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은 최근 한국 와인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 중 하나다. 가벼운 바디와 상큼한 산도, 톡 쏘는 시트러스 향, 청량한 풀 내음, 달콤한 열대 과일 향이 특징이다. 이 품종 인기의 중심에는 뉴질랜드가 있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일반적으로 오크 숙성을 하지 않아 가볍고 직관적이며, 가격 대비 만족도도 높다. 많은 애호가들이 이런 스타일을 소비뇽 블랑의 전형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소비뇽 블랑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넓다. 특히 오크를 적절히 사용한 소비뇽 블랑은 뉴질랜드 스타일로 와인에 입문한 이들이 입맛의 폭을 넓히는 데도 적절한 선택지다.
소비뇽 블랑에 미치는 오크 숙성의 영향은 생각보다 섬세하다. 오크 향을 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소비뇽 블랑이 가진 강한 산미와 들뜨는 향을 부드럽게 정리하고 입안에서의 밀도와 질감을 확장하는 데 있다. 향과 풍미는 여전히 익숙한 소비뇽 블랑이되, 더욱 우아하고 품격 있는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 오크를 사용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사용하며, 재사용 배럴이나 대형 오크통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와인은 여전히 상큼하며, 과일 풍미는 길게 이어진다.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소비뇽 블랑에서 종종 느끼는 '첫 모금은 인상적이지만 피니시가 짧다'는 아쉬움이 대폭 줄어들며, 질감은 조금 더 둥글어지고 여운은 오래 남는다.
프랑스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접근 방식이 존재해 왔다. 루아르 밸리(Loire Valley)에서 생산하는 일부 와인들은 소비뇽 블랑의 미네랄리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오크를 사용해 질감을 보완한다. 세미용(Semillon)과 함께 소비뇽 블랑을 주요 품종으로 사용하는 보르도 화이트의 오크 사용은 더 적극적이다. 보르도의 고급 화이트 와인들은 보통 오크에서 발효 및 숙성해 구조감 있는 스타일을 완성한다. 이 와인들은 상큼함보다는 균형과 깊이, 구조감에 중점을 둔다. 소비뇽 블랑이 가벼운 화이트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지점이다.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이 스타일의 매력으로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완숙 과일 풍미가 매력적으로 드러나며, 편안한 오크는 이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산도는 여전히 살아 있고 질감은 크리미하다. 전반적으로 균형감 있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을 즐기던 소비자라면 '잘 차려입은 소비뇽 블랑'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여러 잔 마셔도 심심하거나 단조롭지 않다. 이 스타일은 푸메 블랑(Fumé Blanc)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그냥 소비뇽 블랑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아 보인다.
뉴질랜드에서도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의 생산이 점점 늘고 있다. 오크를 사용하지 않는 소비뇽 블랑이 여전히 주류이지만, 일부 생산자들은 최소한의 오크를 사용해 소비뇽 블랑의 뼈대를 강화한다. 폭발하는 강렬한 아로마 대신 균형과 우아함, 미묘한 여운을 선택하는 것이다. 평소 선호하던 생산자가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을 생산하는지 확인해 봐도 좋을 것이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등에서도 수준급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을 생산한다. 국가·지역 별로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오크를 통해 소비뇽 블랑의 성격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점은 유사하다. 오크는 품종의 개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도구다.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은 과시적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차분하게 매력을 드러낸다.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을 권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음식과의 궁합이 훨씬 넓어지기 때문이다. 오크 숙성하지 않은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 핑거 푸드나 샐러드, 활어회, 가벼운 해산물 등에 최적화되어 있다면,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은 선어회와 스시, 다양한 소스나 버터를 쓴 요리, 치킨이나 돼지고기 요리까지 폭넓게 소화한다. 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즐기는 경우가 많은 한국 애호가들에게 분명한 장점이다. 다만, 너무 차갑게 마시면 그 장점이 가려지니 10~12°C 정도로 마시는 게 적당하다. 냉장고에 보관한다면 15~30분 정도 실온에 두었다 마셔야 복합적인 풍미와 우아한 질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맛있게 마시던 소비뇽 블랑이 문득 늘 같은 얼굴에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을 시도해 보자. 취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꽤나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다.

