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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다이내믹한 리듬으로 성장 중인 와인 산지, 워싱턴의 현재

미국 북서부 끝에 자리한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와인 산지다. 포도 재배에 가장 이상적인 북위 46도에 걸친 위치에 캐스케이드 산맥과 미줄라 홍수가 형성한 지형 등 특별한 자연 환경에서 개성 있는 와인이 탄생하는 곳이다.

 

지난 4월 말,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매력적인 와인 산지 워싱턴을 방문해 주요 빈야드들을 둘러보며 현지 생산자들을 만났다. 현지에서 만난 와인메이커들은 최근 몇 년 연속 워싱턴 와인의 빈티지가 아주 훌륭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워싱턴 와인의 매력을 알아본 애호가들, 앞으로 와인의 세계를 확장하며 워싱턴 와인을 만날 소비자들 모두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다. 현지에서 경험한 다채로운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s)와 그곳에서 생산되는 와인, 워싱턴에 매료된 와인메이커들, 그리고 특별한 커뮤니티에 대해 소개한다.


[레드 마운틴 AVA의 해질녘 빈야드 풍경]


와인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다채로운 AVA 

워싱턴주의 와인 산지는 캐스케이드 산맥 동쪽 내륙 지역에 위치한다. 시애틀에서 캐스케이드 산맥을 넘어가면 주요 AVA가 시작되고 와인 산지들을 방문할 수 있다. 워싱턴은 넓은 면적의 땅에서 현재 80여 종의 품종으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며, 전체 1070여 개의 와이너리 중 90% 이상이 연간 5천 케이스 미만의 와인을 생산할 정도로 소규모 생산자들이 많다.


워싱턴에 도착해 만난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MW) 브리 스톡(Bree Stock)은 “워싱턴이 와인 산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건 금주법 폐지 이후이고, 본격적인 발전이 이뤄진 것은 1960년대부터”라고 소개했다. 현재 워싱턴에는 총 21개의 AVA가 있다. 1983년 워싱턴에서 최초로 AVA 승인을 받은 야키마 밸리(Yakima Valley)와 가장 넓은 재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콜롬비아 밸리(Columbia Valley)를 비롯해 레드 마운틴(Red Mountain), 왈라 왈라 밸리(Walla Walla Valley), 홀스 헤븐 힐스(Horse Heaven Hills) 등이 주요 AVA로 꼽힌다. 점차 산지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서 AVA를 세분화하며 큰 AVA 아래 세부 AVA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 새롭게 지정된 곳은 2024년 베벌리(Beverly) AVA다. 브리 스톡은 “지역의 구분된 이름도 있지만 토지의 여건과 물을 사용하는 관개 방식, 기후, 와인 스타일 등 여러 가지 요소가 AVA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명했다.


[우딘빌에 자리한 들릴 셀라즈]


워싱턴 와인 생산자들은 테루아에 따른 적절한 품종 선택과 세부 산지의 특성을 살린 양조 스타일로, 소비자들이 미국 와인에 기대하는 과실미와 유럽 와인에 기대하는 우아함을 모두 갖춘 와인을 만들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이 워싱턴 와인 전반에 느껴지는 매력이다. 우딘빌(Woodinville)에 위치한 들릴 셀라즈(DeLille Cellars)는 보르도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을 워싱턴의 독특한 테루아에서 재해석하는 와이너리다. 이들은 콜롬비아 밸리에서 30년 넘게 보르도 블렌딩 와인을 생산해 왔다. 야키마 밸리 AVA와 왈루크 슬로프(Wahluke Slope) AVA에서 생산한 소비뇽 블랑에 약간의 세미용을 블렌딩한 샬러 블랑(Chaleur Blanc)은 배럴 숙성에서 오는 크리미한 질감과 열대과일향이 뛰어나 워싱턴 소비뇽 블랑의 품질을 증명한다. 이들이 플래그십 와인을 생산하는 곳은 레드 마운틴 AVA인데, 유명 포도밭 4곳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한 포 플랙스(Four Flags)는 콜롬비아 밸리에서도 가장 더운 AVA에서 탄생한 만큼 타닌의 구조감이 뛰어나고 적절한 바람이 만들어준 산미가 좋은 균형을 이룬다.


