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찾은 덕혼 포트폴리오의 수출 담당 이사, 칼 코브니]
“캘리포니아의 로마네 콩티(California's Romanée-Conti)”.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가 칼레라(Calera) 와인에 헌정한 말이다. 도멘 뒤작(Domaine Dujac)의 소유주이자 와인메이커 자크 세이스(Jacques Seysses)는 칼레라 와인을 “가장 부르고뉴 같은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는 2013년 10월 커버스토리에서 칼레라의 설립자 조쉬 젠슨(Josh Jensen)을 “부르고뉴 와인의 비전을 캘리포니아에서 실현한 미국 피노의 선구자(Pinot Pioneer)”로 소개했다.
칼레라는 1975년 설립한 이래 미국 피노 누아의 시작과 부흥을 주도했고, 지금은 그 정점에 자리한 와이너리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칼레라는 덕혼 포트폴리오(The Duckhorn Portfolio)의 일원이 되었다. 칼레라의 테루아와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덕혼 포트폴리오의 수출 담당 이사 칼 코브니(Karl Coveney)가 한국을 찾았다.

[칼레라의 창립자 조쉬 젠슨, 출처: www.calerawine.com]
1975년 칼레라를 설립한 조쉬 젠슨은 명실상부 미국 피노 누아의 거장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2022년 세상을 떠났지만, 마운트 할란(Mt. Harlan)의 석회암 언덕에 심은 그의 열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예일에서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와인을 접한 조쉬 젠슨은 옥스퍼드 유학 시절 유럽 여행과 와인 문화 탐방을 통해 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와인업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그는 부르고뉴의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ée-Conti)와 도멘 뒤작에 찾아가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누군가의 인맥에 기댄 게 아니라, 스스로 명가들을 찾아가 배움을 청할 정도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부르고뉴에서 경험을 쌓으며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위대한 피노 누아는 석회암 토양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는 부르고뉴처럼 개별 테루아를 드러내는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

[마운트 할란의 칼레라 포도밭, 제공: 나라셀라]
조쉬 젠슨은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 전역을 돌며 석회암 토양을 찾아다녔다. 1974년, 무려 2년 동안이나 찾아다닌 끝에 그는 몬터레이(Monterey)에서 동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가빌란 산맥(Gavilan Mountains) 부근에서 현재의 칼레라가 위치한 마운트 할란을 발견했다. 이 지역은 석회석을 구워 시멘트 재료를 만들던 가마가 남아 있을 정도로 석회석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와이너리 이름인 칼레라는 바로 '석회석을 굽는 가마'를 의미하는 스페인어다. 마운트 할란은 해발 670m 부근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공기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도 가장 서늘한 재배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석회암 토양은 피노 누아에 특별한 힘을 부여한다. 칼 코브니 수출 담당 이사는 “석회암은 물 빠짐이 좋으며 뿌리를 길게 뻗을 수 있어 포도에 복합적이고 응축된 풍미, 그리고 섬세한 산미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기 숙성형 와인을 만드는 데도 기여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마운트 할란의 높은 고도와 일교차가 더해져 풍부한 맛과 풍미, 긴장감 넘치는 구조, 우아한 미네랄리티와 산미를 지닌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쉬 젠슨이 척박한 마운트 할란을 개척해 싱글 빈야드 포도밭을 조성한 이유다.
1975년 설립한 칼레라는 1978년 첫 빈티지로 젠슨(Jenson), 리드(Reed), 셀렉(Selleck) 싱글 빈야드 피노 누아를 선보였고, 이는 와인 평론가와 애호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 1984년에는 네 번째 피노 누아 포도밭인 밀스(Mills) 빈야드를 조성했다. 조쉬 젠슨은 단순히 포도밭을 조성하고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특별한 포도밭이 공식적인 인정을 받도록 노력한 결과 1990년엔 마운트 할란 AVA(Mt. Harlan AVA)가 탄생했다. 이후 1997년 드 빌리어스(de Villiers), 1998년 라이언(Ryan) 빈야드를 조성해 칼레라에서 피노 누아를 생산하는 싱글 빈야드는 총 여섯이 되었다. 현재 마운트 할란 AVA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는 칼레라뿐이다. 여섯 개 싱글 빈야드는 모두 칼레라만이 소유한 모노폴(monopole)인 셈이다. 피노 누아 이외에 샤르도네(Chardonnay)와 약간의 비오니에(Viognier), 알리고테(Aligote)도 재배하고 있다.

