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요즘, 힐링 와인이 필요한 이들이 많을 듯하다. 겨울이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포트 와인은 특히 요즘처럼 잠들기 전 몸과 마음을 녹이며 긴장을 풀고 싶을 때 가장 좋은 선택이다. 종류와 스타일이 다양하고, 주정강화 와인 특성상 오픈 후에도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어 한 잔씩 마시기 좋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포트 와인을 만날 수 있는데, 지난 달 공개된 2024년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100대 와인 리스트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의 포트 와인이 눈에 띄었다. 26위에 오른 '다우 레이트 바틀드 빈티지 포트(Dow's Late Bottled Vintage Port) 2018'으로, 포르투갈 와인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다우(Dow's)는 전 세계 프리미엄 포트 시장에서 약 3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Symington Family Estates)가 운영하는 포트 브랜드 중 하나다. 최근 시밍턴 패밀리의 5세대인 해리 시밍턴(Harry Symington)과 아시아 퍼시픽 마케팅 매니저 조르주 누네스(Jorge Nunes)가 한국을 찾았다. 두 사람과 함께 포트 와인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우의 주요 와인들을 시음해 볼 수 있었다.
[한국을 찾은 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의 5세대 해리 시밍턴(우), 아시아 퍼시픽 마케팅 매니저 조르주 누네스(좌)]
도우루 밸리(Douro Valley)에서 뛰어난 포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다우는 두 세기가 넘는 역사가 있다. 1798년 포르투갈 출신의 브루노 다 실바(Bruno da Silva)가 영국 런던에 이주해 포르투갈 와인을 수입하며 명성을 얻었고, 이후 1877년 뛰어난 포트 와인을 생산해 온 다우 가족과 합병해 지금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2년, 오랜 포트 와인 생산 역사가 있는 시밍턴 가문이 다우를 운영하기 시작하며 지금까지 5세대에 걸쳐 브랜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해리 시밍턴은 온 가족이 함께 와이너리에 헌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의 아버지 폴 시밍턴(Paul Symington)은 몇 년 전까지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수석 와인메이커인 찰스 시밍턴(Charles Symington)은 그의 삼촌이며, 이모와 사촌 형제들까지 와이너리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가장 어린 구성원인 그는 2019년 4월 합류해 마케팅팀에서 일하며 시밍턴 패밀리의 와인을 알리고 있다. “총 11명의 가족이 회사의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족 경영 와이너리 중에서도 이렇게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곳은 흔치 않을 거예요. 이 점을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우는 도우루 밸리의 뛰어난 포도원으로 손꼽히는 퀸타 도 봉핑(Quinta do Bomfim), 도우루 수페리오르(Douro Superior)의 퀸타 다 세뇨라 다 리베이라(Quinta da Senhora da Ribeira)와 퀸타 다 세르데이라(Quinta da Cerdeira), 퀸타 도 산티뉴(Quinta do Santinho) 등에서 포트 와인을 생산한다. 포도는 투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와 투리가 프란카(Touriga Franca)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두 품종은 기후 변화에도 적응력과 회복력이 강한 품종으로 꼽는다. 해리 시밍턴은 “다양한 품종을 연구하고 있는데, 여름철 더위로 수확 시기가 점차 빨라지는 상황을 반영해 더위에 강한 알리칸테 부셰(Alicante Bouschet)와 높은 산도로 더운 해에 균형감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되는 소우장(Sousão)을 좀 더 식재했다”고 밝혔다. 140년간 포도원을 운영해 오며 시밍턴 패밀리는 도우루 밸리의 계단식 포도원과 고도, 경사 등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노하우를 갖추고 있고, 변화하는 기후에 대처하며 무엇을 어디에 심을지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각 품종에 가장 적합한 위치를 선택해 식재하는 게 훌륭한 빈티지 포트를 생산하기 위해 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퀸타 도 봉핑의 빈야드 풍경 (제공: 나라셀라)]
다우 포트는 초창기부터 다른 포트 와인에 비해 약간 드라이한 스타일로 생산했고, 지금까지 그 스타일을 이어오고 있다. 빈티지 포트 생산자로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기록적인 성과도 남겼다. 다우의 2007년 빈티지 포트가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고, 2011년 빈티지 포트는 2014년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시밍턴 패밀리는 1990년대 말 스틸 와인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또 다른 브랜드로 스틸 와인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에는 영국의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Berry Bros. & Rudd)와 함께 햄블던 빈야드(Hambledon Vineyard)를 인수해 영국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여전히 중심지는 도우루 밸리이지만 4세대와 5세대가 함께하며 포르투갈 각 지역과 해외로도 확장하는 중이다. 해리 시밍턴은 이와 동시에 포트 와인의 프리미엄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에이지드 토니 컬렉션을 재출시한 것과 퀸타 도 봉핑에 새로운 와이너리와 방문객 센터를 건설한 것도 이에 발맞춘 행보다.
[세뇨라 다 리베이라에 위치한 와이너리, (제공: 나라셀라)]
“그동안 새로운 와인과 패키지 등 우리가 진행해온 다우의 혁신은 모두 '프리미엄'에 맞춰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알코올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럴 때 오히려 포트 와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포트 와인 거래량은 점차 감소했지만 프리미엄 포트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죠. 소비량이 적지만 프리미엄 포트 와인에 집중하는 추세는 저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도 일치합니다.”
