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지 취재] 이탈리아의 구두굽 풀리아를 가다 (3) – 브린디시

이탈리아의 브린디시(Brindisi)는 우리에겐 낯선 지명이지만 이곳의 와인 역사는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포도나무를 들여오며 시작됐다. 아드리아해로 향하는 항구도시인 브린디시는 한때 지중해 와인 무역의 거점이기도 했다. 와인 거래는 중세시대까지 활발하게 이어졌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며 양 위주로 와인을 생산하면서 브린디시의 이미지는 벌크 와인 생산지로 바뀌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 브린디시는 풀리아에서도 떠오르는 와인 산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토착 품종인 네그로아마로(Negroamaro)를 필두로 와인의 품질 향상에 노력한 결과다. 


브린디시에서는 네그로아마로로 강건한 레드 와인과 풍성한 아로마의 로제 와인을, 말바지아 네라(Malvasia Nera)로는 보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부드러운 레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유기농과 지속가능 농법으로 더 건강한 와인 생산에 주력하면서 브린디시 DOP(Brindisi DOP)와 살렌토 IGT(Salento IGT) 와인으로 세계 시장에서 점점 입지를 굳히고 있으며, 항구와 공항이 있는 도시에 자리한 와인 산지인 만큼 와인 투어 활성화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브린디시에서 방문한 4 곳의 와이너리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그곳에서 시음한 대표 와인들의 시음노트를 정리해 보았다.


칸티나 삼피에트라나(Cantina Sampitrana)


[네그로아마로로 만든 질리오 디 마레 로제 스파클링]


칸티나 삼피에트라나는 1952년 68명의 조합원이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브린디시와 레체(Lecce)라는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하며 기차역과 가까워 와인 수출과 방문객 유도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의 와인 품질과 투어 프로그램에 대한 방문객의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삼피에트라나는 190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네그로아마로, 말바지아 네라, 프리미티보(Primitivo)를 주품종으로 스파클링, 화이트, 로제, 레드 등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일부 와인이 수입 중인데 아래 시음한 와인 중 세테브라찌아가 그중 하나다.


[포도의 일부를 아파시멘토 기법으로 말려서 만든 세테브라찌아]


삼페이트라나에 들어서자마자 웰컴 드링크로 시음한 와인은 질리오 디 마레(Giglio di Mare)라는 로제 스파클링이었다. 네그로아마로를 사용해 탱크방식으로 만든 이 와인은 진한 연어색이 아름답고 복숭아와 석류 등 달콤한 과일향이 풍부하다. 입안에서는 기포가 부드럽게 퍼지면서 아로마를 한껏 끌어올리는 느낌이었다. 식전주로도 좋지만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1952는 네그로아마로에 소량의 몬테풀치아노를 블렌드해서 만든 와인이다. 삼피에트라나의 설립연도를 이름으로 삼은 만큼 이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와인이라 할 수 있다. 바다에서 각각 2km와 5km 떨어진 두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발효한 뒤 바리크에서 1년, 병입한 뒤 추가 1년의 숙성을 거쳐 출시했다. 아로마에는 잘 익은 붉은 과일 향이 가득하고 캐러멜, 커피 등 오크 숙성으로 발현된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중간 정도의 바디감에 타닌도 매끈해서 마시기 편한 스타일이지만 복합미도 잘 갖췄다. 육류와 즐겨도 좋지만 매콤한 음식이나 숙성된 치즈와도 잘 어울릴 듯하다. 


세테브라찌아(Settebraccia)는 네그로아마로 85%에 수수마니엘로(Susumaniello) 15%를 블렌드해서 만든 아이콘급 와인이다. 네그로아마로를  3~4주간 말린 뒤 발효했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14.5%로 높은 편이며 바리크에서 8개월간 숙성을 거쳤다. 진한 루비색이 매혹적이고 야생 베리로 만든 잼처럼 달콤한 풍미와 바닐라, 향신료 향의 조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부드러운 타닌이 둥글고 매끈한 질감을 선사해 마시기에도 부담이 없다. 다양한 육류와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다.


