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최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3>을 정주행 하려고 TV를 켰다. 마침 <지구오락실3>가 나오고 있어서 잠시 보다가 출연자 4인의 환상적인 케미에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오겜'을 보려던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락실'에 몰입했는데, 마침 배경이 포르투갈의 한 와이너리였다. 펼쳐진 포도밭을 배경으로 김밥에 와인을 마시며 왁자지껄 게임을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그러다 출연자 중 맏언니 이은지가 “근데 너무 안 어울린다.. 와이너리랑 이 게임이”라고 말하자 막내 이영지가 “아니, 애초에 와인과 김밥부터 완전 MZ조합이에요”라고 맞받았다. 순간 나는 육성으로 대답할 뻔했다. “아닌데~ 김밥이랑 와인은 원래 잘 어울리는데~”
[지구오락실3의 한 장면 (출처: 유튜브 tvN Joy)]
괄쪽이 이영지가 부정적인 의미로 그런 얘기를 한 건 아니었다. 기존에 없던 색다른 조합이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이은지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의외가 아니다. 와인과 김밥은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와인21 기자모임에도 자주 등장한 메뉴였으니까. 특히 오토김밥처럼 신선한 야채를 많이 사용한 김밥을 자주 먹었는데, 샐러드와 비슷한 느낌이라 파삭한 산미가 돋보이는 청량한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렸다. 이처럼 김밥의 주재료에 따라 와인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참치 김밥이나 연어를 사용한 김밥 등은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 불고기 김밥이나 갈비 김밥처럼 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한 김밥은 가벼운 레드 와인을 곁들여도 괜찮다.
기본 김밥, 그러니까 계란과 단무지, 오이나 시금치, 어묵이나 맛살, 소시지 등으로 만든 김밥은 너무 묵직한 레드만 아니라면 평소 좋아하는 와인과 부담 없이 즐겨도 된다. 김밥 재료는 은근 개성이 강하지만 함께 먹으면 그 맛과 식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와인도 오크 뉘앙스나 타닌이 지나치게 강한 와인이 아니라면 심하게 부딪히지 않는다. 김밥이 평소 편하게 먹는 음식인 만큼 와인도 그에 맞추는 게 자연스럽다. 개인적으로는 가볍고 깔끔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는 걸 선호한다. 아래 추천하는 화이트 와인 3종은 와인샵이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타일이므로, 꼭 이 와인이 아니더라도 유사한 와인을 추천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까사 산토스 리마, 랩 비뉴 베르데 블랑코 Casa Santos Lima, Lab Vinho Verde Branco
옅은 라임색 컬러에 걸맞은 상큼한 라임 향기와 청사과, 멜론 풍미가 싱그럽다. 입에 넣으면 은은한 꽃향기가 감돌며, 맛은 한없이 가볍고 깔끔하다. 알코올은 낮지만 밸런스가 좋아 심심하지 않으며 도수가 낮아 술술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다. 기본 김밥은 물론 스파이시한 재료를 곁들인 김밥과도 잘 어울린다. '비뉴 베르데'는 포르투갈어로 '녹색 와인'이라는 뜻인데 여름 더위를 식히는 데도 제격이다. 식욕을 잃기 쉬운 여름, 김밥 한 줄 사서 비뉴 베르데 한 잔 곁들이면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파미유 위겔, 정띠 '위겔' Famille Hugel, Gentil 'Hugel'
재스민 같은 플로럴 아로마와 가벼운 스파이스, 상큼한 레몬과 백도 같은 핵과 풍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입에 넣으면 편안한 바디에 절제된 산미, 은근한 미네랄이 편안한 미감을 선사한다. 영어로는 'kind', 'nice' 정도의 의미인 정띠(Gentil)는 알자스에서 재배하는 리슬링(Riesling), 피노 그리(Pinot Gris),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뮈스카(Muscat), 피노 블랑(Pinot Blanc), 실바너(Sylvaner) 등 다양한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다. 과하지 않은 화사함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와인이다. 김밥은 물론 잠봉뵈르 같이 단순한 재료의 샌드위치와 마셔도 좋다.
