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홍콩 하버프론트 이벤트 스페이스(Harbourfront Event Space)에서 '홍콩 와인 & 다인 페스티벌(Hong Kong Wine & Dine Festival) 2024'가 개최됐다.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이 행사는 전 세계 와인과 미식을 즐기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으로, 올해는 더욱 풍성한 이벤트가 열려 방문객들의 오감을 만족시켰다.
[홍콩 와인 & 다인 페스티벌, 사진제공: HKTB]
전 세계 와인과 음식을 한자리에
홍콩은 2008년 알코올 도수 30도 이하의 주류에 부과되는 세금을 폐지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와인 무역과 유통의 허브가 됐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와인들이 이곳에 모이고 거래된다. 와인 시장이 개방적인 편이라 자유롭게 와인을 사고 팔 수 있으며, 통신판매도 가능해 고급 와인을 비교적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어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와인 쇼핑의 성지로 여겨진다.
홍콩은 미식의 도시이기도 하다. 최근 큰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Netflix)의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안성재 셰프의 '모수(Mosu)'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홍콩에만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7개나 있다는 점도 홍콩의 미식 수준을 보여준다.
홍콩 와인 & 다인 페스티벌은 이러한 특성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와인과 홍콩의 미식을 결합한 대규모 축제다. 포브스(Forbes)는 홍콩 와인 & 다인 페스티벌을 세계 10대 미식 축제 중 하나로 선정했으며, 해마다 내외국인 방문객 수가 수십만 명을 넘고 출품되는 와인의 종류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제공: HKTB]
매년 10월 마지막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개최됐으나 올해는 그 일정을 하루 더 늘려 10월 23일 수요일부터 총 5일간 진행됐고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 35개국에서 300개 이상의 와인, 위스키, 맥주, 사케, 바이주 등 각종 주류를 출품했으며, 17개국의 다양한 현지 간식과 요리를 선보인 음식 부스가 100개 이상 운영되어 홍콩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인기 거리 음식부터 유명 호텔의 별미까지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새로운 테마존인 '컬리너리 스타(Culinary Star)'와 '테이스팅 시어터(Tasting Theatre)'가 신설됐는데, '컬리너리 스타'에서는 포럼 레스토랑(Forum Restaurant)과 같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요리를 비롯해 홍콩 퀴진(Hong Kong Cuisine) 1983, 안 쩌이(Ăn Chơi), 피쉬홀릭(Fisholic) 등 수상 경력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축제를 위한 특별한 별미를 선보였다. '테이스팅 시어터'에서는 스타 셰프와 소믈리에들이 직접 진행하는 마스터 클래스와 워크숍이 마련돼 와인 페어링 수업과 세계적인 셰프의 요리 비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조지아 와인 부스]
세계 각국의 와인 사이에서 빛나는 아시아 와인의 약진
홍콩 와인 & 다인 페스티벌은 전 세계 다양한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와인과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 등 와인평론가들이 추천하는 와인,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숨겨진 보석 같은 와인, 그리고 요즘 떠오르는 중국 와인, 저도수 와인, 내추럴 와인 등 다양한 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기존 와인 강국의 와인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조지아 등 여러 나라의 와인 부스가 있었고 신흥 와인 산지인 태국, 핀란드 등의 부스가 눈에 띄었다. 보르도 와인는 전용관을 따로 만들어 시음과 와인 클래스 및 이벤트까지 진행했다.
[중국 와인]
중국 와인 전시관도 크게 늘어 닝샤, 윈난, 산둥 지역의 와인을 다양하게 선보였는데, 국제 품종은 물론이고 다양한 품종으로 와인 생산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조지아 토착 품종인 르카치텔리(Rkatsiteli) 등 각종 와인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카베르네 저니쉬트(Cabernet Gernischt)라는 품종의 와인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이 포도는 카르메네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품종인데 한때는 소홀히 여겨졌으나 와이너리와 양조자들의 끝없는 노력으로 인해 지금은 중국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여러 카베르네 저니쉬트 와인 중 시거 에스테이트(Xige Estate)의 제이드 도브 싱글 빈야드 카베르네 저니쉬트(Jade Dove Single Vinyard Cabernet Gernischt)를 시음했는데, 20년 이상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해 만든 이 와인은 허브, 후추, 블랙베리, 블루베리, 검은 자두 등의 농축된 과실향에 타닌이 부드럽고 밸런스가 좋아 긴 여운을 남기며 뛰어난 품질을 보여주었다. 제임스 서클링이 '2020 중국 와인 Top 10'으로 꼽은 바 있고 올해 DWWA(Decanter World Wine Awards)에서도 은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국제대회 수상 경력이 있었다.
[태국 와인]
태국 와인 부스 또한 눈길을 끌었다. 태국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더운 나라에서 무슨 와인인가 싶지만 다른 와인 생산국과 마찬가지로 연평균 기온이 높지 않고 한여름에도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양조용 포도나무를 재배한다고 한다. 시라(Syrah), 비오니에(Viognier), 슈냉 블랑(Chenin Blanc) 등의 프랑스 품종이 가장 많이 보였고 두리프(Durif)라 불리는 쁘띠 시라(Petite Sirah) 품종, 그리고 베르델호(Verdelho) 등이 눈에 띄었다. 출품된 와인들을 보니 프랑스 북부 론 지역이 자연스레 떠올랐는데, 론 와인보다 훨씬 더 가벼운 스타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답답한 실내 전시장이 아닌 탁 트인 바다와 항구를 배경으로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와인과 음식을 즐기고,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로 즐길 거리까지 풍성했던 2024 홍콩 와인 & 다인 페스티벌은 고급 와인들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만날 수 있고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각국의 와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관광객을 위해 무료로 제공되는 라이트 패스(Lite Pass)도 공항이나 호텔에서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내년 행사에 한번 참가해 보길 추천한다. 또한, 내년에는 점차 좋은 품질로 국제품평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와인들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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