[헤지스 패밀리 에스테이트의 톰 헤지스와 안느 마리(우), 딸 사라와 남편(좌)]


레드 마운틴의 특별함은 석양이 질 무렵 방문한 헤지스 패밀리 에스테이트(Hedges Family Estates)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레드 마운틴 AVA의 규모는 4040에이커. 워싱턴에서 작은 AVA 중 하나로, 헤지스 패밀리 에스테이트에서는 원형 경기장 같은 지형의 레드 마운틴 AVA 대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빈야드 풍경이 펼쳐진 와이너리에서 설립자 톰 헤지스(Tom Hedges)가 일행을 반겼다. 그는 샹파뉴 출신의 아내 안느-마리(Anne-Marie)와 함께 1987년 이곳을 설립했고 2001년 레드 마운틴이 AVA로 지정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두 사람의 딸인 사라(Sarah)가 2015년부터 헤드 와인메이커로 양조를 맡고 있다.


헤지스 패밀리 에스테이트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전문가를 영입해 130에이커에서 모든 와인을 바이오다이내믹으로 만들고 있고 2011년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았다. 워싱턴은 건조한 기후 덕분에 병충해나 질병에 대한 걱정이 없어 유기농 재배에 유리한 산지다. 사라는 “레드 마운틴은 워싱턴에서도 특히 건조해서 연간 강우량이 약 6인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포도알이 작으면서 풍미의 집중도가 뛰어나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레드 마운틴은 강렬하고 숙성잠재력이 높은 레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 생산지로 유명하고, 포도 가격이 손꼽힐 정도로 높은 곳이다.


[생 미셸 와인 에스테이트의 카누 릿지 에스테이트]


워싱턴에서 가장 큰 와인 생산 기업인 생 미셸 와인 에스테이트(Ste. Michelle Wine Estates)는 그 규모답게 여러 지역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그중 워싱턴 남중부에 위치한 홀스 헤븐 힐스 AVA의 카누 릿지 에스테이트(Canoe Ridge Estate)를 방문했다. 1991년 조성된 약 500에이커 규모로 오직 샤토 생 미셸(Chateau Ste.Michelle) 와인만 생산하는 독점 포도원이다. 따뜻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호스 헤븐 힐스 AVA는 워싱턴의 다른 재배 지역과 마찬가지로 관개가 필수적인데 카누 릿지 에스테이트에서는 포도나무의 뿌리 근처에 물을 소량씩 떨어뜨려 수분을 조절하는 드립 관개(Drip irrigation)를 하고 있었다. 워싱턴은 아무리 건조하다고 해도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강인 콜롬비아강의 물을 사용할 수 있어 물이 부족할 걱정은 없다. 바람도 많이 부는 곳이라 절제미가 느껴지고 우아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역시나 샤토 생 미셸이 카누 릿지 에스테이트에서 생산한 와인 중에는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에 오른 와인이 여러 개다. 포도밭 조성 이후로 시간이 흐르며 포도나무의 성숙도와 와인의 품질이 향상되고 세계 무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와인이 탄생하는 흐름은 워싱턴 와인 산업의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 미셸 와인 에스테이트가 생산하는 또 다른 워싱턴 와인 브랜드 콜롬비아 크레스트(Columbia Crest)는 홀스 헤븐 힐스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레드 와인을 담당하는 와인메이커 데인 데이(Dane Day)는 “좋은 가성비로 포도의 진정한 맛을 표현하는 와인을 생산하는 것이 콜롬비아 크레스트의 목표”라고 했다. 워싱턴 와인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만든 그랜드 에스테이트 시리즈, 홀스 헤븐 힐스의 'H' 세 개를 의미하는 H3 시리즈 등을 생산하고 있다. 품질이 좋으면서도 대중적이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와인이 많다.


