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화산에서 탄생한 와인,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포르투갈 아조레스의 피코 화산]


다양한 와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화산 지역의 와인을 무척 좋아한다. 화산 폭발로 인한 분출물로 형성된 토양은 지구상에서 가장 미네랄이 풍부하고 독특한 와인을 재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화산토는 전 세계 육지 면적의 1% 미만에 불과하지만, 이 토양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모두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이런 와인에는 신선한 산미가 있고, 섬세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힘이 있으며, 특유의 미네랄 풍미, 때때로는 스모키한 풍미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화산 지대의 어떤 요소가 와인에 이런 특별함을 부여하는 걸까?


첫째, 대부분의 화산 토양은 유기물을 적게 포함해 상대적으로 비옥하지 않다. 비옥하지 않은 토양에서 자란 포도는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에 비해 수확량이 낮고 열매가 작으며 농축된 포도를 생산한다. 과실향의 농축미 외에도 구성 성분인 산도 역시 높은 편으로 볼 수 있다.

 

둘째, 화산 토양에는 다양한 미네랄이 많이 함유돼 있다. Volcanic Wines: Salt, Grit and Power의 저자인 마스터 소믈리에 존 사보(John Szabo)에 따르면, 화산 토양에는 칼슘, 마그네슘, 인, 철분 등의 미네랄이 많다. 이러한 특성은 와인에 미네랄과 부싯돌 같은 느낌, 흙과 스모키한 풍미, 날카로운 산미를 부여한다.


셋째, 화산 활동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마그마는 화산의 경사면에서 식은 후 미네랄이 풍부한 파편으로 부서져, 배수가 잘 되는 모래 재와 점토가 거의 없는 토양을 형성한다. 1921년 미국 농무부(U.S. Department of Agriculture)에서 발행한 '캘리포니아의 필록세라(The Grape Phylloxera in California)' 보고서에 따르면, 배수가 잘 되는 모래 토양에서 자란 포도나무는 필록세라(Phylloxera)에 면역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필록세라의 공격을 피해 오랫동안 살아남은 포도 나무에서 생산된 와인은 테루아를 잘 표현하며 농축된 스타일이다.


넷째, 화산토양의 대부분은 칼륨이 적게 포함돼 있다. 토양에 칼륨이 적다는 것은 생산되는 작물의 산도가 높아지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비교적 산도가 높은 포도를 생산하고 장기 숙성에도 적합한 잠재력을 가진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포도가 화산토양에서 자랐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신비감을 줄 수 있다. 실제로 화산지역 와인 중에는 화산을 여신으로 표현하거나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라벨에 표현한 경우를 꽤 볼 수 있다. 화산 지역의 와인이 무언가 특별함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주고, 이런 점이 와인의 매력을 더한다.


화산 지대 와인이 한 자리에 모인 '화산 토양 와인 테이스팅'

지난 달 뉴욕에서는 '화산 토양 와인 테이스팅'이 열렸다. 최근 몇 년간 화산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화산 와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마스터 소믈리에 존 사보의 오프닝 세션으로 시작해 그리스의 산토리니(Santorini), 사이프러스(Cyprus), 캘리포니아의 레이크 카운티(Lake County), 소노마 (Sonoma), 오스트리아의 불칸란트 슈타이어마크(Vulkanland Steiermark),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에트나(Etna) 화산 지대, 나폴리 베수비오(Vesuvio) 화산 지대, 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는 포르투갈령의 아조레스(Azores) 제도 등 전 세계의 화산 지대 와인이 모인 흥미로운 행사였다.


위에 언급한 지역 중에는 활화산이 없는 지역도 있는데, 왜 화산 지역으로 분류됐는지 궁금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모든 화산 토양이 활화산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며, 과거의 화산 활동에서도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화산이 없는 지역에서도 화산 지역 와인을 찾아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생산된 와인들이라 포도 품종도,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었지만 테이스팅을 하며 맛과 향에서 느껴지는 화산 지역 와인들만의 공통점이 있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독자들도 기억해 두면 좋을 법한 인상적인 화산 지역과 그곳에서 생산된 와인들을 소개한다.