[마운트 할란 AVA의 포도밭 지도, 제공: 나라셀라]
여섯 개의 포도밭은 노출, 토양, 고도 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라이언 빈야드는 5.3 헥타르 크기의 서-남서향 포도밭이다. 해발 760m의 높은 고도에 위치해 신선한 풍미와 명확한 산미가 특징이다. 가문의 이름이 붙은 젠슨 빈야드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5.6 헥타르 크기의 석회암 포도밭으로, 4개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태양빛의 노출이 각각 다르다. 덕분에 균형감과 구조감이 뛰어난 와인을 생산한다. 드 빌리어스 빈야드는 6.3 헥타르의 동향 포도밭이다. 잘 익은 검은 베리 풍미와 힘 있는 구조감을 갖춰 존재감이 뚜렷하다. 원래는 젠슨 빈야드와 밀스 빈야드를 확장하기 위해 조성하던 포도밭이었는데, 성격이 너무 달라 별도의 빈야드로 구분했다고 한다.
리드 빈야드는 2.4 헥타르의 북동향 포도밭이다. 점토질이 많아 부드럽고 풍만한 스타일의 와인이 나온다. 남서향의 셀렉 빈야드는 1.9 헥타르로 가장 작은 포도밭이다. 자갈과 바위가 많은 척박한 토양이라 강렬하고 긴장감 넘치는 와인을 생산한다. 밀즈 빈야드는 5.8 헥타르의 남동향 포도밭이다. 석회암 토양 포도밭의 미네랄리티가 강하게 드러나는 섬세한 와인을 만든다. 여섯 포도밭은 모두 피노 누아만 식재돼 있다. 양조 방법도 거의 동일한데 각각의 풍미와 스타일은 완연히 다르다. 바로 인접한 포도밭이라도 풍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부르고뉴와 마찬가지다. 부르고뉴 스타일을 지향했던 조쉬 젠슨의 염원은 칼레라에서 완벽히 이루어진 셈이다.
칼 코브니 수출 담당 이사와 함께 시음한 와인 다섯 종을 간단히 소개한다.

칼레라, 센트럴 코스트 샤도네이 Calera, Central Coast Chardonnay 2022
명확하게, 하지만 과하지 않은 오크 뉘앙스와 잘 익은 핵과와 열대 과일 풍미가 풍성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상큼한 시트러스 산미가 농밀한 과일 풍미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은은하게 감도는 노란 꽃향기 또한 매력적이다. 매끈한 질감은 편안하고 피니시까지 이어지는 산미가 깔끔한 여운을 선사한다. 와인만 마셔도, 다양한 음식과 곁들여도 좋을 최강 데일리 와인. 센트럴 코스트 여러 산지에서 수급한 샤르도네를 엄선해 프렌치 오크(10% new)에서 10개월 숙성했다.
칼레라, 센트럴 코스트 피노 누아 Calera Central Coast Pinot Noir 2022
다크 루비 컬러에 라즈베리, 검은 체리 풍미가 정향, 시나몬 캔디 뉘앙스와 함께 향긋하게 피어난다. 은근한 담뱃잎, 입에 넣으면 매끈한 타닌과 깔끔한 신맛, 농익은 베리 풍미와 적당히 세이버리한 미감이 편안하다. 섬세함은 조금 부족하지만 부르고뉴 애호가라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스타일이다. 센트럴 코스트 여러 산지에서 수급한 피노 누아를 엄선해 프렌치 오크(10% new)에서 10개월 숙성했다.
칼레라, 라이언 빈야드 피노 누아 Calera, Pinot Noir Ryan Vineyard 2020
맑은 루비 레드 컬러. 영롱한 미네랄과 향긋한 재스민, 라벤더 등 플로럴 허브 향기가 딸기, 체리 등 붉은 베리 풍미와 온화하게 어우러진다. 입에서는 우아한 타닌이 싱그러운 신맛과 조화를 이루며 단아한 구조를 형성한다. 붉은 베리 풍미와 어우러진 삼나무와 감초 힌트가 세련된 여운을 선사하는 피노 누아. 미묘하고 격조 높은 피노 누아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와인이다. 첫 빈티지는 2002년. 프렌치 오크(30% new)에서 18개월 숙성했다.
칼레라, 젠슨 빈야드 피노 누아 Calera, Pinot Noir Jensen Vineyard 2021
라이언 빈야드보다는 조금 더 짙은 루비 레드 컬러. 처음엔 아로마가 잔잔하게 피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라즈베리, 블랙베리, 자두 풍미, 정향 허브와 복합적인 스파이스 뉘앙스가 하모니를 이루며 명확히 드러난다. 부드러운 타닌과 정제된 산미로 모난 곳 없이 원만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다층적인 풍미가 매력적이다. 훌륭한 테루아에 식재된 올드 바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숙성 후가 더욱 기대되는 와인이다. 첫 빈티지는 1978년. 프렌치 오크(30% new)에서 18개월 숙성했다.
칼레라, 드 빌리어스 빈야드 피노 누아 Calera, Pinot Noir de Villiers Vineyard 2021
검은빛이 감도는 짙은 루비 컬러부터 앞의 두 싱글 빈야드와는 다른 인상을 준다. 코를 대면 블랙커런트, 완숙 자두, 블랙 체리 등 완숙한 검붉은 과일 풍미와 월계수, 후추 등 복합적인 허브 스파이스 뉘앙스가 풍성하게 드러난다. 확연히 촘촘한 타닌과 균형을 이루는 산미는 견고한 구조를 형성하며, 비교적 두툼한 질감을 선사한다. 잔근육이 발달한 보디 빌더처럼 힘이 넘치는 피노 누아. 첫 빈티지는 2007년이다. 프렌치 오크(30% new)에서 18개월 숙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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