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와인21 도슨트] 볼게리 & 마렘마 토스카나


볼게리(Bolgheri). 슈퍼 투스칸의 고향이다. 산지오베제(Sangiovese)와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로 대표되던 토스카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전설의 시작은 사시까이아(Sassicaia). 1920년대 보르도 와인 애호가였던 마리오 인치사 델라 로케타(Mario Incisa della Rocchetta)가 볼게리의 자갈이 많은 모래, 점토, 석회질 토양에 포도밭을 조성한 것이 사시까이아의 시작이었다. 사시까이아라는 이름 자체가 '돌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다. 해양성 기후와 자갈이 많은 토질 등 보르도와 유사점이 많은 이 포도밭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등 보르도 품종들이 잘 자랐다. 마리오 인치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보르도 스타일 와인을 만들어 가족 및 지인들과 함께 즐겼다. 국제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이었기에 출시하면 가장 낮은 테이블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초기엔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인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사촌 피에로 안티노리(Piero Antinori)의 강력한 권유로 공식 출시하게 되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사시까이아는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시까이아의 성공은 수많은 혁신가들을 볼게리로 이끌었고, 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런 사시까이아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2013년 볼게리 사시까이아(Bolgheri Sassicaia) DOC 가 별도로 신설됐다. 볼게리 DOC 자체는 1984년 화이트 와인으로 설립돼 1994년 레드와 화이트 와인도 DOC가 되었다. 먼저 DOC가 된 것은 화이트 와인이지만, 그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명성의 대부분은 레드 와인의 몫이다. 오르넬라이아(Ornellaia), 르 마키올레 팔레오(Le Macchiole Paleo), 구아도 알 타쏘(Guado al Tasso) 등 프리미엄 와인들이 즐비하다. 


볼게리 로쏘는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메를로(Merlot) 등을 단독으로 혹은 섞어서 만들 수 있다. 산지오베제, 시라(Syrah) 등을 최대 50%까지, 이외 허용된 품종은 30%까지 블렌딩할 수 있다. 로제 와인의 품종 규정은 레드와 같으며, 화이트 와인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베르멘티노(Vermentino), 비오니에(Viognier) 등을 단독 혹은 블렌딩해 만들 수 있다. 기타 허용된 품종을 40%까지 블렌딩 가능하다. 로쏘의 경우 10개월 이상 숙성해야 하며, 수페리오레(Superiore)를 붙이려면 오크 숙성 1년 포함 2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마렘마 토스카나(Maremma Toscana)는 볼게리의 혁신과 토스카나의 전통이 절묘하게 혼합된 생산 지역이다. 볼게리 남쪽 해안부터 내륙으로 넓게 펼쳐진 와인 산지로, 2011년 IGT에서 DOC로 승격했다. 마렘마 토스카나는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Morellino di Scansano), 몬테쿠코(Montecucco) 등 여러 와인 산지들을 포함할 만큼 넓다. 그만큼 와인 스타일 또한 다양하다. 기본적인 스타일은 산지오베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등 메인 품종을 60% 이상 사용하고 이외 허용된 품종을 블렌딩해 양조하는 마렘마 토스카나 로쏘(Maremma Toscana Rosso)다. 같은 품종 규정으로 로제 와인을 만들면 마렘마 토스카나 로사토(Maremma Toscana Rosato)가 된다. 트레비아노, 베르멘티노 등 메인 품종을 60% 이상 사용해 만든 화이트 와인은 마렘마 토스카나 비앙코(Maremma Toscana Bianco)다. 


이외에 특정 품종을 중심으로 양조할 수도 있다. 레드, 화이트, 로제 모두 허용된 메인 품종 중 하나를 85% 이상 사용하고 기타 허용된 품종을 블렌딩하면 메인 품종을 레이블에 표기할 수 있다. 2020년 빈티지부터는 두 개 품종 표기도 가능하다. 이 경우 처음 명기하는 품종은 50-85%, 두 번째 명기하는 품종은 15-50% 사용해야 한다. 로쏘와 비앙코는 리제르바(Riserva)도 만든다. 로쏘 리제르바는 2년 이상 숙성해야 하며, 그중 6개월 이상은 오크 숙성을 해야 한다. 비앙코 리제르바는 1년 이상 숙성한다. 