마케팅 담당자인 조르주 누네스는 포트 와인이 “리워드 와인”이자 “릴렉싱 와인”이란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 같은 와인이라면, 그리고 겨울밤 긴장을 풀어줄 단 한 잔의 와인이라면 좋은 와인을 선택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물론 다우는 포트 와인의 프리미엄화와 함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포트 와인을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즐기며 특별한 '경험'이 되도록 하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화이트 포트(White Port)부터 루비 포트(Ruby Port), 레이트 보틀드 빈티지(Late Bottled Vintage, LBV), 빈티지 포트(Vintage Port) 등 다우에서 생산하는 포트 와인은 우리 일상과 함께하는 힐링 와인이라 할 만하다.
[다우 파인 화이트 포트 (제공: 나라셀라)]
새로운 스타일로 즐기는 포트 와인, 다우 파인 화이트 포트
포트 와인을 보다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화이트 포트가 제격이다. 화이트 와인 소비가 늘어난 것처럼 화이트 포트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화이트 포트는 토닉워터에 레몬을 넣어 '포트 토닉'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데, 실제로 포르투갈을 여행한 사람들은 현지에서 포트 토닉을 경험하고 다시 찾는 경우가 많아 화이트 포트의 매출이 급격히 성장했다고 한다. 포트 와인이 매우 무겁고 클래식한 와인이란 인식을 가진 이들에게 더 가볍게 포트를 즐기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고 하이볼처럼 쉽게 만들어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높다. 다우 파인 화이트 포트(Dow's Fine White Port)는 토착 품종을 블렌드한 기본급 화이트 포트로 3년간 숙성해 바로 즐기기 좋은 상태에서 출시한다. 대부분 오크와 일부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숙성해 포트 와인에 기대하는 견과류와 함께 신선한 과일 캐릭터가 균형감 있게 다가온다. 입문용 포트 와인으로도, 송년 모임을 여는 웰컴 와인으로도 추천할 만하다.
[다우 레이트 바틀드 빈티지 포트 2018 (제공: 나라셀라)]
접근성 좋은 빈티지 포트, 다우 레이트 바틀드 빈티지 포트 2018
올해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중 26위에 선정된 주인공이다. 다우 레이트 바틀드 빈티지 포트는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상 '주정강화 와인부문 대상' 수상 와인이기도 하다. LBV는 빈티지 포트처럼 특정 빈티지의 포도로 생산하지만 4년에서 6년 정도 숙성 후 병입하는 와인으로 병입 전 필터링을 거치기 때문에 디캔팅을 할 필요 없고 바로 즐기기 좋다. 다우는 빈티지 포트로 유명하지만 루비 포트와 레이트 바틀드 빈티지 포트(LBV)도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깊은 루비 컬러에 과일과 향신료의 풍미가 복합적으로 올라오며, 다우 포트의 특징인 드라이한 피니시를 이 와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적당한 무게감이 있으면서 부담없는 가격으로 즐기기 좋은 고품질 포트 와인이다.
시간이 더해준 특별한 가치, 다우 빈티지 포트 1994 & 2017
좋은 빈티지에만 생산하는 빈티지 포트는 모든 조건이 이상적일 때 최고 품질의 포도로 생산한다. 평균적으로 10년에 세 번 정도 생산하는데, 2010년대에는 2011, 2016, 2017년 빈티지를 생산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에는 2000, 2003, 2007년 세 차례, 1990년대에는 1994, 1997년 두 차례 생산했다. 1970년대까지 도우루 밸리의 포도원은 일반적으로 필드 블렌드로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다우에서는 이후 단일 품종을 식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고, 각 품종을 따로 발효 후 블렌딩해 밸런스와 구조감을 갖춘 빈티지 포트를 생산한다. 1970년대 이전에 식재된 50년에서 80년 수령의 올드바인도 여전히 관리하고 있는데 이 구획에서 생산한 포도가 빈티지 포트의 복합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우 빈티지 포트 1994 (제공: 나라셀라)]
수십 년 숙성했을 때 빈티지 포트의 진가가 드러나기 때문에 어린 빈티지를 마시는 일이 흔치 않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1994년과 2017년을 비교 시음해 볼 수 있었다. 1994년은 투리가 나시오날, 투리가 프란카, 틴타 바로카(Tinta Barroca), 틴타 로리즈(Tinta Roriz), 틴타 아마렐라(Tinta Amarela) 등을, 2017년은 투리가 나시오날과 투리가 프란카를 중심으로 알리칸테 부셰와 소우장 등을 사용했다.
2017 빈티지는 프루티한 풍미가 가득하고 어리다는 느낌이 있지만 균형이 잘 잡혀 있어서 젊은 빈티지 포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한 매력을 드러냈다. 물론 오래 숙성하면 더 좋아질 것이고 긴 시간을 기다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1994 빈티지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다우 빈티지 포트로 꼽힌다. 잘 숙성된 과일와 말린 과일 아로마와 함께 견과류,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 풍미가 길게 이어진다. 힘 있고 우아한 와인으로, 지금 마시기에 훌륭하고 30년 전 빈티지지만 앞으로 보여줄 잠재력 또한 기대된다.
포르투갈에서는 다음 세대를 위해 빈티지 포트를 케이스 단위로 구입하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한 병씩 오픈해 즐기는 전통이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부터 생일이나 결혼식, 크리스마스 등에 빈티지 포트를 오픈해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고 변화를 경험한다. 해리 시밍턴은 자신이 마신 가장 오래된 빈티지 포트로 올해 어머니의 70세 생신에 오픈한 1908 빈티지를 떠올리며 “정말 놀랍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고 언급했다. 전설적인 빈티지로 꼽히는 1908년산답게 여전히 밝은 레드 컬러에 멋진 에너지를 보여줬다고. 시간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변화를 통해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잘 만든 빈티지 포트의 힘, 조금 더 나아가 '좋은 와인'의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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