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스코트(The Mascot)는 나파 밸리 최고의 컬트 와인 할란 에스테이트(Harlan Estate), 본드(BOND) 등을 만든 빌 할란(Bill Harlan)의 아들 윌 할란(Will Harlan)이 만드는 또다른 컬트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85-95%를 기반으로 다른 품종들을 블렌딩해 양조한다. 지난 9월 5일, 수입사 신동와인이 마련한 자리에서 도멘 H.W.H(Domain H. William Harlan)의 총괄이사 버니스 쳉(Bernice Cheng)을 만나 더 마스코트를 함께 시음하는 기회를 가졌다.

[도멘 H.W.H의 총괄이사 버니스 쳉]
이야기 내내 버니스 쳉 본부장이 강조한 표현은 '혈통(pedigree)'이다. 더 마스코트의 시작은 할란 패밀리의 테이블 와인이었다. 처음엔 가족, 친구들과 편하게 나누는 와인이었다는 의미다. 당시엔 이름도, 레이블도 없었다. 하지만 보통 와인은 아니었다. 재료가 할란 에스테이트, 본드와 같았기 때문이다. 할란 에스테이트와 본드를 만드는 포도밭의 어린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했다. 그러니 그 부모들의 성격이 드러나지 않을 리 없다. 당연히 지인들은 이 와인의 맛과 품질, 잠재력에 열광했다. 와인의 '혈통'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병입해서 고객들에게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윌 할란은 재배팀과 협의해 매년 더 마스코트를 만들 배럴들을 확보했고, 첫 빈티지로 2008년을 출시했다. 현재 더 마스코트는 할란 에스테이트, 본드 그리고 2008년 무렵 설립한 프로몬토리(Promontory) 포도밭에서 어린 포도나무의 포도로 양조하며 일부는 10년 이상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다.
더 마스코트를 알게 되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할란 에스테이트의 세컨드 와인(second wine)'이라는 것이었다. 럭셔리 컬트 와인(cult wine)이나 그랑 크뤼(Grand Cru) 와인들은 세컨드 와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버니스 쳉 본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마스코트는 일반적인 세컨드 와인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세컨드 와인은 상급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만든다. 상급 와인에 사용할 포도를 더욱 엄격히 선별한 후, 상급 와인에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품질이 충분히 좋은 포도로 세컨드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더 마스코트는 할란 에스테이트와 본드, 프로몬토리의 어린 포도들을 블렌딩해 새로운 와인을 만들었다. 개성이 명확하면서도 특정 빈티지에서는 각 부모 와인의 희미한 흔적이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더 마스코트에 사용하는 포도를 수확하는 어린 포도나무들은 구획이 지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포도나무들 사이에 섞여 있다. 특정 구획의 성격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와이너리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다. 포도는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정 이후 수확을 시작해 새벽까지 진행한다. 구획별로 엄격히 선별한 포도는 줄기를 제거한 후 양조 및 숙성한다. 할란 에스테이트와 본드는 조그만 프렌치 오크 바리크에서, 프로몬토리는 커다란 슬라보니안 오크 캐스크에서 숙성한다. 여기까지는 더 마스코트와 부모 와인들의 구분이 없다. 1차 숙성이 이루어진 후 테이스팅을 통해 더 마스코트를 만들 배럴들을 선별한다. 선택한 배럴들은 블렌딩 후 커다란 캐스크에서 추가 숙성한다. 병입 후에도 숙성은 이어지는데, 총 숙성 기간은 빈티지마다 다르지만 대략 4년에 이른다. 프리미엄 와인들 중에서도 상당히 긴 숙성 기간이다. 더 마스코트가 여타 세컨드 와인이라고 불리는 와인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이유다.

