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하늘의 별만큼 많은 와인이 있습니다. 그 다양한 와인들이 모두 제각각 맛과 향이 다릅니다.이러한 와인은 또 테루아(포도나무가 자라는 토양이나 기후 등 와인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와 양조기술에 따라 다시 맛과 향이 달라집니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요인으로 와인의 맛이 달라지더라도 소비자는 마시기만하면 되는데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 맛을 바꿀 수 있는 요인이 있으니 바로 와인잔의 선택입니다.
소주는 소주잔에, 맥주는 맥주잔에 그리고 막걸리는 사발에 마셔야 제격입니다. 맥주를 소주잔에 마시면 그 특유의 시원함을 느낄 수 없고, 소주를 사발에 마시면 한 모금 목넘김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각 술마다 마시는 잔의 형태와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 술을 정해진 잔에 따랐을 때 각 잔마다 포함된 알코올 함량이 10g정도에 해당하도록 설계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와인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와인은 알코올이 일정한 다른 술과 달리 각 병마다 알코올이 다 다릅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호주와인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호주와인의 뒷면 라벨을 보면 “스탠다드 드링스(standard drinks)"라는 표시가 수치와 함께 나옵니다.
이는 1995년부터 정해진 호주 와인 라벨의 필수 표기사항으로 20℃일때 10g의 에탄올을 포함할 수 있는 음료의 총량을 계산해 놓은 표시입니다.
계산방법은 용량/1000 × 알코올도수 × 0.789인데요. 12% 알코올 도수인 750ml 와인 한병을 계산해 보면 750/1000 × 12 × 0.789 = 7.101이 나옵니다. 즉 12% 알코올을 가진 와인 한병은 7잔에 나눠 마실 때 잔당 알코올 함유량이 10g 정도 된다는 얘기지요.
와인잔은 포도품종에 따라 혹은 레드냐 화이트냐 아니면 스파클링 와인이냐에 따라 잔의 형태와 크기가 또 달라집니다. 그래서 가장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알코올 함량을 가지기 위한 잔 계산법이 탄생되게 된것이지요.
와인잔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같은 와인을 레드용 잔과 화이트용 잔에 똑 같이 따라서 맛과 향을 비교해 보시면 금방 잔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것에 동의하실 수 있게 됩니다.
와인잔은 외관상 분위기만을 위해 크기와 형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와인의 향과 맛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지역과 품종에 따라 그 모양새가 각각 다르게 제작이 되는데, 그 속에는 치밀한 계산이 포함된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미국 테네시대학의 한 연구팀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 연구팀은 레드와인 속에 몰식자산(Gallic Acid: 오배자나 몰식자의 탄닌을 가수분해하여 얻는 산)의 함량을 측정함으로써 잔의 모양과 크기가 레드와인의 화학성분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연구원들이 메를로 품종의 와인을 마티니잔과 가늘고 긴 잔, 그리고 보르도 잔에 따른 후 각각의 잔에서 몰식자산의 함량을 측정한 결과, 다른잔보다 공기에 노출되는 면적이 더 넓은 보르도 잔에서만 에스테르의 수치가 놓아지면서 몰식자산의 함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와인의 타닌 함량을 알 수 있는 몰식자산은 일반적으로 화이트와인보다 레드와인이 6배 정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공기에 노출되면 이 산이 일종의 에스테르로 변해 와인에 적당한 드라이함과 부드러운 느낌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와인이 지닌 향을 충분히 발산시키기 위해서는 조용히 잠자고 있는 향을 자극하기 위한 적당한 공기와의 접촉이 필요합니다. 바로 와인글라스가 넉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하면 스월링을 했을 때 아래쪽에 있는 무거운 향들을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 혀는 쓴맛, 단맛, 신맛을 느끼는 부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와인이 혀의 어느 위치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와인의 맛은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레드 와인잔은 거친 타닌을 부드럽게 하고 풍부한 향을 잘 발산할 수 있도록 잔의 크기가 넉넉하고 와인이 입안쪽으로 떨어지도록 입구가 좁게 설계돼 쓴맛 등을 억제하고 부드럽게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화이트 와인잔은 잔 밑부분이 둥글면서 입구가 끝부분까지 쭉 뻗은 다소 작은 모양인데 이는 와인이 혀 앞쪽으로 떨어지게 해 와인의 산도가 너무 강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샴페인용 잔은 샴페인의 풍부하고도 생기넘치는 거품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잘 감상하기 위해 폭이 좁고 긴 플루트 형태의 잔이 제격입니다.
와인잔의 입구가 넓으면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 되고, 좁으면 고개가 젖혀져 와인이 혀에 닿는 부위가 달라지는 것에 착안해 “형태는 기능을 따라 간다”는 현대미학의 전제을 증명한 것이 오스트리아에서 생산하는 리델(Riedel) 잔입니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 “20세기 명품”으로 선정돼 영구보존중인 이 잔은 지난 2000년 평양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용하면서 국내에 유명해진 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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