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는 싱그럽고 생동감 넘치는 와인이다. 신선한 복숭아나 자두 같은 과일 풍미에 영롱한 미네랄과 볶지 않은 견과류, 가벼운 향신료 향이 드러나는 이 와인은 후텁지근한 여름 더위를 식히는 데 제격이다. 같은 품종을 프랑스에서는 피노 그리(Pinot Gris)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피노 그리지오는 가볍고 깔끔한 스타일, 피노 그리는 조금 더 구조감과 바디감이 있는 견고한 스타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같은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레이블에 적힌 이름에 따라 그 스타일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독일어권에서는 그라우부르군더(Grauburgunder)라고 부른다. 

피노 그리지오는 피노 누아(Pinot Noir)의 변종이다. 껍질에 가벼운 분홍빛이 감돌지만 대부분은 화이트 와인으로 만든다. 간혹 긴 침용을 통해 껍질 색을 살리는 경우도 있다. 주요 생산지는 이름과 스타일에서도 알 수 있듯 이탈리아와 프랑스다. 이탈리아는 세계적인 피노 그리지오 붐의 진원지다. 1961년 산타 마르게리타(Santa Margherita)가 세계 최초로 피노 그리지오를 이용해 상업적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 이래, 이탈리아는 피노 그리지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알토 아디제(Alto Adige),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Friuli-Venezia Giulia) 등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이 주요 산지다. 대부분 단일 품종으로 양조하며, 섬세한 꽃향과 핵과 풍미, 시트러스 산미, 알프스를 연상시키는 영롱한 미네랄이 어우러져 깨끗한 풍미를 자랑한다. 호불호를 크게 타지 않는 스타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와인이다.

프랑스는 피노 그리의 고향이다. 특히 알자스에서 피노 그리는 리슬링, 뮈스카, 게부르츠트라미너와 함께 4대 노블 품종으로 불린다. 피노 그리는 피노 그리지오와는 별도 품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연히 다른 개성을 보여 준다. 풍부한 바디, 견고한 구조, 풍성한 질감과 함께 더욱 드라이한 미감을 드러내며 깔끔한 과일 풍미와 미묘한 향신료 힌트가 복합적인 풍미를 선사한다. 해산물이나 가금류 메인 디시에 곁들일 만한 와인이다. 다른 품종들과 블렌딩을 통해 적당한 가격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정띠(Gentil) 같은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가성비 화이트를 찾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또한 늦수확 포도, 보트리티스(botrytis) 균의 영향을 받은 포도를 사용해 방당주 타르디브(Vendange Tardive), 셀렉션 드 그랑 노블(Sélection de Grains Nobles) 등 훌륭한 스위트 와인을 만든다. 정찬의 마무리, 디저트에 곁들일 와인으로 더할 나위 없다.

이외에 독일,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뉴질랜드 등에서도 양질의 그라우부르군더, 피노 그리, 피노 그리지오 와인을 만든다. 독일은 서늘한 기후의 영향으로 단정한 풍미와 드라이한 미감, 미묘한 미네랄리티를 지닌 와인을 생산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잘 익은 과일 향이 풍부한 반면, 오리건은 신선한 산미와 미네랄이 매력적인 뉴트럴 스타일이다. 뉴질랜드는 인동덩굴과 재스민 향기, 열대과일 풍미 덕에 밝고 향기롭다. 캐주얼한 알자스 스타일이랄까. 

피노 그리든 피노 그리지오든 다가오는 여름 더위를 식히기엔 안성맞춤이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슬슬 물린다면, 그 옆에 놓인 피노 그리지오, 피노 그리 와인을 집어 보는 건 어떨까.