[더 마스코트 2020, 2019, 2018 빈티지]
3개 빈티지의 더 마스코트 와인 중 먼저 2020년 빈티지를 시음했다. 2020은 9월 초에 출시된 빈티지라 아직 맛본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2020년은 대단히 특별한 빈티지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나파 밸리에는 큰 산불까지 발생했다. 화재로 인한 연기 오염(smoke taint) 때문에 와인을 출시하지 못한 와이너리도 있다. 하지만 더 마스코트의 경우 산불 발생 2주 전 수확을 완료해 화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원래 도멘 H.W.H는 다른 와이너리보다 수확이 조금 이른 편이었는데, 2020년에는 수확이 더욱 빨랐다고 한다. 이는 수십 년 동안의 연구와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의 결과다. 도멘 H.W.H은 빠르게 수확하면서도 페놀이 완벽히 성숙하고 당분이 충분하면서도 신맛이 잘 살아 있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포도를 얻는다. 2020년 빈티지는 딱 이런 성격을 대변한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가볍지 않고, 싱그러운 과일 풍미가 드라이한 미감을 타고 순수하고 우아하게 드러난다.
2019년 빈티지는 2020년과 확연히 다르다. 사실 2019년은 비가 상당히 많이 내린 해다. 하지만 버니스 쳉 본부장은 덥고 건조한 해가 몇 년간 이어진 후였기 때문에, 이는 오히려 포도밭에 휴식과 여유를 주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초가을부터 수확할 때까지는 포도가 충분히 익을 수 있는 온화한 날씨가 지속됐다. 덕분에 싱그러운 과일 풍미와 신선한 허브 스파이스, 가벼운 토양 뉘앙스가 매력적으로 어우러진 와인이 나올 수 있었다. 힘이 넘치고 묵직한 스타일보다 미묘하고 복잡한 스타일의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다른 빈티지들과는 달리 2018년 빈티지는 더블 디캔팅을 했다. 버니스 쳉 본부장은 “일반적으로 시음할 때 디캔팅을 하지 않지만, 2018년은 워낙 묵직하고 구조감이 좋은 빈티지라 디캔팅을 했다”라고 말했다. 초봄의 적당한 비와 포도를 완숙시킨 여름, 안개와 함께 온화한 날씨를 보인 가을이 이어졌기 때문에 벨벳 같은 타닌의 질감과 깊은 풍미를 지닌 와인을 만들 수 있었다. 더 마스코트 2020년은 밀도 높은 검은 과일 풍미에 그윽한 허브 스파이스 힌트가 가볍게 곁들여져 매력적인 나파 밸리 와인의 전형으로 꼽을 만하다.

[더 마스코트의 레이블을 장식한 개 '프린스'의 이미지가 사용된 채권(출처: mascotwine.com)]
더 마스코트의 레이블을 장식하고 있는 개는 '프린스'라는 이름의 잉글리시 불 테리어다. 프린스는 피츠버그 농민 은행(Farmers' Deposit National Bank of Pittsburgh)의 은행장이 기르던 개였다. 항상 주인과 함께 출근해 집무실 앞에서 은행 직원들과 손님들을 반겼다고 한다. 레이블에 사용된 모습은 유명 판화가가 만든 작품으로, 은행에서 발행한 채권에 사용되기도 했다. 빌 할란의 미술 컬렉션에서 이 작품을 발견한 윌 할란이 더 마스코트의 '혈통'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해 레이블로 선택한 것이다.
버니스 쳉 도멘 H.W.H 총괄이사는 더 마스코트 와인을 “음악을 듣듯 즐겨 주길 바란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할 때 현악 파트 따로, 관악 파트 따로 떼어내 분석하며 듣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전체 연주의 하모니를 온전히 느끼려 한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블렌딩 비율이나 양조 방식 같은 기술적인 요소에 집착하기보다는 와인 본연의 맛과 향, 질감 등을 전체적으로 느껴야 와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특히 더 마스코트 같은 와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더 마스코트, 혹은 그 부모인 할란 에스테이트나 본드, 프로몬토리 등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명작을 감상하는 마음으로 여유롭게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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