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콜릿은 '달콤한 간식' 그 이상으로 다양해졌다. 카카오 함량을 따지던 클래식한 즐거움을 넘어, 피스타치오와 카다이프(중동 지역에서 즐겨 사용하는 실타래 모양의 반죽)가 조화를 이룬 두바이 초콜릿부터, 코코아 가루를 입히고 마시멜로의 쫀득한 식감을 더한 '두쫀쿠'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계속 확장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밸런타인데이와 설 연휴가 맞물려 있다. 트렌드의 최전선에 선 두쫀쿠는 물론, K-열풍으로 전 세계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한국의 전통 간식 등 디저트 선물의 스펙트럼이 그 어느 때보다 넓고 다채롭다.
선택지가 넓어진 만큼 '어울리는 한 잔'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완벽한 페어링은 디저트의 맛을 배가시키고, 와인의 잔당감과 향, 바디감이 디저트의 식감과 당도와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다양한 디저트의 풍미를 120% 끌어올릴 수 있는 와인은 과연 무엇일까. 트렌디한 두쫀쿠부터 명절 느낌을 담은 한국 전통 간식까지 각 디저트에 맞춘 와인 페어링을 소개한다.

가장 힙한 디저트, '두쫀쿠'와 와인의 마리아주
올해 밸런타인데이의 주인공은 단연 '두쫀쿠'다. SNS를 점령한 두쫀쿠의 핵심은 입안에서 경쾌하게 씹히는 카다이프의 식감과 부드럽게 퍼지는 피스타치오의 고소함이다. 여기에 겉면을 감싼 코코아 가루와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마시멜로의 쫀득함은 미식의 재미를 더한다.
이 화려한 주인공에게 아무 와인이나 곁들일 수는 없다. 페어링의 성패는 아작함과 쫀득함, 부드러움을 모두 갖춘 복합적인 식감과 피스타치오 페이스트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자칫하면 와인이 디저트의 단맛에 눌리거나 특유의 식감을 방해할 수 있다. 두쫀쿠의 매력을 극대화하면서도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운명적인 조합을 공개한다.

돈나푸가타, 벤 리에 Donnafugata, Ben Ryé
지중해 햇살 아래 말린 포도를 발효 중인 와인에 더해 만든 벤 리에는, 정성 담긴 양조 과정만큼이나 압도적인 풍미의 밀도를 자랑한다. 와인의 농축된 건살구, 건무화과, 오렌지 향은 마시멜로의 크리미한 질감에 입체적인 풍미를 더하며, 우아한 견과류의 풍미는 피스타치오의 섬세함을 한층 극대화한다.

곤잘레스 비야스, 아몬티야도 셰리 '비냐 아베' Gonzalez Byass Vina AB Amontillado Sherry
피스타치오 본연의 향을 끝까지 즐기고 싶다면 최고의 선택이다. 셰리 특유의 산화된 견과류 향과 짭짤함은 피스타치오 페이스트와 잘 어우러진다. 두쫀쿠 외에도 견과류가 들어간 초콜릿들과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루이 로드레, 빈티지 브뤼 샴페인 Louis Roederer Vintage Brut Champagne
빈티지 샴페인의 촘촘하고 섬세한 기포는 카다이프의 바삭한 식감과 리드미컬하게 어우러진다. 부드러운 산미는 마시멜로의 리치한 느낌을 잡아주며, 빈티지 샴페인 특유의 고소한 풍미는 겉면의 코코아 가루 및 피스타치오 페이스트와 정교한 조화를 이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트렌디하다, 약과와 개성주악의 재발견
설 연휴와 함께 찾아온 올해 밸렌타인데이에는 초콜릿 디저트 외에 약과와 개성주악 등 전통 디저트도 훌륭한 선택이다. 명절 대표 간식인 약과는 티켓팅처럼 경쟁적으로 구매한다는 의미로 '약케팅'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개성주악 또한 독특한 식감과 희소성으로 국내외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K-디저트' 열풍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묵직한 고소함과 기분 좋은 단맛은 초콜릿과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유밀과의 일종인 약과는 밀가루에 참기름, 꿀, 술, 생강즙, 계핏가루 등을 섞어 반죽한 뒤 기름에 튀기고, 조청에 푹 담가 완성한다.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고소한 기름의 풍미와 은은한 생강 향, 그리고 조청의 진득한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잘 만든 약과는 페스츄리처럼 수많은 층이 겹겹이 형성되고 그 사이사이에 기름과 꿀, 조청이 스며들어 겉은 꾸덕하면서도 속은 부드럽고 쫀득하게 씹히는 식감이 매력이다.
개성주악은 찹쌀가루와 멥쌀가루, 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해 둥글게 빚어 튀긴 뒤 조청이나 꿀에 버무려낸다. 원래는 명절이나 잔치 등 특별한 행사에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음식이었으나 2020년대에 들어 약과와 함께 '할매니얼' 디저트 유행을 타고 인기를 얻게 됐다. 약과보다 직관적인 단맛이 있으며, 막걸리 반죽 특유의 미세한 발효 풍미가 매력적이다. 약과가 쫀득하다면, 개성주악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의 대명사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찹쌀 반죽이 머금고 있던 달콤한 조청이 입안에서 터져 나온다.
이런 기름진 고소함과 조청의 무게감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잔당감이 있으며 알코올 도수가 높고 견과류 노트가 있는 주정강화 와인이 잘 어울린다. 또한 찹쌀의 찰진 질감과 조청의 단맛을 이겨낼 수 있는 농밀한 귀부 와인이나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스파클링 와인 역시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반 젤러스 앤 코, 리저브 화이트 포트 Van Zellers & Co, Reserve White Port
화이트 포트 특유의 말린 과일과 은은한 스파이스 노트, 부드러운 텍스처는 약과의 조청, 은은한 계피, 생강 풍미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화이트 포트의 세련된 산미와 무게감은 약과와 개성주악의 기름기를 깔끔하게 잡아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클래식은 영원하다, 밀크 & 다크 초콜릿
밸런타인데이의 전통적인 강자, 다크와 밀크 초콜릿은 유행이 변해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 클래식한 선물이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성격이 다르다. 카카오 본연의 쌉싸름함과 산미가 살아있는 다크 초콜릿이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진판델과 같은 묵직한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린다면, 우유의 부드러움이 녹아든 밀크 초콜릿은 향긋한 화이트 와인이나 비교적 가벼운 레드 와인과 우아한 화음을 보여준다. 초콜릿의 색깔이 짙어질수록 바디감 있는 와인을 매칭하는 것이 페어링 팁이다.

