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와인이 대지를 어루만지는 태양의 관대함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화산의 침묵을 동시에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잘 익은 검은 체리처럼 달콤하고 풍요로운 향이 피어오르다, 이내 화산재와 젖은 흙이 뒤섞인 서늘하고 쌉싸름한 향이 그 위를 덮는다. 한 잔에 담긴 이 모순된 향기, 무엇이 시칠리아의 진짜 얼굴일까.
이 아찔한 이중성은 마리오 푸조(Mario Puzo)의 소설 <대부> 속 코를레오네 패밀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성대한 결혼식 축제 속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와 그 뒤편 서재에서 은밀하게 오가는 피의 거래. 정원에서 손자와 천진하게 장난치는 할아버지의 따스한 손길과 가문의 적에게 냉혹한 죽음을 선고하는 대부의 차가운 입술. 코를레오네 패밀리의 세계는 이처럼 빛과 어둠의 위태로운 공존으로 유지된다. 이번 책갈피는 시칠리아 와인과 코를레오네 패밀리가 어떻게 같은 땅에서 태어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돈 비토 코를레오네,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혈혈단신으로 뉴욕에 건너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남자. 그가 신대륙에 가져온 단 하나의 유산은 시칠리아의 질서였다. 코를레오네의 세계에서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것은 곧 계약이자 신뢰이며, 때로는 '피'보다 진한 약속의 상징이다. 소설의 첫 장에서 돈 비토는 “딸의 결혼식에는 어떤 부탁도 거절할 수 없다”는 시칠리아의 전통에 따라 서재에서 은밀히 하객들의 청원을 들어주며 자비와 위엄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 시간, 바깥에서 끝없이 와인이 채워지며 잔을 나누는 행위가 코를레오네 패밀리라는 보이지 않는 국가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무언의 의식이 된다. 그가 훗날 마약 사업이라는 더러운 돈을 거절한 것 역시, 가족의 식탁에 오르는 이 정직한 와인의 토양을 더럽힐 수 없다는 옛 세계의 양조가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이처럼 견고하고 흔들림 없는 돈 비토의 세계를 와인 한 병에 담는다면, 그것은 단연 찌솔라 도피오제타(Zisola Doppiozeta)일 것이다. '찌솔라'는 시칠리아의 토착 가문이 아닌, 이탈리아 와인의 심장부 토스카나에서 수백 년간 와인을 빚어온 명가 마쩨이(Mazzei) 가문이 시칠리아의 잠재력을 꿰뚫어보고 세운 와이너리다. 이는 시칠리아의 질서를 신대륙 뉴욕에 이식해 새로운 제국을 건설한 돈 비토의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도피오제타'는 시칠리아의 핵심 품종인 네로 다볼라(Nero d'Avola)를 중심으로 빚은 와이너리의 플래그십 와인이다. 수백 년 역사를 지닌 가문의 자부심과 시칠리아의 뜨거운 태양이 만나 탄생한 이 와인은 돈 비토의 성채 그 자체다. 잔을 채우면 검붉은 과실의 깊고 농밀한 풍미가 피어오르고, 그 뒤를 잇는 복합적인 향신료와 바닐라, 그리고 단단한 구조감은 수많은 위기를 헤쳐온 대부의 노련한 지혜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권위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이것이 대부 돈 비토가 지키고자 했던 위대하고도 무거운 세계의 맛이다.
하지만 이 견고한 질서와 신념의 세계를 거부한 아들이 있었으니, 바로 막내아들 마이클이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의 유산과 거리를 두고자 했다. 그는 아이비리그 교정의 잔디를 밟고 미국인 연인과 미래를 꿈꾸며, 아버지의 그늘 바깥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동생의 결혼식장에서조차 그는 자신의 연인에게 “그건 우리 가족이지, 내가 아니야(That's my family, Kay. It's not me.)”라고 선을 그으며, 스스로를 운명으로부터 분리하려 애썼다.
그러나 길거리 과일 가판대 앞에서 쓰러진 아버지의 피는 그가 애써 그었던 모든 선을 무력하게 지워버렸다. 아버지의 피격 소식은 그를 운명의 한가운데로 소환했다. 병원에서조차 아버지를 향한 위협이 계속되자 마이클은 더 이상 관찰자로 남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다혈질인 형 소니의 분노나 변호사인 톰의 이성적 협상과는 다른 결단을 내린다. 가족 중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가 직접 적의 심장부로 들어가 복수를 자처한 것이다. 레스토랑의 소음 속에 울려 퍼진 두 발의 총성은 평범한 미국인 마이클 코를레오네의 영혼에 울린 장송곡이었다. 마침내 코를레오네라는 이름의 무게를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힌 대가는 그를 모든 것이 시작된 땅, 시칠리아로 되돌려 보냈다.
