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와인&무비] 밸런타인데이에 소중한 이와 함께하는 법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는 소중한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날이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는 바깥의 차가운 바람을 피해 실내에서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보는 건 어떨까. 사랑과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 3편과 밸런타인데이를 더욱 뜻깊게 만들어 줄 와인 4종을 추천한다.


영화 <프렌치 수프>


“냄새 맡고, 뒤집고, 어루만지고. 그 모든 순간이 이 부엌에서 벌어지죠.” 

- <프렌치 수프>, 2024년 개봉

트란 안 훙(Tran Anh Hung) 감독이 제76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재기에 성공하게 해준 작품 <프렌치 수프>는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요리의 합을 맞춰 온 셰프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외제니(줄리엣 비노쉬)는 서로를 요리사로서 존중하며 인간적으로도 깊은 애정과 신뢰를 쌓아온 관계다. 외제니는 결혼하자는 도댕의 청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냐며 완곡하게 거절한다. 그들은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요리하며 삶을 공유하지만, 허락 없이는 방문을 함부로 열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품위를 잃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한여름의 들끓는 욕망보다는 가을날의 아름다운 꽃을 연상시킨다. 요리 영화인 만큼, 도댕과 외제니가 요리하는 장면을 공들여 섬세히 보여주는데 그들이 함께 요리할 때면 늘 창으로 밝은 빛이 들어온다. 그들의 부엌은 전쟁터가 아닌 그 자체로 숭고한 삶의 일터다. 도댕과 외제니는 오랫동안 길들여진 그들만의 리듬과 기쁨으로 요리를 빚어낸다. 마치 화가가 정성 들여 그림을 그리듯 요리한다. 그리고 프랑스 요리 영화에 와인이 빠질 수 있을까? 그들의 식탁에는 와인이 있다. 퓔리니 몽라셰(Puligny-Montrachet),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그리고 1837년 산 크룩 끌로 당보네(Krug Clos d'Ambonnay)까지.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와인에 대한 예찬으로도 가득한 이 영화는 숙성되며 깊어지는 와인의 풍미처럼 존중으로 쌓은 시간의 더께가 얼마나 아름답게 둘의 사이를 빛낼 수 있는지 문득 깨닫게 한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전혀 모르는 사람 둘이 길을 걷다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해. 전생에 관계가 있었다는 뜻이거든.” 

- <패스트 라이브즈>, 2024년 개봉

셀린 송(Celine Song) 감독의 데뷔작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던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영화에 녹여냈다. 12살의 해성(유태오)과 나영(그레타 리)은 우정과 사랑 사이의 순수한 감정을 나누지만, 나영의 이민으로 인해 서툴게 이별한다. 12년 후, 그들은 SNS를 통해 반갑게 조우하고 한국과 뉴욕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서로의 일상을 잠시 공유한다. 그렇지만 해성과 나영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대신, 각자의 자리를 지키기로 선택한다. 그렇게 또 한 번 어긋난 그들은 다시 12년의 시간이 흐른 36살의 어느 날 뉴욕에서 드디어 만난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자못 인상적이다. 이미 결혼한 나영과 나영의 남편, 그리고 해성은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얽히고설킨 인연의 작용 끝에 세 사람은 그렇게 바 테이블에 앉아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전생)'라는 제목 그대로, 영화는 불교의 인연법을 끌고 와 인간사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이 영화는 깊고도 새롭게 보여준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애틋한 시절을 공유한 옛 친구와의 짧은 만남과 다가올 긴 이별이 주는 여운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제는 '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훨씬 익숙한 나영이 8천 겁의 인연으로 만난 남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역시 소중하게 다룬다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인연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순간을 가슴 저리도록 귀하게 여기는 시선이 곳곳에 섬세하게 녹아있는 영화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만일 신이 있다면, 내 안이나 당신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의 공간에 존재할 거야.”