[땅속 단면이 펼쳐진 퍼거슨 빈야드의 일부]


경이로운 장면이 등장한 곳은 워싱턴에서 가장 많은 와이너리가 자리한 왈라 왈라 밸리 AVA였다. 1983년 프랑스 출신 캐나다인들이 지은 오래된 학교 건물을 개조해 와이너리를 설립한 레꼴No.41(L'Ecole No.41)은 일행을 퍼거슨 빈야드(Ferguson Vineyard)와 세븐 힐스 빈야드(Seven Hills Vineyard)로 안내했다. 현무암 기반의 고지대 포도밭인 퍼거슨 빈야드에서는 포도나무가 뿌리내리는 땅속 단면이 펼쳐진 곳에서 지질학적 설명과 함께 이 지역의 토양이 형성된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약 1000만 년에서 1500만 년 전, 솟구쳐 오른 용암이 만든 지형은 본래 그 깊이가 2마일에 이를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며 지금의 분지 형태가 됐다고 한다. 철과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으로, 돌이 많고 지표면에 흙이 별로 없기 때문에 포도나무가 아래로 잘 파고들며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이 포도원에서 생산된 레꼴No.41 보르도 블렌드 와인 2011 빈티지가 2014년 디캔터 월드 와인 어워즈(Decanter World Wine Awards)에서 '베스트 보르도 블렌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구조감과 산미가 좋고 숙성잠재력이 뛰어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레꼴No.41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세븐 힐스 빈야드는 2004년 <와인 & 스피리츠(Wine & Spirits)>가 '세계 10대 포도밭' 중 하나로 선정한 곳으로, 고품질 와인을 생산해 왈라 왈라 밸리를 세계에 알린 포도밭이다. 좋은 와인을 만들고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포도밭과 와이너리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레꼴No.41은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족경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3세대가 와이너리에 참여하고 있다.


[콜롬비아 고지의 신클라인 와이너리]


워싱턴에는 오리건과 면적을 공유하는 3곳의 크로스 보더 AVA가 있다. 왈라 왈라 밸리, 콜롬비아 밸리, 그리고 콜롬비아 고지(Columbia Gorge)다. 동부 워싱턴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콜롬비아 고지 AVA로 향하는 길에는 '협곡'을 뜻하는 '고지(gorge)'라는 이름처럼 대자연의 절경이 펼쳐진다. 미기후에 지형과 토양이 다양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방문한 신클라인 와이너리(Syncline Winery)의 오너인 포피 맨톤(Poppie Mantone)은 “지형에 따라 다양한 포도밭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콜롬비아 고지를 특별하게 만든다”라고 이야기했다. 강가 저지대부터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 포도원까지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품종과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실제로 신클라인 와이너리는 픽풀, 그뤼너 벨트리너, 가메이, 그르나슈 등 다양한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특히 피노 누아로 생산한 스파클링 와인의 품질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이곳은 처음 포도밭을 개간할 때부터 본래 있던 야생 식물들을 그대로 둔 채 포도나무를 식재했고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땅이 가진 고유함과 건강을 지키고 있다.


[그래머시 셀라스의 와인메이커, 브랜든 모스]


