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역사의 클래식이 이 시대에 현존하며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건, 자신만의 독보적인 해석으로 고전을 새롭게 제시하는 아티스트들 덕분이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동안 세계적인 명산지로 알려진 부르고뉴에서는 이제 젊은 와인메이커의 참신한 감각으로 놀라움을 안겨주는 와인들이 탄생하고 있다.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에서 포마르(Pommard)를 중심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도멘 미쉘 르부르정(Domaine Michel Rebourgeon)이 그런 생산자다. '젊은 천재 와인메이커'란 찬사를 들으며 이 도멘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27세의 와인메이커 윌리엄 화이트헤드(William Whitehead). 최근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도멘 미쉘 르부르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와인들을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의 와인메이커, 윌리엄 화이트헤드]
도멘 미쉘 르부르정의 포도원은 16세기부터 와인 생산을 시작해 5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다.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64년 윌리엄 화이트헤드의 외조부모가 와인 생산을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그들의 딸과 사위인 델핀 르부르정과 스티븐 화이트헤드가 1996년부터 도멘을 운영했고, 다음 세대인 윌리엄 화이트헤드는 2018년, 당시 21세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양조를 시작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은 작은 규모지만 애호가들에게 신뢰받는 가족 도멘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르고뉴 전문 와인 매거진 <부르고뉴 오주르뒤(Bourgogne Aujourd'hui)>에서 'Top 100' 와이너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명성을 쌓은 데는 단기간에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윌리엄 화이트헤드의 역할이 크다. 실제로 그가 양조를 맡은 이후, 와인의 스타일은 보다 섬세하고 우아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빈야드는 현재 본(Beaune), 포마르, 볼네(Volnay)에 총 4.25헥타르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로 포마르에 집중돼 있다. 포마르에는 총 28개의 프리미에 크뤼가 있고, 이곳에서 40~50여 개의 생산자가 와인을 생산하며 생산자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을 구현한다. 미쉘 르부르정은 포도밭을 총 22개의 구획으로 나눠 관리하며 피노 누아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부르고뉴, 빌라주, 프리미에 크뤼 세 가지 등급의 와인을 생산한다. 윌리엄 화이트헤드는 “빈야드마다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에 테루아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며 표현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포마르와 볼네의 포도밭은 매우 가까이 위치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게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윌리엄 화이트헤드와 그의 부모, 델핀 르부르정과 스티븐 화이트헤드 (제공: 나라셀라)]
그는 각 테루아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균형감 있는 와인을 만든다. “본의 포도밭이 주로 피네스와 섬세한 아로마가 특징이라면, 포마르에서는 구조감과 힘, 깊이를 드러내고, 볼네에서는 우아함과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플로럴 노트가 잘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순수한 테루아 표현을 위해 오래 전부터 포도밭을 유기농으로 관리해 왔고, 2020년 빈티지를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윌리엄 화이트헤드는 양조를 맡은 이후 시설에 대한 많은 투자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실험도 이어가고 있다. 그중 하나는 말을 이용한 포도밭 경작이다. 트랙터 대신 가축을 이용하면 토양 압착을 줄이고, 산소 공급과 미생물 활성화가 더욱 원활해진다. 이로 인해 토양의 수분 유지력이 높아지고, 포도나무가 더 깊게 뿌리내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지속 가능한 방식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캐노피 관리에도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전통적으로 약 1.2미터 높이로 유지해왔지만, 그는 이를 2.2미터로 높였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쬘 때 그늘을 형성해주는 동시에, 포도의 집중도와 품질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수확은 보통 8월 말에서 9월 초 정도에 진행하며, 모두 손으로 수확한 뒤 포도밭에서 한 번, 선별 테이블에서 다시 한 번 선별 작업을 거친다. 