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 밸리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프리미엄 와인 산지다. 나파 밸리 와인은 특유의 풍부함과 묵직함으로 많은 와인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와인으로 꼽히는 것이 있다. 바로 토 칼론 밭(To Kalon)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이다. 토 칼론은 나파 밸리 한중간인 오크빌(Oakville)에 자리한다. 동쪽으로는 바카(Vaca) 산맥, 서쪽으로 마야카마스(Mayacamas) 산맥 사이에 위치한 토 칼론은 토양에 돌이 많아 물이 잘 빠지고 한낮에는 강렬한 태양이 포도의 당도를 올리고 저녁에는 서늘한 안개가 포도의 산도를 지키는 최상의 포도 재배지다.
[토 칼론 포도밭의 카베르네 소비뇽 고목 (사진 제공: 나라 셀라)]
토 칼론은 그리스어로 '최상의 아름다움(The highest Beauty)'을 뜻한다. 1870년대에 이곳에 포도나무를 심은 헨리 워커 크랩(H.W. Crabb)이 밭의 활기와 생명력에 감복해 토 칼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크랩은 나파 밸리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이미 토 칼론에서 약 5만 갤런(약 19만 리터)의 와인을 생산했고, 나파 밸리 최적의 품종을 찾기 위해 무려 400종이 넘는 포도를 식재하고 실험했다. 현재 토 칼론 밭의 면적은 총 500에이커(약 2 km2)다. 미국의 대형 주류 그룹인 콘스텔레이션 브랜드(Constellation Brands)가 그중 446에이커를 소유하며 가장 큰 면적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54에이커는 오퍼스 원, 벡스토퍼, UC Davis 대학 등의 소유다. 콘스텔레이션 브랜드는 이 아름다운 밭에서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슈레이더 셀라스(Schrader Cellars), 토 칼론 빈야드 컴퍼니(To Kalon Vineyard Company)라는 걸출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중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와인은 토 칼론 빈야드 컴퍼니다. 이 와인을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미국 컬트 와인의 거장 앤디 에릭슨(Andy Erikson)이기 때문이다.
[토 칼론 포도밭에 서있는 앤디 에릭슨 (사진 제공: 나라 셀라)]
에릭슨은 폴 홉스, 존 콩스가드, 미셸 롤랑 등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부터 와인을 배웠고, 와인 양조학으로 석사를 취득한 뒤에는 할란 에스테이트와 스태글린 빈야드 등에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와인은 스크리밍 이글(Screaing Eagle)이었다. 포도 재배가인 아내와 함께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에릭슨은 나파 밸리 최고의 컬트 와인 스크리밍 이글의 자문을 맡게 됐는데, 잠시 주춤했던 그 와인이 에릭슨의 손을 거치자 다시 100점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그는 무수히 많은 100점 와인을 탄생시켰고, 2016년에는 마침내 토 칼론 빈야드 컴퍼니와 손을 잡으며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토 칼론은 에릭슨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는 밭이다. 30년 전 그가 UC 데이비스(UC Davis)에서 공부할 때 토 칼론 밭과 이미 인연을 맺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에 맛본 토 칼론의 와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토 칼론과 앤디 에릭슨이 만나 탄생시킨 토 칼론 빈야드 컴퍼니의 와인 3종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와인 맛은 과연 어떨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수입사인 나라셀라가 마련한 시음회에 참석했다. 시음한 3종은 모두 나파 밸리의 굿 빈티지라 평가 받는 2018년산이었다. 2월에는 비가 충분히 내려 땅을 촉촉히 적셨고 봄에는 적당한 온기와 햇빛이 개화와 착과를 도왔다. 수확철인 10월 초에도 약간의 비와 온화한 바람이 포도의 완숙을 가능케 해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한 해였다.
