼내 찬 기운을 제거한 후 실온이나 실온보다 약간 시원한 상태에서 먹는 것이 좋다. 차갑지 않게 먹어야 치즈의 풍미를 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 치즈보드는 미리 만들어 놓지 말고 먹기 직전에 만드는 것이 좋다. 치즈를 미리 썰어 놓으면 단면이 말라서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3. 보드에 다양한 특성의 치즈를 올리면 와인과 비교하며 테이스팅하기 좋다. 예를 들어, 크리미한 치즈를 한 가지 선택했다면 다른 치즈는 경성 치즈로 선택하는 등 비슷한 느낌보다는 다른 성질의 치즈를 선택하도록 하자.
4. 보드에 치즈를 우선 배치하고, 치즈 사이사이의 공간은 올리브, 살라미, 크래커, 말린 과일, 견과류 등으로 채우면 보기도 좋고 치즈와의 궁합도 좋다.
5. 크래커나 바게트, 피타브레드는 치즈와의 궁합뿐 아니라, 와인을 마시며 중간중간 입안을 깔끔하게 하기에도 좋다. 잊지 말고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꼭 준비하도록 하자.

멋진 치즈보드가 완성됐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잘 칠링된 스파클링 와인, 그리고 이 와인과 치즈를 함께 즐길 좋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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