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와인21 도슨트] RM 샴페인


최근 샴페인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거대 자본과 브랜드 파워로 무장한 NM(Négociant Manipulant) 하우스들의 화려함 뒤에서, 오직 자신의 밭과 포도에 집중하며 '테루아의 정수'를 병 속에 담아내는 RM(Récoltant Manipulant) 생산자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NM은 뭐고 RM은 또 무엇인가?


샴페인 레이블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글씨로 적힌 두 글자 알파벳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샴페인 생산자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호다. NM는 샴페인 하우스의 전형적인 형태다. 포도를 직접 재배하기도 하지만, 주로 여러 재배자에게서 포도를 매입해 블렌딩하고 양조·숙성·출하까지 담당한다. 샴페인을 대량 생산하며, 매년 일관된 맛을 유지하는 '하우스 스타일'을 중시한다. 모엣 샹동(Moet & Chandon), 돔 페리뇽(Dom Perignon)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형 샴페인 브랜드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CM(Coopérative Manipulant)은 협동조합 형태로, 여러 재배자가 조합을 이루어 하나의 브랜드로 샴페인을 만든다. 니콜라스 푸이야트(Nicolas Feuillatte)가 대표적이다. RC(Récoltant Coopérateur)는 포도를 협동조합에 맡겨 양조한 뒤, 이를 다시 가져와 자기 이름으로 병입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도 SR(Société de Récoltants), ND(Négociant Distributeur) 등도 있는데, 핵심은 누가 포도를 키우고, 양조하며, 판매하는가에 있다.


오늘의 주제 RM은 '포도를 재배(Récoltant)해 직접 양조(Manipulant)하는 생산자'를 뜻한다. 포도 재배자가 직접 샴페인을 만들고 병입해 판매한다. 말 그대로 재배자이자 양조자다. 자신의 밭에서 수확한 포도가 출발점이므로, 토양과 미세 기후, 재배 방식의 차이가 샴페인에 비교적 명확하게 반영된다. 이 점이 RM 샴페인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샴페인 지역은 토양과 노출, 경사, 마을 단위의 개성이 매우 뚜렷하다. RM 생산자는 대개 특정 마을, 더 나아가 몇 개의 포도밭 구획에 집중한다. 블렌딩의 스케일은 작아지지만, 대신 개성은 선명해진다. 대형 하우스가 여러 해의 와인과 여러 마을의 포도를 섞어 일관된 스타일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면, RM은 특정 연도와 특정 장소의 인상을 병에 담는 데 무게를 둔다. RM 샴페인은 기후의 영향을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는 쪽을 택하기에, 빈티지 차이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양조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RM을 모두 하나의 스타일로 묶을 수는 없는데, 전반적으로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배양 효모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으며, 극소량만 도자주(dosage)를 하거나 아예 도사주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는 테루아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재배한 포도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된다. 토양에서 오는 특성과 기후와 날씨에서 오는 포도의 성숙도와 산도를 가리지 않겠다는 태도다. 결과적으로 RM 샴페인은 더 드라이하고, 구조가 또렷하다. 때로는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솔직함이야말로 많은 애호가를 끌어당기는 요소다. 재배와 양조가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포도밭에서의 선택이 곧 샴페인의 스타일로 직결된다.


물론 RM이 NM보다 우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와인 평론가와 애호가들은 오랜 기간 어떤 빈티지라도 믿고 마실 수 있는 NM 하우스의 안정적인 품질에 열광해 왔다. 반면 RM 생산자는 재배 및 양조 기술 수준이 아직까지는 천차만별이다. 생산자에 따라 품질 관리가 불안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매년 맛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난번 느꼈던 그 맛'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성조차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인 듯하다. 그렇기에 전체 샴페인 생산량에서 RM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그들의 영향력과 상징성이 현재 샴페인 시장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RM 샴페인은 샴페인 세계의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와 같다. 대량 생산된 기성복이 줄 수 없는 섬세한 디테일과 독창성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올해는 작지만 강한 RM 샴페인 한 병을 열어 테루아가 건네는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샴페인 자끄 피카드, 더블 솔레라  Champagne Jacques Picard, Double Solera