리비오 펠루가, 피노 그리지오  Livio Felluga, Pinot Grigio

흰 꽃향기와 백도, 멜론 등 완숙한 과일 풍미가 은은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신선한 시트러스 산미와 함께 커스터드 크림 같이 부드러운 질감을 타고 과일 풍미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마지막에 남는 가벼운 쌉쌀함은 깔끔한 피니시를 선사한다.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와인. 샐러드나 구운 야채, 리소토, 각종 어패류 요리와 잘 어울린다. 엄선한 피노 그리지오를 껍질과 함께 단시간 침용해 온도 조절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후 2개월 이상 병입 숙성해 출시한다. 리비오 펠루가는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를 대표하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1956년 5헥타르 정도의 포도밭으로 시작 현재는 130헥타르가 넘는 포도밭을 조성해 다양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알로이스 라게더, “포르에르” 피노그리지오  Alois Lageder, “Porer” Pinot Grigio

반짝이는 골드 컬러. 살구, 복숭아, 서양배 등 달콤한 과일 향기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레몬 같이 상큼한 신맛과 영롱한 미네랄, 은은한 엘더 플라워 향이 조화롭다. 견고한 구조에 가벼운 유질감이 느껴지며, 실키한 질감이 세련된 미감을 선사한다.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의 정수를 보여 주는 와인. 샤퀴테리, 각종 치즈, 해산물이나 가금류 등 다양한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석회암 함량이 높은 자갈과 모래 토양 포도밭에서 재배한 피노 그리지오를 커다란 나무통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자연 발효해 9개월 정도 숙성한다. 알로이스 라게더는 알토 아디제를 기반으로 1823년 설립해 5대째 이어지는 와이너리다. 유기농과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해 품종과 테루아를 드러내는 와인을 만든다.

카스텔로 디 가비아노, 피노그리지오  Castello di Gabbiano, Pinot Grigio 

녹색빛이 살짝 감도는 연한 옐로 컬러. 향긋한 꽃향기와 상큼한 오렌지, 청사과, 은은한 열대 과일 풍미가 편안하게 어우러진다. 입에 넣으면 적당한 신맛과 산뜻한 바디, 과일 풍미에 살짝 곁들여지는 볶지 않은 아몬드 같은 견과 힌트가 조화롭다. 크림 파스타, 치킨, 다양한 해산물과 생선 요리에 두루 어울린다. 약간의 샤르도네를 블렌딩 해 복합미를 부여한다. 포도의 신선한 풍미와 질감을 잘 드러내기 위해 선별 효모를 사용해 저온에서 발효한다. 카스텔로 디 가비아노는 14세기부터 와인을 만들어 온 와이너리로, 전통과 현대적 기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와인을 만든다. 

토레셀라, 피노 그리지오  Torresella, Pinot Grigio

옅은 볏짚색. 향긋한 꽃향기와 시트러스, 청사과, 자두 등 신선한 과일 풍미가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적당한 신맛과 알코올이 과일 풍미와 조화를 이룬다. 피니시에 가볍게 남는 화이트 스파이스 힌트가 기분 좋은 여운을 선사한다. 식전에 입맛을 돋우기도 좋고, 해산물과 닭고기, 돼지고기 등과 좋은 궁합을 보인다. 수확한 포도는 와이너리에 도착한 즉시 부드럽게 압착해 10°C에서 맑게 안정화한 후 16 - 18°C의 저온에서 효모를 넣어 발효한다. 토레셀라는 1984년 동부 베네토를 거점으로 설립한 와이너리로, 이탈리아의 유명 와인 기업 산타 마르게리타 와인 그룹(Santa Margherita Wine Group) 소속이다. 산타 마르게리타는 1961년 최초로 껍질을 제거한 상태에서 발효해 현대적인 스타일의 피노 그리지오를 양조했고, 이는 피노 그리지오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기반이 되었다.

주슬린, 피노 그리 볼렌베어그  Zusslin, Pinot Gris Bollenberg

밝은 골드 컬러. 은은한 플로럴 허브 아로마와 영롱한 미네랄의 첫인상. 입에 넣으면 신선한 신맛과 함께 말린 살구 풍미와 꿀 같은 여운이 남는다. 음식 친화적인 스타일로 해산물을 사용한 샐러드, 구운 아스파라거스 같은 채소 요리, 로스트 치킨, 삼겹살 등 다양한 요리와 두루 어울린다. 건조하고 햇살이 강한 석회질 언덕에서 재배한 포도를 전통적인 대형 양조통에서 효모 첨가 없이 발효한다. 이후 젖산발효를 진행해 부드러운 신맛을 남긴다. 알자스의 대표적 와이너리 주슬린은 1691년에 설립해 13대째 가족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1997년 완전한 비오디나미 농업으로 전환하였고 에코서트(ECOCERT) 인증을 받았다.  

