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스(Montes)'라는 이름은 한국 와인업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내에서 와인 대중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전인 20세기 말부터 소비자들은 몬테스 알파(Montes Alpha) 같은 이름을 기억했고, 몬테스 와인은 작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1,500만 병 이상 판매됐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와인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2002년 월드컵 조 추첨 행사나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와인으로 사용됐고, 칠레 대통령이 국빈 방문 시 만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와인도 몬테스다.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한 이름인 몬테스는 회장인 아우렐리오 몬테스(Aurelio Montes)의 성을 따서 지어졌다. 그렇다고 그가 홀로 와이너리를 설립한 것은 아니다. 총 4명의 설립자가 힘을 모아 설립했고, 거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5번째 파트너도 있다. 몬테스에는 어떤 스토리가 숨겨져 있을까? 최근 한국을 찾은 아우렐리오 회장을 만나 비냐 몬테스(Viña Montes)의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4명의 설립자를 소개하는 아우렐리오 회장]
“1988년, 저는 운두라가와 산 페드로에서 15년간 와인메이커로 재직 중이었어요. 그런데 산 페드로가 다른 회사에 매각되면서 와인메이커들이 전부 해고됐습니다. 갑자기 직장을 잃고 말았죠. 하지만 저는 칠레에서 수출용 고품질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오랜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3명의 파트너와 함께 와이너리를 세우기로 결심했죠. 더글러스 머레이(Douglas Murray)는 마케팅 전문가, 알프레도 비다우레(Alfredo Vidaurre)는 유명한 경제학자로 재무를 담당했고, 페드로 그란드(Pedro Grand)는 엔지니어로 와인 양조 설비를 다루는 기술이 탁월했습니다.”
와이너리 설립 후, 가장 먼저 각 포도 품종에 적합한 땅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칠레에서는 한 농장에서 과일이나 야채 등을 함께 재배하곤 했다. 포도도 모든 품종을 같은 과수원에 심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고품질 와인을 만들 수 없었다.
“저는 비행기 조종사이기도 합니다. 칠레 전역을 날아다니면서 포도를 심기 좋은 땅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반달 모양의 계곡을 발견했어요. 뒤로는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죠. 레드 품종을 심기에 완벽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무만 무성하던 곳에 포도밭을 조성하고 와인을 만들었어요. 이곳이 아팔타(Apalta)입니다. 지금은 칠레에서 가장 비싼 포도밭 중 하나가 됐죠.”
[몬테스에서 처음으로 개간한 아팔타 빈야드. 세계 최고의 포도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진제공: 나라셀라)]
아팔타의 위치를 보면 '배산임수'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사실 몬테스는 양조장도 풍수사상을 이용해 건설했다. 와이너리의 입구로 물이 흐르고 중앙에는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분수가 있다. 오크 배럴 800개가 저장된 배럴룸에는 일년 내내 그레고리안 성가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가 정말 와인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와인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예요. 음악이 흐르는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은 더욱 일을 잘 할 수 있죠. 심리적으로 안정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고품질 와인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죠.”
성가가 흘러나오는 배럴룸은 몬테스의 천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몬테스 와인 레이블 곳곳에서 천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와인의 이름도 보라색 천사(Purple Angel)가 아닌가?
“몬테스에는 4명의 창업자 외에도 한 명의 파트너가 더 있습니다. 바로 천사입니다. 창업자 중 한 명인 더글러스 머레이가 큰 자동차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그때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 뒤로 우리는 천사를 5번째 파트너로 생각하고 모든 와인에 천사의 모습을 새기고 있습니다.”
[몬테스 천사가 가장 좋아하는 배럴룸 (사진제공: 나라셀라)]
비냐 몬테스는 칠레 전역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지만 네 곳의 빈야드가 특히 더 중요하다. 먼저 사파야(Zapallar) 빈야드는 해안에서 11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선선한 곳으로 이곳 역시 황무지를 개척해 포도밭을 조성했다. 현재는 아콩카구아 코스타(Aconcagua Costa) DO로 불린다. 소비뇽 블랑과 샤도네이 같은 화이트 품종을 주로 키운다.
두 번째는 콜차구아 밸리(Cholchagua Valley) 안에 위치한 아팔타로, 앞서 언급한 대로 몬테스에서 처음으로 발굴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곳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환경에 토양 구성 또한 다양해 여러 레드 품종이 훌륭하게 자란다. 세 번째는 마르치구에(Marchigüe) 빈야드로 콜차구아 밸리 안에서도 해안과 가까워 화이트 품종과 레드 품종을 모두 재배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특별히 더욱 자연적인 농법을 추구하며 양과 라마들이 뛰어놀기도 한다.
마지막은 수도 산티아고 부근에서 무려 1,200km 남쪽으로 내려간 파타고니아(Patagonia) 지역, 메추쿠에(Mechuque)라는 작은 섬에 조성한 곳으로 몬테스의 도전정신을 한껏 엿볼 수 있는 포도밭이다. 이곳에서는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데 첫 빈티지가 올해 말 혹은 내년 상반기에 출시될 예정이다. 아우렐리오 회장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남쪽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굉장히 신선하고 즐거움을 주는 와인”이라고 소개했다.