요즘은 전 송이(whole cluster)를 사용하는 생산자가 많지만 도멘 미쉘 르부르정은 대부분 줄기제거(destemming)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전 세대에서 전 송이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윌리엄 화이트헤드는 자신이 지향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줄기제거를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발효는 저온에서 천연 효모로 진행되며 펀칭 다운과 펌핑 오버는 상황에 따라 부드럽게 조절해 섬세한 풍미를 끌어낸다. 와인에 따라 숙성 시 오크 사용 비율을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는 출시되지 않았지만 2023년부터는 화이트 와인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테루아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해 섬세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구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쉘 르부르정 와인의 특징이다. 현재 총 17개 퀴베에서 와인을 생산하며 올드바인이 많아 생산량이 적은 편이다. 모든 와인 라벨에는 총 생산량과 병 번호가 명시돼 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은 한국에서 나라셀라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부르고뉴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와인메이커의 와인으로, 가격 대비 품질 면에서도 경쟁력이 높으니 찾아 마셔볼 가치가 충분하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부르고뉴 꼬뜨 도르 루즈 Domaine Michel Rebourgeon Bourgogne Cote D'or Rouge 2022
포마르 남쪽에 위치한 세 곳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평균 수령 40년의 포도나무에서 얻은 포도를 스테인리스 탱크와 콘크리트통에서 발효한 뒤, 12개월간 오크 숙성했다. 붉은 체리와 라즈베리의 신선한 과실미가 돋보이며, 다양한 음식과 페어링해 편하게 즐기기 좋다. 윌리엄은 2022년 빈티지를 “작황이 아주 좋았고, 따뜻한 해였지만 신선함이 살아있는 빈티지”로 설명하며, 이 와인은 “지금 바로 마셔도 좋지만 5년에서 6년 정도 숙성해 즐겨도 좋은 와인”이라고 했다.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뛰어난 포도밭에서 엄선한 포도를 사용해 기대 이상의 품질을 보여준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본 프리미에 크뤼 “레 쇼아슈” Domaine Michel Rebourgeon Beaune 1er Cru “Les Chouacheux” 2022
본 지역에서 생산되는 프리미에 크뤼 와인으로, 0.25헥타르 규모의 소규모 포도밭에서 얻은 포도로 만든다. 1957년에 식재된 포도나무로, 약 70년에 가까운 올드바인이다. 18개월간 오크 숙성했고, 그중 20~25% 정도는 새 오크를 사용했다. 붉은 과일, 감초, 초콜릿 등의 아로마가 어우러지며 질감은 매우 부드럽고 타닌은 정제돼 있다. 윗세대가 만든 와인이 힘 있고 강한 구조감이 특징이었다면 윌리엄 화이트헤드가 양조를 주도한 이후에는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변화했다. 바로 이 와인에서 그의 스타일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풍부하고 생동감 있는 아로마와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2022년 빈티지의 생산량은 1450병이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본 프리미에 크뤼 “레 쇼아슈” 2022]
도멘 미쉘 르부르정 포마르 "뜨와 떼루아” Domaine Michel Rebourgeon Pommard “Trois Terroirs” 2018
'3'을 의미하는 '뜨와(Trois)'라는 이름처럼, 포마르 지역 내 세 개의 구획에서 재배한 포도를 블렌딩해 포마르의 균형감을 표현한 와인이다. 뤼 오 포르(Rue au Porc), 르 푸아조(Le Poisot), 라 바슈(La Vache)의 포도를 사용했으며, 특히 라 바슈는 도멘 미쉘 르부르정의 최상급 포도밭 중 한 곳으로 꼽힌다. 풍부한 과실과 허브, 미네랄, 철분의 뉘앙스가 느껴지며 탄탄한 구조감과 존재감 있는 타닌이 인상적이다. 윌리엄이 처음 양조를 맡은 2018년은 아주 더운 해였지만, 숙성 잠재력이 뛰어난 와인이 생산됐다. 그는 “지금이 시음 적기이며, 향후 10년 정도의 숙성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포마르 “레 노종” Domaine Michel Rebourgeon Pommard “Les Noisons” 2020
0.3헥타르 규모의 포도밭으로, 도멘이 보유한 단일 구획 중 가장 작은 곳에서 생산했다. 프리미에 크뤼 밭 바로 옆에 위치해 그에 버금가는 품질을 보여주는 구획이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은 2019년부터 이곳에서 와인을 생산했으며, 2020년은 두 번째 빈티지다. 1942년에 식재된 80년 이상 수령의 올드바인에서 수확한 포도로 양조했으며, 수확량이 적은 구획이라 2020 빈티지는 930병만 생산됐다. 여름이 무척 덥고 건조했던 해로, 8월 21일에 수확을 시작했는데 이는 윌리엄 화이트헤드가 지금까지 경험한 빈티지 중 가장 이른 수확이었다고 한다. 선명한 컬러와 함께 풍부한 과실 향, 다양한 스파이스와 흙내음이 어우러지며, 뛰어난 집중도와 구조감을 보여주는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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