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겨울 바다의 향, 와인을 부르다

입동이 지나고 겨울의 기운이 성큼 다가왔다. 추위를 반기는 편은 아니지만, 겨울 식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겨울은 그저 춥기만 한 계절은 아니다. 겨울 바다는 고요하지만 그 속은 풍요롭다. 차가운 바다에서 살이 오른 희고 윤이 나는 석화, 고소한 기름기가 있는 뱃살을 자랑하는 방어회, 불 위에서 타닥타닥 익어가며 입을 벌리는 홍가리비, 단맛과 감칠맛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새조개 샤브샤브 등 겨울 해산물로 즐길 수 있는 요리는 다양하다. 그리고 추울 때 생각나는 프랑스식 해산물 스튜인 부야베스(Bouillabaisse)와 포르투갈식 해물죽인 아로스 데 마리스코(Arroz de Marisco)도 있다.  



수온이 내려가면 해산물은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해 지방을 축적하며, 지방은 깊은 풍미와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 게다가 산란을 앞두고 몸 속에 최대한 영양분을 축적하기 때문에, 그만큼 육질은 단단해지며 맛은 한층 농밀해진다. 낮은 수온으로 인해 신선도까지 오래 유지되니, 그야말로 겨울은 해산물이 가장 별미인 계절이다.


그렇다면 이 겨울 바다의 맛을 더욱 빛내 줄 와인은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 해산물과 함께할 와인으로는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이 가장 선호된다. 이유는 명확하다. 화이트 와인은 대체로 가볍고 신선한 특징이 있어 해산물의 섬세한 풍미를 덮지 않고 오히려 강조해 주며, 와인의 산도는 해산물의 지방과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산물과 와인의 페어링은 단순히 '해산물 = 화이트 와인'이라는 공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만남에는 훨씬 더 섬세한 감각과 균형이 필요하다. 잘못 맞추면 비린내나 쓴맛을 강조하지만, 제대로 고르면 단맛과 감칠맛이 폭발하며 바다의 풍미가 한층 깊어진다. 와인과 해산물을 제대로 페어링하고 싶다면, 다음 사항을 기억하자.


해산물 종류와 요리 방식에 따른 선택 

흰 살 생선이나 조개류에는 가볍고 산뜻한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반대로 지방이 풍부한 생선은 좀 더 바디감이 있고 풍미가 깊은 와인과 페어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드럽고 담백한 가리비에는 은은한 산미와 가벼운 질감의 와인이 어울리는 반면, 지방이 많고 살이 단단한 방어에는 조금 더 풍부하고 복합적인 와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료만으로 와인을 단정짓기엔 이르다. 조리방식에 따라 해산물의 맛과 식감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징어를 예로 들어보자. 오징어회, 그릴에 구운 오징어, 오징어 튀김은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만, 식감과 풍미는 전혀 다르다. 회에는 산도가 높고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지만, 그릴에 구운 오징어는 불 맛이 나고 식감이 쫄깃해지며 풍미가 깊어지므로 조금 더 바디감 있는 와인과 매칭하는 것이 좋다. 튀긴 해산물에는 샴페인, 카바, 프란치아코르타, 프로세코 같은 스파클링 와인이 제격이다. 솟아오르는 기포가 바삭한 튀김의 식감을 한층 경쾌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해산물 페어링에서 종종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식감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혀끝이 기억하는 리듬, 그것이 진짜 궁합이다.


소스가 와인을 결정한다

해산물의 종류와 조리법뿐 아니라, 어떤 소스로 요리되었는지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같은 생선이라도 날것으로 즐기는 회와 버터 소스를 곁들인 구운 생선은 전혀 다른 와인 페어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크 노트가 있는 화이트 와인은 날것의 회와 함께 했을 때 비린 맛을 강조할 수 있지만 소스가 곁들여진 요리와는 잘 어울린다. 버터소스를 두른 구운 생선이나 버터에 구운 관자요리와 만나면, 버터의 고소함과 크리미함이 부드러운 바닐라 향과 어우러져 조화롭다.


와인의 산도는 필수! 

와인에서 산도는 단순한 맛의 요소가 아니다. 산도는 음식과의 궁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각을 깨우고 침을 고이게 해 해산물의 비린 향을 지워주고, 입안을 헹구면서 리프레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선의 기름기도 깔끔하게 정리해줘, 한입 한입이 질리지 않고 새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해산물은 대체로 산도가 뚜렷한 와인들이 가장 잘 어울린다.


