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체 살렌티노(Salice Salentino)는 만두리아(Manduria)와 함께 이탈리아 풀리아(Puglia)의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다. 한여름 고온이 향의 완숙도를 높이고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산미를 잡아주어 당도와 산도의 밸런스가 뛰어난 포도를 생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영양분이 많은 석회질 점토 토양은 와인 속에 미네랄 풍미와 함께 탄탄한 타닌을 부여한다.
살리체 살렌티노의 대표 품종인 네그로아마로(Negroamaro)는 탄탄한 구조감, 검은 베리류의 풍미, 뛰어난 숙성잠재력이 카베르네 소비뇽과 닮았다. 네그로아마로와 자주 블렌드 되는 말바지아 네라(Malvasia Nera)는 메를로처럼 네그로아마로의 타닌을 부드럽게 만들고 풍미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지만 수수마니엘로(Susumaniello)도 주목할 만하다. 이 품종은 과일향이 산뜻하고 독특한 향신료 향이 특징이다. 현지에서 와이너리들을 직접 방문해 포도밭을 돌아보고 와인을 시음해 보니 살리체 살렌티노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이미 높이 평가 받고 있는 레드는 물론 화이트와 로제 와인의 품질 또한 놀라운 수준이었다. 당시 기록한 취재 노트를 다시 읽어 보며, 현지에서 보고 들은 내용과 함께 와이너리별로 주목할 만한 와인들을 정리해 보았다.
칸티나 모로스(Cantina Moros)
[콘크리트 탱크를 개조해 만든 테이스팅 룸]
모로스는 바이오 산업에서 일하던 독특한 이력의 사업가 클라우디오 콰르타(Claudio Quarta)가 설립한 와이너리다. 미국의 투자를 받을 정도로 사업이 성공적이었지만 콰르타는 와인의 개성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고향인 풀리아로 돌아와 와인 사업을 시작했다. 모로스는 살리체 살렌티노의 중심부에 위치한 구아냐노(Guagnano) 마을 기차역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해 풀리아를 여행하다 들르기 좋은 와이너리다. 모로스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와인 품질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포도밭 면적이 1헥타르에 불과하지만 석회질 점토 토양과 1950년대 후반에 식재된 네그로아마로 고목을 보유하고 있다. 유기농으로 경작되는 포도나무들은 워낙 수령이 오래된 탓에 전체 수확량이 4,000리터 밖에 안될 정도로 적지만 포도알마다 담긴 농축미는 탁월하다. 생산하는 와인은 와이너리 이름을 그대로 딴 모로스 1종이며 연간 생산량도 6,000병 내외다. 모로스를 방문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와이너리 내부가 예술 그 자체라는 점이다. 예전에 쓰던 콘크리트 탱크를 활용해 갖가지 예술 작품과 오래된 와인 도구를 전시하고 있으며 와인을 숙성시키는 배럴룸도 그 안에 자리한다. 한마디로 모로스는 예술 속에서 익어가는 와인인 것이다.
[모로스 2021, 2019, 2013]
칸티나 모로스에서는 모로스 와인의 세 가지 빈티지로 버티컬 테이스팅을 했다. 모로스는 네그로아마로가 주품종이며 말바지아 네라를 3% 정도 블렌드해서 만든다. 두 품종은 한 밭에서 같이 자라고 한꺼번에 수확해 으깬 뒤 발효도 함께 진행한다. 와인 숙성에는 프랑스산 오크 배럴을 사용하는데 새 오크의 비율은 30% 정도다. 모로스 2021년산은 아직 출시되지 않았고 병 숙성이 진행되는 중이라 레이블이 부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맛을 보니 아직은 오크향이 좀 도드라졌지만 향수 같은 허브 향이 향긋하고 향신료 향이 진한 과일 풍미와 우아하게 어우러졌다. 타닌은 조밀하고 매끈했으며 산뜻한 산미가 와인에 경쾌한 구조감을 부여했다. 2020년은 포도의 품질이 좋지 않아 와인을 만들지 않았고 현재 출시된 최신 빈티지는 2019년산이다. 2019년산은 2023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Concours Mondial de Bruxelles)에서 '올해의 이탈리아 와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은 와인이다. 잘 익은 과일향이 풍성하고 약간의 초콜릿 풍미가 감미로움을 더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레드 와인이 보여줄 수 있는 둥글고 부드러운 촉감의 끝판왕이었다. 상큼한 산미가 바디감을 경쾌하게 끌어올리고 풍부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여운에서는 우아한 풍미가 끝없이 이어졌다. 10년 이상 숙성된 2013년산에는 마른 과일향과 캐러멜 같은 달콤함이 한가득 담겨 있었고 초콜릿, 담배, 트러플 등 잘 발현된 3차향이 과일향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실크처럼 매끄러운 질감은 우아한 레드 와인의 진수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모로스는 우리나라에도 수입되고 있으니 이탈리아 와인 팬이라면 꼭 찾아서 마셔 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마세리아 리 벨리(Masseria Li Veli)
[마세리아 리 벨리 와이너리 전경]
마세리아 리 벨리는 토스카나에서 40년 넘게 와인을 생산하던 팔보(Falvo) 가문이 1999년에 매입한 와이너리다. 1895년에 설립된 와이너리를 팔보 가문이 사들여 새롭게 단장하고 최신 장비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리 벨리는 로마시대부터 포도를 식재했던 세톤체(Settonce)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한다. 세톤체란 모든 포도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서로 삼각형을 이루도록 식재하는 방식으로 포도가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람도 잘 통하는 구조다. 이에 더해 리 벨리는 석회암과 모래가 많이 섞인 비옥한 토양도 구조감이 탁월하고 풍미가 우아하며 숙성잠재력이 뛰어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이유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와인 맛을 보니 그 주장이 과언이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신선하고 향긋한 화이트 와인과 로제도 뛰어났지만 살리체 살렌티노의 대표적인 두 품종 네그로아마로와 수수마니엘로로 만든 레드 와인 3종이 특히 주목할 만했다.
