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 분야에서 연말 결산을 하며 한 해를 정리하는 이 시기에 와인21 기자들도 2023년 경험한 와인들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팬데믹 기간의 갈증을 해소하듯 그 어느 때보다 와인 행사가 많았던 올해는 새로운 와인을 접할 기회가 이어졌고, 와인21 기자들도 그만큼 바쁜 한 해를 보냈습니다. 며칠 간격으로 다시 비행기에 오르며 세계 곳곳의 와인 생산지역을 방문한 기자도 있었고, 국내에서 열리는 대형 와인 행사를 빠짐없이 취재하며 보다 빠르게 와인 트렌드를 살펴본 기자도 있었습니다.
바쁜 만큼 풍성했던 그 경험은 '와인21 기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와인'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올해 만난 수많은 와인 중 단 한 가지의 와인을 선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더 꼼꼼하게 한 해의 와인 경험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조지아 와인이 선정 리스트에 올랐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와인들을 위주로 선정했지만 이 리스트만 봐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와인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격과 잠재력 등을 고려해 차세대 아이콘을 주목하거나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시점에 유망한 생산 지역을 고려한 선정도 눈에 띕니다. 또한 동일한 와인이 작년과 올해 다른 기자의 선택을 통해 리스트에 반복해 오르기도 했고, 기존의 인식을 뛰어넘어 색다른 시각을 가지게 해준 특별한 와인도 있습니다. 선정된 와인들은 이미 잘 알려진 와인이든 처음 접하는 새로운 와인이든 여러 가지 이유로 와인21 기자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내년에도 올해만큼, 혹은 올해보다 더 알찬 와인 경험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김상미 칼럼니스트
바지수바니 에스테이트, 3 크베브리 Vazisubani Estate, 3 Qvevri 2021
조지아 와인에서는 다른 동유럽 국가와 달리 애잔함이 느껴져 마음에 오래 남는다. 바지수바니 에스테이트의 3 크베브리는 조지아 토착 품종인 므츠바네(Mtsvane) 55%에 키시(Kisi) 38%, 키흐비(Khikhvi) 7%가 블렌드된 와인이다. 이 포도들로 만든 단일 품종 와인도 많지만 세 가지 품종이 섞이니 더 조화롭고 풍성한 맛이 난다. 게다가 크베브리에서 발효하고 숙성한 와인이어서 오렌지빛 색상에 탄탄한 질감이 압권이다. 맛은 드라이하지만 말린 살구 같은 과일향과 꿀향이 코를 사로잡고 녹차 같은 허브 향이 향긋함을 더한다.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고 특히 한식과 잘 맞는 것이 매력 포인트다. 크베브리 와인의 매력에 빠지면 일반 화이트 와인이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지는 부작용이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김윤석 기자
줄리앙 수니에 레니에 Julien Sunier, Regnie 2021
보졸레 지역에서 생산된 내추럴 와인이다. 처음 코르크를 오픈했을 때부터 향긋한 꽃향기와 영롱한 붉은 베리 풍미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입안에서의 매끄러운 질감을 타고 흐르는 붉은 과일 풍미 또한 얼마나 훌륭하던지... 마치 꿈결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맛은 가볍고 산뜻한데 여운은 상당히 길게 남는 매력적인 와인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숙성용 오크를 샹볼 뮈지니를 대표하는 도멘 조르주 후미에에서 가져와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보졸레 와인이라면 부르고뉴의 대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지하게 마셔야 할 와인이 아닌가 싶다.

남윤명 기자
바타시올로, 바롤로 '체레퀴오' Batasiolo, Barolo 'Cerequio' 2009
이탈리아 바롤로 지역의 명가 바타시올로의 와인으로, 바롤로 로에로 지역의 최상급 5개 크뤼 중 하나인 체레퀴오에서 생산한 네비올로로 양조한 와인이다. 여리여리한 색과 은은하고 풍부한 꽃향기, 그리고 입자가 고운 타닌 등이 아주 잘 익은 바롤로 그 자체였다. 꽃은 봉우리가 크지 않고, 가지에 몽글몽글하게 피는 매화가 떠올랐다. 향이 은은하고 풍미가 상당히 깊어서 애환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노래 중에 찔레꽃을 다룬 노래가 많은데 삶의 애환을 노래한 찔레꽃이란 노래가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이 와인과 함께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손으로 집어 조금씩 베어 먹으니 페어링이 최고였다. 마음 한 켠을 뜨뜻하게 만들어 주는 와인이다.

박진용 기자
로스 바스코스, 르 디스 Los Vacsoc, Le Dix 2017
인플레이션과 함께 전 세계 와인 가격 상승이 멈출 줄 모르는 요즘이다. 칠레를 대표하는 알마비바, 돈멜초, 세냐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의 칠레 아이콘이 될 만한 와인을 찾고 있고, 이 와인을 마셨을 때 그 주인공이 될 거라는 확신을 했다. 물론 그들과 스타일이 비슷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훌륭한 산미와 은은하게 잘 어우러지는 오크의 균형이 완벽하다. 박스째 쟁여 놓고 시간이 지나면서 보여주는 변화를 즐겨보고 싶은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 품종으로 사용하고 약간의 시라가 블렌딩됐다.