와인메이커, 워싱턴에 매료된 사람들

특별한 테루아에서 어떤 와인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은 양조가의 몫이다. 유명한 와인메이커들이 워싱턴에 매료돼 이곳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왈라 왈라 밸리에 자리한 그래머시 셀라스(Gramercy Cellars)는 26세에 최연소 마스터 소믈리에가 된 그렉 해링턴(Greg Harrington)이 2005년 시작한 와이너리다. 그는 왈라 왈라 밸리의 와인을 맛보고 영감을 받아 와이너리 설립을 결심했다고 한다. 2008년 브랜든 모스(Brandon Moss)가 와이너리에 합류해 지금까지 공동 와인메이커로 함께하고 있으며, 초반에는 시라에 집중하다가 이후 론 품종 와인과 보르도 블렌드 와인 등으로 훌륭한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브랜든 모스는 배럴 테이스팅으로 다양한 와인을 소개하며 “야생효모를 사용해 와인을 발효하고, 그 과정에서 특히 위생과 청결을 중시한다”고 했다. 야생효모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양조장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적합한 공간을 찾아 현재 위치로 이전해 오기도 했다. 그는 야생효모를 사용하면 온도가 일정하게 잘 유지되면서 타닌이 지나치게 많이 추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시라는 80~100% 가량 전 송이를 사용하는데, 배럴 테이스팅으로 각기 다른 기간 동안 숙성 중인 와인을 맛보며 줄기의 타닌이 와인에 얼마나 스며들었는지 비교해 보는 소중한 기회도 가졌다. 그는 발효 과정을 매우 신중하게 설계해 큰 배럴이나 콘크리트 탱크를 적절히 사용한다. 테이스팅룸에서는 와이너리의 초창기 와인인 그래머시 셀라스 왈라 왈라 시라(Gramercy Cellars Walla Walla Syrah) 2008 빈티지를 시음하는 행운을 누렸다. 훌륭한 숙성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부드러운 타닌에 매력적인 감칠맛이 느껴졌다. 화이트 와인 중에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비오니에 외에도 픽풀 품종을 소개했다. 그는 “더운 기후에서도 산미가 높고 상큼한 스타일로 생산할 수 있는 품종이라, 앞으로 워싱턴에서 중요한 화이트 품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롱 쉐도우 빈트너스의 와인메이커, 질 니코]


롱 쉐도우 빈트너스(Long Shadows Vintners)는 20여 년간 샤토 생 미셸을 이끈 알렌 슙(Allen Shoup)이 2002년 설립한 와이너리다. 워싱턴의 매력을 알아보고 이 지역이 와인 산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평생을 헌신한 그는 롱 쉐도우 빈트너스를 위해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들을 초청해 드림팀을 결성했고, 그와 뜻을 함께하며 모인 와인메이커들은 워싱턴 테루아에서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며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왈라 왈라 밸리에서 만난 롱 쉐도우 빈트너스의 질 니코(Gilles Nicault)는 프랑스 출신으로 1994년 워싱턴으로 이주해 와인을 생산했고 롱 쉐도우 빈트너스의 설립 때부터 함께하다가 현재는 양조를 총괄하고 있다. 그와 함께 롱 쉐도우 빈트너스의 피루엣 레드 블렌드(Pirouette Red Blend)를 시음했다. 워싱턴 테루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보르도 블렌드 와인의 매력을 우아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와인이다. 22년 전 미셸 롤랑과 함께 풍만한 스타일의 메를로를 추구하며 만들기 시작했다는 페데스탈 메를로(Pedestal Merlot)는 과실미가 풍부하면서도 큰 일교차로 인한 경쾌함도 느껴진다.


워싱턴의 또 다른 유명 와인메이커 브레넌 레이튼(Brennon Leighton)은 현재 섭스탠스(Substance)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워싱턴 테루아를 순수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야생효모만 사용해 자연 발효를 진행하고, 이산화황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피노 그리와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등 화이트 와인을 앙금과 함께 숙성해 풍부한 질감의 와인을 생산한다. “이 와인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양조 철학”이라고 밝힌 그는 “평론가들에게 만점을 받은 와인도 있지만, 그런 평가보다는 와인과 그것이 탄생한 장소가 더 조명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매튜스 와이너리의 알렉스 스튜어트(좌), 투 빈트너스 모건 리(우)]  


현지에서 만난 와인메이커들은 워싱턴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외에도 메를로의 특별함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매튜스 와이너리(Matthews Winery)의 헤드 와인메이커 알렉스 스튜어트(Alex Stewart)는 “메를로가 워싱턴에 특화된 품종이라고 생각한다”며 “완숙도가 아주 좋기 때문에 보르도 블렌드 와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포도밭에서 아주 정교한 작업을 거쳐 고품질 포도를 재배하고, 양조 과정에서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품종의 특징을 살리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투 빈트너스(Two Vinters)의 와인메이커 모건 리(Morgan Lee)는 시라와 생소 등 론 품종에 애정을 가지고 플래그십 와인을 생산하면서도 “워싱턴이 최고의 메를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한 뒤 2019년부터 가장 뛰어난 배럴을 엄선해 120케이스의 메를로 와인 알리스(Alice)를 선보이고 있다.


