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파뉴에서 와인메이커는 셰프 드 까브(Chef de Caves), 혹은 셀러 마스터(Cellar Master)라고 불린다. '와인 저장소의 보스'라는 뜻으로(프랑스어로 '셰프'는 요리사가 아닌 우두머리를 뜻한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셰프 드 카브는 연륜 있는 남성이 담당해 오고 있다. 하지만 1808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샴페인 하우스 앙리오(Henriot)에서는 2020년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여성 와인메이커 알리스 테티엔(Alice Tétienne)을 앙리오 역사상 8번째 셀러 마스터로 선정했다.
[앙리오의 셀러 마스터, 알리스 테티엔 (사진제공: 나라셀라)]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이었지만, 알고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샹파뉴에서 태어난 알리스는 이미 크룩(Krug)과 니콜라스 푸이야트(Nicolas Feuillatte)에서 경력을 쌓았고, 2020년에는 트로피 쌍프누아(Trophées Champenois)가 수여하는 '올해의 최고 와인메이커(Best Winemaker of the Year)'상을 수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샴페인 하우스 앙리오는 설립자도 여성인 아폴린 앙리오(Apolline Henriot)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앙리오의 설립자 아폴린와 셀러 마스터 알리스가 모두 여성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앙리오의 역사와 알리스 모두 샴페인의 '테루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5월 23일, 와인 복합문화공간 도운에서 알리스 테티엔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앙리오가 만드는 샴페인에 어떤 특별함이 있는지, 그리고 셀러 마스터가 현재 샹파뉴에서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둘의 멋진 하모니에 대해 소개한다.
[앙리오 샴페인 하우스 (사진제공: 나라셀라)]
2020년에 셀러 마스터가 된 후 4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앙리오는 2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샴페인 하우스입니다. 매우 오랜 전통과 역사가 있죠. 따라서 많은 것들을 빨리 배워야 했습니다. 셀러 마스터는 샴페인 하우스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요. 매우 오랜 빈티지부터 수많은 와인을 테이스팅했고, 앙리오의 명성을 잇는 고품질의 샴페인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새로운 셀러 마스터로서 추구하는 방향성도 있을 텐데요, 이전 셀러 마스터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와인메이커가 되기 전에 포도 재배를 공부했고 테루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포도밭을 보다 작은 구획으로 나누고 각 구획의 특성에 따라 더 정밀한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할 수 있도록 변화를 줬습니다. 양조할 때도 더 작은 탱크를 사용해 세부 테루아에 따라 진행하죠. 앙리오에서는 2016년 단일 빈티지, 단일 포도밭의 포도로 리너떵듀(L'inattendue)를 출시했는데, 이러한 테루아 퀴베에도 집중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테루아를 기본으로 하는 포도 재배와 양조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앞으로도 더 중점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앙리오에 합류하자마자 '알리언스 테루아(Alliance Terroirs)' 프로젝트를 시작하셨어요. 이 프로젝트가 방금 말씀하신 것과 관련이 있나요?
맞아요. 사실 앙리오에서 아주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새롭게 이름을 붙이고 더 체계적으로 시작했어요. 고품질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주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해답은 테루아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있어요. 토양 구성, 유기농 물질의 양, 병충해 정도, 포도나무의 생육 속도 등의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포도밭 구획마다 다른 농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포도에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줄 수 있어야 더 높은 품질의 포도를 생산할 수 있죠.