레드 와인도 가능하다

'해산물은 화이트 와인'이라는 공식이 굳어 있지만, 미식의 세계는 언제나 예외 속에서 더 흥미로워진다. 가끔은 레드 와인이 해산물과 놀라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핵심은 단 하나, 타닌이 강하지 않고 산도가 높으며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섬세한 와인을 선택하는 것. 여기에 약간의 미네랄리티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예를 들어 피노 누아나 가메는 참치나 연어 같은 붉은 살 생선, 혹은 토마토, 버섯, 간장, 올리브 등을 활용한 소스로 조리한 해산물 요리에 절묘하게 어울린다. 프랑스식 해산물 스튜인 부야베스나, 포르투갈식 해물죽인 아로즈 데 마리스코와 함께하면 그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게다가 평소 레드 와인보다 약간 낮은 온도로 서빙하면, 붉은 과실향과 섬세한 복합미가 생선의 감칠맛을 깨우며 입안에서 전혀 새로운 풍미를 만들어낸다. 바다의 섬세함과 적포도의 온기가 만나는 순간, 화이트 와인만이 정답은 아니다 라는 깨달음이 느껴질 것이다.


겨울 바다는 언제나 풍요롭지만, 그 풍요를 빛내는 것은 섬세한 한 모금의 균형이다. 한국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와인 중, 올겨울 해산물과 함께하기 좋은 와인들을 소개한다.



칸티나 테를란 피노 그리지오 Cantina Terlan Tradition Pinot Grigio Alto Adige

복숭아와 배, 흰 꽃이 어우러진 향은 섬세하고, 입안에서는 잘 익은 과실의 부드러움과 미네랄의 산뜻함이 조화를 이룬다. 크리미한 질감 위로 청량한 산도가 흘러, 방어회나 스시와 완벽히 어울린다.



슈램스버그 블랑 드 블랑 Schramsberg Blanc de Blancs

캘리포니아 북부의 햇살과 바닷바람이 만들어낸 정교한 스파클링 와인이다. 잘 익은 골든 사과와 천도 복숭아, 아몬드, 토피, 브리오슈의 향이 고급스럽게 어우러지고, 입안에서는 섬세한 기포가 생동감 있게 피어 오른다. 부드러운 질감과 산도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긴 여운을 남긴다. 청량하면서도 깊은 풍미 덕분에 고소한 꽃게찜이나 오징어 튀김, 새우튀김 같은 해산물과 탁월한 조화를 이룬다.



도멘 데 라 꽁브, 뮈스까데 세버 에 맨 쉬르리 Domaine de la Combe Muscadet Sevre-et-Maine Sur Lie

잘 익은 배와 사과의 풍미가 입안을 감싸고, 그 뒤를 잇는 날렵한 산도와 미네랄리티는 깨끗한 느낌을 준다. 흔히 굴에는 샤블리를 찾지만, 뮈스까데만큼 생굴과 완벽히 어울리는 페어링을 본 적이 없다. 이 와인의 산뜻함와 미네랄 노트는 석화의 짭조름함과 바다내음과 부드럽게 맞물린다.



알베르 비쇼 도멘 롱 드파키 샤블리 Albert Bichot Domaine Long-Depaquit Chablis

오크 노트 없이 순수한 샤르도네의 투명함을 담아냈다. 신선한 사과와 배, 레몬그라스, 젖은 돌 노트가 어우러진다. 깔끔한 여운과 섬세한 질감으로 와인이 산뜻하게 느껴지며, 한모금마다 바닷바람 같은 상쾌함을 남긴다. 이런 특성 덕분에 성게알의 고소함을 산뜻하게 정돈해주고, 와인의 미네랄 노트는 새조개 샤브샤브의 단맛과 육즙에 섬세하게 어우러진다.



쥘 데주르네 보졸레 루즈 Jules Desjourneys, Beaujolais Rouge

체리, 라즈베리 같은 붉은 과실의 향이 중심을 이루며 약간의 스파이스 노트가 깊이를 더한다. 입안에서는 섬세한 타닌과 미네랄이 어우러져 부드럽고, 겨울이 될수록 살이 단단해지는 생선들과 조화를 이룬다. 참치 스테이크나 삼치 숯불구이, 부야베스 등이 떠오른다. 과실의 깊이가 생선의 기름진 단맛을 감싸며, 불 향과 와인이 어우러진다. 잔을 들면 겨울 바다의 차가운 공기와 장작불의 온기가 한순간에 교차하는 듯한, 아름다운 조화가 완성된다.



샤또 데레즐라, 푸르민트 드라이 Chateau Dereszla Furmint Dry

녹색 사과와 스타프루트, 복숭아의 풍미에 미네랄리티와 허브 노트가 살짝 감돌며, 부싯돌과 말린 사과, 레몬 제스트의 향이 섬세하게 피어오른다. 짭조름한 내음은 바다의 맛과 탁월한 조화를 보인다. 어떠한 생선 요리와도 잘 어울리고 특히 새조개 샤브샤브의 단맛과 감칠맛이 고소한 풍미와 만났을 때, 와인의 산미와 미네랄이 해산물의 깊이를 한층 끌어올린다.

프로필이미지김성정 객원기자

기자 페이지 바로가기

작성 2025.11.12 12:22수정 2025.11.12 16:15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 이벤트 전체보기

최신 뉴스 전체보기

  • 책갈피 속 와인 아로마
  • 스펙테이터100
  • 태즈메이니아 와인 트레이드 쇼
  • 크룩 광고
  • 보졸레
  • 조지아인스타그램

이전

다음

뉴스레터
신청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