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그너 패밀리 와인(Wagner Family of Wines)은 미국 와인 산업에서 가족 와이너리로 성공적인 행보로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그 출발은 1972년, 척 와그너(Chuck Wagner)가 부모와 함께 나파 밸리 러더포드(Rutherford)에 설립한 케이머스 빈야드(Caymus Vineyards)였다. 초반부터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선보이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케이머스 빈야드는 1975 빈티지부터 가장 훌륭한 배럴만 선정해 스페셜 셀렉션 카베르네 소비뇽(Special Selection Cabernet Sauvignon)을 출시하고 있다. 이 와인은 1984 빈티지와 1990 빈티지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100대 와인 중 1위에 선정되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와인 스펙테이터> 1위에 두 번 이름을 올린 와인으로 기록됐다.
2022년, 설립 50주년을 기념한 와그너 패밀리 와인은 그동안 캘리포니아 여러 지역으로 진출해 덜 알려진 산지의 잠재력에도 주목해 왔다. 이들은 현재 케이머스 빈야드를 포함해 총 8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에멀로(Emmolo), 메르 솔레이(Mer soleil), 코넌드럼(Conundrum) 등 모두 50년 넘게 가족 와이너리를 성장시켜온 척 와그너와 그의 자녀들이 운영하는 브랜드다. 특히 제니 와그너(Jenny Wagner)는 외가의 성을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하며 가족 와이너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에멀로를 이끌고 있고, 2021년부터 아버지 척 와그너의 뒤를 이어 케이머스 빈야드 진판델(Caymus Vineyards Zinfandel)도 맡고 있다. 최근 케이머스 빈야드 진판델의 한국 론칭을 맞아 차세대 와인메이커로서 존재감을 키우며 활약하고 있는 제니 와그너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에멀로의 오너이자 와인메이커, 제니 와그너 (제공: 나라셀라)]
먼저, 직접 운영하고 있는 에멀로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누고 싶습니다. 외가의 이름을 계승한 브랜드라고요.
네, 저희 외가는 1920년대에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나파로 이주해 왔어요. 외할아버지 프랭크 에멀로(Frank Emmolo)는 묘목장을 운영하며 나파의 많은 재배자들에게 포도나무 묘목을 공급하셨죠. 저는 어린 시절 외갓집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항상 텃밭에서 기른 신선한 채소로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사실 에멀로는 부모님의 성을 이어가길 원했던 제 어머니 셰릴 에멀로(Cheryl Emmolo)가 처음 시작하셨어요. 2010년 제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에멀로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에멀로 소비뇽 블랑과 멀롯은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요, 특히 소비뇽 블랑은 풀내음이 두드러지지 않고 향긋한 과일 향과 미네랄리티가 조화로운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케이머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분명히 다른 브랜드인데, 어떤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나요?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에멀로를 마시는 사람들이 저처럼 와인을 사랑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와인에 저만의 관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소비뇽 블랑을 예로 들자면, '덜할수록 좋다'는 원칙을 고수해요. 지나치게 숙성되거나 허브 향이 과하지 않고, 적절한 산미가 생동감을 주는 와인을 만들려고 합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와인을 만들기까지 어머니 셰릴 에멀로와 아버지 척 와그너의 영향이 컸을 텐데요, 두 분에게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요?
제가 와인 일을 하면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는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에요. 감사하게도 제게는 경험과 지식을 공유해 주시는 가족과 팀이 있죠. 제가 에멀로를 이어받을 때 어머니는 와인에 제 스타일을 담아보라고 격려해 주셨고, 제가 진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영감을 주셨습니다. 조부모님과 함께 케이머스 빈야드를 설립하신 아버지는 제게 배우는 걸 멈추지 말라고 하셨어요. 지금까지 우리 가족 사업의 모든 면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제가 각 분야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시죠. 덕분에 매번 이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같은 사무실에서 거의 매일 함께 와인을 시음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어요.
[척 와그너와 제니, 찰리 와그너 (제공: 나라셀라)]
그 모든 순간 중 가장 즐거운 순간, 혹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특히 포도원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저는 가족의 유산을 이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 유산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겠죠. 저희는 스스로 농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일보다 포도밭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버지와 제 오빠 찰리(Charlie)도 같은 생각이에요. 손으로 흙을 만지고 포도 재배와 양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계속 실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과정을 좋아합니다.