[라마들이 뛰어노는 몬테스 빈야드 (사진제공: 나라셀라)]
아우렐리오 회장과 함께 소비뇽 블랑과 4종의 아이콘 와인을 시음했다. 특별히 10년이 넘게 숙성된 레드 와인들을 선보여 몬테스 와인의 숙성 잠재력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몬테스 알파 소비뇽 블랑(Montes Alpha Sauvignon Blanc) 2023
몬테스는 최근 몬테스 알파 소비뇽 블랑을 새롭게 출시했다. 앞서 소개한 사파야 빈야드와 이보다 더 해안과 가까운 레이다(Leyda) 빈야드의 포도로 생산했다. 무엇보다 신선한 과실 향과 은은하게 흐르는 허브 뉘앙스가 기분 좋은데, 맛은 생각보다 날카롭지 않으면서 풍부하다. 오크를 사용하지 않아 다양한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와인이지만 와인 자체의 풍미와 균형감도 훌륭해 와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몬테스 퍼플 엔젤(Montes Purple Angel) 2008
와인 이름에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보랏빛 와인 위로는 블루베리의 진한 향이 흐르고, 시간이 만들어낸 말린 무화과, 올리브, 고급 담배 향 등이 피어오른다. 아팔타와 마르치구에 빈야드에서 자라는 까르메네르 92%, 쁘띠 베르도 8%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매우 잘 익은 과실이 선사하는 향과 풍미가 폭발적이면서도 무척 우아하다. 까르메네르가 왜 칠레를 대표하는 포도 품종일까? 이 와인을 마시면 바로 느낄 수 있다.
몬테스 알파 엠(Montes Alpha M) 2010
공동 창업자 더글러스 머레이의 성에서 따온 'M'은 칠레를 대표하는 보르도 블렌딩 와인이다. 라즈베리, 자두 등의 붉은 과실향 아래로 가죽과 시가박스, 양념통을 연 듯한 다양한 향신료 향이 한껏 발전했다. 타닌도 한결 부드러워 마시기도 무척 편하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80% 이상 포함된 보르도 블렌딩이지만, 무겁지 않고 균형감이 무척 좋다. 우아한 보르도 블렌딩의 미학을 여실히 보여준다.
몬테스 폴리(Montes Folly) 2010
몬테스에서 아팔타 빈야드를 개간하기 전까지는 칠레에서는 대부분 농사짓기 쉬운 평평한 땅에 포도를 키우곤 했다. 45도 경사의 산 중턱에 시라를 심었을 때, 사람들은 다들 바보 같다(folly)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몬테스 폴리는 이제는 칠레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와인이 됐다. 매우 진한 향신료와 함께 농축된 검은 과일 풍미가 가득하고 비범한 와인이다. 14년이 지나도 아직도 짱짱하다. 놀라운 숙성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몬테스 뮤즈(Montes Muse) 2019
몬테스의 새로운 아이콘 와인으로 2019년이 첫 빈티지다. 마이포 밸리(Maipo Valley)는 아우렐리오 회장이 처음 와인메이커로 일했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으로, 뮤즈는 마이포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100%으로 만들었다. 은은한 허브 뉘앙스와 레드베리류의 과일 향을 담고 있는데, 맛은 놀랄 만큼 달콤한 풍미가 가득하다. 뮤즈라는 이름은 아우렐리오의 인생에 영향을 준 모든 여성(할머니, 어머니, 아내, 딸, 손녀들)을 기리는 의미다. 그만큼 우아하고 매력적이다.
[레이블에 천사들이 있는 몬테스 와인 5종]
몬테스는 4명의 파트너(+천사)가 힘을 모아 설립했다. 그런데 어떻게 와이너리 이름을 아우렐리오의 성으로 지을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그는 이름을 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4명이 모여 와이너리 이름을 고민했죠. 우리는 칠레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모였는데, 먼저 그란드(Grand)는 프랑스식 이름이었어요. 그리고 머레이(Murray)는 스코틀랜드 성이었고요. 비다우레(Vidaurre)는 스페인 성이긴 했지만,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힘들었죠. 몬테스(Montes)는 스페인 성이기도 하고 발음하기도 쉬웠어요. 그리고 몬테스는 '산'이라는 뜻인데 칠레에는 어디에나 산이나 언덕이 있잖아요. 포도를 산자락에 심기도 했고, 와인메이커의 이름이기도 하니 여러 가지가 잘 맞았어요. 다른 파트너들도 관대하게 와이너리 이름을 몬테스로 정하는데 모두 동의했죠. 저는 운이 좋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 와이너리에 강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비냐 몬테스의 아우렐리오 몬테스 회장]
'산'은 높고 멋지지만 그만큼 오르기 어렵다. 몬테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보내온 시간도 온갖 도전으로 가득했다. 지금도 파타고니아의 섬을 개간해 와인을 만드는 등, 몬테스의 도전정신은 끝이 없는 듯하다. 몬테스는 앞으로 또 어떤 새로움과 훌륭함을 보여줄까? 뮤즈와 몬테스 알파 소비뇽 블랑에 이어 곧 선보일 파타고니아 스파클링 와인도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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