1. 불칸란트 슈타이어마크

오스트리아의 화산 와인 지역인 불칸란트 슈타이어마크는 오스트리아의 남동쪽에 위치해 남쪽으로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불칸란트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화산 지대(Volcanic Land)를 의미하는데, 이 지역의 토양은 과거 활발한 화산 활동의 결과물로 형성됐다. 이 지역에는 작은 와이너리들이 많으며 대부분은 내수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비교적 따뜻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은 북부 지역과는 상당히 다른데, 바이스부르군더(Weissburgunder),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이 주를 이룬다. 이 지역의 따뜻한 낮과 시원한 밤의 온도 차이는 풍부한 아로마와 신선한 산도를 가진 포도를 재배하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며 화산 토양은 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에 미네랄리티와 스파이시한 노트를 부여한다.


크리스펠 와이너리(Weingut Krispel)

크리스펠의 포도밭은 모두 현무암 지대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각의 빈야드마다 석회암과 점토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토양의 특징에 따라 각기 다른 포도 품종을 재배한다. 현재는 불칸란트 슈타이어마크의 대다수 와이너리처럼 오스트리아 내수시장에 집중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로 주목받고 있어 눈여겨볼 만한 생산자다. 기회가 된다면 노이세츠 베아그 소비뇽블랑 (Neusetzberg Sauvignon Blanc)과 스트라덴 그라우부르군더(Straden Grauburgunder)를 시음해 보길 추천한다.


[크리스펠 와이너리 와인들]


2. 아조레스 제도

피쿠는 포르투갈 해안에서 1,500km가량 떨어진 대서양 중부 아조레스 제도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여러 섬 중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이곳은 어두운 화산 토양으로 인해 '일하 프레타(Ilha Preta, 검은 섬)'로 알려져 있다. 이 섬의 특징은 마치 제주도의 돌담을 연상시키는 현무암 돌담인데, 경작지를 만들 때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땅에서 먼저 현무암 돌들을 치웠고 그것으로 돌담을 쌓아 올려 강한 바람과 바다의 염분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했다. 피쿠에서는 아린토 도스 아조레스(Arinto dos Açores)라는 화이트 품종을 가장 많이 재배하며, 베르델호(Verdelho), 테란테즈 두 피쿠(Terrantez do Pico) 역시 이 지역의 주요 품종이다.   

 

아조레스 와인 컴퍼니(Azores Wine Company)

양조학자 안토니오 마사니타(António Maçanita), 경제학자 필리페 로차(Filipe Rocha), 4대째 와인을 생산하는 파울로 마차도(Paulo Machado)가 2014년 피쿠섬에 설립한 아조레스 와인 컴퍼니는 지역의 유산과 역사적인 포도 품종을 홍보하는 합작 투자 회사다. 화산 토양에서 자란 특유의 미네랄 노트, 짭조름함, 뛰어난 산도로 깔끔한 인상을 주는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며, 특히 비냐 센테나리아 브란코(Vinha Centenaria Branco), 비냐 도스 우트라스(Vinha dos Utras)를 주목할 만하다.



3. 에트나

에트나 화산은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 동쪽에 위치하는 활화산이다. 1968년 시칠리아 최초의 DOC로 지정됐으며 수많은 토착품종의 본고장이다. 이곳에서 재배하는 주요 레드 품종은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와 네렐로 카푸치오(Nerello Cappuccio)이며 주요 화이트 품종은 카리칸테(Carricante)와 카타라토(Catarratto)가 있다. 에트나는 수천 년 전부터 계속된 화산활동으로 인해 용암, 화산재, 모래가 혼합된 화산 토양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와인은 미네랄이 풍부하며, 화산의 높은 지역으로 갈수록 기온이 서늘하고 화산구름으로 인해 일조량이 적기 때문에 보다 라이트하고 섬세한 와인이 생산된다. 피에트라 돌체(Pietradolce), 비니 프란게티(Vini Franchetti) 와이너리와 타스카 달메리타(Tasca D'Almerta)의 타스칸테 와인(Tenuta Tascante)들을 주목할 만하다. 에트나 와인은 앞서 언급한 두 지역의 와인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세 생산자 외에도 기회가 있다면 테이스팅 해보길 권한다. 화산 토양 와인의 맛이란 이런 것이구나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타스카 달메리타는 2007년부터 '타스카'와 '에트나'를 합친 단어인 '타스칸테' 와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피에트라 돌체는 에트나 화산을 우아하고 강렬한 이미지의 여성으로 형상화한 라벨로, 에트나 화산이 주변 지역에 힘을 불어넣는 것을 표현했다]


화산 토양에서 생산된 와인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 지역으로의 와인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도 제주의 돌담을 연상시키는 아조레스의 검은 돌담을 곧 보러 갈 수 있기를 꿈꿔본다.  


프로필이미지김성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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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3.07.28 13:52수정 2024.04.2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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