[세븐 힐스 와이너리의 와인메이커, 바비 리처드]


1988년 왈라 왈라 밸리에 5번째로 문을 연 세븐 힐스 와이너리(Seven Hills Winery)는 설립자 케이시 맥클레란(Casey McClellan)이 왈라 왈라 밸리의 가능성을 증명하며 30개 이상의 빈티지를 만든 곳이다. 2021년 그가 은퇴한 뒤 이곳의 두 번째 와인메이커로서 양조를 총괄하고 있는 바비 리처드(Bobby Richards)는 다양한 품종을 다루는 데 관심이 있어 오리건에서 워싱턴으로 넘어왔고 2013년부터 이곳에서 근무했다. 그는 “와인 양조는 요리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재료인 포도가 좋으면 여러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그 품질을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라며, 비건 와인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 역시 워싱턴의 메를로가 세계적 수준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화이트 품종 중에서는 콜롬비아 밸리 소비뇽 블랑(Columbia Valley Sauvignon Blanc)과 콜롬비아 밸리 리저브 소비뇽 블랑(Columbia Valley Reserve Sauvignon Blanc)을 소개했다. 상큼한 시트러스와 산미, 달콤한 열대과일 아로마가 균형을 이루며, 워싱턴이 샤르도네와 리슬링 외에도 뛰어난 소비뇽 블랑 생산지라는 것을 증명하는 와인들이었다. 와인메이커는 “풀향과 산미가 강한 뉴질랜드 스타일과 열대과일 향에 좀 더 무거우며 산미가 낮은 캘리포니아 스타일, 둘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이 워싱턴 소비뇽 블랑”이라고 말한다. 소비뇽 블랑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 시점에 워싱턴은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생산지다. 


[앤드류 윌 와이너리의 윌 카마르다]


워싱턴의 손꼽히는 명생산자 앤드류 윌(Andrew Will) 와이너리도 빼놓을 수 없다. '메를로의 귀재'라는 평을 듣는 설립자 크리스 카마르다(Chris Camarda)는 뛰어나고 희소성 높은 와인들을 생산해 워싱턴의 컬트 와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워싱턴의 그랑 크뤼 포도밭으로 불리는 샴푸 빈야드(Champoux Vineyards)를 퀼세다 크릭(Quilceda Creek), 파워스(Powers) 등과 공동 소유하고 있다. 샴푸 빈야드에서 재배하는 포도는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강바람의 영향으로 포도알의 크기가 작고 껍질은 두꺼우면서 좋은 산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고품질 와인을 생산할 수 있고, 실제로 이곳에서 로버트 파커 100점을 기록한 와인도 여럿 탄생했다. 크리스 카마르다의 아들 윌 카마르다(Will Camarda)와 함께 시음한 소렐라(Sorella) 2020은 카베르네 소비뇽에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를 블렌딩한 플래그십 와인이다. 놀라운 퀄리티로 워싱턴에서 생산한 보르도 블렌드 와인의 품격을 보여준다.


성숙하게 공존하는 커뮤니티, 그리고 지속 가능성

오롯이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있다. 바로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워싱턴 지역의 커뮤니티다. 발데마르 에스테이트(Valdemar Estates)의 오너 헤수스 마르티네스 부한다(Jesús Martínez Bujanda)는 이곳의 큰 장점 중 하나로 '이웃'을 꼽았다. 스페인 리오하의 가족 경영 와이너리 발데마르 패밀리(Valdemar Family)의 5세대로, 시애틀에서 대학을 다닌 것이 계기가 되어 2019년 왈라 왈라 밸리에 와이너리를 설립한 그는 “이곳에 온 뒤 이웃들이 우리를 도와준 스토리는 100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워싱턴의 유명 와이너리들이 먼저 손을 내밀며 자신의 와인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이끌어 준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도와주며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반할 수밖에 없는 이곳의 매력이라고.