2020년에는 대규모 연구실을 열고 앙리오 소유의 포도밭뿐 아니라 파트너 포도 재배자들의 포도밭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백 개의 패치를 전부 조사했죠. 특히 포도나무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매년 분석하는데,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분석한 것을 토대로 구획마다 포도 재배 기법을 다르게 적용합니다. 결정을 내리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하고, 연구 결과를 실제로 매일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균형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에요. 다양한 꽃과 식물을 심고 벌도 키우고 장미도 많이 심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구 결과를 모든 샹파뉴 사람들과 공유합니다. 샹파뉴 지역이 함께 발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알리언스 떼루아 프로젝트는 샹파뉴의 포도밭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샴페인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진제공: 나라셀라)]
셀러 마스터는 주로 와인을 양조하고 블렌딩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포도 재배에도 많이 관여하시는 듯합니다. 일반적으로 셀러 마스터의 역할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샴페인 하우스마다 다를 거예요. 앙리오에서는 역사적으로 셀러 마스터가 포도밭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왔어요. 제가 앙리오에 도착한 날 처음 배운 문장이 있어요. 앙리오의 와인 철학을 요약하는 문장이었죠. “The wine is written in the vine”. 아폴린이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했을 때, 그녀는 샴페인을 통해 자신의 땅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앙리오의 모든 와인은 테루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니, 이전 모든 셀러 마스터들에게도 포도밭 관리에 대한 책임이 있었죠. 초창기부터 포도밭에 대한 프로필을 만들어 왔어요. 저는 이 전통을 계승하면서 더욱 발전시키고 샹파뉴 전체와 공유하는 형태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앙리오가 출시하는 샴페인들은 모두 포도밭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앙리오를 대표하는 수버랭(Souverain)은 앙리오가 소유한 모든 크뤼(29개)의 포도를 블렌딩해요. 그리고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은 앙리오가 소유한 모든 화이트 품종 크뤼(12개)의 포도를 사용하죠. 퀴베 에메라(Cuvée Hemera)는 1808년 설립 당시 가지고 있던 3개의 그랑 크뤼, 그리고 1880년 4세대 소유주 폴 앙리오가 꼬뜨 드 블랑 출신의 여성과 결혼하면서 얻은 3개의 그랑 크뤼, 총 6개의 역사적인 크뤼를 이용해 만듭니다. 리너떵듀 2016은 아비즈(Aviz)의 포도만으로 생산하고요. 앙리오의 모든 샴페인들은 샴페인 하우스의 스토리와 연결돼 있죠.
[앙리오의 와인들. 왼쪽부터 로제, 퀴베 에메라 2006, 밀레짐 2012, 블랑 드 블랑, 브뤼 수버랭]
퀴베 에메라를 만드는 6개 크뤼는 모두 최고의 그랑 크뤼로 손꼽히는 곳들이에요. 각 포도밭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앙리오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밭은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 3개의 피노 누아 그랑 크뤼예요. 먼저 마이-샴페인(Mailly-Champagne)은 가장 강한 포도가 생산됩니다. 매우 표현력이 강하고 거친 느낌이 있죠. 베르제네이(Verzenay)에는 디테일이 살아있어요. 우아함도 느껴집니다. 베르지(Verzy)는 구조를 담당해요. 와인에 굳건한 토대를 만들죠. 다음으로 3개의 샤도네이 크뤼는 꼬뜨 데 블랑(Côte des Blancs)에 있습니다. 슈이(Chouilly)의 샤도네이는 이국적이고 파인애플, 바닐라 같은 풍부함이 있어요. 아비즈(Avize)는 신선함과 텐션이 있고, 쾌활하며 미네랄리티도 풍부합니다. 마지막 르 메닐-쉬르-오제(Le Mesnil-sur-Oger)의 포도는 흰 과실 풍미와 우아함으로 인해 와인에 빛을 더하죠.
에메라는 매년 똑같은 그랑 크뤼 포도를 사용하고, 항상 레시피가 동일합니다. 크뤼의 모든 캐릭터가 함께 모여 복합성을 주죠. 하지만 각 포도밭마다 표현력에 차이가 있어요. 저는 매년 같은 크기지만 그 안에 다른 목소리가 울러 펴지는 합창처럼 들려요. 2006 에메라는 매우 우아하고 섬세한 반면, 2013 에메라는 강도가 세고 아비즈의 신선함도 더욱 날카롭게 표현됩니다. 품질이 일정 기준이 넘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는 앙리오의 역사를 상징하는 샴페인이죠.
마지막으로 '샴페인(champagne)'이라는 와인과 '샹파뉴(champagne)'라는 지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샴페인은 '축하'의 의미가 있고, 슬플 때 샴페인을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죠. 샴페인은 사람들을 더 웃게 만들고 그 안에는 테루아로 만들어지는 퀄리티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샴페인을 마시면서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고 샴페인 안에서 감정과 품질을 느끼기를 원해요. 즐거움, 품질, 공유, 테루아가 녹아 있는 와인이 샴페인이에요.
샹파뉴 지역은 초크 토양이라는 특별한 테루아가 있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테루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토양, 경사, 일조량 등에 따라 적어도 7천 개의 플롯으로 나눌 수 있어요. 많은 다양성이 있지만 아펠라시옹은 '샹파뉴' 하나입니다. 이곳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각자가 모두 다르지만 샴페인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앙리오의 셀러 마스터, 알리스 테티엔]
앙리오가 젊은 여성 와인메이커 알리스 테티엔을 셀러 마스터로 선정한 것은 샴페인에 대한 그의 포부와 샹파뉴 지역에 대한 사랑을 알아봤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그의 손에서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앙리오 샴페인의 멋진 미래를 기대해 본다.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