케이머스 빈야드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카베르네 소비뇽이 유명하지만 진판델 역시 가족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품종으로 알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는 케이머스 빈야드 진판델의 생산도 맡으셨는데, 현재 이 와인에 대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우리 가족 모두 진판델을 좋아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찰리 와그너 시니어(Charlie Wagner Sr.)도 진판델을 각별하게 생각하셨어요. 진판델이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완벽한 테이블 와인이라고요. 제가 케이머스 진판델의 양조를 맡게 되어 영광이고, 이 와인을 만들면서 할아버지의 그 말씀을 좋은 길잡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나파 밸리와 수이선 밸리(Suisun Valley)에 걸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포도밭에서 다섯 가지 싱글 빈야드 진판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각각 해당 빈야드의 지형과 미세 기후 등을 반영해 고유한 특성을 표현하죠.
[케이머스 빈야드 진판델 (제공: 나라셀라)]
케이머스의 또 다른 프로젝트 케이머스-수이선(Caymus-Suisun)에서도 양조를 총괄하고 계시죠. 나파 밸리에 비해 수이선 밸리는 덜 알려진 산지예요. 와그너 패밀리는 이 지역의 어떤 면에 주목하고 있나요?
저와 아버지, 오빠는 모두 수이선 밸리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어요. 앞으로 명성을 얻을 산지라고 생각하고 기대도 큽니다. 나파에 비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파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해양성 기후에 다양한 품종을 재배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수이선 밸리의 언덕에 있는 포도밭은 바람이 부는 환경이 그르나슈를 생산하기에 적합해 보여서 현재 소량의 그르나슈도 생산하고 있어요. 이곳의 재배 환경이 나파의 초창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생산자들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이고 대대로 이어지는 가족 농장이 있어 진정한 공동체 의식이 느껴지죠. 2022년 봄, 케이머스-수이선 와이너리를 시작하며 수이선의 이웃들과 함께하게 된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머스-수이선 빈야드 (제공: 나라셀라)]
에멀로, 케이머스 빈야드 진판델, 그리고 케이머스-수이선까지 각기 다른 정체성이 있는 와인을 생산하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철학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저는 특정 지역이나 빈야드에서 어떻게 고유한 이야기와 특징을 표현하는 와인을 생산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사실 저희 가족 모두가 마찬가지죠. 빈야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시간이 흐르며 와인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탐구하는 건 늘 설레는 일입니다. 어떤 해는 포도 성장기에 서리가 내리거나 기상 이변이 발생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해에는 평소 좋은 포도를 생산하던 포도밭이 부진할 수도 있어요.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고, 저는 그 과정에 함께하는 도전과 흥분을 좋아해요.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 싶습니다. 간단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많은 세부 사항들을 관리하고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해 적응해야 가능한 일이죠. 그렇게 만든 와인을 사람들이 즐길 때, 그게 곧 큰 만족과 보람으로 다가옵니다.
와인과 함께하는 삶이지만 와인 이외의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그 이야기도 들려주신다면요?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각기 다른 요소들이 조화를 이뤄 가치 있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어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는 시간이 저라는 사람과 와인메이커로서의 제 모습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또한 저보다 앞서 이 길을 닦고 기회를 만들어 주신 분들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외가인 에멀로 가족은 묘목장을 운영하며 포도나무를 재배했고 친가인 와그너 가족은 자두와 호두를 재배하다가 결국 포도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죠. 그분들의 발자취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2022년 케이머스 빈야드는 설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와그너 패밀리 와인의 차세대 와인메이커로서, 앞으로의 50년에 대해 그리는 미래가 있다면 어떤 모습인가요?
50주년을 맞아 선보인 케이머스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Caymus,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2022 빈티지는 반세기 역사를 기념한다는 점에서 저희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지난 50년간 해온 것들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팀과 가족으로서 함께 일하며, 지속 가능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죠. 지금까지 가족 소유와 가족 경영을 유지해 왔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집중할 거예요. 또한 우리는 계속해서 캘리포니아 전역의 다양한 산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AVA들을 살펴보며, 그곳에서 어떻게 고품질 와인이 생산되는지에 대해 배우고 있죠.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고, 우리가 생산하는 다양한 와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멀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더 탐구해 보고 싶은 새로운 품종이나 스타일의 와인이 있나요?
네, 현재 에멀로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올해 말에 공개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와인21 독자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희 와인에 관심을 보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와인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발휘하곤 하는데, 저희가 그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쁩니다. 제 할아버지 찰리 와그너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와인 한 병이면 네 명의 낯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 수 있다.” 저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 메시지를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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