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을 대표하는 스파클링 와인 카바(Cava). 일반적으로 카바의 가장 큰 장점은 '가성비'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으니 와인 애호가들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저렴한 이미지 때문에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급화를 추구하는 스페인 와인 생산자들에게는 큰 문제로 다가왔다. 최근 카바는 품질 기준과 생산 규정을 정비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고품질 스파클링을 추구해 온 생산자들이 주도하는 별도의 움직임도 있다. 최근 몇 년간 변경된 카바 생산 규정과 생산자들의 움직임을 가볍게 살펴보고, 카바와 스페인 프리미엄 스파클링 와인의 진면목을 확인해 보자.
카바는 법적 보호 명칭(DO) 아래 생산 지역 및 생산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카바는 스페인 4개 영역 총 159개 지방 자치제에서 생산하는데, 카탈루냐 지방의 페네데스(Penedès)가 중심이다.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 산 사두르니 다노이아(Sant Sadurní d'Anoia)는 카바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카바 생산에 핵심적인 지역이다. 포도는 마카베오(Macabeo), 자렐로(Xarel-lo), 파렐라다(Parellada) 등 세 토착품종을 중심으로 샤르도네(Chardonnay), 피노 누아(Pinot Noir) 등 샴페인 생산에 사용하는 국제 품종도 일부 허용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생산 규정이다. 카바는 병 속에서 2차 발효를 해 버블을 만든다. 이때 병에서 오랫동안 효모 잔여물(lees)과 함께 숙성할수록 풍미가 더 깊어지고 질감이 부드러워진다. 카바는 크게 카바 데 과르다(Cava de Guarda)와 카바 데 과르다 수페리오르(Cava de Guarda Superior)로 나뉜다. 카바 데 과르다는 병 숙성 기간이 최고 9개월 이상으로 짧다. 가볍고 편안하며 저렴해 일상적으로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카바 데 과르다 수페리오르는 병 숙성 기간과 생산지역에 따라 다시 세 가지 하위 등급으로 나뉜다. 레세르바(Reserva)는 최소 18개월 이상 병 숙성한다.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는 최소 30개월 이상이다. 숙성 기간에 따라 복합적인 풍미와 구조감, 크리미한 질감이 더욱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파라헤 칼리피카도(Paraje Calificado)는 인증된 특정 단일 포도밭의 포도로만 양조하며 최소 36개월 이상 병 숙성한다. 테루아의 개성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아이콘 카바라고 할 수 있다. 카바 데 과르다 수페리오르 등급 카바는 2025년부터 반드시 유기농 포도만 사용해야 한다.
카바의 품질을 추구하는 일부 생산자들은 독자적인 길을 택했다. 그들은 카바가 아닌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코르피낫(Corpinnat), 클래식 페네데스(Clàssic Penedès), 그리고 콘카 델 리우 아노이아(Conca del Riu Anoia)이다. 코르피낫은 2017년 카탈루냐의 소규모 가족 경영 와이너리들이 만든 명칭이다. 100% 유기농 포도를 손 수확해 양조 전 과정을 와이너리에서 직접 진행해야 한다. 소속 와이너리는 레세르바급을 기본으로 병입 후 효모와 함께 최소 30개월 숙성한 와인, 60개월 이상 숙성한 와인도 각각 1종류 이상 생산해야 한다. 클래식 페네데스는 페네데스 DO를 기반으로 100% 유기농, 최소 15개월 숙성한다. 콘카 델 리우 아노이아(Conca del Riu Anoia)는 전통의 와이너리 라벤토스 이 블랑(Raventós i Blanc)의 최고 포도밭 이름으로, 카바 명칭을 붙이지 않는 대신 사용한다. 모두 눈에 띈다면 꼭 맛봐야 할 프리미엄 스파클링 와인들이다.
샴페인의 대체재가 아니라 스페인만의 정체성을 가진 카바, 그리고 스페인의 프리미엄 스파클링 와인들. 다음에 스파클링 와인을 고를 때는 위 내용들을 떠올리며 카바 레이블을 유심히 살펴보자. 당신이 원하는 품격 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리스트의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들을 참고해도 좋다. 다가오는 연말연시, 크리스마스에는 프리미엄 카바로 건배해 보는 게 어떨까. 치어스.

후베 이 캄프스, 그랑 후베 Juve and Camps, Gran Juvé
반짝이는 14K 골드 컬러. 향긋한 흰 꽃 향기, 잘 익은 사과와 시트러스 풍미에 갓 구운 브리오슈와 벌꿀 뉘앙스가 은은하게 곁들여진다. 입에 넣으면 섬세한 버블이 크림 무스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며 밀도 높은 과일 풍미와 복합적인 뉘앙스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품격이 느껴지는 프리미엄 카바. 블렌딩 비율은 자렐로 40%, 마카베오 25%, 샤르도네 25%, 파렐라다 10%이며, 병입 후 최소 42개월 이상 숙성한다. 후베 이 캄프스는 데고르주멍(degorgement) 후 당을 첨가하지 않는 브뤼 나투르(Brut Nature)를 주로 만드는데, 그랑 후베는 약간의 당을 첨가한 브뤼 등급이다. 후베 가문은 1796년부터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후베 이 캄프스는 1921년 후안 후베(Joan Juvé)와 레사 캄프스(Teresa Camps) 부부가 '후베(Juvé)'라는 이름의 첫 스파클링 와인을 출시하며 시작됐다. 1972년 출시한 그랑 후베는 최초의 공식 그랑 레세르바 카바이며, 1999년에는 최초로 빈티지 카바를 선보였다. 그들이 만드는 모든 카바는 그랑 레제르바급이다.