[발데마르 에스테이트의 오너, 헤수스 마르티네스 부한다]


와인을 매개로 지역에서 좋은 영향력을 만들어 가고 있는 와이너리도 있다. 비영리 와이너리 바이탈(Vital)은 2016년 설립 당시부터 '와인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워싱턴의 실력 있는 재배자와 와이너리들로부터 포도를 기부 받아 와인을 생산하고, 수익금은 포도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료 서비스와 교육 등을 위해 사용한다. 1년 중 수확 시기에만 포도밭에서 일하는 경우라면 건강 보험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와인 생산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비영리 단체로서 바이탈은 와인을 만드는 모든 요소와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는 관점으로 보건복지를 지원하며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한다. 바이탈의 매디 리처드(Maddie Richards) 이사는 “세븐 힐스 와이너리와 발데마르 에스테이트를 비롯해 워싱턴의 여러 뛰어난 와이너리들과 협업해 와인을 만들고 있고, 익명으로 기부하는 생산자도 여럿이다”고 말한다. 바이탈의 좋은 취지에 동참하며 장기적으로 함께하고자 하는 와이너리가 많고 새로운 기부자들도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은 환경과 사회, 경제 등을 포괄한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브리 스톡 MW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법령이 아주 자세하고, 그중에는 당연히 포도밭과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근무 환경, 건강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구스 릿지 에스테이트 와이너리의 빈야드]


2022년에는 워싱턴 와인 협회(Washington Wine Commission)와 워싱턴 와인 재배자 협회(Washington Winegrowers Association) 등이 협력해 '서스테이너블 WA(Sustainable WA)'를 공식 론칭했다. 와인 산업에서는 미국 최초의 주 단위 지속 가능 인증 프로그램으로 환경에 대한 책임, 사회적 공정성, 경제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생태계 보호를 위한 인증 프로그램 살몬-세이프(Salmon-Safe)와 파트너십을 맺고 이중 인증도 제공한다. 제3자를 통해 인증해 신뢰할 수 있는 지표로 자리잡은 서스테이너블 WA는 출범한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워싱턴의 많은 포도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다진 와이너리나 대규모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와이너리들부터 앞장섰다. 샤토 생 미셸과 레꼴No.41은 제3자 인증인 LIVE(Low Input Viticulture and Enology) 인증을 포함해 살몬-세이프와 서스테이너블 WA를 모두 받은 와이너리들이다. 약 1800에이커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구스 릿지 에스테이트 와이너리(Goose Ridge Estate Winery) 역시 서스테이너블 WA가 출범한 초기에 인증을 받은 곳이다. 한국에도 수입되고 있는 스톤캡(Stonecap) 시리즈가 구스 릿지 에스테이트 빈야드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로 생산하는 와인이다. 과일의 신선함을 살린 와인으로 가성비도 뛰어나다.


콜롬비아 밸리의 왈루크 슬로프 AVA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루크(Luke)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지속 가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와이너리다.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으로 책임 있게 재배하는 포도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와인을 생산한다. 이들은 정기적인 토양 분석과 자연 퇴비 사용 등 생물 다양성 증진을 위한 노력 외에도 환경 보호와 아동 의료, 노숙자 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비영리 기관에 기부하며 지역사회에서 상생하기 위한 활동을 펼친다. 왈루크 슬로프의 건조하고 더운 기후에서 생산한 루크의 와인들은 레드 블렌드와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설립 후 4년만인 2016년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주목해야 할 워싱턴 와이너리 10곳' 중 하나로 선정된 것은 좋은 품질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와인 생산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실천하는 생산자로 자리매김한 덕분이다. 루크의 와인들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


[루크 카베르네 소비뇽]


지역사회의 와인 생산자들과 상생하고, 생태계와 공존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와인 산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은 신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기반 위에서 독특한 테루아와 실력 있는 생산자들이 만들어낸 다이내믹한 변화는 워싱턴을 더욱 특별한 와인 산지로 만든다. 워싱턴 와인 산업의 움직임과 균형감은 앞으로의 성장도 기대하게 만든다. 우리가 워싱턴 와인을 계속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프로필이미지안미영 편집장

기자 페이지 바로가기

작성 2025.05.22 10:10수정 2025.06.02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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