마시, 마시앙코 Masi, Masianco
볏짚색이 살짝 감도는 옅은 골드 컬러. 잘 익은 사과, 살구, 복숭아, 노란 열대과일 풍미가 조화롭게 드러나며 가벼운 스파이스 힌트가 가볍게 더해진다. 입에서는 신선한 신맛이 농익은 과일 풍미와 균형을 이루며, 살짝 쌉쌀한 여운이 깔끔한 피니시를 선사한다. 무겁지 않지만 입안을 채우는 부드러운 질감과 구조감을 느낄 수 있는 와인으로, 크래미나 소시지, 진미채 등을 사용한 김밥과도 잘 어울린다. 최근 인기 있는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를 주품종으로 3주 정도 건조한 베르두쪼(Verduzzo) 품종을 일부 블렌딩해 풍미와 질감을 더했다.
스파클링 와인도 김밥에 안성맞춤이다. 어릴 적 소풍 갔을 때 김밥에 곁들여 마시던 음료가 바로 사이다 아니던가. 김밥을 먹다가 막힌 목을 시원하게 뚫어주던 사이다.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되었으니 사이다 대신 알코올 음료를 마셔도 좋지 아니한가. 특히 사이다처럼 레몬 라임 아로마가 청량하게 터지면서 신선한 청사과, 달콤한 서양배 풍미가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가벼운 스파클링이 제격일 것이다. 물론 샴페인을 곁들여도 안될 건 없다. 어떤 스파클링 와인이든 냉장고나 와인 셀러를 열고 내키는 걸 집어 들면 된다. 뭘 골라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아래 3종을 참고하자.
프레시넷, 프로세코 Freixenet, Prosecco
밝은 골드 컬러에 향긋한 꽃향기와 레몬, 자몽, 풋사과 등 신선한 과일 풍미가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상큼한 신맛과 힘찬 버블이 상쾌한 미감을 선사하며, 볶지 않은 견과 힌트가 가볍게 더해진다.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 카바(Cava)를 대표하는 생산자 프레시넷이 이탈리아 프로세코의 매력을 독특한 보틀에 그대로 담아냈다. 글레라(Glera) 품종 100%를 저온 발효해 살려낸 섬세한 아로마와 신선한 맛이 특징으로, 샐러드 김밥이나 교리김밥 같은 개성 있는 김밥과 함께 마셔도 좋을 것 같다.
헨켈, 트로켄 Henkell, Trocken
힘찬 버블을 타고 시트러스, 황도, 열대 과일 풍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입에서는 온화한 신맛과 드라이한 미감, 잘 익은 과일 풍미가 조화를 이루며, 마른 허브와 완숙 과일 뉘앙스가 기분 좋은 피니시를 남긴다. 독일과 프랑스 전문가들이 최신 기술을 적용해 샤르도네(Chardonnay) 등 다양한 품종들로 만든 와인이다. 헨켈은 독일 최대 젝트(Sekt) 브랜드로 가성비 와인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헨켈을 대표하는 헨켈 트로켄은 어떤 자리에서나 편하게 마시기 좋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충무김밥처럼 맛이 강한 김밥과 마셔도 잘 어울린다.
로저 구라트, 카바 브뤼 코랄 로제 Roger Goulart, Cava Brut Coral Rose
야리야리한 옅은 핑크 컬러에 섬세한 버블이 아름답게 피어오른다. 은은한 꽃향기는 벚꽃을 연상시키며, 붉은 체리, 딸기 풍미가 은근한 미네랄 힌트와 어우러져 섬세하게 드러난다. 산뜻한 미감에 정제된 신맛, 드라이한 여운이 깔끔하다. 연어나 참치를 사용한 김밥이나 캘리포니아 롤 등에 곁들이기 좋다. 가르나차(Garnacha) 품종을 중심으로 피노 누아(Pinot Noir)를 블렌딩 했으며, 새벽에 수확한 신선한 포도를 저온에서 침용해 신선한 과일 풍미와 아름다운 컬러를 극대화했다.