도멘 바이-흐베흐디, 상세르 레 몽 담네 Domaine Bailly-Reverdy, Sancerre Les Monts Damnés
연한 옐로 컬러. 레몬과 자몽의 시트러스 향에 살구와 복숭아, 배 같은 흰 과일 풍미가 다층적으로 드러난다. 오크 숙성에서 비롯된 토스티 바닐라, 은은한 향신료 뉘앙스가 과하지 않게 드러나며 복합미를 더한다. 우아한 상세르 블랑의 전형으로 10년 정도의 숙성 잠재력이 있다. 상세르의 유명한 포도밭 레 몽 담네에서 수확한 소비뇽 블랑 100%를 부드럽게 압착해 228리터와 500리터 오크 배럴에서 발효 및 12개월 숙성한다. 새 오크는 사용하지 않아 오크 뉘앙스를 최소화한다. 뷔에(Bué) 마을에 위치한 도멘 바이-흐베흐디는 유기농법 및 지속가능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며 상세르의 다양한 토양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와이너리다.

플럼잭, 케이드 나파 밸리 소비뇽 블랑 PlumpJack, CADE Napa Valley Sauvignon Blanc
사과와 레몬, 라임의 선명한 시트러스 향 위로 배, 복숭아 풍미와 바나나 등 열대 과일 뉘앙스가 겹쳐진다. 입에서는 밝고 톡 쏘는 산도와 둥글고 크리미한 질감이 균형을 이루며, 나파 밸리 특유의 농익은 과실미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프렌치 오크에서 약 20일 발효 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5개월 숙성해 순수한 과일 풍미와 복합미, 부드러운 질감을 동시에 살렸다. 플럼잭 와이너리는 미국 나파 밸리 오크빌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셰익스피어의 캐릭터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속 가능 농법과 최첨단 설비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와인을 양조한다.

텐치 에스테이트, 소비뇽 블랑 Tench Estate, Sauvignon Blanc
서양배와 사과의 순수한 과일 향에 시트러스 힌트가 더해져 싱그럽다. 입안에서는 백도, 노란 자두, 패션 프루트 풍미가 살아 있고, 생동감 있는 산도가 구조를 또렷하게 잡아준다. 밝고 신선한 피니시가 특징이다. 과장 없이 정제된, 고급 산지형 소비뇽 블랑이다. 오크빌 동부의 단일 빈야드 포도를 사용해 순수한 과실 표현에 집중한다. 오크빌 동부에 위치한 텐치 에스테이트는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과 이웃한 프리미엄 포도밭으로 명성이 높다. 명성 높은 와인메이커 러셀 베번(Russell Bevan)의 뒤를 이어 2019년부터 전설적인 와인 컨설턴트 필립 멜카(Philippe Melka)와 그의 촉망받는 제자 마얀 코시트스키(Maayan Koschitzky)가 참여했다.

파렐라, 소비뇽 블랑 Farella, Sauvignon Blanc
열대 과일과 자몽, 라임의 상큼한 향이 복합적으로 펼쳐진다. 산뜻한 향에 비해 풍부한 바디와 질감이 입안을 감싸며, 산미는 또렷하고 마무리는 정갈하다. 완숙 과일의 순수함과 프렌치 오크의 우아함이 단아하게 균형을 이루는 소비뇽 블랑. 프렌치 오크에서 26개월 숙성했으며, 새 오크 비율이 절반 이상임에도 과일의 생동감이 살아 있다. 연 300 케이스만 생산되는 희소한 와인이다. 파렐라는 나파 밸리의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쿰스빌(Coombsville)이 나파 밸리의 16번째 하위 AVA로 지정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오너 와인메이커 톰 파렐라(Tom Farella)는 존경받는 포도 재배자로, 파 니엔테(Far Niente), 오퍼스 원(Opus One) 등에 포도 공급 경력이 있다.