라 브란까이아 일 블루 La Brancaia, Il Blu
메를로가 메인인 슈퍼 투스칸 와인으로, 다크 초콜릿의 훌륭한 파트너다. 메를로의 실키한 타닌이 초콜릿의 질감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산지오베제의 정교한 산미가 다크 초콜릿의 묵직함을 경쾌하게 반전시킨다. 특히 달콤한 자두와 초콜릿, 모카 노트는 다크 초콜릿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완벽한 일체감을 선사한다.

클레멘스 부쉬, 마린버그 슈페트레제 Clemens Busch, Marienburg Spätlese
와인의 잔당감과 망고, 파파야, 멜론 같은 열대 과일 노트, 날카로운 산미가 밀크 초콜릿을 감싸주며 부드러움을 세련되게 다듬어준다. 입안을 산뜻하게 유지해주는 이 조합은 일반적인 밀크 초콜릿뿐만 아니라 퐁신한 초콜릿 케이크나 가벼운 초콜릿 무스 디저트와도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로맨틱 무드의 완성, 베리 & 화이트 초콜릿
붉은 베리의 상큼함이 깃든 디저트나 순백의 우아함을 지닌 화이트 초콜릿은 화사한 컬러와 화사한 향기의 만남이다.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사로잡는 이 화려한 디저트들에는 그에 걸맞은 화사한 성격의 와인을 매칭했을 때 비로소 페어링의 미학이 완성된다.

반피, 로사 리갈 브라케토 다퀴 Banfi, Rosa Regale Brachetto d'Acqui
딸기를 곁들인 초콜릿이나 핑크빛 베리 디저트라면 주저 없이 이 와인을 선택하자. 기분 좋은 붉은 색감과 은은한 장미향과 갓 딴 산딸기의 달콤한 향기, 그리고 입안에서 솟아오르는 버블은 베리류가 들어간 디저트와 만나 시각적, 미각적으로 완벽한 조합을 선사한다.

도멘 러브, 게뷔르츠트라미너 베스트호픈 Domaine Loew, Gewürztraminer Westhoffen
화이트 초콜릿 특유의 부드러운 바닐라 풍미는 게뷔르츠트라미너의 리치와 잘 익은 레몬, 복숭아의 화려한 향을 만났을 때 시너지를 낸다. 이 품종이 가진 이국적인 향기는 화이트 초콜릿의 크리미한 질감을 우아하게 감싸 안으며 감각적인 페어링을 완성한다.
사실 와인 페어링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이 칼럼에서 소개한 페어링 역시 결국은 즐거움을 찾기 위한 하나의 가이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디저트와 와인의 개성이 입안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를 직접 경험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취향에 따라 고른 디저트와 와인 한 잔을 소중한 이들과 나누며, 그 속에서 뜻밖의 조화를 발견하는 순간이야말로 바쁜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사치이자 2026년 봄을 맞이하는 가장 달콤한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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