빼레 벤뚜라, 그랑 빈티지 '파라헤 칼리피카도' 칸 바스 Pere Ventura, Gran Vintage 'Paraje Calificado' Can Bas
앰버 뉘앙스가 감도는 밝은 골드 컬러. 섬세한 버블이 지속적으로 올라온다. 상큼한 감귤, 달콤한 꿀, 은은한 허브, 고소한 아몬드 뉘앙스가 하모니를 이루며 복합적인 풍미를 드러낸다. 입에서는 레몬 크림 같은 부드럽고 싱그러운 신맛과 서양배, 메이플 시럽의 달콤한 풍미가 밀도 높은 이스트 뉘앙스와 어우러져 우아하게 드러난다. 균형 잡힌 미감에 견고한 구조감, 긴 여운이 매력적인 프리미엄 빈티지 카바. 2,7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포도밭 칸 바스에서 수확한 마카베오 50%, 자렐로 50%로 양조해 병입 후 무려 96개월 이상 초 장기 숙성한 최고 등급이다. 2016 빈티지는 단 6,203병만 생산했으며, 국내에는 48병만 수입됐다. 뻬레 벤뚜라는 3대를 이어 고품질 카바를 생산하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까바 최고 등급 파라헤 칼리피카도 생산 인증을 받은 여섯 와이너리 중 하나다.

레제르바 파밀리아 드 록사렐, 화이트 스파클링 브뤼 네이처 클래식 페네데스 Reserva Familiar de Loxarel, White Sparkling Brut Nature Clàssic Penedès
은은한 볏짚 색상에 작은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은은한 과일 풍미와 함께 오랜 숙성에서 유래한 갓 구운 브리오슈와 페이스트리 향이 난다. 입에서는 섬세한 탄산의 상쾌함이 느껴지며 기분 좋은 산미가 긴 여운을 선사한다.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재배해 엄선한 자렐로, 마카베오, 샤르도네를 정성껏 양조한 후 병입해 42-28개월 효모 잔여물과 함께 숙성한다. 보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장식한 후 와인메이커의 사인을 첨부해 품격을 높였다. 록사렐은 1985년 조셉 미찬스(Josep Mitjans)가 16세 때 설립한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와이너리의 이름을 자렐로에서 따올 만큼 카탈루냐 토착 품종에 애정이 많다.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에 이르기까지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와인을 만든다.

로저 구라트, 브뤼 밀레짐 Roger Goulart, Brut Millesime
레이블과 유사한 밝은 황금색에 고운 기포가 힘차게 올라온다. 사과, 배, 시트러스, 파인애플 등 신선한 과일의 강렬한 아로마가 드러나며 은은한 식빵 뉘앙스가 감돈다. 입에 넣으면 약간의 단맛과 깔끔한 신맛이 균형을 이루며 둥글둥글한 질감이 편안하다. 와인만 마셔도 훌륭한데, 연어, 스시 등 해산물이나 소스가 진한 닭고기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자렐로 40%, 마카베오 30%, 파렐라다 30%로 양조해 병입 후 14개월 숙성한다. 특징적인 방패 모양 레이블 때문에 더욱 큰 인기를 얻는 카바다. 로저 구라트는 1882년 설립 이래 1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페인 정통 까바를 대표하는 생산자로 성장했다.

빌라누, 돔 뽀띠에 브뤼 나투르 Vilarnau, Dom Potier Brut Nature
녹색빛이 살짝 감도는 페일 옐로우 컬러. 활기찬 버블을 타고 사과, 서양배 풍미에 은은한 토스트 힌트가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드라이한 미감에 상쾌한 시트러스 산미와 신선한 과일 풍미가 기분 좋게 드러난다. 데고르주멍 후 당분을 첨가하지 않아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식전주는 물론 핑거푸드, 각종 해산물을 사용한 샐러드, 생선회와 스시, 사퀴테리 등 다양한 음식과 무난히 어울린다. 마카베오 55%, 파렐라다 30%, 자렐로 15%로 양조해 병입 후 15개월 이상 숙성한다. 빌라누는 1949년 카바의 중심지 산 사르두니 다노이아에 설립했다. 1982년 스페인 대표 셰리 그룹 곤잘레스 비아스에 인수된 후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를 통해 고급 카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카스텔 도르, 마스 제로니 카바 브륏 NV Castell d'Or, Mas Geroni Cava Brut NV
연한 레몬 컬러에 지속적으로 피어나는 작은 버블. 레몬 같은 시트러스와 신선한 치즈 힌트, 구운 빵 뉘앙스가 하모니를 이룬다. 입에서는 깔끔한 산미와 드라이한 미감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가벼운 스낵류, 핑거 푸드, 샐러드, 신선한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린다. 자렐로 40%, 마카베오 30%, 파렐라다 30%로 양조해 병입 후 12개월 숙성했다. 카스텔 도르는 16개 협동조합이 연합해 2006년 설립한 신생 와인 그룹으로 2,200 여 농가가 관리하는 6,200 헥타르 규모의 포도밭에 기반하고 있다.

꼬도르뉴, 안나 카바 Cordoniu, Anna Cava
밝은 레몬 컬러에 활기찬 버블. 흰 꽃 향기, 시트러스와 열대과일 풍미가 조화를 이루며 토스티 뉘앙스가 살포시 더해진다. 입에 넣으면 신선한 산미와 부드러운 질감이 편안한 인상을 선사하며, 목 넘김 후 깔끔한 미감이 인상적이다.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거나 다양한 음식에 곁들일 수 있다. 칵테일 베이스로 사용해도 좋다. 샤르도네 70%와 마카베오, 자렐로, 파렐라다 30%로 양조해 병입 후 15개월 숙성했다. 꼬도르뉴는 1551년 설립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1872년 스페인 최초의 카바를 선보였다. 안나는 1984년 출시한 브랜드로 샤르도네 중심 블렌딩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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