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순수한 예술적 감성으로 느끼는 샴페인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샴페인 하우스 크룩(Krug)의 전통과 혁신을 이어가는 6세대 디렉터, 올리비에 크룩(Olivier Krug)를 만나 그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크룩 샴페인은 조셉 크룩(Joseph Krug)이 1843년 설립한 이후 가문 경영을 고수해오고 있다. 1999년 LVMH 그룹에 인수됐지만 크룩은 여전히 독립적인 운영을 유지하며 가문의 후손들이 하우스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샴페인 하우스 크룩의 6세대 디렉터, 올리비에 크룩]


올리비에 크룩은 그의 아버지와 삼촌 레미 크룩(Remi Krug)에게 2009년 대표직을 물려받았고, 크룩 가문의 전통과 혁신적인 마케팅을 결합해 크룩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 실제로 만나본 그는 열정적이고 순수한 예술가형 사업가였다. 그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크룩 그랑 뀌베(Krug Grand Cuvee) 172번째 에디션을 마치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듯이 설명했다. 그에게 크룩 빈티지 샴페인은 소수 정예의 뮤지션이 선보이는 올해의 음악과 같고, 그랑 뀌베는 전체 오케스트라와 같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랑 뀌베는 크룩의 진정한 하우스 철학이 가장 잘 반영된 라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랑 뀌베에 대한 질문을 하다가 '넌빈티지'(Non-vintage)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그는 난색을 표하며 자신은 '넌빈티지' 혹은 '멀티빈티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그랑 뀌베는 매년 동일한 제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빈티지를 마구 섞는 개념보다는 매년 신중히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하는 예술 작업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크룩의 셀러 마스터 줄리 카빌(Julie Cavil)과 그녀의 시음위원회가 매일같이 15종의 베이스 와인을 블라인드 시음한다고 강조했다. 매일 오전 11시 같은 장소에 모여 무작위로 선정된 15종의 베이스 와인을 시음하는데 이렇게 만든 테이스팅 노트는 매년 4000-5000개의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된다. 반복해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을 선발하는 대장정의 오디션을 치르는 셈이다. 이렇게 선발된 400여 개의 샘플은 매년 3월 마지막주에 시음실에 모여 최종 오디션을 거쳐 블렌드에 포함된다.


“매년 그랑 뀌베 에디션을 선보이는 작업은 인고의 시간과 같습니다. 그랑 뀌베 샴페인을 선보이기 위해 우리 팀은 매년 수천 개의 베이스 와인을 시음합니다. 2차 발효와 숙성을 거치기 전인 베이스 와인으로 최종적으로 만들어질 와인을 예측하여 150개의 단원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은 선조 조셉 크룩이 남긴 가문의 유산입니다. 한 그랑 뀌베 와인에는 최소 20년에서 25년의 시간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랑 뀌베를 마시는 것은 크룩의 역사를 가장 아름답고 신선하게 즐길 수 있는 놀라운 경험입니다.”



올리비에 크룩이 소개한 그랑 뀌베 172번째 에디션은 2016 빈티지를 메인 베이스로, 1998 빈티지를 포함한 11개 빈티지의 146개 베이스 와인이 블렌딩됐다. 그는 블렌딩된 각 베이스 와인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트럼펫 등 여러 악기에 비교하거나 재즈 음악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랑 뀌베의 각 에디션은 단원의 구성이 바뀐 개별 오케스트라입니다. 그렇지만 매 에디션이 동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모니예요. 각 단원이 연주하는 소리가 하모니가 되어 화려하고 장엄하게 울려 퍼지죠.”


그의 비유는 그랑 뀌베의 풍부함과 다층적인 복합미, 그리고 조화로운 매력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는 또한 와인에 대한 기술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병에 찍혀 있는 크룩의 아이디에는 와인 정보가 투명하게 담겨 있지만, 애초에 그 아이디어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크룩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 중에 와인의 기술적인 용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테루아나 블렌드, 젖산 발효 등에 대한 정보를 통해 크룩을 제대로 즐기는 데 도움을 받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들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크룩은 와인 지식이 높은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의 말도 수긍이 갔다. 크룩이 젖산발효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둔다는 이야기를 뤼나르(Ruinart)의 셀러마스터에게 들었던 터라 그 질문을 자세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국 물어볼 수 없었다. 그는 마치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는 청중과 같이 순수하고 예술적인 감성으로 크룩을 대하길 원했다. 


크룩은 진가는 도전적인 순간에도 빛난다. 2011 빈티지는 상파뉴에서 매우 도전적인 해였다. 여름은 습했고, 수확 전에는 폭염이 있었다. 많은 샴페인 하우스가 빈티지 샴페인을 생산하지 않았던 해지만 크룩은 가능했다. 이는 크룩과 포도재배자들의 헌신과 유대관계 덕분이었다.


올리비에 크룩는 “우리는 100여 명 이상의 포도재배자들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모든 결정을 함께 내립니다. 힘든 해에도 훌륭한 플롯들을 선별하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보완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안토니오 갈로니(Antonio Galloni)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안토니오는 2011 빈티지 샴페인을 두고 “만들지 말았어야 할 빈티지”라고 평했는데, 그를 뉴욕에서 만나 크룩 2011을 내밀었다고 한다.  안토니오는 크룩 2011을 “내가 마셔본 최고의 2011 빈티지”라 평했다. 그러고 보니 크룩은 힘들었던 해인 2000년과 2003년에도 빈티지 샴페인을 출시했다. 도전적인 순간에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약 두 시간에 걸친 행사 내내 크룩의 테루아나 양조 기법에 대한 설명 없이 순수한 예술적 감성으로 와인을 전달했다. 이 날 선보인 크룩 그랑 뀌베 172 에디션과 크룩 2011, 그리고 크룩 로제 27, 28 에디션을 그의 말처럼 온전히 감성적으로 느끼려 시도해 보았다. 늘 와인을 머릿속으로 분석하려고 애썼는데 그날은 연주회의 앉아있는 청중과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의 방식은 크룩이 탁월한 품질을 가진 명품 샴페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크룩의 가치가 한층 더 고차원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샴페인과 음악을 만들 때는 물론 테크닉이 중요하지만 이를 즐기기 위해서라면 감성의 파동을 느끼는 것이 최우선이 아닐까? 그는 그렇기 때문에 크룩을 음악으로 교육하려 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크룩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 에디션에 맞는 크룩 뮤직 페어링을 들을 수 있다. 일본 유명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를 포함해 세계 많은 뮤지션들이 협업했고, 한국 뮤지션으로는 정재형이 유일하게 참여했다. 올리비에 크룩은 크룩의 전통과 유산, 그리고 혁신과 예술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프로필이미지엄경은 객원기자

기자 페이지 바로가기

작성 2024.07.08 18:20수정 2024.07.08 17:50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 이벤트 전체보기

최신 뉴스 전체보기

  • 2025 감베로 로쏘
  • 김수희광고지원
  • 조지아인스타그램

이전

다음

뉴스레터
신청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