- <비포 선라이즈>, 1996년 개봉

영화 <보이후드>, 비포 시리즈(<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은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감독의 1996년 작품이다. 밸런타인데이 로맨스 영화로도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이 영화는 가장 눈부셨던 에단 호크(Ethan Hawke)와 줄리 델피(Julie Delpy)의 한때를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 속 줄리 델피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사람으로 형상화한 모습 같다. 부스스한 머릿결, 약간 비스듬한 자세, 환한 미소.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 얼마나 편하고 보기 좋은지!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은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끌린다. 제시는 같이 비엔나를 구경하자고 셀린에게 제안한다. 대학생인 셀린은 파리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하루 미루고, 제시와 함께 기차에서 내린다. 영화는 두 사람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거리를 산책하는 하루 동안의 일을 다루고 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만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금세 친밀해진다. 비엔나 시내를 거닐며 LP감상실에서 음악을 함께 듣고, 석양이 지는 관람차 안에서 키스를 나누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두 사람의 젊음이 얼마나 눈부시고 찬란한지 내내 감탄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낭만적인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와인과 관련한 장면이다. 제시와 셀린은 와인이 마시고 싶지만 충분한 돈이 없다. 제시는 무작정 바에 들어 가 바텐더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레드 와인을 한 병 부탁하며 돈은 나중에 꼭 부치겠다고 약속한다. 바텐더는 그에게 와인 한 병을 건네며 말한다. “잊지 못할 밤이 되길 바라네.” 그들은 공원에서 밤하늘의 별을 마리아주 삼아 와인을 나눠 마신다.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떠한 인생을 살게 되든지, 이날 밤 함께 마신 와인보다 더 맛있는 와인을 만나는 일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할 때

러브블록, 피노 누아 Loveblock, Pinot Noir

'누군가의 사랑(Someone's Love)'이라는 이름의 러브블록 피노 누아 포도밭은 뉴질랜드 센트럴 오타고의 눈 덮인 산에 있는 가족 와이너리로, 지속가능한 농법을 사용해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센트럴 오타고는 세계 최남단에 위치한 와인 생산지로 포도나무의 생육기간 동안 하루 18시간까지 햇빛에 노출되며, 복합적인 층을 이루고 있는 토양이 피노 누아에 매우 이상적이다. '사랑으로 키워 정성으로 만든다'라는 모토로 타협하지 않고 자연과 포도, 그리고 와인메이커의 기술로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든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와인이다.



밸런타인데이의 식탁 위에서 나눌 와인

산 파비아노 칼치나이아,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체롤레 San Fabiano Calcinaia, Chianti Classico Riserva Cellole

산지오베제(Sangiovese) 품종은 토마토 소스를 베이스로 하는 이탈리아 음식과 뛰어난 매칭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산 파비아노 칼치나이아의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체롤레는 스테이크, 피자, 토마토 파스타, 양갈비, 불고기 등 다양한 음식과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숙성이 오래될수록 가넷 림을 띠는 선명한 루비 컬러에 붉은 과실과 향신료의 향이 두드러지며, 우아하고 부드러운 타닌이 어우러져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 24개월간 배럴에서 숙성 후 병입해 6개월 추가 숙성했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소중한 이와 함께할 식사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할 와인이다.



달콤한 사랑의 기운을 담아

간치아, 모스카토 로제 Gancia, Moscato Rose

연인과 함께 마실 달콤한 와인을 찾는다면, 모스카토가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간치아 모스카토 로제는 모스카토와 브라케토 품종의 블렌딩으로 완성된 아름다운 핑크빛 스파클링 와인이다. 라즈베리와 세이지, 그리고 피치와 오렌지 등의 신선하고 풍성한 과실향과 함께 은은하게 느껴지는 장미꽃 향기가 매혹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향긋한 과실 풍미에 청량감 있는 탄산감과 적절한 산도가 뛰어난 밸런스를 이뤄, 아무리 마셔도 싫증나지 않는 기분 좋은 달콤함으로 이어진다.



초콜릿과 함께 선물할 와인

다우, 너바나 리저브 포트 Dow's, Nirvana Reserve Port

밸런타인데이엔 초콜릿 선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초콜릿과 함께 페어링할 만한 와인으로 여기, 다우 너바나 리저브 포트가 있다. 다크 초콜릿과 가장 잘 어울리는 포트와인을 목표로 만들었고, 실제로 모든 다크 초콜릿과 잘 어울린다. 그중에서도 60%~75% 사이의 카카오를 함유한 다크 초콜릿과 최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흑장미, 바이올렛 등의 향기와 함께 부드러우면서 잘 익은 타닌이 집중력을 보여준다. 달콤하지만 우아한 맛이 일품으로 향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입안에 그대로 전달되는 뛰어난 포트와인이다. 소중한 이에게 초콜릿과 함께 선물한다면 감동은 배가 될 것이다.

프로필이미지박예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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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02.10 10:04수정 2025.05.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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