이외에 늦게 수확한 포도로 만드는 벤데미아 타르디바(Vendemmia Tardiva), 말린 포도로 만드는 파시토 비앙코(Passito Bianco), 파시토 로쏘(Passito Rosso), 전통 디저트 와인 빈 산토(Vin Santo) 등 스위트 와인도 나온다. 토스카나 지역에서는 드물게 전통 방식 혹은 탱크 방식으로 양조하는 스푸만테(Spumante) DOC 또한 생산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와인들을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운데, 그 아쉬움은 마렘마 토스카나 로쏘, 비앙코로 충분히 달랠 수 있다. 빼어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을 겸비한 와인이 많아 부담 없이 선택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산미와 무겁지 않은 바디감을 지닌 경우가 많아 음식에 곁들이기도 좋다. 물론 볼게리라고 값비싼 슈퍼 투스칸 와인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저렴하다고 하기는 어려워도 합리적인 가격에 빼어난 품질을 지닌 와인들이 다수 존재한다. 아래 소개할 와인들 또한 그런 와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볼게리와 마렘마 토스카나의 훌륭한 와인들을 만나 보자.


마렘마 토스카나




비비그라츠, 까사마타 비앙코  Bibi Graetz, Casamatta Bianco 

향긋한 꽃향기가 가볍게 감돌며 오렌지, 황도 등 잘 익은 과일 풍미가 명쾌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상큼한 시트러스 산미에 균형 잡힌 구조감이 깔끔한 미감을 선사한다. 생선회나 스시 등은 물론 샐러드, 파스타, 피자, 치즈 등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마렘마 토스카나 DOC는 아니지만, 마렘마 해안 포도밭의 올드 바인에서 수확한 포도로 양조하는 와인이다. 베르멘티노 60%, 트레비아노 30%, 안소니카(Ansonica) 10% 등 토스카나의 토착 품종들을 손 수확해 줄기를 제거한 후 매우 낮은 온도의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2주간 발효하고 블렌딩한 다음 3개월 숙성해 출시한다. 비비 그라츠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통해 유명해진 생산자다. 테스타마타(Testamatta), 콜로레(Colore) 등은 대표적인 슈퍼 투스칸 와인으로 꼽힌다.  




꿰르챠벨라, 몽그라나  Querciabella, Mongrana 

라즈베리, 붉은 체리, 블루베리, 블랙베리 등 검붉은 베리 풍미가 순수하게 드러나며 신선한 허브 뉘앙스가 더해진다. 입에서는 싱그러운 신맛과 부드러운 타닌이 조화를 이루며 감초, 모카커피 힌트가 친근하고 편안한 여운을 남긴다. 치즈를 사용한 샐러드, 다양한 파스타, 피자, 가벼운 육류 요리와 두루 어울린다. 석회질 이회토양애서 재배한 산지오베제 50%, 카베르네 소비뇽 25%, 메를로 25%로 양조해 시멘트 &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2개월 숙성한다. 꿰르챠벨라는 쥬세페 카스틸리오니(Giuseppe Castiglioni)가 1974년 설립한 와이너리다.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손꼽히지만 슈퍼 투스칸 스타일의 레드와 샤르도네(Chardonnay)로 만드는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 또한 유명하다. 쿠에르챠벨라의 와인은 엔트리 급부터 아이콘급에 이르기까지 실망을 주는 법이 없다.   