칸티네 두에 팔메(Cantine Due Palme)


[칸티레 두에 팔메의 와인 리조트 일 카스텔로]


칸티네 두에 말메는 1989년에 와인메이커 출신인 안젤로 마치(Angelo Maci)가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풀리아 지역의 와이너리 세 곳을 합병하면서 현재 총 3천 헥타르의 포도밭과 1천 명이 넘는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설립 직후에는 여타 와이너리들처럼 벌크 와인을 주로 생산했지만 1995년부터 프리미티보, 네그로아마로, 말바지아 네라 등 토착 품종에 집중하며 품질과 시장 점유율을 향상시키는 중이다. 연간 와인 생산량은 약 2천만 병에 이르고 전 세계로 활발히 수출되며 풀리아 와인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첼리노 산 마르코(Cellino San Marco) 지역에 위치한 일 카스텔로(Il Castello)라는 성을 매입해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리조트로 개발하는 등 와인 투어에도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두에 팔메를 돌아본 뒤 일 카스텔로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다양한 와인을 시음했다. 시음한 와인 모두를 다룰 수 없어 대표적인 와인 3종에 대한 시음 노트를 공유한다.


[두에 팔메의 대표 와인 3종]


코레로사(Corerosa)는 수수마니엘로와 프리미티보를 절반씩 섞어 만든 로제 와인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하고 짧은 병숙성을 거쳐 로제 특유의 신선함이 잘 살아 있다. 연한 연어색이 아름답고 붉은 베리류의 과일향과 함께 장미, 허브, 미네랄, 향신료 같은 아로마가 은은한 조화를 이룬다. 향긋함과 상큼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타입으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스타일이다. 식전주로도 좋지만 다양한 음식과 가볍게 즐기기에도 좋다. 


티나이아(Tinaia)는 샤르도네 80%와 말바지아 비앙카(Malvasia Biana) 20%를 블렌드해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와인의 약 80%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20%는 바리크에서 발효해 풍미의 집중도와 복합미를 살렸다. 배럴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나누어 짧은 숙성을 거친 뒤 병입했다. 영롱한 금색이 매혹적이고 열대 과일의 달콤함과 함께 살구, 향신료, 꿀, 바닐라 등 다채로운 아로마가 코를 희롱한다. 바디감이 묵직한 편이지만 신선한 산미가 와인의 균형감을 부여하며 여운도 길게 이어진다. 기름을 넣어 조리한 다양한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며 백색육과 즐겨도 좋은 와인이다. 


셀바로사(Selvarossa)는 2023년 감베로 로쏘 트레 비키에리(Gambero Rosso Tre Bicchieri)를 받았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 받은 두에 팔메의 아이콘급 와인이다. 네그로아마로가 주품종이며 말바지아 네라를 약간 블렌드해 만들었다. 네그로아마로는 타닌이 강해 포도의 완숙이 중요하지만 스파클링, 화이트, 레드 등 다양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다재다능한 품종이다. 와인은 미국산과 프랑스산 배럴에 나눠 숙성해 보다 풍성한 복합미를 추구했다. 아로마에서는 농익은 과일향이 주를 이뤘고 훈연, 감초, 초콜릿 등의 풍미가 더해져 농축미가 뛰어났다. 묵직하고 부드러운 질감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며 다양한 육류와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다.


보트루뇨(Botrugno)


[오너 와인메이커인 세르지오 보트루뇨가 시음용 와인을 열고 있다]


보트루뇨는 현재 4대째 내려오는 브린디시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경영 와이너리 중 하나다. 약 30헥타르의 포도밭을 직접 경작하고 와인을 만드는 이곳은 네그로아마로 등 토착 품종으로 스파클링, 화이트, 로제, 레드 등 풀리아와 브린디시 특유의 풍미가 듬뿍 담긴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와이너리가 브린디시 시내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으므로 이곳을 여행한다면 잠시 짬을 내 와이너리를 돌아보고 와인도 맛볼 수 있다.


[보트루뇨의 아르치오네 브린디시 DOP 와인]


보트루뇨에서 첫번째로 마신 와인은 브린디시(Brindeasy) 로제 스파클링이다. 도시 이름인 브린디시를 영어 스펠링만 살짝 바꾼 재미난 이름을 가진 이 와인은 가볍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이다. 네그로아마로를 이용해 탱크 방식으로 만들었으며 오렌지, 복숭아, 딸기 등의 과일향이 신선하고 상큼한 산미가 와인에 경쾌함을 더한다. 