[마세리아 리 벨리의 수수마니엘로, 파사만테, 페쪼 모르가나]
아스코스 수수마니엘로(Arkos Susumaniello)는 수수마니엘로 100%로 만든 레드 와인으로 프랑스산 바리크, 대형 오크통, 암포라 등에서 숙성을 거친 뒤 블렌드해 출시한 와인이다. 라즈베리, 체리, 블랙커런트 등 베리 향이 풍성하고 감초 등 향신료 향이 조화롭다. 부드러운 타닌이 제공하는 매끈하고 탄탄한 질감이 세련된 느낌이다. 2024 감베로 로쏘 트레 비키에리(Gambero Rosso Tre Bicchieri, 감베로 로쏘 최고점인 잔 세 개)를 수상해 품질을 인정받은 바 있다. 파사만테(Passamante)는 네그로아마로 100%로 만들어 프랑스산 오크 배럴에서 숙성을 거친 뒤 출시한 와인이다. 농익은 체리를 비롯해 다양한 붉은 베리류의 풍미가 풍성하고 신선하다. 달콤한 과일향은 입안에서 산뜻한 산미와 균형을 이뤄 와인의 바디감을 한결 경쾌하게 만든다. 타닌이 부드럽고 매끈해 가볍게 즐기기 좋다. 페쪼 모르가나(Pezzo Morgana)도 네그로아마로 100% 레드 와인이며 리제르바 등급으로 프랑스산 바리크(50% 새 오크)와 배럴에서 오랜 숙성을 거쳤다. 바디감이 묵직하며 질감은 부드럽고 둥글다. 농익은 검은 자두와 체리 등 과일향이 무척 감미롭고 초콜릿과 코코아 가루 등 달콤한 향신료 향도 우아하기 그지 없다. 진하고 풍성한 풍미와 산뜻한 산미의 어울림도 훌륭하다. 15년 이상 숙성잠재력을 기대해도 좋을 만한 와인이다. 마세리아 리 벨리의 와인들도 국내 수입 중이다.
카스텔로 모나치(Castello Monaci)
[리조트 같은 카스텔로 모나치의 야경]
'수도사의 성채'라는 뜻을 가진 카스텔로 모나치는 일반적인 와이너리가 아니라 건물 그 자체가 문화재다. 밤에 방문해 야경만 촬영할 수 있었지만 낮에 들렀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싶다. 이곳은 여행객을 위한 와인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결혼식 등 다양한 모임을 하는 곳으로도 인기가 높다. 현재 카스텔로 모나치를 경영하는 세라차 게리에리(Seracca Guerrieri) 가문은 지속가능 농법과 손수확을 고수하며 전통과 혁신을 결합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네그로아마로와 프리미티보 레드 와인도 훌륭했지만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 역시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탁월한 맛을 보여주었다. 테이스팅용으로 제공된 와인이 모두 올드 빈티지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숙성잠재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살렌티노 와인이 숙성되면 과연 어떤 맛을 보여줄까? 카스텔로 모나치의 와인 3종을 소개한다.
[카스텔로 모나치의 샤라 2012와 2022, 아이아체, 아르타스]
샤라(Chara) 2012년산은 샤르도네 고목에서 수확한 포도를 비활성용기에서 발효한 뒤 바리크에서 단기간 숙성을 거쳐 출시한 와인이다. 올드 빈티지여서 오랜 병 숙성으로 발현된 마른 과일 향의 감미로움이 탁월하고 묵직한 바디감과 상큼한 산미의 조화가 풀리아산 샤르도네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비교 시음한 샤라 2022년산에서는 열대과일보다 감귤류와 핵과류 등 신선한 과일향이 압도적이었고 올드 빈티지에서 맛볼 수 없었던 미네랄 향도 발견할 수 있었다. 카스텔로 모나치에 따르면 고목의 생산성이 너무 떨어져 해안가에 위치한 밭에 새로 심은 샤르도네로 만든 와인이라고 한다. 이 와인은 10년 뒤에 어떤 맛을 보여줄 지 벌써 궁금해진다. 아이아체(Aiace) 2003년산은 네그로아마로에 말바지아 네라를 소량 블렌드해 만든 와인이다. 마른 검붉은 베리류의 풍미가 감미롭고 가죽, 담배, 캐러멜 등 3차향의 어울림도 황홀했다. 네그로아마로의 숙성잠재력에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되는 맛이다. 아르타스(Artas) 2007년산은 프리미티보로 만들었으며 이 와인도 대추와 체리 등 마른 과일 향이 풍성하고 훈연, 담배, 캐러멜 등 3차향의 복합미가 훌륭했다. 카스텔로 모나치의 와인들은 아직 국내 미수입 상태다.
풀리아 와이너리 투어 2일차에 경험한 살리체 살렌티노는 우리나라에 비교적 덜 알려진 네그로아마로와 수수마니엘로를 매력을 현지에서 느껴볼 수 있었던 귀한 기회였다. 시음한 와인이 너무 많아 모두 기사에 담을 수는 없지만 레드 와인 뿐만 아니라 화이트와 로제의 품질도 탁월했다. 마지막에 방문한 카스텔로 모나치의 올드 빈티지 와인들이 보여주었듯 살리체 살렌티노 와인들은 숙성잠재력도 우수하다. 풀리아의 또 다른 지역 브린디시(Brindisi)의 와인들은 또 어떤 매력을 보여줄까? '이탈리아의 구두굽 풀리아를 가다 3편'에서 3일차에 방문한 브린디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