흰 꽃, 시트러스, 자몽 껍질 등 강렬하면서도 신선한 플로럴 & 프루티 아로마가 피어난다. 섬세한 향과 함께 절인 과일, 건과일 등 리저브 와인에서 유래한 복합적인 과일 풍미가 어우러진다. 입에서는 싱그러운 산미와 크리미한 질감이 조화를 이루며 짭조름한 미네랄의 여운이 훌륭하다. 샤르도네(Chardonnay) 75%, 뫼니에(Meunier)와 피노 누아(Pinot Noir) 25%를 블렌딩한, 최소 20개 빈티지가 섞인 리저브 와인만을 사용해 양조한다. 병입 후 효모 잔여물과 함께 4년 이상 숙성하며, 도자주는 하지 않는다. 샴페인 자크 피카드는 1950년대 로저 피카드(Roger Picard)가 포도 재배를 시작한 후 1960년대 아들 자크 피카드가 샴페인 생산을 시작하며 브랜드를 구축했다. 현재는 3대와 4대가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의 베뤼(Berru) 마을을 중심으로 프리미에 크뤼 마을에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샴페인 얀 알렉상드르, 블랑 드 블랑  Champagne Yann Alexandre, Blanc de Blancs 2017

레몬, 잘 익은 사과, 열대과일 등 풍성한 과일 풍미가 드러난다. 입에서도 코와 같은 풍미가 이어지는데, 특히 긴 병 숙성에서 기인한 우아한 질감을 타고 파인애플 풍미가 도드라진다. 묵직한 바디감이 있으면서도 산뜻하고 섬세한 느낌을 겸비한 샴페인이다. 시간이 흐르면 석고 같은 미네랄 특징이 더욱 잘 드러난다. 지속 가능 농법으로 재배한 샤르도네 100%를 오크통에서 발효 후 일부만 젖산발효한다. 병입 후 효모 잔여물과 함께 7.5년 숙성하며, 도자주는 리터당 4g로 최소한만 진행한다.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의 쿠흐마스(Courmas) 마을에 기반을 둔 얀 알렉상드르는 대부분의 와인을 크룩(KRUG)의 베이스 와인으로 납품하던 곳이었다. 현재는 자신의 샴페인으로 명성을 쌓고 있다. 얀의 샴페인은 정밀함과 신선함, 힘과 복합미를 겸비한 와인으로, 긴 병 숙성과 적은 양의 도자주가 특징이다.



샴페인 폴 데튄, 브뤼  Champagne Paul Déthune, Brut     

인동덩굴, 베르가못, 레몬, 자몽, 덤불 허브의 아로마가 강렬하게 후각을 자극한다. 신선한 첫인상은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고 우아한 미감을 타고 모과, 브리오슈, 볶은 아몬드 풍미로 이어진다. 편안한 질감과 심플하면서도 명확한 풍미가 인상적인 샴페인. 피노 누아 70%, 샤르도네 30%로 오크통에서 양조 및 숙성한다. 리저브 와인 비율은 30-50%. 도자주는 리터당 9g. 데튄 가문은 1610년부터 고품질 샴페인을 생산해 온 유서 깊은 가문이다. 폴 데튄의 현 소유주 피에르 데튄(Pierre Dethune)은 그의 아내와 함께 암보네(Ambonnay)의 그랑 크뤼 포도만을 사용해 샴페인을 만든다.



샴페인 후소 바투, 뀌베 넘버 9  Champagne Rousseaux-Batteux, Cuvee 9 2018

섬세한 버블을 타고 완숙 핵과, 노란 사과 등의 아로마가 버터 스카치, 바닐라와 같은 오크의 풍미와 하모니를 이루며 아름답게 피어난다. 입에 머금으면 깔끔한 산미와 적절한 알코올이 견고한 구조감을 이루며, 우아하고 섬세한 미감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힘과 우아함을 겸비한 개성 있는 샴페인. 몽타뉴 드 랭스의 그랑 크뤼 베르즈네(Verzenay)와 루부아(Louvois) 마을에서 지속 가능 농법으로 재배한 피노 누아 67%, 샤르도네 33%로 양조해 병입 후 36개월 이상 병입 숙성했다. 도자주는 리터당 5.5g. 1,968병만 한정 생산한 레어템이다. 샴페인 후소 바투는 1920년 폴 후소가 직접 샴페인 양조를 시작한 이래 100여 년 동안 샴페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현재는 4대 아드리안(Adrien)이 참여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샴페인 고네 메드빌, 프리미에 크뤼 퀴베 트라디씨옹  Champagne Gonet-Medeville, 1er Cru “Cuvee Tradition” Brut