로제 와인은 매력적인 컬러가 페어링의 핵심이다. 비슷한 컬러의 음식과 페어링을 하면 실패가 거의 없다. 김밥에도 이 법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연어나 생 참치를 사용한 김밥이나 진미채 김밥 등과 아주 잘 어울린다. 물론 기본 김밥과 함께 마셔도 좋다. 특히 아래 추천하는 3종의 와인은 음식 친화적인 스타일이라 더욱 그렇다. 아름다운 컬러와 레이블만큼이나 매혹적인 와인들이다.
에스탕동, 리플렛 Estandon, Reflet
은은한 살몽 핑크 컬러. 향긋한 꽃내음이 우아한 첫인상을 선사하며 작은 붉은 베리, 잘 익은 살구, 자두 캔디, 열대 과일 아로마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질감, 지나치게 드라이하지 않은 미감이 편안하다. 누구나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맛있는 로제 와인. 생소(Cinsault), 그르나슈(Grenache), 롤(Rolle), 시라(Syrah) 품종을 서늘한 밤에 수확해 짧게 침용 및 안정화한 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다. 화이트 와인처럼 신선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으로 샐러드 김밥, 치즈 김밥 등과 곁들이기 좋다. 에스탕동은 원래 프로방스 지역 와인 협동조합의 브랜드였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 2010년 회사명을 아예 에스탕동 비네롱(Estandon Vinerons)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한국에도 에스탕동의 가성비 좋은 로제 와인이 다양하게 수입돼 있다.
카이켄, 누드 로제 Kaiken, Nude Rose
붉은빛 감도는 영롱한 로제 컬러. 석류, 딸기, 라즈베리 등 신선한 붉은 베리 풍미와 오레가노, 로즈메리, 세이지 같은 허브 스파이스 향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입에 넣으면 싱그러운 신맛과 크리미한 질감, 부담 없는 바디가 편안하다. 그르나슈(Grenache) 90%에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0%을 블렌딩 해 만드는 독특한 와인인데, 그 맛은 친근하다. 커다란 소시지를 넣은 김밥이나 불고기 김밥 같은 육류 중심의 김밥과 특히 잘 어울린다. 카이켄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오가는 거위를 뜻하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몬테스가 아르헨티나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이 로제 또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한 맛과 품질을 지니고 있다.
제라르 베르트랑, 오렌지 골드 Gerard Bertrand, Orange Gold
반짝이는 금빛 오렌지 컬러. 향긋한 꽃향기와 루이보스 티, 오렌지 크림 같은 우아한 향기가 감돈다. 입에 넣으면 신선한 신맛, 미묘한 타닌감과 함께 매끈한 질감을 타고 살구, 복숭아, 자두 같은 핵과 풍미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샤르도네,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비오니에(Viognier), 마르산느(Marsanne), 모작(Mauzac), 뮈스카(Muscat), 클레레트(Clairette) 등 다양한 청포도 품종을 줄기, 껍질 등과 함께 24시간 이상 침용 및 발효해 오렌지 와인 특유의 풍미와 컬러를 얻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와인은 로제 와인은 아니다. 오렌지 와인이다. 많이 단순화해 설명하자면, 로제 와인은 적포도 품종을 화이트 와인처럼 양조해 만들고 오렌지 와인은 청포도 품종을 레드 와인처럼 양조해 만든다고 보면 된다. 아무려면 어떤가. 맛있으면 됐지. 오렌지 와인 특유의 음식 친화성을 보여주는 와인으로, 어떤 김밥에 곁들여도 좋다.
어릴 적 <아기공룡 둘리>를 봤던 세대라면 모를 수 없는 노래 가사가 있다. “만두의 친구는 찐빵이듯이, 라면의 친구는 구공탄이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성인이 되었으니, 성인 버전으로 개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치킨의 친구는 맥주이듯이, 김밥의 친구는 와인입니다~” 치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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