알베르 복슬러, 피노 그리  Albert Boxler, Pinot Gris

투명한 옐로 컬러. 감귤, 잘 익은 배 풍미에 볶지 않은 견과 힌트가 더해져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입에 넣으면 기분 좋은 신맛과 미네랄이 느껴지며, 부드러운 질감과 적당한 과일 풍미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크림 파스타, 리소토, 산뜻한 치즈 등과 잘 어울린다. 수확한 포도를 엄선해 오크통에서 발효 후 11개월 오크 숙성한다. 알베르 복슬러는 1672년 설립해 11대를 이어 오고 있으며 1946년 처음으로 와인 양조화 판매를 시작했다. 22헥타르 포도밭의 대부분은 언덕에 위치한 화강암 토양이다. 환경친화적 방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오하우 와인즈, 오하우 그래블스 피노 그리  Ohau Wines, Ohau Gravels Pinot Gris

은은한 골드 컬러. 향긋한 꽃향기와 무화과, 멜론 등 이국적인 과일 풍미가 섬세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질감에 복숭아, 붉은 사과 풍미, 향신료 힌트가 느껴진다. 약간의 무게감에 정제된 산미, 기분 좋은 피니시가 매력적이다. 크림 파스타, 치킨이나 오리 로스트, 각종 해산물 요리와 곁들이기 좋다. 양질의 포도를 온도 조절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후 효모 잔여물(lees)과 함께 2개월간 숙성해 풍미와 질감을 더한다. 오하우 와인즈는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 북동쪽 80km 거리에 위치한다. 오하우 강의 영향으로 형성된 독특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는 와인 생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머드 하우스, 피노 그리  Mud House, Pinot Gris

옅은 옐로 컬러. 감귤, 잘 익은 사과 아로마에 이국적 열대과일 힌트가 싱그럽다. 입에서는 미디엄 바디에 정제된 산미, 그리고 서양배, 사과 등 프루티 풍미가 가득 담긴다. 피니시에서는 루이보스 티 같은 여운과 자몽 속껍질 같은 약간의 쌉쌀함이 더해져 깔끔하다. 각종 샐러드, 모둠치즈와 콜드 컷츠, 코울슬로를 곁들인 치킨 스테이크 등 다양한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원액의 일부는 프렌치 오크 바리크에서 발효하며 효모 잔여물과 함께 가볍게 숙성해 부드러운 질감과 복합미를 더했다. 머드하우스는 1996년 뉴질랜드 말보로(Marlborough)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설립자는 뉴질랜드의 풍광에 반해 지역의 흙으로 집을 지었는데, 이 집이 바로 와이너리의 브랜드가 되었다. 

포틀랜디아, 피노 그리  Portlandia, Pinot Gris

레몬 머랭, 시트러스 껍질 같은 아로마. 입에 넣으면 상큼한 신맛과 라임, 신선한 파인애플 풍미가 이어진다. 견고함 구조감과 부드러운 질감, 깔끔한 미네랄 피니시가 돋보이는 피노 그리. 굴요리 혹은 갑각류, 훈제 연어 같은 해산물과 최고의 궁합을 보이며 피자, 파스타, 튀김, 신선한 치즈, 아시아 요리 등 다양한 음식과 곁들일 수 있다. 서늘한 밤에 수확한 포도를 가볍게 압착해 안정화한 후, 저온에서 길게 발효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효모 잔여물과 함께 6개월 숙성한다. 포틀랜디아는 전기 엔지니어로 일하던 데미안 데이비스(Damian Davis)가 2009년 오리건 윌라메트 밸리에 설립했다. 여유로운 도시 포틀랜드의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와인에 담아내는 와이너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