흰꽃 향기, 사과와 배 아로마, 구운 아몬드와 약간의 브리오슈 힌트. 입에 넣으면 산뜻한 산도와 뚜렷한 미네랄리티가 정교한 미감을 선사하며, 적절한 과일 풍미와 이스트 뉘앙스가 좋은 밸런스를 이룬다. 우아한 미감과 긴 여운이 매력적인 샴페인. 샤르도네 70%, 피노 누아 25%, 뫼니에 5%를 70%는 온도 조절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나머지는 오크통에서 발효한다. 병입 후 36개월 효모 잔여물과 함께 숙성한 후 데고르주멍(degorgement)을 진행하며 도자주는 리터당 6g으로 최소화한다. 샴페인 고네 메드빌은 17세기부터 꼬뜨 데 블랑(Côte des Blancs)에서 포도를 재배하 온 고네(Gonet) 가문과 보르도의 메드빌(Médeville) 가문의 결혼을 통해 탄생한 샴페인 하우스다. 



샴페인 두르동 비에야르, 인스턴트 부야제  Champagne Dourdon Vieillard, L'Instant Boise

구운 사과, 바닐라, 감초, 헤이즐넛, 커피 향이 나는 풍부한 스파이스 아로마가 인상적이다. 입에 넣으면 사랑스러운 산도와 신선한 과일 풍미가 드러난다. 견고한 구조와 힘, 친근함과 편안함을 겸비한 샴페인으로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발레 드 라 마른(Vallée de la Marne)의 석회암 포도밭에서 재배한 뫼니에 100%로 양조한 후 젖산발효를 하지 않고 병입해 효모 잔여물과 함께 최소 3년 숙성했다. 도자주는 리터당 4g. 샴페인 두르동 비에야르는 샹파뉴 빌라 드 라 마른의 리유(Reuil) 마을에 기반한 가족 경영 샴페인 하우스다. 가문은 19세기 초부터 포도 재배를 이어왔으며, 20세기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샴페인 생산에 나서며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샴페인 엘리즈 데샨느, 에성씨엘  Champagne Elise Dechannes, Essentielle

레몬, 오렌지 제스트 등 시트러스와 풋사과 아로마가 신선한 첫인상을 선사한다. 입에 넣으면 신선한 산미와 섬세한 미네랄이 매력적으로 드러나며, 순수한 핵과 풍미와 은은한 이스트 힌트가 그윽한 여운을 남긴다. 엘리즈 데샨느의 스타일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엔트리 퀴베. 피노 누아 100%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양조해 9-10개월 숙성한 후 병입해 효모 잔여물과 함께 2차 발효 및 숙성한다. 엘리즈 데샨느는 샹파뉴 남부 꼬뜨 데 바(Côte des Bar)의 레 리쎄(Les Riceys) 마을을 기반으로 2008년부터 자신의 철학과 감성을 온전히 담은 샴페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섬세함과 우아함, 그리고 절제된 깊이를 바탕으로 테루아를 드러내는 샴페인을 추구한다.



샴페인 로저 바르니에, 셀렉시옹 브륏  Champagne Roger Barnier, Selection Brut

흰 과일과 베르가못의 시원한 아로마가 가장 먼저 드러난다. 이 느낌은 입으로 이어져 활기차고 신선한 첫인상을 선사하며, 잘 익은 과일의 풍부함과 준수한 밸런스를 잘 표현한다. 식전주부터 메인 디시, 식후주에 이르기까지 두루 잘 어울리는 유연한 샴페인. 로저 바르니에의 하우스 스타일을 대변한다. 샤르도네 60%, 피노 누아 10%, 뫼니에 30%로 양조하며 젖산발효를 하지 않은 리저브 와인을 41% 블렌딩한다. 병입 후 효모 잔여물과 함께 최소 30개월 숙성하며, 도자주는 리터당 5-7g이다. 샴페인 로저 바르니에는 5대에 걸쳐 42개 이상의 구획에 8 헥타르의 포도나무를 지속 가능 농법으로 재배하며, 전통 방식을 존중해 샴페인을 생산한다. 일부 구획은 100년이 되어 가는 고목이 식재돼 있다.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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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1.09 13:00수정 2026.01.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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