뉴욕의 어둡고 축축한 골목을 뒤로한 그에게 시칠리아는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망각이자 구원이었다. 시트러스의 향기가 공기 중에 흩어지고, 고대의 돌담 너머로 은빛 올리브 잎이 반짝이는 곳. 그는 자신의 뿌리가 시작된 땅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세계가 아닌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여인, 아폴로니아를 만난다. 그녀는 태양처럼 빛났고 갓 딴 포도알처럼 순수했다. 그녀와의 사랑은 뉴욕의 피로 얼룩진 기억을 잠시나마 씻어내는 세례와도 같았다.
돈나푸가타, 벨아사이(Donnafugata, Bell'Assai). '매우 아름답다'는 뜻의 벨아사이는 아폴로니아를 상징하는 듯한 이름이다. 더 나아가, 운명으로부터 달아났던 마리아 카롤리나 여왕의 이야기에서 유래해 '피난처의 여인'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돈나푸가타는 피의 세계를 등지고 시칠리아로 피신한 마이클의 운명과 기묘하게 겹친다. 이들이 시칠리아 토착 품종 프라파토(Frappato)로 빚어낸 '벨아사이'는 묵직한 힘이 아닌 생명의 찬란함을 노래한다. 잔에 따르는 순간, 야생 딸기와 체리의 싱그러운 향, 그리고 장미와 제비꽃의 화사한 아로마가 폭발하듯 피어오른다. 가벼운 바디감과 생생한 산미는 마치 아폴로니아의 꾸밈없는 웃음소리처럼 투명하고 경쾌하다. 이것은 권력의 맛도, 야망의 맛도 아니다. 그저 태양 아래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보았던 찰나의 낙원, 그 순수의 맛이다.
그것은 예상보다 빨리 마이클의 목을 적셨다. 평화로운 어느 날, 마이클은 아폴로니아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며 소박한 행복을 만끽한다. 그러나 뉴욕에서부터 그를 쫓아온 보이지 않는 손은 마이클이 아닌 그의 순수했던 사랑을 먼저 집어삼켰다. 그의 눈앞에서 아폴로니아가 탄 차가 거대한 불길과 함께 산산조각 나는 순간, 시칠리아의 태양은 빛을 잃었다. 아폴로니아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이클에게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없으며, 자비와 신뢰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온몸에 새긴 가장 잔인한 낙인이었다.
이제 그의 심장을 채운 것은 시칠리아의 따스한 태양이 아닌 에트나 화산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차가운 용암이었다. 아버지 돈 비토의 힘이 땅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묵직하고 장엄했다면, 마이클의 힘은 잘 벼린 칼날처럼 차갑고 예리했다. 그는 '피의 세례'를 통해 가문의 적들을 일소하며 아버지의 왕좌를 물려받았지만, 그 방식은 옛 세계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의 세계를 상징하는 와인은 돈 비토의 '찌솔라 도피오제타'가 될 수 없다. 마이클의 와인은 에트나 화산의 검은 땅에서 찾아야만 한다.
바로네 디 빌라그란데, 에트나 로쏘(Barone di Villagrande, Etna Rosso)는 1727년부터 10대째 에트나 화산의 분노와 축복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와인을 빚어온, 지역에서 손꼽히게 오래된 가문의 와인이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와이너리에서 태어났다는 점은 마이클이 거부할 수 없었던 '가문의 운명'과도 흡사하다. 화산 토양에서 자란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품종으로 만든 이 와인은 마이클의 이중성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초상화다. 선명한 루비색과 우아한 블랙베리의 아로마는 세련된 미국인으로 살아온 마이클의 겉모습을 닮았다. 하지만 한 모금 머금으면 혀를 에는 듯한 날카로운 산미와 부싯돌, 혹은 화약의 뉘앙스를 품은 서늘한 미네랄리티가 드러난다. 겉으로는 우아하지만 그 속에는 용암의 차가운 분노와 칼날 같은 야망을 숨기고 있다. 이것은 사랑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권력의 정점에 오른 새로운 대부, 돈 마이클 코를레오네의 맛이다.
결국 우리는 세 잔의 와인을 통해 한 가족의 거대한 서사를,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간 서로 다른 운명을 맛본 셈이다. 향기로운 '벨아사이'에서는 덧없이 스러져간 사랑의 순수함을, 묵직한 '찌솔라 도피오제타'에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 했던 아버지의 무거운 왕관을, 그리고 차갑고도 우아한 '에트나 로쏘'를 통해서는 마침내 권좌에 올랐지만 자신의 영혼은 화산재 속에 묻어야 했던 아들의 서늘한 고독과 마주했다.
이처럼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경험의 끝에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우리는 왜 굳이 낡은 책갈피를 들추어 타인의 비극을 읽고, 또 와인 한 잔에 담긴 복잡한 향과 맛을 이해하려 애쓰는가. 여러 답이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문학과 와인이 인간을 닮았고, 또 인간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 한 잔을 비운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하나의 인간, 하나의 운명을 온전히 이해하고 위로하는 일일지 모른다. 오늘 밤, 당신의 와인잔에는 어떤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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