테 파, 오케 소비뇽 블랑 Te Pā, Oke Sauvignon Blanc
은은한 스모키 오크 향이 감돌며 복숭아와 감귤꽃, 열대 과일 아로마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입안에서는 레몬그라스와 감귤류의 상큼함, 토스팅된 캐슈너트의 고소함이 균형을 이루며, 미세한 부싯돌 뉘앙스와 섬세한 바닐라 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다양한 풍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소비뇽 블랑. 퇴적토 중심의 와이라우 밸리(Wairau Valley)와 모래질 토양의 레드우드 힐(Redwood Hill)에서 재배한 포도로 양조해 길고 좁은 형태의 320리터 프렌치 시가 배럴(French Cigar barrels)에서 효모 잔여물과 함께 9개월 숙성한다. 테 파 와인즈는 뉴질랜드 말보로(Marlborough) 와이라우에 위치한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테 카노, 노스번 소비뇽 블랑 Te Kano, Northburn Sauvignon Blanc
엘더플라워와 패션 프루트, 라임 제스트 아로마 주위로 브리오슈 뉘앙스가 은근히 감돈다. 입안에서는 미네랄리티와 크리미한 텍스처가 조화를 이루며, 화려함보다는 균형과 우아함이 중심을 이룬다. 차분하지만 깊이 있는 소비뇽 블랑. 손 수확 후 일부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일부는 줄기를 제거하지 않고 배양 효모 첨가 없이 오크통에서 발효해 11개월 숙성 후 블렌딩한다. 테 카노는 뉴질랜드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와 노스 오타고(North Otago)에 포도밭을 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테 카노'는 마오리어로 '씨앗'을 의미하며, 환경 복원과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클라인 콘스탄시아, 클라라 소비뇽 블랑 Klein Constantia, Clara Sauvignon Blanc
그윽한 흰 꽃향기와 상큼한 시트러스, 무화과, 완숙 백도의 과일 풍미가 우아하게 퍼진다. 입안에서는 선명한 산미와 크리미한 질감이 조화를 이루며, 부싯돌 미네랄과 고소한 참깨 뉘앙스가 깊이를 더한다. 1685년부터 이어진 클라인 콘스탄시아의 역사와 테루아 해석이 집약된 와인으로, 장기 숙성 잠재력 또한 뛰어나다. 프리 런 주스만 사용해 효모 첨가 없이 발효하고, 최고 품질의 프렌치 오크 배럴(50% 뉴 오크)에서 9개월 숙성한다. 클라인 콘스탄시아의 역사는 1685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사령관 시몬 반 더 스텔(Simon Van der Stel)의 사유지에서 시작됐으며, 2011년 제넥 바칼라(Zdenek Bakala)와 샤를 하만(Charles Harman)이 인수하며 전기를 맞이했다. 뱅 드 콘스탄스(Vin de Constance)라는 스위트 와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칸티나 트라민, 페피 소비뇽 Cantina Tramin, PEPI Sauvignon
딱총나무꽃과 쐐기풀의 허브 향, 그린 구스베리와 파프리카의 스파이시한 뉘앙스가 또렷하다. 신선한 산도와 정제된 질감이 돋보이며, 오크 뉘앙스는 과일 풍미를 덮지 않고 구조를 세우는 역할에 집중한다. 소비뇽 블랑의 선명함과 절제미의 균형을 잘 잡은 와인이다. 젖산 발효 없이 오크에서 6개월 숙성해 순수함을 유지한다. 칸티나 트라민은 1898년 트라민의 사제이자 오스트리아 의회 의원 크리스티안 슈롯(Christian Schrott)이 험준한 알토 아디제 와인 생산자들을 위해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알토 아디제를 대표하는 협동조합으로 성장했으며, 높은 고도와 일교차가 큰 환경을 바탕으로 정밀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