안미영 편집장
센시즈 엘 디아블로 샤도네이 Senses UV El Diablo Chardonnay 2020
모든 창작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진정성이 느껴진다. 올해 한국에 새롭게 소개된 브랜드 중에서도 센시즈는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와인을 통해 자신들이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고,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소노마 카운티의 옥시덴탈(Occidental)에서 자란 세 친구가 설립한 와이너리엔 와인메이커 토마스 리버스 브라운(Thomas Rivers Brown)의 손길이 더해졌다. 작은 지역의 테루아를 보여주는 여러 와인들을 출시했는데, 러시안 리버 밸리의 엘 디아블로 빈야드에서 생산한 이 와인은 뚜렷한 열대과일 아로마에 적당한 바디감, 오래 이어지는 여운으로 미국 프리미엄 샤도네이의 저력을 보여준다.

유민준 기자
데 마르티노, 비에하스 티나하스 쌩소 De Martino Viejas Tinajas Cinsault 2018
'오래된 항아리'라는 이름의 이 와인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쌩소 와인이 아니었다. 건조하고 험난한 칠레 이타타 밸리(Itata Valley)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 고목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척 복잡하면서도 심오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암포라에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숙성해 쌩소 품종 자체의 붉은 과실향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끝없이 흘러나오는 놀라운 향을 맡으며 칠레, 그리고 쌩소라는 품종에 대하여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그리고 와인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 심오한지 한참을 생각하게 한 와인이었다. 참고로 <디캔터(Decanter)>에서도 이 와인을 세계 최고의 쌩소 와인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당신의 와인 경험을 한 차원 넓혀줄 보물과 같은 와인이다.

이승주 기자
샤토 마르소 Chateau Marsau 2016
상대적으로 어린 빈티지의 보르도 와인은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평소 즐기는 일이 드문 편이다. 그런데 샤토 마르소는 '요즘 보르도 와인의 스타일은 어려도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몸소 체험하게 해준 와인이다. 처음 향을 맡자마자 과실향이 기분 좋게 퍼지며 마지막에 나타나는 약간의 검은 과실의 풍미가 코를 자극한다. 입 안에서는 상당히 고운 타닌이 잔잔하게 춤을 추고, 무엇보다 마지막을 잡아주는 우아한 산미가 한모금 더 마시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와인이다.

정수지 기자
하우스 오브 카드, 킹 휘자드 앤 더 위자드 리자드 펫낫 소비뇽 블랑 House of Cards, King Fizzard and The Wizard Lizard Pet-Nat Sauvignon Blanc 2022
호주 와인 전체 생산량의 2%를 생산하는 서호주에서 마가렛 리버는 작지만 세계적 명성의 와이너리들이 즐비한 산지다. 보르도 블렌드 와인이 잘 되며 화이트 와인 중에는 소비뇽 블랑이 유명하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빚는 일이 마치 손에 카드를 쥐고 도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데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다. 와인 이름은 호주 록 밴드 킹 기자드 앤 더 리자드 위자드(King Gizzard and the Lizard Wizard)를 변형한 것. 천연 스파클링 와인으로 야생효모로 발효 중인 와인을 바로 병에 담았다. 효모 찌꺼기가 있어 약간 뿌옇지만 보기와 달리 아주 청아하고 개운한 맛이다. 패션프루트, 라임, 다양한 열대과실, 셔벗 향과 풍미가 특징이며 잔잔한 기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이어진다. 모든 근심을 뒤로하고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정말 좋은 와인이다. 마시는 순간 두 눈이 확 커지는 사람들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휘웅 칼럼니스트
구스타브 로렌츠, 리슬링 그랑 크뤼 알텐베르그 드 베르그하임 Gustave Lorentz, Riesling Grand Cru Altenberg de Bergheim 2018
한 해 마셔본 약 500종의 와인 중에 여러 멋진 와인들이 있었으나 올해의 와인으로는 이 와인을 꼽고 싶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상황에 전도유망한 지역 중 하나가 알자스라 생각한다. 특히 이 지역의 화이트는 저평가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구스타프 로렌츠는 품질과 향후 발전 가능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좋은 포도밭, 걸맞은 생산 인프라, 끊임없는 품질 개선 노력이 돋보이는 생산자다. 알자스의 화이트 와인은 등급이 높아져도 바디감 강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욱 섬세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 와인은 은은함과 관조적인 산미감이 많이 느껴지고 숙성잠재력도 대단하다. 마치 작년에 생산된 것 같은 색상과 청아한 느낌은 여전히 더 오래 숙성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지금 마시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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