[토 칼론 빈야드 컴퍼니의 엘리자스 레드 (사진 제공: 김상미)]
엘리자스 레드 Eliza's Red 2018
엘리자스 레드는 2018년에 첫 출시된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59%와 카베르네 프랑 41%가 블렌드 된 이 와인은 100% 새 프렌치 오크에서 14개월간 숙성을 거쳤다. 엘리자라는 이름은 나파 밸리에 맨 처음 포도나무를 심은 조지 욘트(George Yount)의 아내에게서 따온 것이다. 조지 욘트는 나파 밸리의 욘트빌(Yountville)을 설립한 인물로 초창기 나파 밸리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엘리자는 토 칼론 밭 한 켠을 소유한 적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 엘리자스 레드에 들어가는 카베르네 프랑이 재배되는 곳이다. 엘리자스 레드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베르네 프랑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깊고 풍부한 과일향과 함께 바디감과 구조감을 담당한다면, 카베르네 프랑은 이 와인에 화사한 꽃 향과 향신료 향을 부여한다. 와인의 맛을 보면 자두와 체리 등 잘 익은 과일향이 풍성하고 감초, 정향, 후추 등의 풍미가 향긋하다. 달콤한 과일향과 산뜻한 신맛의 밸런스가 뛰어나며 질감이 매끈하고 여운에서는 삼나무 향이 은은하게 감돈다. 시음회를 주최한 나라셀라 측에 물으니 따로 디캔팅은 하지 않았고 한 시간 반 전에 코르크만 열어두었다고 한다. 감미롭고 화사한 스타일의 레드 와인을 찾는다면 엘리자스 레드가 딱 맞는 스타일이다.
[토 칼론 빈야드 컴퍼니의 하이스트 뷰티 (사진: 김상미)]
하이스트 뷰티 카베르네 소비뇽 Highest Beauty Cabernet Sauvignon 2018
'하이스트 뷰티(Highest Beauty)'는 와이너리의 이름인 토 칼론을 영어식으로 풀이한 것이다. 2016년 첫 출시된 카베르네 소비뇽 단일 품종 와인이다.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포도는 기온이 서늘한 밤에 수확했으며 우수한 포도알만 골라 만들었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발효를 느리게 진행했고 새 프랑스산 오크 배럴에서 20개월간 숙성을 거쳤다. 이름처럼 이 와인은 토 칼론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의 순수함, 강인함, 복합미를 잘 보여준다. 타닌이 부드럽고 구조감이 탄탄하며 달콤하고 신선한 자두와 체리 등 검은 과일향이 가득하다. 다크초콜릿과 감초 같은 향신료 향이 복합미를 더하고 입안을 기분 좋게 잡아주는 타닌의 매끈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강건하면서도 우아한 카베르네 소비뇽의 모범 답안 같은 와인이다.
[토 칼론 빈야드 컴퍼니의 H.W.C 카베르네 소비뇽 (사진: 김상미)]
H.W.C 카베르네 소비뇽 H.W.C Cabernet Sauvignon 2018
토 칼론이라는 멋진 이름을 나파 밸리 최고의 밭에 선사한 헨리 워커 크랩(H.W. Crabb)의 이름을 딴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중에서도 헤리티지(Heritage)라는 클론 100%로 만들었다. 헤리티지 클론은 토 칼론의 매력에 흠뻑 빠진 로버트 몬다비가 1960년대에 처음 심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한 종류다. 헤리티지 클론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기 위해 토 칼론 빈야드 컴퍼니는 포도나무 한 그루당 수확량을 극도로 제한했고 프랑스산 새 오크 배럴에서 24개월간 숙성을 거쳐 타닌의 완전한 숙성을 추구했다. 그 결과 깊고 진한 색상과 탁월한 풍미 집중도 등 여타 카베르네 소비뇽과는 확연히 다른 와인이 탄생했다. 맛을 보면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의 농밀함에 가장 먼저 놀란다. 검은 베리류의 과일향에서 피어나는 감미로움이 신선한 산미와 결합해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고 적당한 바디감과 탄탄한 질감은 긴 여운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향신료 향과 함께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이제껏 맛보지 못한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와인 애호가라면 어느 누구라도 이 와인의 매력을 거부하지 못할 듯 싶다.
지난 1월 토 칼론 포도밭은 'California Certified Organic Farmers(CCOF)'로부터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이전부터 유기농으로 포도를 재배해 왔지만 재생 에너지의 사용, 토양과 수자원 보호 등 CCOF의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하기까지 수년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엘리자스 레드, 하이스트 뷰티, H.W.C 카베르네 소비뇽 중 어느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묻는 수입사의 질문에 선뜻 답을 못했다. 그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든 와인이 각기 다른 개성과 뛰어난 품질을 보여주었는데, 완벽하게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2023년 빈티지부터는 얼마나 더 훌륭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감에 마음이 설렌다. 가격대가 상당한 만큼 자주 접하기는 힘들지만 고이 간직했다 좋은 날에 연다면 기념하는 그 순간을 한층 더 빛내줄 와인이다. 이름처럼 더없이 아름다운 토 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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