니타르디, 애드 아스트라  Nittardi, Ad Astra

자두와 검붉은 베리 풍미에 감초 힌트가 가볍게 더해진다. 편안하고 친근한 미감에 신맛과 과일 풍미, 알코올의 균형 잡힌 구조가 돋보인다. 파스타, 피자, 치킨, 삼겹살, 각종 치즈 등 다양한 음식과 곁들이기 좋다. 점토와 자갈이 섞인 모래질 포도밭에서 재배한 산지오베제를 중심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등을 각각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양조한다. 이후 프렌치 바리크와 토노에서 14개월 숙성한 후 콘크리트 통에서 블렌딩해 몇 개월 동안 안정화 한 다음 병입하여 추가 6개월 숙성한다. 'Ad Astra'라는 이름은 라틴어 'Per Aspera Ad Astra'에서 따왔는데 '험난한 길이 별에게로 인도한다'는 의미다. 니타르디는 피터 펨퍼트(Peter Femfert)가 1981년 토스카나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와인 컨설턴트 카를로 페리니(Carlo Ferrini)의 권유로 마렘마 지역에 추가로 포도밭을 조성했다. 현재 키안티 클라시코와 마렘마 두 곳에 총 40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연간 20만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볼게리



포지오 알 테소로, 솔로솔레  Poggio al Tesoro, Solosole

화사한 아카시아 꽃향기 아래로 완숙한 복숭아와 살구 등 핵과 풍미가 밀도 높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신선한 신맛을 타고 노란 과일 풍미가 우아하게 느껴지며, 영롱한 미네랄 뉘앙스가 세련된 여운을 남긴다. 식전주로 마시기 좋으며 생선, 가금류, 튀김 등 다양한 요리와 잘 어울린다. 솔로솔레는 이탈리아어로 '태양의 빛'을 의미한다. 베르멘티노가 드러내는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코르시카에서 선별해 온 베르멘티노 클론으로 볼게리에 포도밭을 조성했으며, 포도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밤에 손 수확한다. 부드럽게 압착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 후 효모 잔여물(lees)과 함께 1개월 숙성한다. 포지오 알 테소로는 토스카나 발폴리첼라의 와인 명가 알레그리니 출신 와인메이커 월터 알레그리니(Walter Allegrini)가 설립했다. 알레그리니의 와인 철학과 노하우를 볼게리 지역의 테루아와 접목해 개성 있는 와인들을 만들고 있다.




벨구아르도, 티레니코  Belguardo, Tirrenico

은은한 지중해 허브 힌트가 스친 후 명확한 블랙커런트 풍미가 밀도 높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적절한 산미가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촘촘한 타닌이 부드러운 미감을 선사한다. 목 넘김 후 짭조름한 미감이 긴 여운을 남기는 와인. 바로 마셔도 좋지만 10년 정도의 숙성 잠재력 또한 지니고 있다. 돼지, 양, 소 등 다양한 육류, 구운 야채 등과 잘 어울린다. 자갈 섞인 모래 토양에서 재배한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빈티지에 따라 알리칸테(Alicante), 카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등을 블렌딩 해 프렌치 바리크에서 12~14개월 숙성한다. 티레니코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서쪽 티레니아해에서 따온 이름으로 레이블의 이미지 또한 티레니아해의 해안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벨구아르도는 토스카나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생산자 마쩨이(Mazzei)가 마렘마 지역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빌라노비아나, 산투베르토  Villanoviana, Sant' Uberto

검붉은 베리, 체리, 자두 등 잘 익은 과일 풍미가 화려하게 드러나며 톡 쏘는 후추와 허브 스파이스, 견과류 뉘앙스가 복합미를 더한다. 입에 넣으면 드라이한 미감에 벨벳처럼 부드러운 타닌이 우아한 질감을 선사하며 절묘한 신맛이 최적의 균형을 이룬다. 피니시에 남는 은은한 담뱃잎 힌트가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모래가 많이 섞인 침적토양에서 재배한 메를로 50%, 카베르네 프랑 35%, 쁘띠 베르도 15%를 블렌딩했으며 프렌치 바리크에서 14개월, 병입 후 12개월 숙성한다. 두툼한 고기 요리, 숙성 치즈 등과 잘 어울린다. 빌라노비아나는 마르코 벨리(Marco Belli)와 바바라 모나첼리(Barbara Monacelli) 부부가 2006년 볼게리 중심부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다양한 와인 매체로부터 지속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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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0.28 17:58수정 2024.10.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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