오로라(Aurora)는 오너인 세르지오의 어머니 이름을 딴 네그로아마로 로제 와인이다. 상당히 진한 오렌지 빛깔이 독특한 이 와인은 낮은 온도에서 포도 껍질을 5시간 가량 침용해서 만들었다. 자몽, 오렌지, 딸기, 크렌베리 등 과일향이 풍성하고 약간의 향신료 향이 입맛을 돋운다. 로제 치고는 바디감이 묵직하지만 산미가 좋아 와인의 밸런스가 훌륭하다. 햄이나 치즈처럼 가벼운 스낵과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다. 


아르치오네(Arcione)는 네그로아마로 85%와 말바지아 네라 15%를 블렌드해 만든 레드 와인이다. 풀리아 와인을 처음 마셔보는 사람도 편하게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매끈한 질감이 큰 장점이다. 진한 과일향과 함께 매콤한 향신료 향이 어우러진 스타일로 후추가 박힌 치즈와 함께 즐기니 맛의 궁합이 환상적이었다.


테누테 루 스파다(Tenute Lu Spada)


[루 스파다의 임직원들이 시음용 와인을 준비하고 있다]


풀리아와 브린디시 와인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테누테 루 스파다였다. 2015년에 설립된 신생 와이너리지만 10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유기농 포도재배를 완성하고 포도밭 한가운데에 위치한 오래된 농장을 세련된 와인숍과 테이스팅룸으로 변모시켰다. 브린디시 외곽에 있는 포도밭은 아드리아해에서 2km,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칠라레제(Cillarese) 호수에서 3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자라는 포도는 네그로아마로, 말바지아 네라, 수수마니엘로, 미누톨로(Minutolo), 프리미티보 등 대부분이 풀리아 토착 품종이다. 여름의 고온을 완화시켜주는 바다와 호수 그리고 석회암이 가득한 점토 토양은 루 스파다 와인의  우아한 풍미와 풍성한 아로마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인이다.


[루 스파다에서 시음한 와인들]


저녁 식사와 함께 시음한 루 스파다의 와인들은 대체로 세련된 스타일을 자랑했다. 그중 대표적인 3종을 꼽자면 우선 미누톨로라는 청포도로 만든 아보체타(Avocetta)를 들 수 있다. 미누톨로는 유전적으로 모스카텔로(Moscatelo)와 가까운 품종이라고 한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낮은 온도로 발효한 뒤 짧은 병숙성을 거친 이 와인은 향긋한 꽃향과 함께 레몬, 살구, 복숭아, 꿀 등 달콤한 아로마가 가득했지만 막상 입에 들어오니 오히려 상큼한 맛이 부각되는 반전 매력을 보여주었다. 바디감이 제법 묵직하지만 적절한 산미가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 느낌이었다. 


필로니아눔(Philonianum)은 수수마니엘로를 늦수확해 만든 레드 와인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하고 1년간 숙성을 거친 뒤 추가로 3개월간 병숙성을 더 거쳐 출시됐다. 석류와 검은 자두 등 달콤한 과일향에 허브와 향신료 향이 매력을 더하고 매끈한 타닌이 마시기 편한 질감을 선사한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레드 와인으로 바비큐한 채소나 고기에 곁들이기 좋은 스타일이다.


마사다(Masada)는 네그로아마로로 만든 레드 와인으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뒤 미국산 오크 바리크에서 4개월간 숙성시킨 와인을 탱크에 보관해둔 와인과 블랜드해 완성했다. 농익은 검은 베리류의 향이 무척이나 달콤하고 커피, 초콜릿, 마른 허브 등의 풍미가 복합미를 더한다. 육즙이 풍부한 육류나 경성 치즈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4박 5일간 만두리아, 살렌티노, 브린디시를 둘러본 풀리아 와인 투어는 이렇게 마무리 됐다. 풀리아를 막연히 최근에 와인 품질이 좋아지고 있는 곳, 프리미티보 와인이 생산되는 곳 정도로만 알던 나의 짧은 지식이 알바렐로와 세톤체(Settonce)라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내려오는 포도 재배 방식을 직접 눈으로 보고 네그로아마로, 수수마니엘로, 말바지아 네라의 각기 다른 개성과  국제 품종으로 만든 세련된 와인들을 맛보며 한껏 넓혀진 듯했다. 풀리아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중이다. 전통을 기반으로 최첨단 현대 기술과 와인메이커들의 열정이 더해졌으니 풀리아 와인이 앞으로는 세계 와인 시장에서 점점 더 큰 존재감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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